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세 시대의 복음 ㅣ 윤상혁 ㅣ 2023-10-01

by 김지목 posted Oct 02, 2023 Views 94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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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3-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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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세 시대의 복음

생태정의를 실천하는 향린 공동체 -

 

윤상혁

 

성서 읽기: 출애굽기 171~7, 시편 251~9, 빌립보서 21~13

 

 

제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에서 선생님들과 책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원만한책모임이라고 한 달에 한 책을 읽는 모임입니다. 이 모임에서 최근에 선정한 책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였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는 감정이 묘했습니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선정한 직후, 우연히 여자를 모욕하는 걸작들이라는 비평서를 알게 되었는데요,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여자를 모욕하는 걸작들은 우리가 다 알만한 책들이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말괄량이 길들이기,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 레이먼드 챈들러의 안녕 내 사랑,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앙드레 브르통의 나자, 이상의 날개,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 그리고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였습니다.

 

고민 끝에 모임의 선정도서를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여자를 모욕하는 걸작들로 바꿨습니다. 베를린 훔볼트 대학에서 미술사와 젠더학(남성학)을 공부한 조이한은 이 책에서 조르바를 맨박스(Man box)에 갇힌 상상 속 자유인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원전을 읽지 않은 채 비평서만 읽을 수는 없는 법. 그리스인 조르바도 함께 읽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드디어 모임을 가졌는데요, 여선생님들은 모두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기가 불편하다고 했습니다. 여자를 모욕하는 걸작들을 읽으니 더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고전의 반열에서 기각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적 맥락을 반영한 새로운 읽기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시대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도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자신의 작품들을 통해 당시 부패한 그리스 정치계와 종교계에 비판적 통찰을 보여주었던 반면 여성에 대한 관점만큼은 그에 미치지 못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문학도 그리고 그 문학을 창조한 작가도 결국은 시대의 산물이기 때문이죠.

 

성서 속의 등장인물들도 이와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출애굽을 이끈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 다윗으로 추정되는 시편 기자, 그리고 옥중에서 빌립보교회에 서신을 보낸 바울은 각기 자신의 시대에서 위기를 헤쳐나가며 예리한 성찰과 단단한 리더십을 발휘했지만 그들 역시 인간인지라 분노하고 질투하고 좌절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성서 속의 위대한 인물들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성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의 본질에 대해서 저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성서의 메시지가 히브리어나 헬라어로 변환되는 순간 누락되는 의미들이 있을 거라고 추측합니다. 사유하지 못하면 표현될 수도 없는 법이니까요.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리고 지식의 변천에 따라 성서를 담아냈던 장치도 파피루스, 양피지, 종이 등으로 계속 변화한 것처럼 성서에 대한 해석 역시 지구가 변화함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지구가 변화함에 따라라고 말씀드렸는데요, 모세가 살던 시대의 지구와, 다윗이 살던 시대의 지구 그리고 바울이 살던 시대의 지구는 큰 차이가 없었던 반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그 당시와 많이 다릅니다. 지구 역사를 시대별로 구분한 것을 지질시대라고 합니다. 지질 연대별로 누대, , , , 절 등의 단위로 나누는데 우리는 지금 신생대 4기 홀로세(Holocene) - 현세(現世) 또는 충적세(沖積世)라고도 합니다 - 라는 지질학적 시간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약 1만 년의 역사를 지닌 홀로세의 종말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국제지질과학연맹 산하 국제층서위원회에서 인류세의 도입을 검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류세(Anthropocene)20002, 오존층 연구로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대기화학자 파울 크뤼천이 제안한 것으로 지금 이 시대는 인류가 지질학적 흔적을 남길 정도로 자연에 절대적 영향력을 끼치게 된 시대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최고치의 이산화탄소 배출량, 합성유기화합물, 플라스틱, 플루토늄 등의 방사능 물질, 콘크리트 등이 인류가 미래에 남기게 될 지질학적 흔적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인류세가 시작된 시점으로는 본격적으로 농업이 시작된 신석기 혁명, 유럽의 아메리카 침략, 산업혁명 등 여러 주장이 있는데, 2009년 출범한 인류세실무그룹(AWG)은 인류세의 시작을 대가속기(The Great Acceleration)’가 시작한 1950년대로 보고 있습니다.

 

대가속기는 대량생산 대량소비에 기반을 둔 소비 자본주의가 확산한 시대로 1950년대부터 이산화탄소 농도 등 12개 지구 시스템 지표와 세계 인구 등 12개 사회·경제적 지표가 폭증했습니다.

 

 

인류가 지질에만 흔적을 남기는 것은 아닙니다. 대기도 바뀌고 있습니다. 기후변화가 바로 그것입니다. 홀로세의 시대 동안 지구 온도는 줄곧 14도를 유지해 왔습니다. 안정적인 기온은 농업을 가능하게 하고 문명을 발달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산업화 이후 공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짙어지면서 지구 온도가 상승하고 있습니다. 이산화탄소 농도는 이전보다 약 0.01% 증가했을 뿐이지만, 폭염, 폭설, 가뭄, 홍수, 태풍, 산불 등의 재해는 상상을 초월하여 증가하고 있습니다. 재해의 빈도 뿐만 아니라 강도 역시 백 년 만의’, ‘역대급이라는 수식어가 거의 항상 따라올 정도로 점점 세지고 있습니다.

 

시대의 기후를 읽으라는 말은 더 이상 은유가 아닙니다. 우리는 기후의 변화를 통해 시대의 변화를 읽어내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는 인간이 만들어낸 인공물의 총량이 자연물의 총량을 넘어선 시대이기도 합니다.

 

 

충격적인 것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세계 포유류에서 야생동물이 차지하는 비율은 불과 4%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96%는 무엇이 차지하고 있는 걸까요? 인간이 34%를 차지하고 있고 나머지 62%는 가축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류세 시대의 풍경입니다. 모세, 다윗, 바울이 경험한 세상과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세상은 질적으로 다른 세상인 것입니다.

 

 

코로나 19가 발발하기 1년 전인 2018101일 인천에서 열린 제48IPCC 총회에서 지구온난화 1.5특별보고서가 채택되었습니다. 지구의 평균 기온 상승을 1.5이하로 억제하려면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10년 대비 최소 45% 줄여야 하며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해야 한다는 결론이었습니다. 2020년 대한민국은 세계 주요 선진국가들과 마찬가지로 ‘2050 탄소중립선언을 발표했습니다.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사회 전반의 대전환이 필요합니다. 교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사실 교회는 탄소중립을 넘어 생태 정의를 이야기해야 합니다.

 

정의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예전에 김희헌 목사님께서 하늘뜻펴기를 통해 말씀하셨던 내용이기도 한데요, 지구윤리센터 디렉터 카렌나 고어는 2020년 가을에 열린 <한국생태문명회의>에서 스웨덴에서 만난 그리스도인 친구의 말을 빌려 국제 정책이 만들어지는 어느 공간이든 세 개의 빈 의자가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세 개는 각각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 미래세대, 그리고 지구에 있는 모든 인간 이외의 생명체, 그러니까 현재 만들어지는 정책들에 가장 큰 영향을 받으면서도 가장 적은 영향력을 가진 존재들을 위한 지정석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목소리가 없는 존재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 그것이 바로 정의입니다. 그 정의가 강물처럼 흘러 인간 너머의 존재들까지 적셔줄 때 우리는 비로소 생태정의를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누구나 좋은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 좋은 삶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보장되어야 합니다. 성별, 국적, 피부색, 장애의 여부, 가정의 경제력과 사회적 배경에 상관없이 동등한 발달 기회를 통해 공정한 삶의 기회를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사회는 좋은 삶을 함께 만들고 가꿔나가는 공유재가 아니라 소수의 능력자만 가질 수 있는 희소재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결국 현대문명이 석유우라늄이라는 희소재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점점 희소해지고 있는 기회, 그리고 이를 붙잡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이 소모되는 사회. 소수의 승자를 위해 다수를 패자로 만드는 거대한 낭비의 체제. 여기서 버려지는 것은 종이컵만은 아닙니다. 수많은 인간과 인간 너머의 존재들이 종이컵처럼 버려집니다.

 

생태정의 공동 선언은 바로 이러한 체제를 반대하는 단절의 선언입니다. 다른 삶은 가능하다는 전환의 선언입니다. 인간과 비인간 생명의 공존을 추구하는 해방의 선언입니다. 좋은 삶의 근원은 에너지와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파생된) 권력의 순환과 분산입니다. 우리 향린교회 공동체는 에너지와 권력을 세상 속으로 순환시키고 공유시키고 확산시키는 생태적 정의의 성소가 되어야 합니다. 생명의 근원인 태양과 바람과 물의 공공성을 인식하는 교회, 기후변화로 인하여 인간과 비인간 생명이 겪고 있는 고통과 억압에 저항하는 교회, 그리고 공멸의 산업문명을 반대하고 공존의 생태문명을 창조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향린 공동체는 이미 <60주년 생활실천선언><교회 갱신과 사회 선교 실천을 위한 제안>을 통해 생태정의 공동선언의 단초를 마련한 바 있습니다. 특히 <교회 갱신과 사회 선교 실천을 위한 제안>을 주목합니다. 제안으로부터 1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제안에서 언급하고 있는 내용들의 중요성과 시급성은 더욱 높아졌습니다. 향린 공동체는 과거 향린의 유산과 정신을 계승하면서도 기후위기라는 지구적 재앙 앞에서 단절하고 전환하고 해방할 수 있는 실천적인 선언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에 생태정의 공동선언을 함께 만들 것을 향린 공동체에 제안하였고 현재 강남향린, 들꽃향린, 섬돌향린과 향린이 연합하여 <생태정의 공동선언 TF>를 구성하였습니다.

 

생태정의 공동선언 TF팀은 다음과 같이 일곱 가지 원칙 속에서 생태정의 공동선언을 만들고 있습니다. 첫째, 생태정의 공동선언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소명을 기후위기 시대에 맞게 재해석하고 바로 세우기 위한 생태적 신앙고백입니다. 둘째, 기후위기의 근본 원인을 숙고할 때 성서가 이야기하는 구원과 해방, 하나님의 정의는 인간 너머의 존재에까지 확장되어야 합니다. , 하나님의 정의는 생태정의를 포괄합니다. 셋째, 지각이 있는 모든 생명의 존엄성은 존중받아야 하며 하나님이 인간에게 부여한 특별한 지위는 생태정의가 보장되는 범위 내에서만 유지되어야 합니다. 넷째, 우리 모두는 서로 연결되어 있는 상호의존적 존재이며, 좋은 삶이란 모든 생명이 자신의 존재 의미를 실현하는 삶입니다. 다섯째, 교회는 상호의존적인 세계에서 인간의 역할과 행위를 근본적으로 전환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해야만 합니다. 여섯째, 이 선언은 한국기독교협의회의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한국교회 탄소중립 선언기후위기 극복과 창조세계 보전을 위한 한국기독교장로회 탄소중립 선언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선언은 향린교회의 <60주년 생활실천선언><교회 갱신과 사회 선교 실천을 위한 제안>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60주년 생활실천선언>

 

1. 우리는 하느님 나라의 일꾼으로 이 땅에 파송되었음을 믿으며, 하느님 나라의 실현을 위해 성서공부, 기도, 신앙ㆍ신학서적 읽기 등 일상의 신앙훈련을 통해 사회선교의 영성을 키운다.

2. 우리는 교인들 한 명 한 명의 주체적 참여가 교회 민주주의의 근간이 된다고 믿으며, 이를 위해 각 신도회와 부서, 평화나눔공동체 등 교회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3. 우리는 우리의 삶과 숨결이 녹아 있는 우리 가락과 정서로 하느님께 예배드릴 때 더욱 뜻 깊은 예배가 된다고 믿으며, 우리 가락이나 우리 악기를 배우기 위해 힘쓴다.

4. 우리는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이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믿으며, 국가보안법 폐지와 한반도 평화협정 실현을 위한 활동에 나선다.

5. 우리는 분단된 겨레를 하나 되게 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 믿으며, 평화통일을 이루기 위해 기도하고, 헌금하며, 활동한다.

6. 우리는 누구에게나 햇빛과 비를 주셔서 평등하게 사랑하시는 하느님을 믿으며, 교회와 가정, 직장 등 모든 관계에서 차별적 언어나 행위를 하지 않도록 민감하게 성찰하며 행동한다.

7. 우리는 고통받는 이웃과 함께 아파하시는 하느님을 믿으며, 사회적 불의에 맞서 싸우고, 고통당하는 이웃들과 연대하는 활동에 참여한다.

8. 우리는 창조질서의 보전이 하느님의 뜻이라 믿으며, 자녀들과 함께 일상생활에서 친환경적으로 생활하고 이웃과 힘을 모아 생태적 삶을 실천한다.

9. 우리는 하느님께서 주신 모든 생명을 있는 그대로 소중히 여기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 믿으며, 어린이ㆍ청소년들의 심리와 교육 상태를 이해하고, 그들의 교육 환경과 사회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한다.

10. 우리는 신앙의 유산을 이어 나가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 믿으며, 어린이ㆍ청소년들과 한국교회의 미래를 위해 교회교육이 매우 중요함을 인식하고, 교육 재정 확보, 교사 봉사, 학부모 활동 등을 통해 교회교육을 지원한다.

 

20131027(종교개혁주일)

 

향린교회 교인 일동

 

 

<교회 갱신과 사회 선교 실천을 위한 제안>

 

4. (생태ㆍ환경) 교회는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보전하고, 도시와 농촌이 상생하는 생태공동체 사회가 되도록 힘써야 한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모든 생명은 존귀하며 함께 살아갈 소중한 존재다. 그러나 인간은 끝없이 욕망을 추구함으로써 이웃 생명을 죽이고 지구 환경을 파괴하여 인류와 지구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또한 한국 사회는 압축 성장을 통해 오늘에 이르렀으나, 이제는 그 부작용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좁은 국토에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밀집해 있고 노후화된 핵발전소는 한국 사회가 과연 지속할 수 있을지 우려하게 하는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

 

이러한 죽임과 파괴에 대항하여 지구와 인류의 미래를 위해 생명과 환경을 존중하는 삶을 추구하는 흐름이 이미 시작되었다. 우리는 이러한 흐름에 동참하여 생태적 삶을 살아가는 것이 창조주 하느님을 고백하는 한국교회가 감당해야 할 선교적 사명이라 믿으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1) (생태적 세계를 위한 교회의 역할) 교회는 교인들이 생태적인 세계관을 갖고 생태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교육하고 훈련해야 한다.

 

교회는 설교와 성서공부, 교육과 훈련을 통해 교인들이 생태적인 세계관을 갖고 생활할 수 있도록 힘쓰고, 한국 사회가 생태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하는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야 한다.

 

2) (신학대학에서의 생태ㆍ환경 교육) 각 교단의 신학대학은 생태적인 삶이 하느님의 뜻임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목회자들을 양성해야 한다.

 

한국교회가 생태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목회자들의 생각이 생태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신학대학에서는 생태ㆍ환경을 위한 교육과정과 교수진을 확보하고, 농촌목회자협의회, 생활협동조합, 생명환경운동단체들과 연계하는 방식 등을 통해 생태ㆍ환경 목회자를 키워 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3) (생명밥상 차리기) 교회와 교인 가정에서는 친환경 농ㆍ축산물 식재료를 사용하여 생명밥상을 차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생명밥상은 육류와 인스턴트식품을 줄이고 친환경 곡류와 채소, 해조류, 발효식품 위주로 차린 밥상으로서 사람의 건강에 이로울 뿐 아니라 유기농의 활성화, 자연생태계 보전의 기반이 된다. 교회는 이를 위한 식재료와 요리법에 관한 정보를 나누는 등 교인들이 생명밥상에 손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교단 총회와 노회는 교회와 교인들이 유기농 쌀과 친환경 농ㆍ축산물을 소비할 수 있도록 매개 역할을 하고, 장기적으로 농민들이 안심하고 친환경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계약재배를 늘려가도록 힘써야 한다.

 

4) (아나바다 생활 실천) 교회는 편리함만을 추구하는 낭비하는 삶에서 벗어나 불편하더라도 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는(아나바다) 생활을 실천해야 한다.

 

자원을 아끼고 순환시키는 아나바다 운동은 창조질서를 보전하는 신앙운동이다. 이미 학교와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아나바다 운동에 교회도 참여해야 한다. 교회는 인터넷을 통해 아나바다 물품의 정보를 공유하는 등 교인들이 일상생활에서 아나바다를 실천하도록 힘쓰고, 각 교회에서 또는 교회 연합으로 이웃이 참여하는 아나바다 장터를 열어 지역사회에 이바지하도록 힘써야 한다.

 

5) (탈핵운동) 교회는 핵발전이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깨뜨리는 반신앙적이며 반생명적이라는 신앙고백을 하고, 탈핵운동에 나서야 한다.

 

핵발전이 인류의 미래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이 땅의 정치권력과 핵발전업자들은 후쿠시마의 참사에도 불구하고 핵발전 위주의 에너지 정책을 유지하고 확대하려 하고 있다. 교회는 이미 수명이 다한 핵발전소 고리 1호기와 월성 1호기는 즉각 폐쇄하고, 신규 건설은 중단하며, 향후 수명이 다하는 곳을 포함해 다른 핵발전소도 단계적으로 폐쇄해 나가도록 힘써야 한다. 교회는 앞으로 20년 안에 한국사회가 핵에너지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도록 기도하며 실천해야 한다.

 

6) (에너지 절약과 재생에너지 보급) 교회는 에너지 절약과 재생에너지 보급을 통해 핵에너지에서 탈피하기 위해 힘쓰고, 화석연료 사용을 줄여나가야 한다.

 

7) (도시교회와 농촌교회 간 생명살림 자매결연) 도시교회와 농촌교회는 선교협력을 통해 생명살림운동에 힘써야 한다.

 

농촌이 피폐해 짐에 따라 농촌교회에는 청년들이 거의 없고, 연로한 교인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도시교회와 교인들 역시 병든 식탁과 입시 경쟁에 내몰린 아이들, 범죄 위협과 향락적인 도시문화로 지쳐 있다. 우리는 농촌교회와 도시교회의 생명살림 자매결연운동이 이러한 문제를 풀어 나가는 데 이바지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것은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일방적으로 돕는 것이 아니라 각자 직면한 문제를 협력하여 해결하기 위한 길이다. 교회는 자매결연을 통한 선교협력이 확산되도록 힘써야 한다.

 

8) (생태공동체 모임) 생명살림의 친환경적 삶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생태공동체 모임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생태공동체 모임은 친환경 삶의 실천에 필요한 정보를 공유하는 조그만 일부터 시작하여 국산 친환경 농ㆍ축산물 직거래, 아나바다 실천, 재생에너지 보급, 농민들과의 다양한 교류 등을 통해 교회가 생태공동체로 거듭나는 데 중심이 되는 모임이다. 참여하는 사람들은 생명살림의 소명의식을 갖고 공동체정신을 회복하며, 힘을 모아 생태적 삶을 실천하고 확산하는 데 힘써야 한다.

 

9) (생명 존중과 동물 복지) 모든 동물의 생명은 존중되어야 하고 동물 본연의 본능대로 살 수 있도록 보호받아야 한다.

 

교회는 인간의 반려자로서 함께해 온 동물을 굶주림과 불편, 고통과 질병, 공포로부터 보호하여 정상적인 활동을 하며 살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동물을 대상으로 하는 과도한 실험은 금지되어야 하며, 본능을 고려하지 않은 농장동물의 밀식사육은 인간의 건강과 동물복지를 고려하여 개선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일곱 가지 원칙 속에서 향린 공동체 TF팀은 생태정의 공동선언을 다음과 같은 여덟 가지 범주로 구성하여 준비하고 있습니다.

 

첫째, 발전 부문과 산업 부문의 정의로운 전환을 이루어야 합니다. 발전부문과 산업부문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양이 압도적이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2022년 대한민국의 온실가스 배출 총량은 약 654,500,000(CO2eq)인데, 이 중에서 발전 부문 배출량이 약 213,900,000(CO2eq), 산업 부분 배출량이 약 245,800,000(CO2eq)으로 두 부문의 배출량이 전체 배출량의 70%에 이릅니다. 개인의 실천을 넘어 우리 사회의 에너지 체계와 산업 시스템 전반을 정의롭게 전환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둘째, 앞으로 짓는 모든 건축물은 제로에너지건축물을 지향해야 합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광화문 향린도 제로에너지건축물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셋째, 대중교통의 확대와 보행 약자를 위한 이동권의 보장이 필요합니다.

넷째, 막대한 온실가스를 발생시키는 먹거리 세계화를 반대하고 자급자족과 로컬푸드를 지향합니다.

다섯째, 소비 자본주의의 독재에 저항해야 합니다. 덜 소비하면서도 더 풍요로운 대안적 삶을 창조해야 합니다.

여섯째, 기후위기의 최전선에 있는 약자들과 동행하는 향린이 되어야 합니다. 기후재난에 취약한 노숙인들, 장애인들, 노약자들을 보호해야 합니다.

일곱째, 인간 너머의 존재들의 존엄성을 보장해야 합니다. 특히, 생명의 존엄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동물 학대와 공장식 축산을 단호히 반대합니다.

여덟째, 인류세 시대의 복음을 땅끝까지 전파할 미래세대를 키워낼 교회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지원해야 합니다.

 

오늘 함께 읽은 출애굽기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은 신 광야를 떠나서, 주님의 명령대로 진을 옮겨 가면서 이동하였습니다. 그들은 르비딤에 진을 쳤는데, 거기에는 백성이 마실 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이 모세에게 마실 물을 달라고 대들었습니다. 이에 모세가 당신들은 어찌하여 나에게 대드십니까? 어찌하여 주님을 시험하십니까?” 하고 책망하였습니다.

 

생태적 전환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불편함을 감수하는 일입니다. 기존의 관습과 관행에서 벗어나 낯설고 생소한 생활양식을 받아들여야 하는 일입니다. 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문화와 시스템을 창조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때 이 본문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마실 물을 달라고 대들기보다는 하나님께 이루실 전환의 시간을 기대했으면 합니다. 석유와 원자력으로부터 벗어나, 거대한 낭비의 체제로부터 벗어나 태양과 바람과 물이 순환하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으면 합니다. 시편 기자처럼 주님, 주님의 길을 나에게 보여 주시고, 내가 마땅히 가야 할 그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겸손히 기도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에게 무슨 격려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무슨 동정심과 자비가 있거든, 여러분은 같은 생각을 품고,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이 되어서, 내 기쁨이 넘치게 해 주십시오. 무슨 일을 하든지, 경쟁심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고, 자기보다 서로 남을 낫게 여기십시오. 또한 여러분은 자기 일만 돌보지 말고, 서로 다른 사람들의 일도 돌보아 주십시오. 여러분 안에 이 마음을 품으십시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빌립보서 21~5)

 

 

다 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