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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동창회 66] 중독성-습관성-자아도취성의 하느님을 떠나 보내자! 이것은 해롭고 위험하다!

by 최성철 posted Apr 26, 2020 Views 29 Replies 0

 

오늘날 교회 기독교신자들이 추종하는 유신론적 하느님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중독성-습관성-자아도취성 하느님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하느님 자기만의 욕심과 착각의 자아도취에 빠지는 객체적 존재가 아니다. 하느님이란 마치 복권을 손에 쥐면 마음이 편해지고 이미 부자가 된듯한 만족감과 부적을 지니고 있으면 안전하게 보호받는듯한 자아도취가 아니다. 하느님은 마치 마약을 상습적으로 복용하는 중독성 존재도 아니다. 하느님이란 타율적으로 아무 의식없이 계속해서 반복하는 습관성도 아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중독성-습관성-자아도취성 하느님에 사로잡혀서 노예생활을 하거나 병적으로 세뇌되어서 혼돈과 두려움과 절망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실상 하느님은 질병과 사고와 죽음을 막을 수 없으며,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도 모른다. 인류 역사에서 하느님기적을 일으킨적이 없으며, 전쟁과 테러와 빈곤과 팬데믹과 천연재해를 일으키거나 막은 적이 없으며, 그런 것들은 사악한 인간들이 하느님 이름으로 저지른 일들이다. 하느님은 자연의 법칙을 깨트리는 존재가 아니다. 따라서 그런 하느님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맹신하는 것은 개인과 가정과 사회와 지구촌을 파멸에 빠트리는 자살행위이다. 종교초자연적인 하느님에 대한 중독 습관 자아도취가 아니다. 우주진화 세계관의 21세기에 유신론적 하느님은 죽었거나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하느님이란 말은 단지 말장난에 불과하다. 전지전능하고 초자연적인 하느님거짓이다. 현대인들은 거짓이 아닌 진실을 탐구한다. 하느님이란 말이 필요하다면 과학에 기초한 새로운 의미 하느님을 살아내야 한다. 하느님은 믿는 존재가 아니라 단순히 평범한 삶의 방식이다. 하느님은 모든 사람들이 서로를 위해 선한 일을 하면서 상호의존관계를 이루어 사는 것이다.

 

다행히도 우리 주변에 하느님이란 말을 입에 올리지 않더라도, 다시 말해 하느님을 믿지 않는 무신론자라도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다른 사람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오늘날 세계 역사를 이끌어 가고 있다. 인류사에서 인종차별, 성차별, 종교차별, 빈부차별, 성적본능차별 등의 불의한 불평등을 추방하고 보다 밝은 세상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은 인습적인 종교인들이 아니라, 무신론적 인도주의자들이다. 엄밀히 말해서, 성전신학 제국신학유신론적 유대인들, 기독교인들, 이슬람교인들이 인류사에서 온갖 차별과 탄압과 착취의 만행을 저지르고 전쟁과 테러를 일으켰다.

 

21세기 첨단과학의 시대에 고대인들이 상상했던 초자연적인 하느님은 현대인들로부터 설득력과 효력을 상실하고 시들시들 죽어가고 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하느님 없이, 종교 없이, 교회 없이 윤리적으로 선할 수 있을 뿐만아니라, 이 세상이 모든 사람들에게 보다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헌신적으로 살 수 있다. 놀랍게도 하느님 없는 종교, 하느님 없는 교회, 하느님 없는 사회라는 명제가 사람들에게 솔직하고 상식적인 도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자신의 저서 <즐거운 지식>에서 “신은 죽었다. 신은 죽은 상태로 있다. 우리가 그를 죽였다”고 교회 기독교에 경고하면서, 또다른 저서 <선악을 넘어서>에서 “왜 우리는 거짓이 아닌 진실을 원하는가” 라고 기독교인들에게 종교의 참 기능에 대해 도전했다. 니체의 말처럼, 오늘 우리의 사회는  시간이 흘러갈수록 더 이상 하느님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지난 1700년 동안 교회 기독교믿음체계가 만든 이분법적 구원론과 삼층 세계관의 창조론으로 전 세계를 정복하고 통제하던 시대는 이미 끝이 났다. 종교가 필요하다면, 인간의 공동체적인 삶을 뒷받침하고, 모든 생명들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어 건강하게 유지되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과 세계의 평화에 어떤 도움도 되지 않으면 오히려 위험한 장애물이 될 뿐이다. 오늘 과학의 세계에 하느님이 필요하다면 그 하느님은 인종, 민족, 종교, 사상, 과학의 경계 넘어  평등하고 공정하고 통합적이어야 한다.

 

21세기에 인류의 삶의 모든 영역들의 기초가 되고 있는 우주론에 따르면, 하느님이란 이 세계 밖에 존재하면서 이 세계를 창조한 존재가 아니다. 새로운 시대의 하느님의 의미 138억 년 전 출현한 세계를 저 하늘 밖에서 조정하는 초자연적이고 인격적인 존재로 인식되지 않는다. 이 세계 밖에 또 다른 세계는 없다. 이제 하느님은 이 세계 안에서, 이 세계의 한계 속에서, 이 세계의 자연의 법칙을 통해서 인식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 통합적인 실제(Integral Reality)이다. 따라서 하느님과학과 갈등관계에 있는 것은 큰  모순이다. 다시 말해, 종교와 과학은 서로 정반대의 입장에 있기보다 서로 상호보완적이며 상호의존적이다. 이 둘은 모두 궁극적으로 선험적인 확신에 의존한다. 이 둘은 모두 부분적으로 인간의 창조적인 상상력에 달려 있다. 과학자들은 물리적인 영역에서, 종교인들은 삶의 예술 속에서 생명과 세계에 대한 궁극적인 진리를 탐구한다. 과학과 종교는 모두 진리를 추구하고 어둠에서 빛을 추구한다. 과학자는 갑자기 떠오른 통찰의 빛을 가지고 실험한다. 종교인은 깨달음의 순간을 경험하며 이를 삶 속에서 실험한다. 과학자들은 모델들을 만들고, 종교인들은 신화적인 이야기를 통해 확신을 고백한다.

 

20만 년 전 이성적인 인간 호모싸피엔스가 출현한 이래, 인간뇌진화는 계속되어 7만 년 전 인식혁명,

12천 년 전 농업혁명, 500년 전 과학혁명, 2백 년 전 산업혁명의 급진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이러한 인류 진화역사에서 무엇보다 인간은 다른 생물종들과 달리 자신의 본성창조성자율성 가능성 잠재력을 스스로 인식했다. 동서양의 고대 지혜는 이 인간의 본성인간의 존엄성이라고 선언했다. 또한 현대과학자들은 과학적인 발견공개적 계시(Public Revelation)로부터 인간의 본성에 대해 심층적으로 탐구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과학이 발견한138억 년의 우주진화 이야기는 단순히 과학적인 사실만이 아니다. 또한 진화를 해석하는 것은 그렇게 단순한 일이 아니며, 단지 과학적인 사실을 서술하는 것도 아니다. 장구한 우주진화 서사시는 종교-사상-정치-철학의 경계 넘어 현대 과학의 지식과 전통적인 고대 지혜가 통합된 새로운 패러다임의 이야기다. 21세기에 이르러 우주진화 세계관은 이 시대에 온 인류의 공통 세계관이 된다. 인류의 밝은 미래는 새로운 세계관의 기초 위에 현대 과학과 고대 지혜가 조화를 이루고 통합하는 것에 달려 있다.

 

필자의 종교적 전통은 기독교이다. 나는 이 칼럼을 통해 삼층 세계관고대 기독교 21세기에 생기가 넘치는 우주진화적 기독교로 성숙해질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다시 말해, 전 세계적으로 사람들이 등을 돌리고 있는 교회 기독교가 마음이 끌리고 상식적이고 자율적이고 창조적인 기독교로 변신할 수 있는 가능성과 비전을 제시하려고 한다. 이것은 필자의 멘토인 역사적 예수가 로마제국의 제국주의와 성전종교의 배타주의가 주류를 이룬 사회에서 전개한 하느님 나라 운동이었다. 다행히도, 이러한 운동이 기독교뿐만 아니라 유대교, 이슬람교, 불교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나는 전통적인 종교들이 자신들의 신앙의 핵심을 어떻게 현대과학의 시각에서 재해석하고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지 그 길을 제안하려고 한다. 

 

새롭게 인식한다는 말은 오랜 세월동안 무시하고 부인했던 과학적인 사실을 신뢰하고, 자신의 종교적 신앙을 솔직하게 성찰하는 것이다. 부족적이고 민족적 종교들은 자신들이 주장해 온 개인적인 계시(Personal Revelation)를 절대적인 진리로 착각하기 보다 재해석하여 온 인류가 공감할 수 있는 공개적인 계시(Public Revelation)로 확장해야 한다. 다시 말해, 교회 기독교의 삼층 세계관의 창조론 원죄론 구원론은 부족적이고 이분법적이다. 따라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높이 세워놓은 경계 허물어 버리고 종교인이든 비종교인이든 모두에게 현실적이고 상식적인 세계관가치관을 살아내야 한다.

 

21세기 종교인신앙은 현실적이고 실제적이어야 한다. 전통적인 고대 종교들이 현대의 진화적인 종교로 성숙해지는 대안으로써 개인적인 계시재해석하는 기준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1) 기존 종교들의 사상과 신앙의 핵심이 보편적이고 논리적으로 근거가 있는지 확인되어야 한다; (2) 신학과 교리들이 자연적으로, 과학적으로, 상식적으로 뜻이 통해야 한다; (3) 종교적 신앙이 우주적이고, 체험적이고 실천적이며 또한 실제적이어야 한다; (4) 종교의 지혜는 누구에게나 감동적이고, 생기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21세기 인류 사회의 평화 정의를 위해 기존 종교들은 이 기준들을 솔직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진화적인 기독교, 진화적인 불교, 진화적인 힌두교, 진화적인 회교도로 새롭게 탄생할 수 있다. 또한 자신들의 신앙과 전통을 138억 년의 우주 이야기큰 그림에 기초하면 우주진화 세계관 가치관으로 사람들에게 생기가 넘치는 예언자적 지혜를 전파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분법적이고  배타적이고 우월적인 부족적 생존의 종교에서 탈피할 수 있다. 그러나 비록 필자가 기독교인으로서 고대 기독교 전통을 진화적으로 재해석한다고 해도 무신론자비기독교인들과 무종교인들이 공감할 수 없다면 나의 진화적 해석은 실패한 것이며 다른 대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약 6백만 년에 걸쳐 진화되었다. 우리의 속성에는 1천만 년 전 유인원의 변이흔적 55백만 년 전 영장류의 속성, 245백만 년 전 포유동물의 속성, 313백 년 전 파충류의 속성, 51천만 년 전 척추동물의 속성, 그리고 원초적으로 15억 년 전 진핵세포의 속성이 담겨져 있다. 우리의 고유한 본성의 근원은 15억 년 전 지구의 첫 생명에 있으며, 모든 생명체들의 공통적인 속성의 일부분일뿐이며, 그 중에 가장 최근에 출현한 호모싸피엔스의 속성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과학적인 사실이며, 종교와 철학의 기초가 되고 인식해야 하는 공개적 계시이다.

   

따라서 과학이 발견한 138억 년의 우주진화 이야기는 모든 민족과 종교의 창조신화들이 탄생하기 훨씬 전에 출현한 인류의 원초적인 창조 이야기(창세기). 또한 이 위대한 이야기는 현대인들의 정신적 그리고 심리적 성장을 촉진하기 때문에 성스러운 이야기다. 한편, 미국의 신화 종교학자 조셉 캠벨은 자신의 저서에서 은유적으로 기록된 고대 신화는 항상 힘이 있다고 밝혔다. 현대 기독교인들은 성서진화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하면 종교 넘어 끊임없이 신선한 힘을 얻고, 새로운 가치관을 인식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구약성서의 창세기에서 천지가 6일 동안에 창조되었다는 이야기와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 사과나무, , 타락의 이야기에서 21세기의 새로운 세계관을 인식하고 생존의 두려움과 죽음의 공포와 이기적인 욕심없이 생기가 넘치는 자유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그러나 창조론자들이 삼층 세계관에 기초하여 기록한 고대 경전들의 구절구절을 과학적인 우주론으로 입증하려는 시도는 위험할 뿐만아니라 비상식적이며 불가능한 일이고 무의미하다. 무엇보다 21세기에 고대 신화를 심층적으로 이해하려면 인간의 본성 정신 사상이 어떻게 진화되었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지난 수세기 동안 과학 기술의 발달이 입증하듯이 현대인들의 이성적인 인식력과 창조적인 판단력은 고대인들이 상상도 못할 정도로 진화되었다. 고대인들의 종교적 체험 즉 개인적 계시에서 현대과학이 발견한 공개적 계시를 상상할 수도 없었다. 진화를 모른체하거나 무시하고 살 수 없다. 보다 나은 새로운 삶으로 진보해 가기 위해 진화를 인식하며 살아내야 한다. 이것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온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공통의 운명이다. 138억 년의 진화 서사시는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순수한 사실이다. 다시 말해, 인류의 공개적 계시이며 보편적인 계시로서 공통적인 체험이다. 고대 민족들 - 원주민, 이집트인, 메소포타미아인, 그리스인, 로마인, 유대인, 인도인, 중국인, 한국인 - 의 신화적이고 종교적이고 영적인 체험은 주관적인 체험개인적 계시이기 때문에 온 인류에게 적용하는 일반적인 계시가 될 수 없다. 다만 개인적인 계시우주진화 세계관 시각으로 재해석하여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고 보편적으로 이해될 있는 공개적인 계시새로운 세계관의 이야기로 전환되어야 한다. 

 

[필자: 최성철, 캐나다연합교회 은퇴목사, 전직 지질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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