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고유한 문화와 전통을 가진 민족은 스스로 자신의 독립적인 국가를 구성할 권리가 있다는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지지받아온 공론이다. 티벳은 그러한 자격을 충분히 갖춘 민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티벳의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 사념들 때문이다.

오늘날 유태인 학살의 문제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아무도 없다. 그러나 그에 버금 가는 소수민족에 대한 유린과 학살이 역사 속에서 수없이 많았지만 그런 것을 기억하는 것은 오로지 역사학자들뿐이다. 유태인 문제를 오늘날 누구나 알게 되기까지는 그것을 알리는(홍보하는) 일을 유태인들이 엄청난 물량으로 전개해 왔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금도 계속된다. 학살되고 유린되어도 돈이 없는 민족은 그것을 세상에 알릴 방법이 없다. 팔레스타인이나 쿠르드족에 대해서 누가 그만한 관심을 가지겠는가?

그런데 유독 티벳만은 별로 돈이 없는 민족임에도 오늘날 여느 소수민족의 문제에 앞서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다. 유태인 문제만큼은 아니더라도 티벳 문제는 오늘날 왠만한 일반인도 다 알고 있다.(아시아에는 티벳 말고도 많은 소수민족에 대한 억압의 문제가 상존하고 있다.) 그것은 누군가가 어떤 목적을 위해 티벳 문제를 적극적이고 대대적으로 세상에 알려주었기(홍보하였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그것이 누구인지를 알 수가 있다. 그것은 미국이다. 이것이 티벳의 문제를 단지 소수민족의 자결권의 문제로만 바라볼 수만은 없게 만드는 불편함이다.

또 다른 불편함이 있다. 1940년대말 중국 공산당이 티벳에 밀고 들어올 당시 티벳의 민중들은 그들을 반겼다.(물론 이것은 반만이 진실일 것이다. 그렇지 않은 세력도 많았을 테니) 우리가 아는 역사 상식으로 볼 때, 엄청나게 많은 승려들과 그들의 종교조직이 국가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신정 정권이 민중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힘들다. 아니 그 반대였을 가능성이 더 크다. 티벳의 독립이 신정 정권의 복원이 아닌 민주주의 가치를 담고 있다고 생각할 만한 어떤 정보도 나는 얻지 못하고 있다(필자가 게을러서 일지도 모르지만). 이것이 티벳 문제가 주는 두번째 불편함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이런 사념 때문에 갖게 되는 결론이 보통의 국가 권력 담지자들이 가지는 현실주의적 권력 균형론과 유사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서방의 대부분의 국가 권력이 앞서서 티벳의 인권을 옹호하고 나아가 티벳 독립의 정당성까지도 지지하는 듯이 보이지만 내심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그들(특히 미국)은 사실 티벳의 인권 문제나, 티벳의 전통문화나, 티벳의 민족 자결권에 아무런 관심도 없다. 그들이 그런 것이 관심을 가질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티벳에서 석유가 나는 것도 아니고 우라늄 광산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들은 오로지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지렛대를 가지기를 바랄 뿐이다. 그럴려면 티벳문제가 심하게 악화되어서도 안되고, 해결되어서도 안된다. 결론적으로 현실주의적 권력 균형론에 귀착되는데 필자가 가지는 사념은 결국 접근방식과 문제의식은 다르지만 동일한 결론으로 귀착된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가장 불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