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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동창회 45] 믿기는 무엇을 믿나, 살아내는 것이 구원과 행복의 길이다!

by 최성철 posted Dec 07, 2019 Views 49 Replies 0

 

예수를 믿을 수 없다! 예수는 살아내는 삶의 방식이다! 믿는 예수는 상업적인 속임수이다. 믿는 예수는 장사꾼들과 정치꾼들이 만든 가짜이고 거짓이다! 예수는 기적을 일으키는 마술사가 아니라, 참된 인간이 되는 길이다. 원초적인 예수, 참 사람 예수, 역사적 예수는 자신을 믿으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또한 오늘 교회 기독교가 주장하는 믿음에 대해서 전혀 언급한 적이 없다. 다만 예수는 참된 인간이 되는 의 길에 대해 가르쳤다. 교회가 만든 믿음이란 것은 예수가 죽은 후 교회가 사람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 만들어낸 상업적이고 정치적인 술책이다. 즉 예수를 하느님으로 믿고, 예수가 인간의 죄를 대신해서죽었다는 것을 믿으면, 자연의 법칙이 깨어지는 기적이 일어나고, 죽은 후에 다시 살아나서 하늘 위에 천국에서 영원히 산다는 새빨간 거짓말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믿음체계를 세우고 복잡한 교리를 만들었다.

 

역사적 예수가 가르친 것은 무엇을 믿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어떻게 살아내는 것참된 인간이 되느냐였다. 예수는 성전 종교 즉 오늘의 교회 종교의 이분법적인 내세 신학을 극렬하게 반대했으며, 그런 성전(교회)을 허물어 버리라고 경고했다. 예수는 이 세상에 평등과 정의와 사랑이 실천되는 하느님 나라 종교를 가르쳤으며, 그것 때문에 십자가에서 처형되었다. 오늘날 교회 종교에 속한 사람들은 자신들을 신자(信者 believer)라고 자칭하지만 이것은 예수의 정신에 크게 위배되는 일이다. 왜냐하면 교회 종교에서 말하는 신자는 예수가 반대했던 것들 즉 사람들을 탄압하고 착취하던 종교의 초자연적인 하느님과 사람들을 배타적으로 분리하는 이분법적 교리를 추종하고 믿는 사람들에 대한 호칭이다. 쉽게 말해서 신자는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에게 국한한 부족적이고 차별적인 말이다. 한때 기독교 문화가 세계를 통제하던 교회 시대에는 교회에 다니는 신자가 마치 특별한 신분과 선택받은 사람들인 것처럼 착각했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예수는 믿음과 신자와 선택받은 사람에 대해서 가르친 적이 없다. 믿음(belief)신자(believer)는 예수가 죽은 후 수백 년 동안에 수없이 많은 성서 사본들이 필사되면서 참 사람 예수는 사라지고 만들어진 예수가 교회를 장악하면서 생겨난 부산물이다. 이것들은 교회 종교가 사람들을 통제하고 끌어들이기 위한 배타적이고 이분법적이고 상업적 말들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교회 종교는 사람들에게 교회의 권위에 순종하지 않고, 만들어진 교리를 믿지 않고, 신자가 되지 않으면, 하느님의 징벌을 면치 못하고 죽은 후에 지옥에 떨어진다는 두려움을 심어주고, 사람들을 마치 꼭두각시같은 수동적인 인간으로 멋대로 조정했다.

 

예수의 정신을 따르는 하느님 나라 종교의 핵심이 자율적으로 살아내는 것(living)이라면, 예수의 정신을 거부하는 교회 종교는 죽음과 징벌이 두려워 상업적이고 정치적인 교리들을 수동적으로 믿는 것(believing)이다. 교회 종교에서 현세의 삶은 오직 죽은 후에 더 좋은 세상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것이며, 따라서 타율적이고 관념적이고 교리적이 될 수 밖에 없다. 내세의 구원을 위해 신조를 충실히 추종하는 믿음이 필수조건이다. 교회 종교는 항상 비판적이고 강압적이고 수동적이었다. 즉 사람이 자기 자신을 위하여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으며, 하느님이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의 노예생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놀라운 사실은 18세기 이전까지 기독교 윤리학 즉 인간이 이 땅 위에서 자율적으로 세상을 보다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일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학문이 전혀 발전하지 못했다. 다시 말해, 매사가 인간의 손을 넘어서 하느님에게 맹목적으로 의존했다. 따라서 신자들은 하늘을 쳐다 보고 기도만 하면 다 되었다. 계몽주의 이래로 기독교가 점진적으로 이 세계를 향해 돌아서기는 했지만 그 속도는 대단히 더디었고, 여전히 교회 종교삶의 방식이 아니라, 이기적인 욕심과 사심에 빠져서 내세적인 교리와 규율을 믿는 것이 전부였다. 오늘도 신자들은 자율적으로 하는 일은 거의 없고 만사를 하느님에게 맡기고 하느님이 하기를 바란다. 따라서 종교는 삶의 방식이 아니라 존중되어야 하는 제도이며, 믿어야만 하는 체계이며, 신자들이 지켜야 하는 의무사항들의 집합체이다.   

 

교회 종교와 대조적으로 하느님 나라 종교는 단순히 하나의 자율적인 생활 방식으로서, 삶을 온전히 가장 만족하게 살아낸다. 전적으로 아낌없이 자신을 내어주는 삶을 살아내는 태양과 같으며, 100% 주저함이 없다. 두려움과 이기적인 욕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두려움과 사심의 노예가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살아있으면서 덧없이 지나가는 것들을 단지 그 덧없음의 이유 때문에 지금 여기에서 순간순간을 열정적으로 사랑한다. 그러나 교회 종교에서는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자신의 삶을 100% 책임지고 헌신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삶의 절반은 항상 자신과 세상과 멀리 떨어져서, 은밀하게 손을 더럽히지 않으면서, 죽음 후 내세의 영원함을 생각하고, 죽음을 준비하고 있다. 따라서 항상 두려움과 공포와 이기적인 욕심과 사심으로 가득하여 행복한 척, 깨끗한 척, 거룩한 척하는 위선과 은폐에 지칠대로 지치고 식상해 있다.

 

21세기의 현대인들은 독자적으로 종교를 탐색하는 것을 선호한다. 즉 사람들은 종교적 자유, 개인적인 경험 즉 자율성과 직접성, 심지어는 열정적인 창조성을 추구한다. 사람들은 교회가 오늘날 너무나 통제적이고 강압적인 것에 숨이 막혀 이러한 노예의 삶으로부터 해방을 원하고 있다. 기독교는 이제 규율로부터 자유에로, 교회로부터 하느님 나라에로, 제도화된 중보 종교로부터 순수한 종교적 직접성에로 변화되어야 한다. 더욱이 교회는 이 세상으로부터 분리된 영적인 혹은 초자연적인 영역 혹은 차원에로의 도피를 당장 중단해야 한다. 교회는 현대 과학과 철학과 문화가 발전시킨 우리의 삶과 세계는 상중하 층으로 분리된 불연속체가 아니라, 저 세계가 없는 하나의 생명의 망을 이루는 한 몸의 연속체임을 인식해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를 둘러싸고 있고, 우리가 그 일부로 통합되어 있는 이 세계 이외에 다른 세계는 없다. 따로 떨어진 종교적인, 초자연적인, 영적인 영역이란 없다. 다른 세계나 차원에 관한 언급은 무의미한 말장난에 불과하다. 이것이 우리 시대의 문화가 유사 이래 급속도로 가장 우주적이고 포월적이고 통합적인 문화로 되어가는 이유이다.

 

수천 억개의 별들로 구성된 수천 억개의 은하계로 구성되어 있는 우리의 우주세계는 하나의 생명의 망을 이루고 있으며, 상중하 층이 없다. 오늘날 만물은 문자 그대로 지금 여기 이 지구의 에 속해 있다. 우리는 생명의 여러 모습들, 곧 생명의 우연성, 잠정성, 그리고 유한성에 관심을 쏟음으로써 생명을 위한 우리의 느낌을 매우 크게 강화할 수 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삶을 사랑하고 자신을 그 덧없음 속에서 헌신하도록 자극할 수 있다. 생명의 가벼움과 우연성 속에서도 생명에 대해 긍정하고, 시간이 흘러감에 맞서 싸우려 하지 않으며, 또한 그런 엄중한 현실을 망각하려 하지 않는 것은 우리를 근본적으로 자유하게 하며 해방시킨다.

 

현대 과학에서 138억 년 전 우주는 우연히 자연적으로 출현했다는 공개적 계시는 오늘날 주류 사회에서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21세기에 만물을 있는 그대로 즉 만물의 우연성 자연성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이 참된 인간의 삶이다. 삶과 죽음을 하나의 연속으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것은 삶에 집착하거나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하느님 나라 종교는 이 소중한 진리를 가르치고 몸소 살아낸 인간적인 역사적 예수를 과거의 신적인 예수보다 더욱 훌륭하고 의미있고 보다 흥미 있는 인물로 이해한다. 예수는 사람들에게 제도적인 종교가 만든 이분법적인 구원론을 억지로라도 믿으라고 강요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이 세계의 급박함을 인식하고 맹렬히 불타는 목적을 지니고 삶을 사랑하며 살 수 있다고 최초로 가르쳤던 예언자이다. 예수는 우리를 교회 기독교의 삼층 세계관의 노예생활로부터 해방시켜주었다. 주목해야 할 것은, 교회 기독교는 그 삼층천(三層)의 우주론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질서를 그려주었을 뿐 아니라, 우리가 그 세계의 질서 속에 맞추어 살도록 우리를 강압적으로 쑤셔 넣었다. 우리는 인종차별과 종교차별과 빈부차별과 성차별과 성적본능차별을 만들어낸 삼층 세계관의 우주론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이 세계의 우주적인 통합과 자율성과 창조성이다.

 

결론적으로, 참 사람 예수의 하느님 나라 종교는 단순히 살아냄으로써 실천적으로 그 진리가 입증될 수 있으며, 그렇게 입증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믿는 예수의 교회 종교는 그 진리를 매우 터무니없이 왜곡했으며 특히 하느님 예수의 부활과 승천과 재림에 관한 선언에 못박음으로써 비상식적이고 취약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신자들을 고난과 슬픔으로 가득한 땅을 주시하기 보다 시선을 돌려 하늘만을 쳐다보는 꼭두각시로 만들었다. 그것은 큰 실책이었으며, 종교를 그런 식으로 취약하고 비겁하게 만들 필요는 없었다. 하느님 나라 종교는 인간을 구원받지 못할, 벌레만도 못한 더러운 죄인이라고  폄하하지 않는다. 하느님 나라 종교는 삶의 고통과 절망과 죽음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거나 뒤로 물러서서 은둔하지 않고, 예수처럼 삶에 대해 맹렬하고 격정적이고, 크게 사랑하고 크게 고난 받는다. 현세적인 하느님 나라 종교는 무엇을 믿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순간 순간 열정적으로 살아내는 삶의 방식이고 표현이다. 예수는 이것을 가르치고 몸소 살아냈다.    

 

[필자: 최성철, 캐나다연합교회 은퇴목사, 전직 지질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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