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탐방 21- 뉴욕 리버사이드교회


리버사이드교회는 두가지 점에서 매우 유명하다. 첫째는 사회정의를 꾸준히 외쳐온 점이고 두번째는 건물이 고딕형식으로 되어 있고 종탑은 미국 교회 중 가장 높다(22층 높이) 현재의 위치는 85년 전 옮겨왔는데, 이 교회는 두 회중이 하나로 합쳐진 교회이다. 하나의 교회는 미국내에서 가장 진보적인 교단인 United Church of Christ이고 다른 하나는 침례교회이다. 그런데 이 침례교회는 보수교단인 남침례교 교단 소속이 아닌 진보 교단인 어메리칸뱁티스트 교단 소속이었다.


유니온신학교와는 길 하나 두고 마주보고 있기에 기회가 닿는대로 이 교회 예배에 참석을 했다. 30년 전에는 슬로안 코핀이라는 유명한 백인목사가 있었는데, 그는 설교도 뛰어났지만, 베트남 전쟁반대 시위도 유명했다.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장면은 매년 12월 첫주 오후에 헨델의 메시야곡을 회중과 함께 불렀는데, 매년 여기에 참여하는 즐거움을 누렸었다. 청중석에 앉아 있던 성악전공자들이 자기가 부르고 싶은 곡이 시작되면 자리에서 일어나 함께 노래를 불렀는데,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할렐루야 합창 부분을 지휘할 때는 이 코핀목사가 대신 지휘를 했다. 대학원 부전공이 지휘였단다.


빨간 쉐터를 입고 나와 지휘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었고, 그런 얘기를 설교 중에 언급을 했는데, 지난 5월 안식년을 떠나는데, 교회 성가대 지휘자께서 할렐루야 지휘를 연습해 오라고 얘기해서 아직도 그 꿈을 포기하지는 않고 있다.


그 후임으로 유니온신학교 설교학 교수였던 제임스 포브스라는 흑인목사가 부임을 했다. 그는 당시 타임지가 선정한 흑인 10대 명설교가 중 한 사람이었다. 그가 퇴임한 후 새로운 목사가 왔는데, 재정문제가 생겨 일찍 사임을 하였다.


2년 전 교회를 방문했을 때는 바로 그가 사임한 직후였다. 교회가 매우 어수선하였다. 참석 교인도 반으로 줄었을 뿐더러 교인들의 얼굴에 웃음기가 없었다. 당시 설교자는 캄잉아웃을 한 미국감리교 보스톤 연회의 여성 감독이셨다. 그리고 나서 40대 중반의 백인 여성목사가 담임목사로 부임을 했는데, 사회적으로 센세이날한 반응을 불러 일으켜 뉴욕타임즈에 인터뷰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그녀는 이미 30대 중반 워싱톤 침례교회의 담임목사로 청빙을 받아가면서 이미 센세이날한 반응을 불러 일으킨바 있었는데, 11년 후 또 다시 센세이날한 반응을 불러 일으킨 것이다.


우리 남한의 대형교회나 혹은 향린교회에는 언제쯤 여자목사가 담임목사로 부임할수 있을까 스스로 자문해 본다.


지난 주일 예배는 그녀가 부임한지 1년 반이 지났을 때였는데, 예배 좌석은 거의 찼고 활기가 차고 넘쳤다.


당일은 성찬식이 있어 설교는 짧게 하였지만, 세례요한의 회개 외침이 주제였다. 마르틴 루터 킹목사의 말과 그의 예언자적인 행동을 강조하였다. 렉셔너리에 따라 4개의 본문을 각기 다른 사람들이 나와 읽었고, 복음서를 읽는 과정에서는 읽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세례요한의 회개 외침을 마치 하늘에서 울려나오는듯 한 느낌을 주었다.


예배는 전통적인 예전에 따라 진행되었지만, 전통적인 형식과 문구를 많이 탈피하였다. 앞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었다.


예배가 끝나고 나서 사람들이 나가는데, 부목사 중 한 사람(그는 한국인 2세였다.)이 맨 앞에 그냥 서 있었다. 그러자 나이든 교인들이 서너명 앞으로 나가 그에게 기도를 받았다. 그런데 얼굴이 눈에 익은 분이 그에게 기도를 요청하는 것이었다. 내가 학교 다닐 때 학장이었던 도널드 슈라이버목사였다. 부인 페기여사가 많이 아파 휠체어에 앉아 있었는데, 아내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한 것이었다. 사실 슈라이버박사 또한 몇년 전 림프암으로 인해 치료를 받았던 것을 기억하고 있던 중이었는데, 얼마 전 그의 아내가 심한 병에 걸린 것이었다. 왼손이 심하게 부어 있었다.


물론 두 분 모두 90세가 다 되었으니 이 정도만이라도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페기여사는 참으로 조용한 분이셨다. 항상 미소를 띠우고 누구에게나 조용한 목소리로 매우 정답게 얘기하시었다. 지금은 비록 늙고 병들었지만, 그때의 고운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가까이 가서 내 소개를 하니 매우 반갑게 맞아주신다. 슈라이버박사는 7,80년대 남한 민주주의와 통일을 위해 매우 힘써 주신 분이시다. 김대중 전대통령이 미국 망명 시절 유니온메달을 시상하시기도 하셨으며 현영학교수의 민중신학 강의를 개설해 주셨다. 이후 서울을 5번이나 방문하셨다. 오늘의 혼란스러운 남한의 정치적 상황을 잘 알고 계시면서 남한 사회에 정의로운 민주주의가 빨리 회복되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면서 서광선교수님의 안부를 물으시며 가까운 친구라고 안부를 부탁하신다.


뜻밖의 해후 선물을 안고 오후의 따스한 햇빛을 안으면서 서너시간에 걸쳐 천천히 뉴욕의 거리와 센트럴파크를 걸었다. 맨하탄 거주만 5년 뉴저지 거주기간까지 합치면 근 7년을 살면서도 이렇게 한가롭게 걸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물론 같은 시간 지구 반대편 조국 땅에서는 200만이 넘는 민주시민들이 밤을 세워가며 시위를 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몇 개의 독특한 교회 건물도 찍고 또 그 안에도 들어가 보았다. 때로 스페인어 예배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민교회를 섬기면서 오후 예배를 드렸던 기억이 새롭다.


가게 앞에 세워 놓은 간판이 매우 재미 있다. * 떠나간 애인의 마음처럼 차가운 맥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