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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동창회 37] 교회의 기독교는 종교로서 너무 천박하다!

by 최성철 posted Oct 12, 2019 Views 58 Replies 0

 

오늘날 교회들은 새로운 시대새로운 교회로 변화되지 못하고 시들시들 죽어가고 있으며, 다시 살아날 가능성과 희망은 희박한 상태이다. 대다수 통계에 따르면, 지난 여러 세기동안 세계를 장악했던 기독교 국가들의 유럽에서는 남아 있는 교회들이 매 십 년마다 1/4씩 사라지며, 한 세대마다 절반씩 감소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과 북미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교회들의 감소의 주된 이유는 기독교의 중요한 믿음들이 일반 대중들에게 객관적인 진리성을 상실한체 설득력과 효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19세기 말까지만 해도, 교회의 지도자들은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하여 기독교 교리의 진리성에 대한 정당하고도 설득력 있는 이성적 논증이 가능하다고 믿었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의 지도자들은 그러한 논증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더 이상 삼층 세계관적 기독교의 형이상학을 변화시키려는 시도조차 못하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교회가 사라지고, 교회 지도자들이 신뢰와 설득력을 상실했나? (교회 지도자들은 여전히 교회가 성장하고 있다는 거짓과 은폐를 거듭하고 있지만) 첫째는, 하느님의 존재와 속성, 인간 영혼의 존재, 도덕적 자유, 생명과 세계의 기원과 의미, 불멸성에 대한 논증 등, 신앙에 관한 전통적인 철학적 토대가 모두 무너졌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고대의 기독교의 삼층 세계관에 따른 자연철학근대 자연과학우주진화 세계관으로 대체되었고, 인간의 경험세계를 성과 속, 구원과 심판, 내부와 외부라는 두 개의 큰 범주로 나누는 것과 같은, 종교에 관한 전통적 전제들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우리의 삶이 교회성서가 가르쳐온 계시된 진리라는 고정된 틀에 의해 짜여져야만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기독교 세계는 물론 인류 사회는 더 이상 이런 식으로 존재할 수 없다. 지난 100여 년에 걸쳐, 성서비평학은 성서를 종교적 진리에 대한 공적 표준으로 인정해온 낡은 권위를 무너트렸다. 우리는 더 이상 성서 안에서 하나의 음성 즉 초자연적인 천상의 하느님의 음성을 듣지 않으며, 인간들의 현실적이고 다양한 소리들을 듣는다. 따라서 성서는 하느님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것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렇게 난관에 봉착한 대다수 형태의 기독교는 19세기 이래로 시각을 낮추어, 전통주의, 권위주의, 상업적인 복음주의, 또는 신앙이란 교회가 만는 공식들을 무작정 믿는 것에 대한 자격증 정도로 생각하는 태도로 천박해졌다. 결과적으로 교회의 설교와 교육은 일반 대중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했고, 점차적으로 마치 사이비 종교(컬트 cult) 안에서만 통용되는 은어처럼 들리게 되었다. 따라서 교회는 일반 대중들의 이해가능성(intelligibility)을 잃었기 때문에 사회로부터의 존경심과 신뢰와 자부심을 상실했다. 이것으로 또한 유신론적이고 인격적인 초자연적 하느님의 죽음을 가속화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교리적인 보수주의자들은 목청을 높이고, 생존의 몸부림으로 폭력적인 언행을 하느님의 이름으로 자행한다. 성서를 은유적으로 읽고, 이성적으로 기독교를 재해석하며 개혁하기를 시도하는 수정주의자들(revisionists)은 교회에서 추방되었으며, 이들은 교회동창회(church alumni)를 이루었다. 불행하게도 교회 내부에서 누구도 현대적 종교개혁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주진화 세계관이 보편화된 근대 민주적 세계에서 과거에 막강한 권력과 영향력을 발휘했던 형이상학적, 종교적 가치관 삼층 세계관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현대인은 유동적이며 다원주의적이다. 현대인은 더 이상 강력한 군주의 통제와 제국주의적인 이념을 숭상하거나 따르지 않는다. 현대인은 더 이상 저 하늘 밖에 존재하는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진리를 믿지 않을뿐만 아니라, 더욱이 사람들이 맹종하기를 강요하는 진리의 존재를 거부한다.

 

오늘날 기독교는 합리적인 개혁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러나 기독교의 자발적인 개혁은 과거에 누렸던 대중적 지위와 권위와 영광을 되찾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 개혁은 강압적으로 사람들이 성서를 문자적으로 읽고, 수동적으로 믿게 하는 근본주의교조주의를 추방하고, 삼층 세계관적 믿음을 넘어서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주진화 세계관에 기초한 개혁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의 교리 없는 교회, 초자연적 하느님 없는 교회, 믿음 없는 교회, 자유인의 교회로서 현대인들에게 이해가능한 교회를 목표로 하는 것이다. 기독교는 많은 참된 삶의 방식들 중에 하나일뿐이다. 참된 삶의 방식은 우리 자신은 물론 다른 모든 사람들의 삶에도 참될 뿐만 아니라, 현대세계에 대해서도 참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기독교 개혁은 절대적이라고 우겨대는 독단적인 도그마를 포기하는 것이다.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생존의 몸부림으로 변형되어온 기독교의 다양한 형태들은 인간의 문화적 산물이다. 기독교의 각 형태들은 자신들이 정통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통 또는 원조라는 말은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보호하고 확장하기 위해 고안된 상업적인 수단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신구약 성서의 원본이 존재하지 않듯이, 원래의 순수한 기독교의 본질이란 것은 결코 존재한 적이 없을뿐만 아니라, 기독교는 세월이 흘러가면서 심하게 오염되고 왜곡되었다.


우리는 좋은 종교나쁜 종교를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다. 우리는 예술을 판단하듯이 순전히 주관적이며 인간적으로 확립된 기준에 의해서 종교를 판단해야 한다. 오늘날 교회의 기독교(church Christianity)는 더 이상 그 스스로가 입증할 수도 없는 엄청나게 황당한 주장들을 너무 많이 쏟아내고 있으며, 분명히 급속도로 몰락하고 있으며, 단지 하나의 종교로서도 더 이상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으며, 별로 생산적이지도 않고, 사회에서 우물 안에 고립된 상태에 빠져있다. 다시 말해, 세속적인 세상 속에서 양심적이고 이성적인 삶의 방식들을 산출하지 못하고, 그야말로 무용지물의 종교가 되어버렸다. 1960년대만 하더라도 교회의 기독교는 여전히 인도주의적인 윤리를 발전시키는 데 공헌했으며, 교회가 도덕적 솔선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처럼 가치있는 일조차 중단되었으며, 최근에는 교회 밖의 세계와 비기독교인들에 대해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고, 부족적인 생존의 몸부림으로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안간힘을 쓰고 있다. 결과적으로 교회의 기독교는 끝장이 났다. 교회 기독교는 스스로를 개혁하지 않을 것이며, 심지어 개혁하고 싶다 하더라도 개혁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교회 기독교는 스스로를 변화시킬 충분한 의지가 없으며 에너지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독교 전통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고, 교회에 대해 염려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종교생활, 즉 진정으로 진실하며, 믿기 보다 현실적으로 살아낼 수 있으며, 생산적인 새로운 형태의 종교생활을 발전시키는 작업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 새로운 형태의 종교생활을 기독교적인 생활이라고 부를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름으로 부를 것인지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기독교라는 이름을 가지고 장사하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 원초적인 기독교의 의미가 심각하게 변색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기독교는 참된 예수의 기독교가 되었어야 하는데, 교회가 상업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만든 예수를 숭상하는 교회의 기독교가 되었으며, 차라리 기독교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 

 

오늘날 새로운 종교개혁이 절실히 필요한 또다른 중요한 이유는 소위 정통 기독교가 원초적인 역사적 예수의 가르침과 그의 정신을 터무니없을 정도로 왜곡하고 변질시켰기 때문이다. 원래 유대교 현자였던 예수가 가르친 지금 여기 이 땅 위의 하느님 나라 종교교회 종교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교회 종교는 교회 예배에 반드시 참석하고, 성서를 문자적으로 믿어야 하고, 예수를 성육신한 하느님으로 믿어야 하고, 구원은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올라갔다는 예수가 다시 돌아와서 최후심판을 통해 결정하는 것을 믿어야 하는 내세 종교를 말한다. 그러나 예수는 거룩한 성전의식에 참석하지 않았으며, 성전에서 가르치도 않았으며, 성서를 문자적으로 읽고 믿으라고 강요하지 않았으며, 자신은 하느님이 아니라고 주장했으며, 구원은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야 하며, 하느님 나라는 죽은 후 내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구체적으로 살아내야 하는 삶의 방식이라고 가르쳤다. 오늘날 역사적 예수의 정신은 전통적인 기독교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따라서 기독교를 시작케했던 한 유대인 현자 예수가 말할 때가 무르익었다. 즉 버림받고 잃어버렸던 역사적 예수를 되찾아야 한다. 

 

교회 기독교가 죽어가는 또다른 중요한 원인은 기독교가 신뢰할만하고 지루하지 않고 매력적인 종교생활의 그림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통 기독교는 종교로서 너무 천박하다. 교회에 습관적으로 다니고, 헌금을 바치고, 피자집에 주문하듯 기도하는 것 이외에 무엇이 있는가? 오늘날 기독교 윤리에 대한 대중들의 평판은 땅에 떨어졌으며, 너무나 많은 불행과 해악의 증거들이 교회 내에 존재한다. 그동안 너무 많은 여성 성추행과 아동 성추행과 난폭한 여성 혐오, 동성애 혐오, 여성의 존엄성을 박탈하는 낙태금지, 그리고 새로운 기술과 과학의 발전, 특별히 의학과 유전공학에 대한 반사적인 두려움과 적대감이 교회 내에 깊숙히 뿌리 내리고 있다.

 

오늘날 소위 기독교 신앙생활을 전혀 하지 않으면서도 종교적 삶이 가능하다. 교회는 더 이상 종교라고 말하기 어렵다. 교회는 단지 기독교라는 이름을 팔아 장사하고 있다. 기독교인들은 기독교적인 종교생활의 형태를 이해가능하고 매력적인 방식으로 제시할 대안을 찾아야 한다.

 

[필자: 캐나다연합교회 은퇴목사, 전직 지질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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