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하늘뜻펴기

믿음으로 열어가는 평화 | 김종일 김희헌 | 2019-08-11

by 김희헌 posted Aug 11, 2019 Views 214 Replies 0
Extra Form
날짜 2019-08-11

믿음으로 열어가는 평화 (1:1,10-20, 11:1-3,8-16, 12:32-40)

2019.08.11 평화통일주일

김종일 (희남 신도회)

오늘 평화통일주일을 맞았습니다. 정전협정 다음 날인 728일 예배 때 우리는 분단된 겨레를 하나 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믿으며, 평화통일을 이루기 위해 기도하고, 헌금하며, 활동한다.”생활실천 다짐을 했습니다.

저는 평신도 하늘 뜻 펴기 준비를 하면서 저 자신에게 여러 번 반문 했습니다. 분단된 겨레를 하나 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하고 있는가?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하고, 헌금하고, 활동을 하고 있는가? 돌아보니 많이 부족했구나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늘 뜻 펴기 준비를 하던 중에 제 가슴을 울리는 성경 구절이 있었습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마가 1:15)

이 말씀이 저에게 평화통일의 때(Kairos)가 가까이 왔으니, 전향적인 삶을 살기 위해 회개(Metanoia)하고, 평화통일의 복음(Euaggelion)을 믿으라고 촉구합니다.

몸의 중심은 아픈 곳이고 세상의 중심은 울부짖는 곳이라는 말처럼,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들이 울부짖고 있습니다. 폭염이 계속되는 지금도 강남역 사거리 철탑에 올라간 김용희님이 60일 넘게 목숨을 담보로 투쟁하고 있습니다.

최근 한일관계는 마주보며 달려오는 열차처럼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닫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대법원에서 일본 전범기업을 상대로 한 배상청구소송에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승소했습니다. 그러자 일본의 아베 내각은 화이트 리스트에서 대한민국 제외를 결정했습니다. 앞으로 한일관계는 총성 없는 무역전쟁으로 비화될 것입니다.

지난 630, 트럼프김정은 판문점 회동 이후 40일이 지났음에도 북미 간 실무협상 논의는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와중에 한미 간 군 당국은 중단되었던 한미연합 군사연습 재개를 공식화했습니다. 대화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북은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연이어 발사하면서 한미 당국에게 경고를 보내고 있습니다. 19537.27 정전협정 체결 이후, 단 한 순간도 우리는 평시를 경험하지 못하고 불안에 떠는 준전시상태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반도의 불안정한 정세는 미 국무성의 한반도 정책인 분할지배정책에 기인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19457월초 한반도 4개국 분할방안을 마련하고 소련, 중국, 영국에 제안했으나 거부되었습니다. 8월초 소련군이 한반도로 진출하면서 영향력을 확대하자 미국은 811일 새벽 일방적으로 3.8선을 긋고 한반도를 분할했습니다. 8.15 광복 이전에 미국에 의해서 한반도의 분단이 강제된 것입니다.

미 국무성의 한반도 분할지배정책3가지 방침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첫째 일제의 식민지 통치방식을 그대로 계승할 것, 둘째 식민지 통치방식을 가능하게 하는 군대, 경찰, 공무원 조직을 그대로 물려받을 것, 셋째 남과 북의 민족적 분열을 최대한 활용할 것 등입니다. 그로 인해 남과 북은 지금까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남아 있습니다.

분단의 질곡은 저의 삶의 궤적에도 커다란 영향을 주었습니다. 저는 유아기를 미군기지 주변에서 보냈습니다. 만취한 미군이 양색시라 불리는 여성을 잔인하게 폭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린 시절부터 미군에 대한 반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1-2학년 시절 제가 즐겨 불렀던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동무야 나오너라 달맞이 가자라는 노래가 어느 날 갑자기 음악책에서 사라지는 동심의 아픔도 겪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는 하루 만에 국민교육헌장을 다 암기해서 전교생이 모인 조회 시간에 연단에 올라가 암송하고 옥수수 빵 10개를 받기도 했습니다. 박정희 정권이 분단을 이용한 장기집권을 위해 어린 동심을 파괴했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중학교 시절에는 담임선생님의 말씀을 믿고 기구에 실려 남쪽으로 내려온다는 북의 삐라를 주워 동생들의 학용품을 마련하기 위해 밤늦은 시간까지 학교 옥상에서 하염없이 하늘을 바라보는 일도 있었습니다. 매 학년마다 열리는 반공웅변대회에 나가기 싫어서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담임선생님과의 면담을 피하느라 애를 먹기도 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시절 교련선생님의 무자비한 폭행에 분노하여 폭력교사 퇴출 데모에 주동자로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교장과 폭력교사의 사과, 재발방지 약속을 받아냈지만, 학교로부터 요주의학생이란 낙인이 찍히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대학을 진학했는데 입학한 지 20여일 만에 학교까지 중앙정보부 요원이 찾아와 교회 청년회 회지를 내보이며 “‘기독청년이 바라본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특집기사를 누가 썼느냐, 배후가 누구냐?”라고 닦달과 협박을 받기도 했습니다. 대학교 3학년 때인 1980년 민주화의 봄을 맞아 학도호국단을 폐지하고 학생회를 부활시키는데 앞장을 섰습니다. 저는 직선제 단과대 학생회장으로 선출되어 데모대를 이끌었고, 5.17 계엄령 이후 수배령이 떨어져 6개월 간 도피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수배기간 중 대학선배로부터 광주항쟁 비디오테이프를 전달받아 보면서 분노와 좌절에 몸서리쳤던 기억이 저에게 아직도 트라우마로 남아 있습니다. 수배 해제 후 10월초 학교에 가니 학과장은 문교부에서 지침이 내려왔다며 사회부적응학생 기록카드작성을 저에게 강요하는 한편 전액 장학금을 주겠다며 회유하기도 했습니다. 저에게 대학 시절은 데모와 수배, 기관원의 감시 속에 암울하게 보냈던 기억 밖에 없습니다.

대학졸업 후 학사장교로 군복무 중이던 19852·12 총선을 맞았습니다. 저는 105 야전병원 후송중대장이었고, 사병 전체를 정부여당인 민정당 후보에 투표하도록 부재자 부정투표를 강요받았습니다. 이를 거부하여 지휘관으로부터 폭언과 폭행을 당하고 부재자 투표가 끝나는 기간까지 중대장 직무정지와 사실상 구금과 다를 바 없는 영내대기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군 제대 후 대통령 직선제로 치러진 198712월 대선에서 구로구청 부정투표함사건이 터지자 저는 한 걸음에 달려가 밤샘규탄투쟁에 참가했습니다. 이튿날 새벽 진압과정에서 백골단으로부터 집단폭행을 당해 허리에 큰 부상을 입기도 했습니다. 당시 제 나이 서른이었고 , 대한민국은 불의한 역사가 계속 반복되는가?” 깊은 고민과 회의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향린 교우 여러분!

몸의 중심은 아픈 곳이고 세상의 중심은 울부짖는 곳이라 했는데, 여러분의 몸과 마음은 어디가 아프십니까? 한반도 곳곳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우리 겨레의 고통이 어디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분단의 질곡이 저의 삶의 궤적에 영향을 끼친 것처럼 우리 민족의 운명에도 결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분단은 우리 민족이 원해서 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약소국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는 마음을 가지면 안 됩니다. 개인의 삶과 운명의 주인은 당사자이듯, 민족의 운명도 우리 민족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역사발전의 순리입니다.

반역과 분단의 역사를 청산하지 못하고 아직도 치욕스럽게 분단국가로 남아 있는 대한민국의 복음은 평화통일이라고 믿습니다. 문익환 목사님처럼 벽을 문으로 알고 걷어차면서 통일은 됐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믿음이야말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잠시 묵상하겠습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노래 한 곡 부르겠습니다.

버려진 사선 철길을 따라 / 민중의 가슴 차표를 쥐고 / 그대 오르네 철책 면류관 쓰고 / 저 언덕을 오르네

가시쇠줄로 찢겨진 하늘 / 아픔은 결코 다르지 않다 / 압록강 줄기 그리움 일렁이며 / 흐느끼는 당신의 노래

우리지친 어깨 일으켜 / 떨리는 손을 마주 잡는다 / 갈라진 조국 메마른 이 땅 위에 / 그대 맑은 샘물줄기여

죽음을 넘어 부활 하는 산 / 피투성이 십자가 메고 / 그대 오르는 부활의 언덕위로 / 우리 함께 오르리” (‘그대 오르는 언덕’, 류형선)

 

 

김희헌 목사

[두려워하지 말라! / 누가복음 1232-40]

김종일 교우께서 문익환 목사님을 언급하시니 목사님에 대한 기억이 떠오릅니다. 문 목사님께서 89년에 방북하고 돌아오셔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투옥되셨다가 형집행정지와 재수감을 반복한 후 93년 초에 석방되셨습니다. 저는 당시에 수유동에 있는 신학대학원에서 수학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안병무 선생님의 누가복음의 민중 이해라는 수업이었던 것 같은데, 출소하신지 얼마 되지 않으신 문 목사님이 20명 안팎의 학생들이 있는 작은 강의실에 초대되셨습니다.

목사님은 방북 기간 동안 겪은 일과 당신의 삶의 여정을 잔잔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내용이 무엇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분의 말씀을 듣고 난 후 제 맘에 일어났던 느낌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것은 분단시대의 이념장벽으로는 도저히 가둘 수 없는 그분의 광활한 정신에 관한 것입니다. ‘, 이분의 맘에서는 분단된 후로는 섬나라처럼 변한 남한 사회의 편협한 반토막짜리 사상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거대한 해방 정신이 펼쳐지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밀려왔습니다.

30년 전인 1989년 문 목사님이 방북하셨을 때 남한의 언론은 온갖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반공사상이 지배적이던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에서 문목사님의 행동은 좌경세력의 체제전복 활동으로 해석되었습니다. 그것은 분단이 사십여 년 동안 지속되면서 사람들의 정신을 지배하게 된 반쪽짜리 이념에서 비롯된 판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분단시대에 양산된 반쪽짜리 생각은 보수 세력만이 아니라 진보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다는 사람들에게도 있다고 봅니다. 그것은 분단체제를 기정사실로 놓고 미래를 구상하는 경우입니다. 그래서 진보적 저항운동을 한다 하더라도 결국에는 분단체제 안에서의 활동에 그치는 한계를 갖습니다. 그런 활동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거시적 역사의 안목으로 보면, ‘찻잔 속의 태풍에 불과하다는 말입니다.

금년에 일흔다섯 번째 광복절을 맞으면서도, 우리 사회는 아직 청산되지 못한 과거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그 모든 고통의 뿌리에는 분단체제가 있습니다. 이점은 앞서 김종일 교우께서 강조했기 때문에 더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묻고자 하는 점은 이것입니다. 왜 우리 민족은 이토록 긴 세월동안 서로를 적대시하며 지내왔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물음은 분단을 야기한 책임이 있는 외부세력을 향한 비판이라기보다는, 지속된 갈등에 익숙해진 우리 내부의 두려움과 무지에 관한 것입니다.

분단체제가 길어지면서 굳어진 것은 일종의 적대적 공생관계입니다. 그 속에서 우리 민족은 상대방을 증오하지 않으면 도리어 사상이 불온한 사람처럼 취급되는 기이한 시대를 살아왔습니다. 상대방을 동조하는 사람들은 살육되고 제거됐습니다. 우리 역사에 켜켜이 쌓인 이 비극으로 인해 사람들은 본능적인 두려움을 갖게 되었지요. 그런 사회적 긴장과 두려움이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어쩌면 태극기부대의 극렬한 증오와 적대감도 본능적인 두려움의 또 다른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깨치고 일어나지 못한 채, 길고 긴 분단체제 속에 갇혀 지내온 것단지 역사적 불운(不運) 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 무지와 무능 때문이라 할 것입니다. 오늘날 평화 체제로 진입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박차고 일어나 주인다운 행동을 하지 못하고 눈치나 살피는 것은 아직 우리 사회가 깨어있지 못하다는 증거라고 하겠습니다.

오늘 누가복음 본문에서 예수님은 두 가지 말씀을 하십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는 사람들에게, 먼저 구해야 할 것은 하나님나라라고 말씀하시면서 당부한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두려워하지 말라32절 말씀이요, 둘째는 깨어있으라는 비유의 말씀입니다.

이 두 가지는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나라를 향해 깨어있는 사람은 이 세상의 것들로 인해 두려워하지 않으며, 이 세상의 율법을 넘어선 믿음의 사람은 깨어서 주님의 나라를 준비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적은 무리여, 너희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신다.(12:32) 우리를 두려움에서 건져내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은총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나라를 주기 원하십니다.

그런데 그 나라는 도대체 어떻게 오는 것입니까? 그 나라를 위해 깨어서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이 질문에 대해서는 오래 전부터 역사에 울려 퍼진 예언자들의 가르침을 통해 해답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들어라! / 이사야 11, 10-20]

오늘 제1성서의 본문은 예언자 이사야의 말씀입니다. 열다섯 권으로 구성된 예언서는 이사야서로 시작되는데, 이사야 예언의 첫 번째 단어는 들어라!’ (šhimū, 1:2)입니다. 본문 10절은 그것을 더 분명하게 말합니다. “들어라, 주의 말씀을!” (šhimū ḏəḇar Yahweh) 예언자들이 주장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지혜는 듣는 것에서 나옵니다. 진정한 영성 역시 온 마음을 다한 경청(mindful listening)에서 비롯됩니다. 듣지 않고 자기만을 주장하는 사람은 자기이해에 갇히게 됩니다. 그렇게 자기만 남은 세계는 평화를 잃은 세계요,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세상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세상이라 하더라도, 역사의 소리를 듣고, 고통 받는 이웃의 소리를 들을 때, 하나님의 나라가 오는 것을 보는 믿음이 생깁니다. 그래서 바울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온다고 했던 것입니다. (pistis ex akoēs, 10:17)

이사야는 오늘 본문에서 말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어라, 너희 소돔의 통치자들아! 우리 하나님의 가르침(torah) 귀를 기울여라 너희 고모라의 백성들아!이것은 이웃나라를 향해 외친 말이 아니라, 그들의 삶이 소돔과 고모라처럼 죄악에 물들었다고 꾸짖는 하늘의 소리를 들으라는 말씀입니다.

이사야는 당시의 율법이 올바르고 거룩한 삶이라고 가르쳐왔던 것들을 뒤집어버립니다. 넘치는 제물과 기름진 제사는 의미가 없으며, 거룩한 집회와 많은 절기도 헛될 뿐이라고 외칩니다 (11-14). 이것은 보수화된 종교에 대한 비판이라기보다 당시의 사회구조와 문명을 구축하는 방식에 관한 비판입니다.

예언자가 전하는 말씀은 분명합니다. 헛된 기도를 드리기보다 피로 가득한 손을 먼저 씻고 (15), 악한 일을 그치며 (16), 억압당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정의를 찾고 옳은 일을 배우는 것입니다 (17). 그럴 때 붉게 물든 죄를 씻는 진정한 회복이 이뤄집니다.

그러나 예언자의 권고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세상은 강자들이 만든 율법과 힘의 질서대로 움직였습니다. 예언자들이 시대마다 보내졌지만, 대부분 박해를 받거나 죽임을 당하고 (11:49), 거짓 이데올로기가 삶을 지배했습니다. 그것이 민중들의 한숨이요, 역사의 탄식이 되었습니다. 이 고단한 역사의 고갯길을 어떻게 올라갈 수 있습니까? 이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지어지는 것을 과연 볼 수는 있는 것입니까?

 

[믿음으로! by faith / 히브리서 111-3, 8-16]

이 물음에 대해서 오늘 서신서의 본문 히브리서 11장이 대답합니다. 본문 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보이는 것(blepomenon)은 나타난 것(phainomenōn)으로부터 지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바람 부는 언덕을 지키는 소나무도 작은 솔방울에서 비롯됨을 우리가 아는 것씨앗이 가진 생명력에 대한 믿음 때문입니다. 믿음이 바라는 것들의 확신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가 됩니다. 어둠의 역사를 뚫고 가는 것도, 굴곡 많은 생을 바로 세우는 것도, 믿음입니다. 성서의 기록이 믿음의 기록인 것도 바로 그 이유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는 열여덟 번이나 계속해서 반복되는 단어가 있습니다. ‘피스테이’(Πίστει)라는 말입니다. 우리말로는 믿음으로’(by faith)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 말이 계속해서 반복됩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3), 믿음으로 아벨은 (4), 믿음으로 에녹은 (5), 믿음으로 노아는 (7),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8/9), 믿음으로 사라는 (11)... 이렇게 열여덟 번이나 계속됩니다. 성경의 역사를 구성하는 사람들을 설명하는 단어가 바로 믿음으로라는 말입니다.

그 믿음은 도대체 어떤 것입니까? 본문 8절이 말하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구성하는 특징은 한 가지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hupakouó, obey) 나아가는 것입니다. 심지어 자기 지식으로는 어디로 가야할지 모른 상황에서도, 부르시면 박차고 나아가는(exerchomai) 것이 믿음입니다. 그것은 무지의 만용이 아니라, 신뢰의 응답입니다. 믿음은 지식의 보장에 의존하는 정신의 기술이 아니라, 소망의 확신을 품고 일어서는 영혼의 긍지입니다. 진군하는 역사가 하늘을 향해 달라고 외치는 것이 바로 이 믿음입니다.

그러나 낡은 종교는 믿음을 성공이나 축복의 약속과 거래합니다. 믿음을 마치 성공과 축복의 보증수표처럼 남발하는 교회는 오늘 히브리서 기자가 싸늘하게 전하는 믿음의 현실을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본문 1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믿음을 따라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들은 약속하신 것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멀리서 바라보고 반겼으며, 땅에서는 길손과 나그네 신세임을 고백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믿음을 따라 살다가 죽을 뿐입니다. 심지어 약속된 꿈마저 이뤄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로 거기에서 믿음의 사람이 일어납니다. 이 땅에서는 다만 나그네임을 고백하며, 하늘의 부르심을 마음으로 그리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바로 이 믿음의 사람들에 의해서 분단체제의 빗장이 해체되어왔고, 앞으로도 평화세상이 열려질 것입니다. 분단시대의 율법이 만들어낸 반쪽짜리 이데올로기를 벗어던지고, 과감하게 평화의 세상을 열어가는 우리 신앙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당신의 말씀을 들려주시고, 믿음을 부어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침묵하겠습니다.

 

[파송사]

당신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은 말씀을 주십니다.

당신의 나라를 구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용기를 주십니다.

당신의 평화를 열망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은 믿음을 주십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이 선물을 갖고 우리 모두 평화를 여는 믿음의 사람들이 됩시다.


List of Articles
날짜 제목
2024-03-24 두렵지만 한 걸음 내딛을 때 ㅣ 유연희 ㅣ2024-03-24
2024-03-17 밀알 하나 ㅣ 김지목 ㅣ 2024-03-17
2024-03-10 우리의 새날 | 유영상 | 2024-03-10 file
2024-03-03 십자가라는 증거 ㅣ 황푸하 ㅣ 2024-03-03
2024-02-25 3.1운동과 한국 교회 ㅣ 이만열 ㅣ 2024-02-25
2024-02-18 죽는 것과 사는 것 ㅣ 김지목 ㅣ 2024-02-18
2024-02-11 체현의 영성 ㅣ 김지목 ㅣ 2024-02-11
2024-02-04 지켜보기: 감시인가, 관심인가? ㅣ 이서영 ㅣ 2024-02-04
2024-01-28 자유와 절제 ㅣ 최필수 ㅣ 2024-01-28
2024-01-21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생명 평화 선교 공동체 ㅣ 이숙진 ㅣ 2024-01-21
2024-01-14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ㅣ 김도현 ㅣ 2024-01-14
2024-01-07 거룩한 혁명의 시작 ㅣ 김지목 ㅣ 2024-01-07
2023-12-31 마음 속 생각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ㅣ 이동환 ㅣ 2023-12-31
2023-12-25 포대기에 싸여 구유의 누인 갓난아기 ㅣ 김지목 ㅣ 2023-12-25
2023-12-24 어둠속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 ㅣ 홍주민 ㅣ 2023-12-24
2023-12-17 다시, 기다림 ㅣ 송진순 ㅣ 2023-12-17
2023-12-10 광야를 희망하는 공동체 | 박정범 | 2023-12-10
2023-12-03 기다리는 사람들 ㅣ 김지목 ㅣ 2023-12-03
2023-11-26 공중을 나는 새와 들에 핀 백합화처럼 l 박희규 ㅣ 2023-11-26
2023-11-19 드보라의 종려나무 아래 ㅣ 김지목 ㅣ 2023-11-19
2023-11-05 “문자가 소리지르리라!” | 곽건용 |2023-11-05
2023-10-29 “허물어라 세우리라” | 이덕주 | 2023-10-29
2023-10-22 영광을 가리는 세상, 영광을 가로지르는 우리 | 유영상 | 2023-10-22 file
2023-10-15 안단테 소스테누토 ㅣ 피경원 ㅣ 2023-10-15
2023-10-08 홍근수, 통일의 사도 민족의 목회자 | 김경호 | 2023-10-08
2023-10-01 인류세 시대의 복음 ㅣ 윤상혁 ㅣ 2023-10-01
2023-09-24 첫째였던 꼴찌 ㅣ 김지목 ㅣ 2023-09-24
2023-09-17 불확실성의 바다 ㅣ 김정현 ㅣ 2023-09-17
2023-09-10 위기를 가로질러 ㅣ 서형식 ㅣ 2023-09-10 file
2023-09-03 생명을 나눈 사랑 ㅣ 김지목 ㅣ 2023-09-03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Next
/ 11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