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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동창회 27] 인간의 자의식이 하느님과 성서 보다 먼저 있었다!

by 최성철 posted Aug 03, 2019 Views 64 Replies 0

 

기독교 교회는 교인들에게 하느님과 성서와 신앙을 가르치기 전에 먼저 필수적으로 가르쳐야 할 중요한 사실들이 있다. 즉 성서를 읽기 전에 혹은 하느님을 믿기 전에 필수적으로 이해해야 할 사실들이란, 인간이 속해 있는 우주와 수많은 별들 중에 인간들이 살고 있는 지구와 최초의 생명체의 탄생과 인간 생물종의 등장과 자의식을 지닌 인간의 출현에 대한 진화역사와 인간들이 왜 어떻게 유신론적 하느님과 종교를 만들었는지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

 

자의식을 지닌 인간 생물종은 오늘의 형태로 어느날 단번에 완성품으로 등장한 것이 아니다. 138억 년 우주진화 역사에서 빅뱅 이래 장구한 세월동안 진화과정은 계속되었으며, 최초의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 호모 하빌리스260만 년 전에 등장했고, 30만 년 전 자의식을 지닌 원시 호모 사피엔스과 등장했고, 4만 년 전 언어를 사용하는 현대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했다. 또한 특히 지난 수세기 동안 현대 인간의 자의식과 지적능력과 이성적 분별력은 급속도로 진화해왔다. 또한 앞으로도 계속해서 끊임없이 진화할 것이다.

 

인간이 된다는 것은 자의식을 경험하는 것, 즉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고, 끊임없이 질문하고 스스로 답을 찾으려고 애쓰고, 실망과 절망에 빠지고, 새롭게 용기와 희망을 갖는 자의식을 스스로 인식하는 것이다. 만성적으로 생존의 두려움과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던 고대의 인간들은 자의식의 충격불안의식을 완화하기 위해 인간의 외부에 존재하는 유신론적인 초자연적 하느님을 만들었다. 이 하느님은 질투하고 진노하고 편협한 하느님이었다. 또한 고대인들은 이 하느님은  인간의 외부에 즉 인간과 분리되어 이 세계 밖에 존재하는 타자이고,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초자연적인 힘을 지녔다는 가정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하느님을 인격적인 존재로 가정하고, 상식적이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이해를 초월하는 전지전능한 능력을 부여했다. 이렇게 유신론적 하느님을 만든 주요 목적은 안전한 보호와 축복과 은총이었다. 주목해야 할 것은, 고대인들은 하느님으로부터 인간이 받을 보호와 보상에 대한 조건을 첨부했다. 즉 이 하느님은 인간의 간청과 찬양과 영광을 받아야 하며, 따라서 그에게 복종하고 그를 기쁘게 해주어야 보호와 축복과 은총을 베푸는 존재로 만들었다. 다시 말해 고대인들은 인간과 하느님의 관계를 전적으로 보상징벌관계로 가정했다.

 

오늘날 우주진화 세계관에서 살아가는 과학시대의 현대인들은 유신론적 하느님의 확실성을 무작정 믿고, 교회 권위에 무조건 순종하라는 명령에 속아 넘어간 자기기만을 인식한다. 그러나 무용지물이 된 하느님을 신봉하는 유신론적 종교들은 최후의 발악으로 지금까지 유신론의 원시적인 기능을 계속해서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다하고 있으며, 여전히 인간의 존엄성을 폄하한다. 다시 말해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은 21세기에 인간의 자의식이 심층적으로 성숙해가는 일이 인류의 밝은 미래를 위해 가장 소중하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이제 고대의 유신론적 하느님의 영광과 은총을 떠나 보내고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따라서 과학의 발견을 무시하고 보상심리의 노예가 된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은 유신론적 종교가 어떠한 형태로 탄생하고 발전되었는지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종교는 인류사에서 어느 시점에 단번에 완성된 형태로 등장한 것이 아니라, 최초의 단계인 물활론(物活論, 모든 물질은 생명이나 혼,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자연관범심론(汎心論)  형태) 단계를 거쳐 다신론(多神)에서 부족(민족) 유일신론(唯一神)으로 발전했다. 고대 인간들은 산, 바위, 동굴, , 시냇물, 동물, 천둥, 번개, 태양, , , 나무, , 바다 등 이 세계에서 그들의 자의식적 생활이 만나는 거의 모든 것들에 인격성을 부여했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두려움과 공포와 이기심에 찬 고대인들은 그들의 생존이 걸려 있다고 믿는 초자연적인 힘의 비위를 맞출 수 있는 종교체계를 고안했다. 만일 생명력을 주는 영들이 자비를 베푼다고 믿게 되는 경우, 이 자의식적인 인간들은 그 영들의 축복을 받고자 했다. 만일 이 영들이 비호의적이거나 악마적인 것이라고 생각될 경우에는 그 영들의 폭력적인 힘을 완화하려고 했다. 따라서 이렇게 새로이 자의식이 생긴 인간들은 여러 다양한 종교적 관행들을 만들어 이것들을 통해 인간의 필요에 응할 수 있도록 우주 안에 있는 초자연적인 힘들을 약하게 만들거나 적어도 조정하기를 원했다. 이런 초자연적인 힘들을 의인화함으로써 사람들은 그 힘에 어떻게 순응해야 할지를 알았다. 즉 그들은 단지 인간의 기대와 실천적 관행들을 그 초자연적인 영역에 순응하도록 보조를 맞추면 되었다. 그들은 신의 뜻을 분명하게 알기 위해 계속 그 뜻을 탐구하였고 따라서 그 유신론적 힘을 기쁘게 해주는 방식으로 행동함으로써 신적 호의를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유신론적 하느님의 영광과 은총을 추구하는 기독교의 믿음체계는 미사여구의 예배 언어를 발전시키고, 예배에서 마치 노예가 주인 앞에서 무릎꿇고 복종하는 것처럼 자기 자신을 한껏 비하한다. 그래서 이 하느님 앞에서 우리는 벌레만도 못한 죄인이고 비참한 범죄자입니다,’ ‘우리는 병들었습니다,’ ‘우리는 오직 당신의 치유만이 필요합니다,’ 라고 말함으로써, 스스로를 정죄 받아 마땅한 사람이라고 고백하고 자인하는 것이 좋은 믿음이라고 착각한다. 안타깝게도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은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 없이 하느님을 기쁘게 할 수 없으며,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과 축복과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속임수에 빠져 있다.

 

유신론적 종교체계의 특징은 그들의 특정 신만이 오직 진실하고 실재적인 존재라고 단언한다. 그러나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이 착각하는대로, 우리의 하느님만이 유일한 참된 신이며, 이 하느님의 진리는 오직 우리에게만 주어졌으며, 그것은 직접 계시로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따라서 그 진리성을 의심할 수 없다는 식의 비합리적인 주장은 자기기만무지함에 빠져있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이런 주장들은 기독교 역사 가운데 여러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즉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 또는 하느님의 말씀인 성서는 일점일획의 오류도 없다는 주장은 우주진화 세계관의 불확실성의 우주 세계에서 확실성을 찾으려는 무모한 욕구이다. 이 욕구는 인간 자의식의 불안한 마음을 다루려는 원시적인 고대 인간의 시도였을 뿐이다. 그러나 21세기에 이러한 시도는 효력이 없다. 확실성의 유신론은 인간의 생존의 두려움으로 인한 히스테리를 표층적으로 달래주는 데 이바지했다. 한편 그것은 인간의 공포 위에 경건한 외관을 씌워주었고, 비존재의 위협과 자의식의 충격을 다룰 수 있다는 거짓과 은폐였다. 이것은 유신론적 종교체계가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을 혼돈과 착각 속에 빠지게 한 전략이었다.  

 

우주진화 세계관의 시대에 하느님의 영광과 은총을 추구하는 유신론적 하느님의 믿음체계는 죽어가고 있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철저하게 믿어왔던 이 하느님은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어떻게 자연계가 운행되고 있는지에 대한 과학의 발견과 공개적 계시들이 한때 하느님이 독점했던 영역으로  진입했다. 처음에 유신론적 하느님은 인간의 지식이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설명해 주는듯함으로써 인간의 부족한 결함을 채워주는 존재였다. 그러나 그 부족함과 연약함과 결함들은 과학적인 지식의 발달로 인해 급속도로 약소화되었으며, 전지전능한 유신론적 하느님은 아무 쓸모없는 것이 되어가고 있다. 유신론적 초능력도 무능한 것이 되었다. 영국학자 마이클 고울더가 말한 것처럼 하느님은 더 이상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 할 일을 잃은 즉 실직한 신은 더 이상 하느님으로 남아 있을 수 없다. 이것이 오늘 현대인들이 살고 있는 우주 세계이다.

 

인간의 자의식과 유신론은 쌍둥이처럼 거의 동시에 탄생했지만 자의식의 원인이 되었던 진화과정은 유신론적 종교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계속될 것이다. 따라서 인간존재는 의식의 높은 수준으로 계속 진화할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의 의식자체는 비유신론적 즉 무신론적 하느님의 의미를 탐구할 것이다. 또한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는 자의식은 삶의 목적과 의미를 심층적으로 추구할 것이다. 우리는 외부의 존재를 향한 초월이 아니라 내면적으로 인간성의 한계를 넘어서는 초월, 새로운 인간성으로의 초월을 향해 자율적으로 창조적으로 자의식을 성숙하게 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부모처럼 우리를 돌보고 보살피며 보호해주는 초자연적인 존재를 위한 영광과 이 하느님의 은총을 떠나 보내야 한다. 그리고 인간의 본성 즉 인간의 존엄성인 자율성과 창조성과 가능성과 잠재력을 존중하고 성숙하게 발전시켜야 한다. 유신론적 하느님을 즐겁게 해주려고 비굴하게 무릎꿇고 아부하던 우리의 과거의 패러다임을 거부함으로써 우리는 인간의 새로운 존엄성을 발견할 수 있다. 수동적으로 복종하고 맹신하는 대신에 이제 확대된 의식으로서 깨달아 알 수 있는 존재의 근원을 자아 속에서 만나기 위한 새로운 길이 우리 앞에 활짝 열려 있다.

 

과거에 조상들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고상한 인간을 위해 보상심리의 하느님의 영광과 은총을 아낌없이 버려야 한다. 또한 이분법적 믿음체계를 철저히 개혁해야 한다. 왜냐하면 거룩한 하느님의 현존을 추구하도록 만들어진 제도적인 구조들과 교리들에서 참된 인간의 의미인간의 행복을 위한 새로운 길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하느님을 위해 살던 시대는 끝났다. 죽어가는 유신론적 하느님을 소생시켜 보려고 우리의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가능하지도 않고 또한 바람직하지도 않다. 신경질적이고 폭력적인 분노를 터뜨리는 보수적인 근본주의는 미래로 가는 길이 아니고 과거에 머물러 과거를 부등켜 안고 숨넘어가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헐떡거리는 꼴이다. 아무리 몸부림친다 해도 그것은 헛된 일이다. 기독교인들은 이런 죽어가는 종교체계를 회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이런 현실을 부인하는 것은 종교적 망상을 영속시키는 일이며 인류사회의 밝은 미래에 심각한 장애물이 된다. 내세를 꿈꾸는 삼층 세계관적인 과거의 패러다임을 떠나 보내고, 우주진화 세계관적인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체적으로 살아갈 때가 되었다. 인간의 자의식을 성숙케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지금 여기에서 영원함을 깨닫고, 참된 진리를 탐구하는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기독교인들은 성상의 자리에 앉은 교리적으로 만들어진 하느님 예수의 믿음에서 이 길을 찾을 수 없다. 그대신 생선 비릿내가 물씬거리는 갈릴리 해변에서 그리고 장터와 들판과 산에서 가르치고 몸소 살아냈던 역사적 예수의 정신에서 이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다.

 

인간은 생존을 추구하는 가운데 인간의 본성에 따라 삶의 목적과 의미에 대한 궁극적인 진리를 탐구하는 자율성과 창조성과 잠재력과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인간의 존엄성이다. 오늘 인류 사회의 전반적인 영역에서 유신론의 죽음으로 새로운 하느님의 의미가 출현하고 있으며, ‘하느님 없는 종교- 하느님 없는 윤리-교회 없는 사회라는 말들이 이상하지 않은 보편적인 말이 되고 있다. 하느님이란 우주적이고 통합적인 실제(實際Reality)이다. [참고: 무신론적 實際) = 있는 그대로(사실) 경우·형편, 유신론적 실재(實在) = 상상이 아닌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 다시 말해, 하느님은 믿으면 구원받고 믿지않으면 나쁜 일을 일으키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온전한 삶의 방식과 표현이다. 오늘날 유신론의 죽음으로 새로운 인간의 의미와 생명의 의미가 탄생하고 있다. 인간의 자의식과 존엄성이 성숙해져야 한다는 새로운 인식이 보편화되고 있다. 이것은 예수의 말대로, 인류와 세상을 위한 좋은 소식이고 인류에게 희망이 된다.  

 

[필자: 캐나다연합교회 은퇴목사, 전직 지질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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