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5. 09.
먼저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봅시다. 물론 고대인들이 보듯 우리가 하늘을 보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유일신교마저 퇴색한 이 메마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하늘을 올려다보면 그저 텅 비어 있다고 여깁니다. 우리는 더는 (그것이 어떤 의미이든)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들로 가득 찬, 구름처럼 무거운 물리적 우주인 ‘문두스’(mundus)가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하지만 대다수 고대 후기 사람들은 신적 존재들과 그들을 섬기는 천상의 수행원들이 함께 살며 우주를 영원히 다스린다고 확고하게 믿었습니다. 그리스도교가 가르치던 창조와 종말은 바로 이 믿음에 도전했고, 이 믿음을 뒤흔들었습니다.
“그들(그리스도교인)은 영원한 생명으로 번영하는 우주(mundus)를 한시적이고 짧은 것인 양 업신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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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기 초 아우구스티누스와 셰누테 같은 이들에게 ‘그리스도교화’의 핵심은 단순히 외적인 변화가 아닌 ‘문두스’, 곧 우주를 보는 상상 체계를 그리스도교화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우주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계시된 유일신의 배타적 권능 아래 하나로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관점은 고대의 분화된 우주 모형과는 근본적으로 달랐습니다. 전통적인 모형에서는 우주의 각 영역을 다른 신적 존재들이 다스린다고 여겼기에 이 땅에서 다양한 종교 관행이 있는 것을 당연시하고 용인했습니다. 문두스에 대한 상상 체계를 그리스도교화 하는 과정은 당시 대다수 사람이 갖고 있던 종교 상식과는 완전히 다른, 신의 활동 방식과 우주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종교 ‘상식’, 혹은 공통 감각(common sense)을 만들어내는 작업이었습니다.
피터 브라운 지음/양세규 옮김, <마침내 그들이 로마를 바꾸어 갈 때>(비아, 2025. 04. 30.), 2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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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 존재하는 세계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인식하고 해석하는 체계이다.
고대 그리스도교가 바꾼 것은 바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었다.
오늘날도 그리스도교가 해야 할 일은 세상을 바라보는 눈,
인간을 바라보는 눈, 존재와 삶의 의미를 바라보는 눈을 새롭게 하는 일이다.
- 향린 목회 187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