씨름하는 너는 누구냐 ㅣ 한문덕 ㅣ 2025-05-11

by phobbi posted May 11, 2025 Views 18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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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5-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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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창립 72주년 기념 주일

씨름하는 너는 누구냐?”

(32:22-32, 1:11-17, 4:1-11)

 

한문덕 목사

 

[교황 선출 소식과 향린교회 창립 72주년을 맞으며]

 

   지난 58일 어버이날에 전 세계 약 13억 가톨릭 신자들의 새로운 파파(papa), 교황이 선출되었습니다. 가톨릭은 서력기원 395년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가 그리스도교를 로마의 국교로 삼은 이래 1630년을 이어온 역사와 전통의 단일한 조직과 제도 아래 매우 강력한 권위 체제를 지니고 있기에 새 교황 선출은 언제나 세계적 관심을 받곤 합니다. 게다가 최초의 미국인 교황의 탄생이기에, 세계를 혼란에 빠트리고 있는 트럼프에 맞서 어떤 지도력을 보여 줄지 자못 궁금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작은 희망도 가져 봅니다.

   공식적으로는 여성 사제를 허용하지 않는 깨트릴 수 없는 가부장 체제의 외형을 지닌 천주교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외부에서 들려오는 비판과 내부적으로 개혁해야 할 다양한 과제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막중한 사명과 책임을 안고 이번에 교황이 된 로버트 프레보스트 추기경은 남미의 페루에서 20년간 활동하였고, 프란치스코 교황처럼 가난한 이들과 연대하는 해방신학적 방향에서 사목했습니다. 과거 SNS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J. D. 밴스 부통령의 이민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올리고, 사회정의, 노동자 권리, 교회에서 여성의 역할 확대 등에 진보적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습니다. 교황에 선출되고 레오 14세로 불리기를 원했는데, 이는 아마도 가톨릭 사회교리의 기반이 되었고, 사회정의를 가톨릭 교리에 통합시키면서 노동자 인권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던 레오 13세를 이어가고자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레오 13세의 회칙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 1891. 참조) 그래서 그가 프란치스코 교황을 이어서 실질적인 가톨릭 개혁을 이뤄내고, 그런 사회적 영향력이 우리나라 천주교의 보수화와 우리 사회의 극우화를 막아내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는 것입니다.

   현직 대통령의 친위쿠데타라는 희대의 사건을 민주 시민의 역량으로 극복하고 있는 역사의 한복판에서 지금 우리 사회는 변혁의 대전환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제 새로운 민주 정부가 들어서면,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를 이어 그간의 약점을 보완하면서, 반민족 반민주 행위를 서슴지 않고 행하는 우리 사회의 케케묵은 기득권 카르텔을 해체 시킬 절체절명의 기회를 얻게 될 것입니다. 또한 사회의 타락과 비상식적 권력 집착이라는 행태에 한 몫 거든 것이 보수 진영에서 특히 극우화된 개신교인데, 진보·보수할 것 없이 무너져 내리는 한국 개신교도 새로운 거듭남이 절실히 요청되고 있습니다.

   지난 내란 정국에서 우리 교회는 민주 시민들과 함께 일심 단결하여 소금과 빛의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선교 활동이 방송과 신문에도 소개되었는데, 거기 달린 댓글 중 상당수는 우리 교회가 지난 72년간 해왔던 목회와 선교에 대한 칭찬과 매우 긍정적인 격려였습니다.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오늘 예배는 지난 세월 지켜 주신 은혜에 감사하면서 다시금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적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 어떤 다짐을 해야 할지 생각하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새 예배당을 봉헌하는 예식을 통해서 교회 건물이 세상에 열려 있고, 많은 이들을 연결하는 다리가 되고, 도심 한복판에서 맑고 순수한 신앙의 보금자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려면 우리 자신이 말씀의 성전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오늘 예배 중에 한 분의 장로와 열 분의 권사임직도 합니다. 향린의 지도력을 세우고, 온 교회가 더 긴밀한 상호 협력과 섬김 속에서 더 단단해질 수 있도록 모두가 기도하고 애쓰는 자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소금과 빛으로 살기 위해 1. 나를 비우고 남의 가능성을 보아라]

 

   오늘 저는 주님의 은혜로 보낸 지난 70년처럼 앞으로의 70년도 이곳 광화문에서 하나님 나라 사명을 잘 감당하여 빛의 시간을 만들어 가기 위해 함께 생각해 볼 것들을 나누고자 합니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라고 외쳤듯이 오늘날 이 메마른 시대는 저 넓고 광활한 하늘을 보면서도 그저 텅빈 공간으로만 생각합니다. 일반인들은 기존 제도 종교가 말하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고, 오염된 신앙 공동체는 사적 욕망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려 듭니다. 신 죽음의 시대, 또는 오염된 신의 시대는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었던 무화과나무처럼 화려하고 그럴싸한 문명은 만들었지만, 인류의 근원적 고통과 삶의 무의미 문제는 해소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자연과학의 힘으로 공기는 정화했지만, 우리의 영혼은 나쁜 것에 물들어가고, 우리는 원자를 쪼개어 왔지만 우리들의 편견은 여전히 부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더 많은 소득을 향유하고 있지만 안타깝게 더 낮은 수준의 도덕을 지닌 것으로 보입니다. 사람들의 키는 성장했지만 품성의 키는 작아졌고, 평균 수명은 늘어났지만, 가치 있는 시간들은 더 줄어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사는 집은 더 멋있어졌지만, 놀랍게 많은 가정이 깨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다시 한번 우리 자신을 점검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의 주인공들은 모두 하나님의 백성으로 제대로 살아보고자 씨름한 사람들입니다. 야곱이 그렇고, 나사렛 예수가 그러하시며, 바울 사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 사도는 자기 또래의 많은 사람보다도 유대교 신앙에 앞서 있었고, 자기 조상들의 전통을 지키는 일에도 훨씬 더 열성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신앙과 신념을 가지고 놀랍게도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을 뿐만 아니라, 아예 없애버리려고까지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바울을 바꾸셔서 당신의 사도로 삼으십니다. 우리는 바울의 전향을 통해 몇 가지를 확실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첫째는 우리가 지닌 가장 확고한 신념,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신념이, 겉으로는 하나님을 위한 열정이고, 그래서 반드시 옳은 일이라고 여기는 바로 그것이 도리어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깨달음입니다. 확실하고 절대적인 믿음은 모든 신앙인이 바라는 것이겠으나, 놀랍게 바로 그런 믿음이 오히려 주님의 길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둘째 주님은 바울처럼 교회를 박해하는 자까지도 들어 쓰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또한 사람에 대한 근원적 낙관을 지녀야 하고, 절대 포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지금은 냉담자요, 방해꾼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런 이도 하나님이 들어 쓰시면 놀라운 하나님의 종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향린교회가 앞으로 주님의 사명을 잘 감당하려면 자기 스스로가 틀릴 수도 있다는 깨달음 속에서 겸손해야 하고, 다른 교인 중 누구라도 언제든 하나님의 손에 붙잡히면 놀라운 일을 하는 가능성의 존재라는 것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소금과 빛으로 살기 위해 2. 하나님의 아들딸로 살아야]

 

   오늘 우리가 읽은 복음서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가 어떤 존재인지 확실히 알게 됩니다. 사탄, 악마, 시험하는 자라고 불리는 자가 40일이나 굶은 예수님을 유혹합니다. 유혹하는 말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말이 유혹하는 말입니다. 사탄은 이 말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됨이란 돌로 빵을 만들고,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도 다치지 않는 존재, 즉 전능성을 드러내고 과시하는 존재라고 세뇌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예수가 생각하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탄의 모든 유혹을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칩니다.

   전능한 존재가 되려는 유혹은 첫 사람 아담과 하와 때부터 존재했습니다. 그들은 금단의 열매를 먹고 하나님처럼 되어, 모든 것이 가능하고,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지배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유혹자의 꼬임에 넘어가 주님의 명령을 어긴 뒤 얻은 결과는 부끄러움이었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이 전능감을 누리려고 합니다. 특히 돈은 유사 전능감을 주기 때문에, 돈만 있으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을 주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돈에 넘어가서 결국 인생을 망치게 됩니다. 부끄러운 일을 당하게 되는 것이지요.

   사탄의 마지막 유혹은 세상을 지배하는 권세를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섬기는 삶을 사셨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파산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서로 섬기는 삶에 헌신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으로 섬기는 삶 속에서 얻는 자유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 욕망, 그래서 결국은 남을 자기 밑에 두고 지배하려는 욕망은 아무리 허울 좋은 명분을 내세운다고 해도 결국 사탄의 속임수일 뿐입니다.

   예수님은 사탄의 둘째 유혹을 물리치면서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아라라고 말합니다. 성전에서 뛰어내려도 다치지 않아 모든 인간에게 신으로 인정받으려는 그 명예 욕구야말로 하나님을 시험할 정도로 강한 욕망입니다. 자기를 남에게 드러내고 잘난 체하면서 인정받아야만 풀리는 욕망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못하게 합니다.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내세우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언자 예레미야는 이런 말을 합니다. “지혜 있는 사람은 자기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아라. 용사는 자기의 힘을 자랑하지 말아라. 부자는 자기의 재산을 자랑하지 말아라. 오직 자랑하고 싶은 사람은, 이것을 자랑하여라. 나를 아는 것과, 나 주가 긍휼과 공평과 공의를 세상에 실현하는 하나님인 것과, 내가 이런 일 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아 알 만한 지혜를 가지게 되었음을, 자랑하여라.”(923-24)

   우리 향린교회가 진정한 의미에서 주님의 몸 된 교회가 되려면 우리 모두가 우선적으로 나를 드러내고, 나를 내세우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겠다는 마음을 접어야 합니다. 오히려 주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주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묻고, 그것을 찾기 위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으며, 사적 이익이나 개인의 관심을 넘어선 공적 가치를 향해 더불어 나아갈 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젊은이가 수도원에 입회하겠다고 찾아오자 수도원의 나이 든 수사가 언제든지 세상을 떠날 수 있는 순례자의 자세로 사는지 알아보려고 그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금화 세 닢이 있다 하면 그것을 기꺼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겠느냐?” “그럼요, 마음으로부터 모두 주겠습니다.” “그러면 은화 세 닢이 있다면 그것은 어찌하겠느냐?” “그것도 기쁘게 나누어 주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동전 세 닢이 있다면 어찌하겠느냐?” 그러자 젊은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그것만은 안 되겠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한 수사가 물었습니다. “아니, 그건 왜 안 되느냐?” “현재 제가 가진 게 바로 그 동전 세 닢이거든요.”

   자기 것을 내어놓지 못하는 이가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는 없겠지요. 여러분! 가만히 가슴에 손을 얹고 한 번 스스로를 돌아보시지요. 여러분은 하나님의 아들딸로 살려고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내 맘대로 살고 싶은 것입니까? 하나님의 아들딸이라면 주님의 뜻에 따라 내 동전 세 닢을 내놓을 결단을 해야 합니다.

 

[소금과 빛으로 살기 위해 3.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자]

 

   마지막으로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한 가지를 말씀드리고 오늘 하늘뜻펴기를 마치려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구약 말씀은 매우 유명한 구절입니다. 바로 야곱이 하나님과 밤새도록 씨름하는 장면입니다.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야곱의 이야기는 쌍둥이 형 에서와의 갈등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장남은 아버지의 권력을 승계하고, 권위와 재산을 물려받았습니다. 차남이라는 지위에 만족하지 못한 동생 야곱은 형 에서를 두 번이나 속여서 장자권을 가로챕니다. 화가 난 에서는 야곱을 죽이겠다고 협박하고, 야곱은 목숨이 두려워 도망자의 신세가 되고 맙니다. 먼 길로 도망가서 결국 외삼촌 라반과 함께 살게 되는데, 20년 넘는 세월 동안 속이는 자 야곱은 도리어 계속 속임을 당하면서 많은 고생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결국 그런 고생 후에 야곱은 대가족을 이루어 가축 떼를 이끌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고향에 가는 야곱의 마음은 편치 못합니다. 긴장합니다. 형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엄청난 선물을 준비해서 차례대로 보내며 형이 자신을 용서해 주고 흔쾌히 받아 주기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실제 어떤 상황이 펼쳐질 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이제 에서와 만나기 위해 마지막 넘어야 할 강을 앞두고 야곱은 홀로 남습니다. 다른 가족들은 전부 보냈지만, 야곱은 아직도 에서를 만날 마지막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습니다. 어쩌면 예상치 못한 최악의 순간에는 도망치려고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마지막 날의 밤은 야곱에게는 운명적 전환의 날이 됩니다. 여러분이 다 아시는 대로 야곱은 밤새 고민하며 씨름합니다. 그때, 어떤 이가 나타나 야곱과 함께 씨름하는데, 그가 야곱에게 묻습니다.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야곱이 대답합니다. “야곱입니다.”

   야곱의 이야기 전체 중에서 야곱이 자신의 이름이 무엇인지 질문을 받았던 첫 장면은 야곱이 에서의 축복을 가로채기 위해 앞이 보이지 않는 아버지 이삭을 찾아갔을 때입니다. 눈이 침침하던 이삭은 몸에 털을 붙어 있으나 목소리는 야곱인 아들에게 다소 혼란한 감정을 느끼며 아들아, 너는 누구냐?”라고 묻습니다. 그때 야곱은 저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랬던 야곱이 밤새 씨름해야만 했던 이 순간에는 내 이름은 야곱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야곱은 평생을 에서가 되고 싶었던 사람입니다. 형의 이름을 갖고 싶어서 속이는 자로 살았고, 놀랍게 자기 아닌 것이 되려고 했지만 그 과정에서 속이는 자 즉 자기 자신인 야곱으로 살아가야 했습니다. 게다가 속이는 자가 오히려 속으면서 살게 되었지요. 그런데 오늘 야곱은 20년의 쓰디쓴 인생 경험을 통해 이제야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저는 야곱입니다. 저는 속이는 자입니다. 저는 사기꾼입니다.”라고 정직하게 말합니다. 그래서 놀랍게 새로운 이름 이스라엘을 얻게 됩니다.

   이후 성경은 이스라엘과 야곱이 혼용되어서 계속 나옵니다. 아브람이 바뀌어 아브라함이 되고, 사래가 바뀌어 사라가 된 다음에는 줄곧 아브라함과 사라로 불리는 것과는 다릅니다. 이후 야곱은 새롭게 변화된 인생과 본래 주어진 인생을 모두 품어 안고 사는 존재가 되었던 것입니다.

   미래 70년을 만들어 갈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진솔하게 고백해야 하는 것은 바로 있는 자기 모습 그대로여야 합니다. 넘어지고, 실패하고, 작은 일에 삐지고, 분을 참지 못해 일을 그르치고, 남과 비교하면서 때로 주눅 들었다가 우쭐하는 자기를 있는 그대로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그동안 만들어온 위대한 성취도 있지만, 우리도 죄 앞에 넘어지는 나약한 존재라는 사실도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의 어두운 면, 우리의 부족한 면을 그대로 하나님 앞에 고백할 때, 그때 하나님은 우리가 씨름하는 것을 홀로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함께 씨름해 주십니다.

   야곱의 이야기는 바로 이것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우리의 씨름은 쉽지 않은 씨름입니다. 불의한 세력이 너무나 강력하고 집요하고 치밀하기에 그러하고, 우리가 그보다 더 약하고 실수 많고 안일하기에 또 그러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자신의 어두운 면까지 드러내면서 있는 그대로 하나님 앞에서 씨름할 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씨름하겠다. 이제 너는 속이는 자가 아니라, 승리하는 야훼를 드러내는 존재가 될 것이다.”

   사랑하는 향린 교우 여러분! 밤새 씨름했던 야곱은 엉덩이뼈를 다쳐서 절룩거리며 새롭게 동트는 아침을 맞이합니다. 우리 향린도 그러합니다. 지난 72년은 화려하기만 했던 시간이 아닙니다. 우리는 넘어지기도 했고, 싸우기도 했고, 그래서 갈라지기도 했습니다. 향기 나는 이웃이라고 명명했지만, 오히려 서로에게 미움의 감정을 드러내며 악취를 풍기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온전치 못한 몸으로 절뚝이며 다시 70년을 걸어가야만 합니다.

   그러나 바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하나님 앞에서 씨름했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홀로 내버려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뿜어내는 존재가 될 것입니다. 그때까지 우리의 씨름을 포기하지 맙시다. 밤을 새더라도 결코 놓지 맙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씨름하는 너는 누구냐?”라고 물으실 때, 정직하게 얘기합시다. “우리는 향기로운 이웃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때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향기로운 이웃이기를 포기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때까지 우리는 주님의 샅바를 굳게 잡은 손을 놓을 생각이 없습니다.” 우리가 정직하게 대답하고 끈질기게 주님을 붙든다면 우리에게도 환한 주님의 얼굴, 브니엘의 아침이 밝게 동터올 것입니다.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

 

파송사

 

사랑하는 향린 교우 여러분, 믿음의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도 어깨를 쭉 펴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당당하게 그리고 힘차게 나아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서십시오.

서서 솔직하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내어놓으십시오.

하나님께 자신이 씨름하는 문제를 드러내십시오.

그러면 우리 주님께서 함께 싸워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