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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교회동창회 63] 과학을 부인하는 선동꾼 목사들과 이들에 동조하는 정치인들을 추방하자!

by 최성철 posted Apr 13, 2020 Views 53 Replies 1

 

오늘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으로 가정과 사회와 세계가 대단히 위험한 상황에 처해있는 때에 교회 안에는 바이러스 감염이 없다,’ ‘하느님 믿으면 면역성이 높아진다,’ ‘과학자들과 의학자들을 신뢰할 수 없다는 등의 망언을 일삼는 선동꾼 목사들과 이들에 동조하는 보수 정치인들과 가짜 언론들이 한국과 미국 사회에서 중대한 선거를 앞두고 국민들을 혼돈과 불안의 수렁으로 빠트리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19는 종교와 정치의 경계 넘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물론 바이러스 팬데믹은 하느님의 계획적인 징벌이나 계시가 아니며, 지극히 자연적인 현상이다. 또한 하느님은 팬데믹을 막을 수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21세기에 초자연적인 하느님을 맹신하는 보수 기독교인들 정치인들은 의학자들이 경고하는 과학적인 사실들을 무시하고 오직 하느님에게 의존하는 것만이 전염병 확산을 막을 수 있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다. 기독교인들이 분명히 알아두어야 할 것은, 인류 역사가 시작한 이래로 지금까지 하느님이 인간들에게 경고하기 위해 질병과 천연재해와 기근과 전쟁을 계획하고, 일으키고, 보호한 적이 없다. 현재나 미래에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사실상 하느님이 인류사에서 고난과 절망의 때에 기독교인만 이분법적으로 구원한 적이 없다. 오늘 과학 시대종교의 의미와 기능은 과학을 반대하거나 분리하는 것이 아니다. 종교와 정치와 문화는 오로지 과학의 기초 위에서 건강하고 온전할 수 있다. 과학을 무시하는 종교와 정치는 무당집과 같으며, 예수의 말대로, 회칠한 무덤과 같다. 어원적으로 종교(religion)라는 말은 관계(relation)라는 말이듯이, 종교는 신()을 믿는 것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다른 인간들과 생명들과 자연과 관계를 맺고 어떻게 사느나에 대한 것이다. 다시 말해 종교는 어떻게 참된 인간이 되며, 어떻게 사느냐에 대한 문제이다. 종교는 하느님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삶의 방식이고 표현이다.

 

21세기에 이르러 현대과학이 놀라운 속도로 급성장하였고, 삶의 모든 영역에 실제적으로 깊이 뿌리내리면서 과학종교 교육 정치의 기초가 되었다. 과학을 무시하는 하느님종교정치는 설득력과 신뢰를 잃고 시들시들 죽어가고 있다. 이분법적이고 부족적 믿음체계 중보교회325 로마제국의 콘스탄틴 황제의 정치적인 야욕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니케아 신경을 만든 이래, 인간의 존엄성인 자율성과 창조성과 가능성을 철저히 박탈하고, 사람들을 제국적으로 탄압하고 착취하면서 지금까지 생존해왔다. 지난 1700 동안 교회참 사람 예수정신을 따르는 우주적인 교회를 거부하고, 만들어진 예수상업적인 교회를 세워서 사람들에게 차별과 폭력과 착취의 이기적인 믿음을 정당화했기 때문에 사회로부터 고립되었다. 21세기에 인류는 첨단과학 시대에 살고 있으며, 새로운 종교의 시대에 들어섰다. 우주진화 세계관현대종교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의 가치와 지금 여기에서 현실적인 새로운 세계 경험을 일깨워 준다. 그러나 과학에 무지하거나, 과학을 무시하는 삼층 세계관의 기독교인들은 초현세적인 세상에 대한 환상으로 지금 여기의 이 세계의 인간 정신을 말살하고 있다.     

 

보수적인 성서근본주의 기독교인들은 성서를 하느님이 인간에게 내려준 과학책, 도덕책, 절대적인 진리로 크게 잘못 믿고 있으며, 심지어 세상의 모든 문제들의 해답이 성서에 있다는 망상에 빠져있다. 종교가 하느님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것이듯이, 성서는 하느님에 대한 책이 아니라 인간의 삶에 대한 책이다. 고대 인간들이 생존의 두려움과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창조한 하늘 위의 초자연적 하느님현대과학에 무지하고, 과학을 회피하거나 거부한다. 오늘날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에게 과학은 자신들의 믿음에 큰 걸림돌이며 또한 하느님의 영광을 해치는 장애물이다.

 

그러나 21세기에 우주진화 세계관의 하느님과 종교는 과학에 근거하여 인식된다. 과학을 모르거나 무시하는 하느님종교정치는 설득력과 효력과 신뢰를 잃었다. 현대과학의 급성장과 다원주의의 복합문화가 보편화되면서 중보종교의 믿음체계가 강요하는 내세적 믿음과 교리와 절대적 진리는 낡고 진부한 억지주장이고 비상식적이다 생명과 죽음의 의미, 하느님의 존재와 속성, 인간의 본성과 존엄성, 인간의 육체와 영혼의 관계, 윤리와 도덕 등에 관한 전통적인 종교적 철학적 토대는 모두 무너졌다.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모든 교육과정에서 중보교회가 맹신하는 고대 삼층 세계관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으며, 오직 현대 자연과학에 근거한 세계관 즉 우주진화 세계관이 기초가 되고 있다. 따라서 기독교 교회는 인간의 본성에 관해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참된 삶의 방식과 21세기 첨단과학시대의 세계에 대해 솔직하고 참된 삶의 방식을 제공해야 한다.

 

어원적으로 과학(science)이란 말은 지식(knowledge이란 말이다. 인간은 오랜 세월동안 지식 곧 확신에 찬 지식을 소유했다고 생각했다. 과학은 물리적 세계의 성격을 탐구하는 방법 즉 측정과 정확한 관찰 그리고 자연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 과정, 관찰 가능한 현상들을 설명하기 위한 이론을 정립하기 때문에 흔히 경험과학이라고도 한다. 400년 전 경험과학이 출현하기까지 (물론 과학이 출현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사람들은 문화 전통(종교, 민속)을 통해 전해 내려온 지식(신조, 교리)을 검증하는 손쉬운 방법을 인식하지 못했다. 다만 그 지식을 전해준 권위, 즉 고대 문명들, 학자들, 성직자들, 교회와 성서에 의존해서 지식을 받아들였다. 따라서 오랜 세월동안 지식으로 여겨졌던 믿음체계전통교리, 심지어는 미신과 같은 것들에 대해 (true)거짓(false)을 구분하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에 거짓이 일종의 혼합형식으로 존재했다. 그러나 경험과학이 출현하면서부터 사람들은 참과 거짓의 혼합을 분별하기 시작했으며, 오랫동안 전수된 지식이 인지 거짓인지를 검증하기 시작했다. 과학은 우리 스스로 가장 적절한 세계관가치관을 형성하도록 도와준다. 과학절대적인 주장을 하지 않는다. 그대신 과학은 우리가 자연세계솔직하게 이해하도록 격려하며, 미래를 향해 우리 앞에 열려진 문이다. 이렇게 과학이 발견한 공개적 계시에서 밝히는 자연세계의 모습 속에서 종교 기능 목적을 인식할 수 있다. 또한 과학이 인간 실존에 적용될 때 의미 목적에 대해 정직한 답을 얻는다. 현대과학이 새롭고 중요한 것은, 신뢰할 수 있는 여러 지식 체계를 증가시켰으며, 전수된 지식이 인지 거짓인지를 검증하는 벙법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과학의 넓은 의미는 이성적인 인간의 삶 전체를 뜻한다. 호모싸피엔스 인간은 다른 생물종들과 달리 끊임없이 삼라만상에서 과학을 새롭게 발견하여 일상생활 속에 적용한다. 과학은 인류의 삶의 모든 영역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으며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따라서 과학 21세기 현대인의 삶 그 자체이며, 삶의 의미이며 방식이며 표현이다. 깊은 산 속에 들어가 완전히 고립된 원시인의 생활양식으로 살지 않는 한 이 세계 속에서 과학을 거부하거나 무지한채 하루도 살 수 없다. 한편 기후변화로 인해 생태계와 인류사회가 긴박한 위기에 빠져있는 데, 과학이 확실하게 증명하는 기후변화를 애써 부인하려는 사람들은 변명하기를 나는 과학자가 아니라고 새빨간 거짓말을 서슴치 않으며 비굴하게 꼬리를 감춘다. 더욱이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의 위기상황에서 과학자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초자연적인 하느님의 기적을 맹신하는 것은 참된 종교가 아니다. 사실상  현대인들은 초등학교에서 생물, 화학, 물리, 그리고 다윈의 진화론을 배우고, 고등학교 이상에서 지구과학, 양자물리학,  분자생물학, 유전자생물학, 천체학, 등의 첨단과학을 필수적으로 배우며 이것을 실생활에 유용하게 적용하며 구체적으로 삶의 의미와 목적을 탐구하며 살아간다.

 

지난 수세기 동안 과학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인간의 세계관가치관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무엇보다도 이 변화의 과정에서 전통 종교의 기반이 되었던 믿음체계들이 점차 의문에 붙여지고, 도전을 받아, 거짓되고 부적절한 것으로 판명되어 마침내는 폐기되기 시작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와같은 급변화가 일어난 영역을 셋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으며, 그 각각에 대해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그 첫 번째 영역의 변화와 관계된 코페르니쿠스(1473-1543)의 이름을 따라 붙여진 것이다.  이와같이 과학에 의해 시작된 세 혁명들의 영역은, (1)우주론: 우주의 출현과 역사에 대한 이해, (2) 인간의 본성: 인간의 생명을 포함한 생명의 기원에 대한 이해, (3)인간의 내면적 삶에 대한 이해이다.

 

코페르니쿠스(1473-1543)는 지구가 더 이상 우주세계의 중심이 아니라는 새로운 우주관을 선포함으로써 우주적 혁명의 선구자가 되었다.  또한 태양과 다른 모든 별들이 지구의 주위를 돈다는 낡은 세계관을 뒤집어 엎고,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고 선언한 갈릴레오(1564-1642)(1)합리적인 이론, (2)정확한 관찰, 그리고 (3)실험을 종합한 최초의 인물로서 현대과학의 아버지가 되었다. 이 세 요인은 과학적 방법론기본적인 본질을 이루는 것들이다. 갈릴레오가 자연 현상에 대해 질문하는 새로운 방식의 길을 열어 놓았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당시의 세계관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에 병적으로 영향을 받은 교회 기독교는 모든 자연역사궁극적목적을 가진 하느님의 능력에 의해, 하느님의 예정된 계획에 따라 움직여 간다고 생각하는 창조론이 아주 합리적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갈릴레오는 궁극적인 결과를 주목하기 보다는 사태가 진행되는 과정을 관찰했다. 오늘도 믿음체계에 의해서 잘못 세뇌된 기독교인들에게 이 자연적이고 우연적인 과정이 충격적인 것은 물론이고 당시로서는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특히 이 과정면밀한 관찰 실험과 관련되어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무엇보다 갈릴레오의 방식종교경험과학 사이에 중요하고도 결정적인 구분을 만들어 내었다. 궁극적 목적에 대한 질문들은 기본적으로 종교적인 질문들이다. 과학자들은 점차 목적에 대한 질문이 경험과학의 영역 밖에 있는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인간 실존에 관계되는 한, 목적에 관한 질문은 사람들을 비현실적인 혼돈에 빠트릴 수 있는 위험한 일이다. 현대과학 출현으로 믿음체계가 설정한 궁극적 목적은 설득력을 잃기 시작했으며, 그대신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작용과정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했다. 과학은 과거와 현재에 엄청난 빛을 비춰주었으며, 과학적 추구는 전통적 종교의 믿음체계들과 모순된다. 다시 말해, 현대인들은 무작정 억지로 믿는 것 보다는 이성적으로 의심하고 질문하는 것이 더욱 솔직하고 건강한 신앙이라고 인식했다. 종교과학을 무시하고, 종교가 만든 궁극적 목적이 절대적인 진리라고 주장하는 것은 비상식적이고 몰상식한 일이다. 코페르니쿠스가 제시하고, 갈릴레오가 망원경을 사용하면서 확인시킨 새로운 우주론은 세계 전체를 아주 새로운 방식으로 바라보도록 했다. 오늘날 새로운 우주론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엄청난 것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오늘까지 실제로 인류사회는 그 함축된 의미에 적응해가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쏘크라테스, 석가모니, 노자, 예수 시대에는 과학의 의미에 대해 몰랐으며, 17세기 뉴톤 이후에 시작된 과학 시대 21세기 첨단과학시대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발전되었다. 특히 1859년에 다윈 진화론을 발표함으로써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이후에 시작된 우주론의 변화는 더욱 가속화되어 과거의 세계관과 가치관과 신관(神觀) 180도로 전환되는 일대 혁명이 일어났다. 지난 100년 동안 현대과학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급성장했으며, 이러한 추세로 발전하면 앞으로 100년 후에 후손들의 세계는 예측하기 어렵다.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어떤 이유와 명분으로라도 과학종교정치와 분리하는 것은 큰 모순이며 인류사회에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21세기 첨단과학 시대에 이전의 낡은 전통이 인식하는 초자연적인 하느님의 자리는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느님/하나님/이란 말이 필요한 사람들은 그 말을 인격적, 물질적 그리고 초자연적 존재로 믿는 표층적인 신앙을 떠나보내고, 하느님이란 의미를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심층적인 삶을 살아내야 한다. 하느님을 숭배하고 믿으면 자연의 법칙이 깨지는 기적이 일어난다는 고대인들의 믿음은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 종교는 신/하느님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것이며, 세상은 신/하느님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해 있다. 종교적 신앙은 오로지 인간의 건강한 생명과 인간의 온전한 삶과 인류의 우주적이고 통합적인 사회를 위한 것이다. 기존의 전통적인 종교에 속한 사람들은 과학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과학을 중요시한다고 불신앙이나 이단이 아니다. 과학을 종교와 신앙의 기초로 세운다고 하느님의 징벌이나 심판 따위도 없다. 오히려 과학을 성스럽게 생각함으로써 과거의 세대들이 믿어왔던 인습적인 신앙을 재해석하여 21세기의 우주적인 새로운 의미로 전환할 수 있다. 과학 없는 종교와 신앙은 박물관의 유물에 불과하며, 오늘 인류에게 실용적이지 못하다.

 

오늘처럼 바이러스 펜데믹의 위기상황에서 인간의 생명하느님 에 대한 믿음 예배 보다 훨씬 더 소중하다. 인류사회의 고통과 절망을 극복하는 지혜로운 길을 방해하는 선동꾼 목사들과 이들에게 동조하는 정치가들의 거짓과 은폐를 우리의 사회에서 추방해야 한다. 한국과 미국의 국민들은 의학자들과 과학자들이 발견하고 발표하는 공개적 계시를 존중해야 한다.

 

[필자: 최성철, 캐나다연합교회 은퇴목사, 전직 지질학자]

 

 

  • 풀한포기 2020.04.13 22:15
    게으름에 관하여... (귀한 글 주심에 늘 감사드립니다.)

    "보수적인 성서근본주의 기독교인들은 성서를 하느님이 인간에게 내려준 과학책, 도덕책, 절대적인 진리로 크게 잘못 믿고 있으며, 심지어 세상의 모든 문제들의 해답이 성서에 있다는 망상에 빠져있다."
    는 진단에 반은 동의 못 하겠습니다.

    '죽음의 공포'는 고대인들만이 아니라 과학문명이 발달한 오늘의 인간도 똑같이 가지고 있습니다. '생존의 두려움'은 '부자의 욕망'으로 치환되었고요.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과학적 사고와 그간 인간이 쌓은 종교, 인문지식을 조금만 관심하면 죽음의 공포를 성서나 (성서근본주의)목사들이 말하는 방식이 아닌 것으로 대신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자의 욕망은 벗어날 수 없더라도 최소한 (한국)교회가 말하는 주술적, 마법주문 외는 듯한 방식은 벗어날 수 있습니다. 조금의 관심만 기울이고 게으름에서 벗어나면요.

    (한국의 대다수)기독교인들이 어리석음에서 허우적 거리는 것은 근본주의적 믿음이 대단히 강해서가 아니라 게으르기 때문이라 진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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