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탐방 18 -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홍콩 쿠룽 유니온교회)


[홍콩 인상들]


세계교회협의회가 주관하고 남과 북 그리고 해외 11개국 교회 대표자 모두 60여명이 참석한 한반도 평화 컨퍼런스를 마친 후 며칠을 더 머물며 홍콩 시내 이곳저곳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사람이 많아 복잡하다고 하는 서울에 40년 인종백화점이라는 뉴욕에 십년 가까이 살아 도시의 웬만한 복잡과 혼잡에는 놀라는 일이 없지만, 홍콩은 정말 대단한 도시임을 깨달았다. 인구 7백만에 관광인구 700만 그래서 매일 천사백 만이 살아간다는 홍콩시는 정말 가는 곳곳마다 넘쳐나는 사람들로 혼잡하긴 하였지만, 그 안에 영국적 질서가 담겨 있었다. 서울보다 훨씬 빠르고 자주 움직이는 지하철은 다른 노선으로 바꿔탈 때, 대부분 서울 지하철처럼 멀리 걸어갈 필요가 없었다. 다른 노선으로 바꿔 타기 쉽게 내리면 바로 건너에 배치해 둔 것이다. 물론 이는 승객 다수를 위한 편의였고, 소수 승객들은 역시 조금 걸어야 했다. 같은 노선의 상하선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 서울과 뉴욕 지하철의 상식선을 깨고 만들어진 것이었다. 상하선을 함께 두는 것은 공급자의 편의를 위한 것이지 소비자 곧 승객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다. 난 수십년간 몸에 배어 있는 이러한 상식을 깨는 이것이야 말로 일종의 지하철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생각하였다. 이게 영국과 미국의 차이일까? 영국의 경험이 짧아 뭐라고 설명하기 힘들다. 다만 미국이나 한국의 지하철은 실용적(pragmatic)이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주말이면 거리에서는 여러 공연이 펼쳐지는데, 뉴욕 보다는 다양하지는 않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뉴욕 거리공연자들은 실력도 있거니와 일당을 버는 일에 좀 더 신경을 쓰는 반면 홍콩 거리공연자들은 돈 모으는 통이 놓여 있긴 하지만, 돈에 그리 크게 신경 쓰지는 않는다. 그러다 보니 그 중에는 별다른 재주도 없는 사람들이 그저 마이크를 들고 노래를 부르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 같으면 관중이 전연 없을 성 싶은데, 중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너무 많다보니 거기에도 사람들이 모인다. 그리고 여기에는 정치적 발언대도 있다. 소수 정당 정치인들이 발언을 하거나 미래 정치로 나서는 사람들이 일반 대중을 상대로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것이다. 여의도 의회정치가 아니라 광장정치이다. 달리 말하면 촛불집회가 상시적으로 열리고 있는 것이다. 크게 보아 광장 문화가 제대로 형성되어 있다. 우리나라도 이번 촛불 200만 돌파 기념으로 광장 문화가 제대로 형성이 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본래 땅이 좁다 보니 광장이 그리 많지 않은 것이 흠이지만, 시청 광장, 광화문 광장, 명동 거리, 동대문 시장 등 사람이 모이고 공간이 허락되는 모든 곳에서 끼 있는 사람(우리는 거리문화꾼들이 대부분 젊은이들이지만, 여기는 나이든 사람들도 많다. 나이에 구애받지 않는다.)들이 마음껏 재주를 펴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이는 단지 민중 문화적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민중 주체적인 시민의식 고양에도 상당한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홍콩의 또 하나의 즐거움은 고층건물이다. 150미터 이상 되는 건물을 고층으로 말하는데, 뉴욕보다 30%가 더 많을뿐더러, 정작 중요한 것은 그 숫자가 아니라 촘촘하게 붙어 있는 건물들의 아름다운 건축미와 그 어느 하나도 같지 않는 다양성이라는 점이다. 몇 시간을 고층건물만 쳐다보고 길을 걸어 다녀도 지루하지 않을 정도이다.


그런데 홍콩이 주는 이러한 특별한 즐거움 외에 또 다른 개인적인 즐거운 경험을 하였는데, 첫째는 이번 한반도평화 컨퍼런스에서 아시아와 태평양 지역 YMCA 사무총장으로 일하고 계시는 향린교회 교우이시기도 한 남부원사무총장을 만나 일 년에 한번 모이는 YMCA 지도자 수련 과정을 이수하는 저녁 식사에 초대받은 일이고 또 다른 하나는 남총장님 부부께서 다니시는 유니온교회 예배 참석이다. 저녁 식사 자리에는 세계 YMCA 이사장을 역임하신 서광선박사님을 비롯하여 4명의 한국인을 만났는데, 한 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구면이었다. 처음 만난 사이라도 외국에서 만나면 쉽게 친해지거늘 구면들이다 보니 아주 쉽게 하나가 되어 이야기꽃을 피웠다. 물론 당일의 주요 화제는 박-최 게이트였는데, 그때는 아직 청와대의 야시꾸리한 약품 구매 목록까지는 폭로가 되지 않았을 때였다.(아 정말 창피합니다.)


[쿠룽 유니온교회]


본래 일요일 예배를 홍콩에서 드리고자 하여 홍콩교회연합회 총무목사님으로부터 몇 개의 교회를 소개받았었다. 그런데 이 교회들은 중국어로 예배가 진행되는 것이 문제였다. 그런데 남부원사무총장 부부가 다니는 교회는 중국어 대신 영어로 예배가 진행될 뿐더러 역사가 있는 교회이니 더욱 좋았다. 가서 보니 한인규집사님이 피아노 반주자로 봉사하고 계셨다.


이 교회는 첨부된 사진에서 보는 대로 건물이 오래되었을뿐더러 아름다웠다. 그래서 시의 역사 건물로 지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교회 담임목사들의 이름이 기록된 표지판이 예배실 뒤편에 걸어져 있는데, 1923년에 세워진 교회로 창립 백주년을 내다보고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목사 이름과 시무년도가 기입되어 있는데, 십년 너머 시무한 목사님도 한 두 분 계시지만, 상당수가 5년 미만이었고, 2년만 시무하신 목사님도 제법 되셨다. 향린교회보다 27년 먼저 세워졌지만, 일제의 침략으로 문을 닫았던 6년을 제외하면 결국 20년 더 오래된 셈이니 향린교회 역사에 비추어 본다면 5,6명의 담임목사가 적당할 것 같은데, 세 배나 많은 20명의 명단이 수록되어 있었다. 첫 번째 이유는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2년 임기제에 기초한 이 교회가 지향하는 사회참여 복음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2006년도부터 2009년까지 시무한 Kwok Nai Wang 목사는 홍콩 빈민지역에서 약자들을 위해 일하신 분으로 사회정의를 높이 외치신 목사님으로 유명하신 분이시다. 그러고보니 이 교회는 홍콩 지역에서 일종의 향린교회와 같은 교회였던 것이다. 그러니 이러한 뜻에 부합하지 않는 목사님들이 연임되지 못한 것은 아닌가 추측이 된다.(물론 이는 추측일 따름이다. 훌륭하신 분들이지만, 개인적인 이유로 인해 교회를 떠나신 분들도 많았을 것이다.)


외부 모습 못지않게 예배실 내부 모습 또한 독특하다. 전체적으로 보면 단순하게 보이지만, 자신의 깊은 내면의 소리에 민감하게 만드는 곧 영성적인 구성으로 이루어졌다. 그중 하나가 금이 간 유리창이었다. 매우 두꺼운 유리로 되어 있는데, 누군가가 밖에서 내리쳐서 모두 금이 가 있었다. 5개의 큰 창문 유리 중 맨 끝 쪽에 있는 유리는 갈아낀 것이 분명한데, 다른 유리들은 그대로 유지했다. 물론 옛날의 두꺼운 특수 유리를 구할 수도 없었지만, 느낌에는 문화혁명 시기에 있었던 반기독교 역사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추측이 된다. 예배 좌석은 약 200석인데, 당일 예배 참석자는 백 명이 약간 밑돌았다. 그러나 구성원들은 전 연령대에 걸쳐 있었고, 인종 또한 흑인들로부터 백인들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였다. 현 담임 목사님은 여자 목사님으로 인기가 좋다고 한다. 그리고 전임 목사님 또한 여자 목사님이신데, 담임목사님과 동역을 하고 계시는 것도 매우 특이했다. 사진에 두분이 이분들이다. 게다가 당일 하늘뜻펴기는 그 전임 목사님께서 하셨는데, 지금은 은퇴하여 시드니에 거주하고 계시는 분이셨다. 내가 지금까지 들어본 영어 설교 중 인상에 남는 몇 개의 설교 중 하나가 되었다. 상당히 쉽게 말씀을 전하면서도 복음의 핵심을 강조하셨는데, 그건 곧 예수의 십자가란 현재의 기득권(status quo)에 저항하는 상징임을 강조하셨다. 십자가가 구원의 상징이 아닌 저항의 상징이라고... 홍콩에서 백인 은퇴목사로부터 이런 해방적 메시지를 들을 것이라고는 미처 상상하지 못했었다.


[세계를 위한 기도 제목들]


예배 찬송 또한 전통음악에서 테제음악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장르의 찬송을 불렀으며 감동적인 것은 주보 4면 가운데, 거의 두면에 가까운 '세계기도 제목'이었다. 나 또한 긴 외국생활 경험과 지구촌으로 요약되는 세계적 시각을 갖고 신앙생활을 하고자 노력하고 있는데, 그간 교인들로 하여금 세계적 지평을 갖는 넓은 신앙을 갖도록 하는데 꿈은 있었지만, 실천을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인데, 이 교회의 주보를 보면서 충격과 도전을 함께 받은 것이다. 가능하다면 내년 향린교회에 돌아가면 이를 실천하고자 한다. 당일 주보에 실린 교회의 관심(CONCERNS OF THE CHURCH)은 저 멀리 아프리카로부터 시작해서 현 미국의 인종문제 등등을 언급하고 있는데, 무려 열 가지가 넘었다. 그냥 나라만 짧게 언급한 것이 아니라, 상당히 구체적이었다. 물론 당일 담임목사께서는 구두로 얘기했지만, 남한과 말레이시아의 반정부 민주시위를 언급하면서 기도를 요청했다.


첫 번째 기도를 소개하면 이렇다. [세계에서 가장 큰 난민촌인 케냐 다답에 있는 28만 명의 소말리아 난민들이 쫓겨날 위기에 처해있다. 케냐 정부는 11월말로 이 난민촌을 폐쇄할 예정이라고 하는데, 아직도 소말리아는 테러리스트들이 활개를 치는 무정부 상태로 이들이 고국으로 돌아간다면 생명이 위험하다.]


그리고 기억에 남는 기도 중 하나는 트럼프가 미국의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된 직후 지난 2주동안 미국 전역에 걸쳐서 백인우월주의자들에 의한 유색인종과 동성애자 차별 폭력 사태가 무려 900건 이상 일어났음을 강조하면서 인종차별 방지를 위한 기도를 부탁하였다. 지금 이러한 인종차별 폭력 사건이 계속 늘어가고 있는 상태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간간히 소수자들에 의한 폭력사태 또한 일어나고 있다. 어제는 한 중동인 대학생 젊은이가 차를 몰고 운집한 대학생들에게 돌진하여 상처를 입힌 다음 차에서 내려 큰 칼을 휘둘러 여러 사람을 상해시키다가 경비원에 의해 살해를 당한 사건이 일어났다. 뉴스는 미국의 중동 이슬람인들을 향한 전쟁에 대한 반발이라고도 하고 그의 어머니는 대학에서의 인종 차별 때문이라고 말하였다. 어찌 되었든 인종차별로 인한 폭력사태가 트럼프 당선 이후 너무 노골화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쿠룽 유니온 교회의 세계를 향한 기도 제목을 보고 있으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고 동시에 자신이 세계 속의 한 시민임을 자각할 수 있었다. 한인규집사님은 평소에 이 주보를 갖고 다니면서 기회 있을 때마다 이를 읽으면서 기도한다고 하신다.


신앙인이 되지 않아도 자기 문제 혹은 자기 가족 문제에 관심하고 열심을 다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일이다. 신앙인이 된다는 것은 자기와 가족을 넘어서 이웃의 아픔에 관심하고 참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께서 자신의 어머니와 형제자매들이 자기를 만나기 위해 문밖에서 기다린다고 누군가가 얘기하자, '누가 우리의 어머니이고 누가 우리의 형제 자매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면서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들이야 말로 나의 어머니이고 나의 형제요 자매라고' 설파하신 장면이 있다.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우리 이웃의 아픔의 문제에 더 깊이 관심하고 참여한다는 것이다. 이때의 이웃은 지역의 경계를 허물고 보다 넓은 시각을 가질수록 좋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눈앞에 보이는 형제자매의 아픔을 외면해도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글로칼(Glocal)이라는 단어가 있다. "Think globally, Act locally." "생각은 우주적으로 그러나 실천은 자신의 주변에서부터"라는 말을 줄인 말이다.


한 이십년 전, 스코틀랜드 서쪽 끝의 아이오나라는 매우 작은 섬에 있는 공동체 교회에 갔던 적이 있다. 당시 내가 방문했던 시기는 겨울이 가까워 여행객도 매우 뜸하였다. 공동체 안에 들어가서 반나절을 머물었지만,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교회 문이 열려 있어 안으로 들어갔다. 커다란 돌로 지어진 예배당 한 구석에 방석이 놓여 있는 기도처가 있었다. 창문으로 넓은 바다가 내다보이는 곳이었다. 무릎을 꿇었다. 놓여 있는 기도서를 펴니 세계 곳곳의 아픔의 현장들이 소개되어 있었다. 한반도의 분단 또한 거기에 기록되어 있었다. 난 거기서 참다운 기도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웠다. 그리고 그 예배당 벽에는 그 공동체에서 돕고 있는 세계 곳곳의 신앙인들 특히 평화와 정의를 위해 일하다 감옥에 들어가서 고통 받는 사람들의 사진과 그들의 약력들이 소개되어 있었다. 그때 난 돌아가서 이를 실천하리라 다짐했다. 그런데 아직도 꿈의 과제로 남아 있다.


그때의 기억이 나서 예배 후 목사님에게 세계를 위한 기도제목이 참으로 인상적이고 도전이 된다고 하면서 유니온 교회 교인은 많지 않지만,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라고 말했다. 그러자 웃으면서 답하기를 세계기도 내용을 담당하는 위원회가 있어, 함께 공부도 하고 교인들의 요청도 받아 이를 주보에 신는다고 한다. 향린교회에 돌아가면 '세계기도 위원회'(?)를 설립해야 할 것 같다. 이 글을 읽는 교인들 가운데 몇 사람이라도 동조자가 나오기를 희망한다. 아니 내가 돌아가서 할 일이 아니라, 마음만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작게나마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홍콩 유니온교회의 세계기도 담당자와 소식을 주고받으면 보다 쉽게 실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의 신앙의 폭이 넓어져야 한다. 남한의 경제인들은 미국과 유럽의 경제 뉴스에 집중한다. 왜냐하면 국내 경제가 이러한 세계 경제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이는 정치도 마찬가지이고 종교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한국교회의 문제는 모두 자기 행복, 자기 욕망 충족, 자기 건강과 장수, 자기 자식 성적과 출세에만 관심한다는 점이다. 물론 인간이 자기 문제를 떠나서 살 수는 없다. 그러나 자기 문제에만 집착한다면 신앙을 굳이 가져야 할 필요는 없다. 신은 모두를 위해 존재하는 분이시지 나만을 위해 존재하시는 분이 아니다. 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신 그게 바로 우상이다. 다른 종교가 우상이 아니라, 이름이 다른 신이 우상이 아니라, 자기만을 위해 존재한다고 믿는 신이 바로 우상인 것이다. 참 신은 이름이 없는 분이시다.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자기 인식의 한계 안에 둔다는 말이다. 이스라엘의 신은 이름을 거부하셨다. '나는 곧 나다.' 이를 히브리로 읽으면 '야훼(여호와)'가 된다. 야훼는 신의 이름이 아니라 이름이 없다는 말이다. 이름을 붙이지 말라는 말이다. 야훼는 너(인간)의 인식 체계 안으로 나(신)를 집어넣어 자기 합리화를 꾀하지 말라는 뜻이다.


왜 전쟁이 일어나는가? 자기 절대화 때문이다. 자기만이 옳다고 하기 때문이다. 선악과를 따먹은 결과가 전쟁이다. 트럼프는 선악과를 따먹은 자의 대표적 인물이다. 그래서 위험하다. 자국보호 우선주의는 결국 따지고 보면 자기 본위이다. TTP 모두 자국보호에서 나온 협정이다. 자기 나라가 손해본다고 생각하면 협정에 참여하지 않는다. 강대국 미국이 손해본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트럼프의 사기극에 미국인들이 말려든 것이다. 부동산 투기꾼 사기꾼에게 말려든 것이다. 미국의 앞날이 매우 위험해졌다. 자기만 위험해지면 괜찮은데, 망해가는 미국이 자기 살길을 찾기 위해 세계를 위험 속으로 같이 끌고 들어가기에 위험한 것이다. 럭비공은 어디로 튈지 모른다. 트럼프는 어디로 튈지 모른다. 박그네가 그러하듯이....


트럼프나 박그네 모두 이기화 된 기독교의 산물들이다. 트럼프는 미국 남부 보수적인 복음주의 교인 80% 이상의 지지를 받았다. 박그네의 정신적 우상 최순실은 강남 한 대형교회의 헌금 잘 내는 신실한 교인이었다. 이 둘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바 독일에서 거짓말로 영웅이 된 뮌히하우젠 증후군의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무슨 이유인지 사진 업로드가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