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3년 전부터 향린교회를 다시 나오면서 나에게 가장 큰 변화가 있다면 책을 읽게 된 것이다.
그 이전의 7-8년은 읽고 싶은 책은 많아 주섬주섬 책을 사기는 했지만
제대로 끝까지 읽은 책은 가물에 콩나듯 하였다.
책을 읽어야 하는 긴박한 필요나, 치열한 문제의식이나, 강열한 욕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향린에 다시 나오면서 이런 저런 이유로 책을 많이 읽게 되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오늘은 <안병무 평전>을 다 읽었다.
이 책을 읽게된 동기는 올봄에 조헌정 목사님과의 성경공부에서 부교재였기 때문이다.
불행이도 <역사와 해석>을 끝내고 시간이 없어서 <안병무 평전>을 함께 읽을 시간이 없었고
그래서 조 목사님은 나중에라도 이 책을 꼭 일독하도록 함께 성경공부를 한 교우들에게 권했다.

또 하나의 이유는 <향린60년사>에 참여하면서
그와 관련된 서적을 하나씩 읽어 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안병무 평전>은 그 첫번째 순번의 책이었다.

젊은 시절부터 시작된 신앙-신학과의 치열한 몸부림.
70-80년대 역사의 소용돌이 속을 헤쳐나가는 이야기.
90년대 이후 새롭게 던지는 '살림'의 화두.

때론 익숙한 이야기가 펼쳐지고, 가까운 인물들이 스쳐가기에 반갑고
때론 전혀 모르던 이야기가 튀어 나오기에 흥미롭게 빠져든다.

감동적인 문학자의 저작이기에 감성적이고 문학적이다.
이렇기에 읽기가 편하고 마음을 움직이는 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다 읽고 난 후 많은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러한 성격의 책(문학적이고 감성적인)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지만
안병무의 평전이 이러한 성격의 책으로 머물러서는 안된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보면 이것이 안병무의 생각인지, 안병무에 대한 다른 신학자의 생각인지,
저자의 생각인지 분명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주석을 쫓아가도 마찬가지다.
편저의 책을 인용하면서 편저자의 이름만 나오고 해당 글의 저자 이름이 안나온다.
문학가이기에 학술적인 치밀함은 부족한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간혹 너무 감성적이고 문학적으로 내용이 전개되어
한 인물에 대한 엄밀한 역사성과 충실한 객관성을 가진 평전으로서는 아쉬움이 많다.

우리나라에는 평전의 토양이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 않다.
몇 년에 걸친 치밀한 연구 성과의 결과로 평전을 쓸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제대로 파고드는 연구가 아니라, 있는 자료를 엮어 만든 '위인전'이 되기 십상이다.

안병무 선생의 평전은 이런 정도에 머물러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누가 언제 어떻게 제대로된 안병무 평전을 낼 수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