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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동창회 32] 교회 안에 예수의 하느님은 온데간데 없고, 가짜 하느님이 판을 치고 있다!

by 최성철 posted Sep 06, 2019 Views 66 Replies 0

 

북미와 유럽의 주류 신학계에서 예수가 하늘에서 내려온 하느님이라는 예수의 신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 문제는 더 이상 논쟁거리가 못된다. 세계의 주류 대학교 종교학부와 신학교에서 예수의 신성을 수용하고 가르치는 학교는 아무데도 없다. 단지 변두리 성서학교에서 아직도 생존의 몸부림으로 예수와 하느님에 대한 유신론을 고집하고 있을따름이다. 따라서 오늘 교회의 하느님예수의 하느님이 아니라, 상업적으로 만들어진 가짜 하느님이다. 

 

예수가 장터와 해변가에서 현세적인 하느님 나라 운동을 전개하고 있을 때, 광야에서 세례요한은 하느님 나라의 공정한 분배의 정의를 외쳤다. 세례요한은 제도적인 종교의 무지와 거짓을 폭로하고, 사람들을 탄압하고 착취하는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또한 아무 생각없이 자신에게 세례받기 위해 나오는 사람들에게 (요즘같으면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다가오는 징벌을 피하라고 일러 주었는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 . . .”고 경고했다. 요한의 성난 외침을 들은 사람들은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됩니까?” 라고 묻자, “속옷 두 벌 가진 사람은 없는 사람과 나누어 가지고 먹을 것을 가진 사람도 그렇게 하라”. 그리고 세금징수원들에게 너희에게 정해 준 것보다 더 받지 말라또한 군인들에게 남의 것을 강제로 빼앗거나 속여 빼앗지 말고 너희 봉급으로 만족하라고 대답했다. (누가복음서 3:7-14) 이 짧은 성서 이야기는 역사적 예수의 정신을 심층적으로 깨달은 성서 저자가 자신의 신앙을 고백한 것이며, 신약성서의 핵심적인 메시지이다.  

 

신약성서에 네 가지 다른 복음서들이 있다. 각각의 저자들은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던 많은 예수의 전승들을 수집하여 각자 자신의 복음서를 편집할 때 개인적인 종교적 체험을 삽입했다. 모든 복음서들은 단행본으로 단번에 완성된 책이 아니다. 네 개의 복음서들은 예수가 죽은 후 각각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적어도 50년에서 120년 사이에 기록되었다. 또한 오늘 현대 기독교인들이 읽고 있는 복음서들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 원본들100년에서 200년 동안 필사가들이 다양한 사본들을 수집하고, 편집하고, 개정하여 손으로 베낀 사본들이다. 예수 세미나 학회의 역사적 예수 학자들은 고고학과 지질학과 인류학과 고대사 등의 학문들을 활용해서 원초적인 예수의 메세지를 탐구하고 있다.    

 

복음서를 기록한 저자들의 종교적 체험과 확신은, 지금은 과거의 전통에 머물러 있을 때가 아니라, 예수의 정신에 따라서 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정치적, 종교적, 사회적, 경제적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에 관한 것이었다. 오늘 현대인들이 살고 있는 세상은 고대의 예언자들과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성서 저자들이 살았던 세상과 별로 다른 점이 없다.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은 폭력과 착취가 난무하고 있다. 오늘 교회 건물들이 여기저기에 있는데, 또한 예수를 믿으라고 아우성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있는데, 세상은 변화되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오랜 세월 동안 교회는 역사적 예수의 하느님을 버리고, 초자연적인 유신론적 하느님으로 사람들을 속이고 거짓과 은폐로 장사를 했다. 한때 이 사업이 잘 되었지만, 이제 파산직전에 이르렀다. 

 

교회기독교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다른 종교인들과 무종교인들의 존엄성을 무시하고, 그들을 개종시키고, 자신의 권력을 보호하기 위해 종교적인 폭력은 물론, 전쟁과 테러를 일으켜 수많은 사람들을 무참하게 살해했다. 교회는 타 종교에 대해서 진노하는 하느님의 대리인 역할하는 것을 하느님의 정의라고 잘못 생각했다. 교회는 소위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다른 사람의 존엄성과 생명과 권리를 박탈했다. 또한 하느님의 축복과 구원을 이분법적으로 생각하여 구원받았다는 사람들만 이 세계를 떠나 다른 세계로 이주해 가려는 망상에 빠졌으며, 지구의 생태계가 죽어가는 것이 신앙과는 아무 상관없는 것으로 믿는다.

 

오늘날 주류 신학계는 이구동성으로 외치기를, 기독교인들은 인류역사의 각각 다른 시대와 장소에서 하느님의 이미지를 새롭게 인식해야 한다. 언제라도 하느님의 이미지가 생명을 탄압하고 파괴하고 착취하는 일에 이용되고 있으면, 당장에 이러한 정복자와 심판자의 하느님을 떠나 보내고, 조건없이 공평하게 사랑하는 생명의 이미지로 전환해야 한다. 하느님이란 말은 영원불변할 수 있지만, 하느님의 의미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서 성숙해지고 발전해야 한다. 즉 하느님은 항상 아버지일 수 없으며, 어머니도 되고, 친구도 되고, 생기와 바람도 되고, 알 수 없는 신비스러움도 될 수 있다. 하느님을 다 안다고 하면 하느님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을 성서와 교회와 유신론에 감금할 수 없다. 하느님은 우주를 구성하고 모든 개체들 즉 만물을 통해서 느끼고 체험할 수 있다. 물론 하느님이란 말을 반드시 사용할 필요는 없다. 많은 다양한 말들이 하느님의 의미를 드러내고 있다.

 

세례요한의 목소리는 마치 날선 칼처럼 매우 날카롭다. 어쩌면 독설적이고 듣기에 거북한 언어를 사용한다. 오늘 신학적으로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을 격려하거나 설득할 때에 요한처럼 말했다가는 뺨을 얻어맞기 십상일 것이다. 좋은 소식(복음)을 전할 때에 이분법적이고, 배타적이고, 강압적인 언어를 사용한다면 설득력과 효력을 잃을 것이다. 그러나 좋은 소식을 전할 때에 분명히 우리가 분노하고 목소리를 높여야 할 유일한 때가 있다: 인간의 존엄성을 폄하하고, 남자와 여자를 차별하고, 성적본능이 다르다고 죄인취급하고, 여성의 살아갈 권리를 박탈하여 낙태를 금지시키고, 다른 인종과 종교를 박해하고, 지구의 생태계를 파괴하여 착취하고,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이용하고 희생시키면서 부와 권력을 챙기고, 제도적으로 불의를 저지르면서 이것에 항거하는 소리에 입을 틀어막는 행위들에 우리는 분노하고 예언자적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한편 믿음체계는 진노하고, 심판하고, 징벌을 내리는 인격적인 하느님의 이미지를 신봉한다. 그러나 그런 유신론적 하느님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교회는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사람들을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묶어 놓기 위해서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주고 심지어 협박까지한다. 그러나 병주고 약주는 하느님은 예수의 하느님이 아니며, 예수의 메세지도 아니며, 단지 장사꾼들의 얄팍한 상술에 불과하다. 예수의 하느님은 심판하고 벌주는 하느님이 아니다. 하느님의 의미는 전쟁과 폭력과 탄압과 착취와 차별에 정반대되는 것이며, 오직 조건없는 사랑, 포월적인 사랑이다. 교회는 예수의 하느님을 징벌을 내리는 무서운 하느님으로 변질시켜 사람들을 위협하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

 

요한의 메세지는 우리의 폭력적이고 배타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삶의 방식에 대해서 회개하고 거듭나고 새로운 길을 걸어가라는 뜻이다. 자본주의 경제 사회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를 챙기는 것이 하느님의 축복과 사랑이 아니라는 선언이다. 

 

심층적인 신앙인의 삶은 달콤하거나 안일한 여정이 아니다. 어쩌면 가시밭을 걸어가는 것처럼 고통이 따르고 온갖 유혹이 나의 앞길을 가로 막고 방해한다. 캐나다에서 6명의 어린이 중에 1명이 하루에 세끼를 다 먹을 수 없고, 지구촌에서 하루에 6 천명이 HIV/AIDS로 죽어가고, 하루에도 수만명이 굶어서 죽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참된 신앙인이 될 것인지를 양심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러한 상황을 못본체 외면하고 나의 신앙을 지키는 것이 예수를 따른다거나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솔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모든 사람들은 스스로 질문하고 대답하고, 무엇을 실천할 것인지 깨달아 알 수 있는 자율성과 창조성과 잠재력과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인간의 존엄성이다. 기독교인들이 진정 예수를 나의 주님이라고 고백하면 이 고통스러운 상황을 도피하고 이기적이고 안일하게 다른 세상으로 이주해 갈 수 없다. 물론 이 세계 이외에 다른 세계는 없다.

 

세례요한은 오늘 현대 기독교인들에게 외치고 있다. 생각하는 방식행동하는 방식을 새롭게 하여 두려움에 부들부들 떨고 있는 노예같은 삶, 자유를 박탈당하고 다른 사람의 눈치나 보면서 살아가는 타율적인 삶, 인간의 존엄성을 상실하고 다른 사람의 것을 흉내내는 중고품 신앙을 당장 내려놓으라고 광야에서 지금도 외치고 있다

 

2000년 전, 요한의 외침은 도전과 항거의 목소리였다. 요한은 로마제국의 혹독한 탄압의 어두운 그늘에서 그리고 헤롯왕의 포악한 통제와 착취의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 요한은 고통과 슬픔이 언제 끝이 날지 모르는 절망으로 가득한 이 세상은 지금 끝이나야 하고, 새로운 땅, 새로운 하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야 한다고 외쳤다. 안일하게 물질적인 성공을 꿈꾸면서 제국적인 가치관을 택할 것인지, 아니면 가시밭길을 걷는 것처럼 힘들겠지만 온 세상 사람들이 참된 행복과 의미와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예수의 정신을 따를 것인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도전한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그의 신성과 내세와 천국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가 가르치고 몸소 살았던 현세적인 하느님 나라의 진리를 인식하고, 지금 여기에서 그 진리를 스스로 살아내고, 예수의 하느님 나라를 이 땅 위에 건설하는 것이다.  

                                                                                               

교회새 시대의 예수공동체이다. 교회는 세속적인 세상을 포용하고, 이 시대를 이끌어 가야 한다. 교회는 이 세상을 멸망할 세상이라고 정죄하고 위협하는 무지와 거짓을 중단해야 한다. 세상 종말을 위협하면서 폭력적으로 두려움을 주는 목소리 보다 현세의 희망과 평화와 기쁨의 목소리를 내어야 하며, 새로운 세상을 위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하느님의 나라와 영원함은 지금 여기에 있다.

 

예수가 가르친 하느님의 의미는 조건없는 사랑, 우주적인 사랑, 통합적인 사랑, 포월적인 사랑이다. 하느님이란 누구는 축복과 구원을 받고, 누구는 받지 못한다고 이분법적으로 세상을 정죄하고 분리하는 옹졸하고 부족적인 존재가 아니다. 하느님은 모든 생명을 성스럽게 대하고, 모든 인간과 다른 생명체들을 존중하고, 모든 인종과 종교를 포용하는 삶의 방식이고 표현이다. 이것이 예수의 하느님이다.  

 

교회 안에 잃어버린 예수의 하느님을 되찾고, 만들어진 가짜 하느님을 추방하자!  

 

[필자: 캐나다연합교회 은퇴목사, 전직 지질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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