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03월26일 ⓒ민중의 소리

강정구 / 동국대교수  unikorea@cvnet.co.kr

 

 

3?12탄핵소추 가결은 3?13-3?20 反탄핵 촛불시위를 가져오면서 탄핵파동으로 불거진 한국민주주의의 위기를 반전의 기회로 삼아 사회개혁과 민주화의 진전으로 나아갈 것으로 전망된다.

 

1945년 해방이후 우리의 현대사와 민주주의가 시련과 고통의 역사이면서 동시에 저항과 희망의 역사임을 다시 한번 반추하면서 우리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이에 바탕한 희망의 역사를 구상해보자.

 

탄핵파동의 기원

 

먼저 대통령 탄핵소추의 기원을 보자.

기원은 단기보다는 장기적 요인에 초점을 맞추면서 인과관계를 분석하는 방법이다. 이번 파동의 기원은 미완의 혁명인 6월항쟁으로 거슬러올라간다. 6월항쟁은 광주의 학살을 통해 정권을 찬탈한 전두환-노태우 일당의 군부독재 제도와 그 핵심 및 하수인들을(주류 정치세력과 수구 신문 등) 인적청산하고, 민주주의(?형식적? + ?실질적?) 이행과 공고화로 나아가려는 민주항쟁이었다. 그러나 이는 미국의 치밀하고도 노골적인 개입과 시민사회의 한계에 부딪쳐 6?29라는 수동혁명으로 귀결되었다.

 

이 결과 항쟁은 겨우 대통령직선제의 쟁취수준에 머물고 말았다. 이후 군부독재 핵심과 하수인들이 3당통합을 통해 김영삼과 김종필 세력을 끌어들여 문민의 탈을 쓴 반개혁적-반민주적-반민족적-반민중적 카르텔을 형성해 우리 사회의 주류로 군림해 왔다. 여기에 경상도 패권주의가 교묘히 결합해 이 주류를 지탱해 주었다.

 

이들 주류가 김대중의 비주류와 노무현이라는 신세대의 주자에 의해 정권을 상실해 위기에 몰리게 되었다.

 

노무현 참여정부의 보수적 개혁노선의 일환으로 시작된 불법 대선자금 수사가 차떼기 정당인 한나라당의 본질을 파헤치면서 총선에서 주류세력이 의회권력마저 상실할 위기에 놓였다. 이 즈음 당내 냉전수구세력이 주도권을 쥐고 있던 민주당 역시 한나라당과 같은 운명으로 기울 것 같은 조짐을 보였다.

 

이에 조순형 대표 등 당권파가 핵심이 되어 반동적 행보를 보이면서 최후의 발악과 같은 탄핵을 선도하고 나서자 두 당은 급격히 일심동체가 되어 버린 것이다. 여기에다 새로운 정치구도에서 소외상태에 놓여 있던 주류언론-주류관료(외교부 항명파동에서 보여 준 바와 같이)-주류사회세력의 부추김과 가세가 의회 다수의 횡포를 통해 국민주권의 발로를 무너뜨리려는 탄핵으로 나타난 것이다.

 

만약 국민적 저항이 표출되지 않았다면 탄핵을 바탕으로 총선연기와 내각제 개헌이라는 수순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세계사적인 탈냉전과 민족사적인 통일시대라는 전환기를 맞아 구태의연한 늙은 냉전수구 세대의 전유물인 냉전-反북한-숭미-반공-지역분열 이데올로기가 새로 등장한 386세대와 인터넷 신세대에 의해 배척되어 그 위력을 상실하기 시작했다. 또 이 젊은 탈냉전세대가 냉전수구의 늙은 세대를 숫자적으로 압도하는 상황에서 대통령직선제를 통해 이 냉전수구세력이 권력을 장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진 구도이다.

 

이러한 구도에서 내각제 개헌은 이 냉전수구세력이 야합을 통해 권력을 장악할 수 있는 좋은 대안이 될 수 있기에 내각제 개헌설이 계속 나돌았던 것이다. 미국 역시 여중생 압살사건을 기해 반미가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는 젊은 탈냉전세대의 힘을 무력화하는데는 내각제가 안성맞춤이라고 볼 것임에 틀림없다.

 

냉전수구세력의 옛 판에서 진보적 개혁세력의 새판 짜기로

 

탄핵정국에 대해 친-반 노무현의 대립구도론, 국론분열론, 언론사주론 등과 민주-반민주대립구도론, 민주화를 위한 진통론 등으로 대조적인 평가가 나돌고 있다.

앞의 논의는 주로 탄핵 주동자인 냉전수구 정치세력과 조-중-동 중심의 주류신문들과 김수환 추기경를 비롯한 소위 원로답지 못한 원로들의 목소리고 뒤의 논의는 反탄핵 주도의 사회운동세력, 합리적 보수세력 및 일반 민중진영의 견해이다.

 

탄핵정국 대립구도는 결코 친노와 반노의 대립구도(전선)는 아니다. 노대통령의 지지도는 겨우 30%에 불과하지만 탄핵반대는 70-75%가 된다. 이는 반노나 중립적이지만 탄핵반대의 대열에 참여한 비율이 전체 반탄핵 진영의 57-60%를 차지하고 있음을 말한다. 반탄핵 진영에는 친노세력보다 오히려 반노 또는 중립 세력의 비중이 높다.

 

정확한 대립구도는 민주 대 반민주 전선이다.

노무현 정부의 정책을 보면 탈권위주의적인 초보적 개혁 수준에 머물 뿐이지 진보적 개혁과는 거리가 멀다. 합리적 보수 수준의 자유주의적 합리화에 불과하다. 오히려 진보적 개혁을 발목 잡는 장애물이다. 미국에 할말을 하겠다면서 실제는 대미 자발적 노예주의 정책을 펼쳤고, 평화통일 지향적이기보다 분단유지 수준에 머물렀고, 노동자 등 민중을 위한 것보다 재벌을 위한 경제정책이 중심이고, 집시법 등에서도 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에 위배되는 반민주적 입법을 하고, 이라크에 파병을 함으로써 집단학살이라는 범죄를 짓는 미국에 공범자로 동참하는 등 그의 反 진보적 개혁 행태는 명백하다.

 

이런 점에서 노무현정부와 열린우리당은 민주노동당 등 진보적 개혁세력과 대립전선에 놓여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진보적 개혁세력과 과거 한나라당 지지세력까지도 반탄핵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물론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사이에 고민하던 호남유권자의 대부분은 단호하게 반탄핵 대열의 주도세력이 되었다. 한나라당의 아성이었던 영남권에서도 반탄핵 대열이 승세를 굳히고 있는 것 같다.

 

이를 보면 국민주권이라는 민주주의의 기초를 의회를 장악한 냉전수구세력들이 무너뜨리는 반민주적인 기도에 저항해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한 골수 냉전수구반동세력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세력이 집결한 셈이다. 이러한 민주-반민주 전선을 친노-반노로 호도 함으로써 대립구도를 희석시켜 냉전수구세력의 본래기도를 관철시키려는 저의가 깔려 있는 것이 앞의 논의이다.

 

비록 이러한 민주-반민주 대립전선이 탄핵정국의 핵심 대립구도이긴 하지만 현재의 우리 사회는 동시에 보수적 개혁에(또는 자유주의적 합리화) 머물러 진보적 개혁에 걸림돌이 되는 참여정부와 이를 뛰어 넘는 진보적 개혁세력과의 대립전선 또한 기본적인 대립전선이다.

 

탄핵정국에 휩싸여 이 기본적 대립전선이 非쟁점화될까 우려되는 바가 크다. 몇 수 앞을 내다보는 장거리의 포석과 통이 큰 포석이 필요하다.

 

국론분열론을 주장하며 안정을 구가하는 조-중-동을 비롯한 수구신문들은 언제나 사회의 변화나 진전의 조짐이 있을 때는 이런 종류의 사회변화 저항적인 언술을 퍼뜨려 왔다. 광주학살 때도 유신독재 때도 국론을 분열시키지 말고 안정을 기해야 한다고 역설해 왔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짓밟은 군부독재의 폭거에 대해서도 반대와 저항의 목소리를 내지 말아야 국론이 분열되지 않고 안정된다는 식의 논리는 학살을 일삼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군부독재에 군소리 없이 따르라는 말과 다름없다.

 

무릇 기득권자는 조그만 변화에도 마치 세상 전체가 파멸로 가는 듯한 과장된 반응을 보이면서 역전을 시도한다. 조그만 변화도 그들의 기득권에 해를 끼칠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의 진전과 변화를 위해서는 기존의 잘못된 제도, 구조, 규범, 그리고 그런 구조 속에서 기득권을 누리던 사람들에 대한 청산 작업이 곧, 인적청산과 물적 청산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지난 6월 민주항쟁에서는 민주화의 긴 여정 가운데 겨우 간접민주주의 또는 형식민주주의의 초보단계인 대통령 직선제 정도만 관철시킨 것에 불과하다.

 

군부독재 하에서 광주학살, 정권찬탈, 삼청교육대, 언론말살, 고문과 탄압 등을 일삼았던 핵심이 아직도 전직 대통령으로 예우 받고 단돈 29만원 밖에 없다고 우기는 파렴치 범 행세를 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5-6공의 하수인 및 동조자들이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두텁게 국회에 포진하고 있다. 이들은 근본적으로 반민주적이다. 그래서 의회쿠데타라는 폭거도 거침없이 감행한 것이다.

 

역사의 진전을 위해서는 단호한 결단이 요구된다.

엉거주춤한 틈에 냉전수구반동세력의 안정화 논리가 끼어 들어 역사진전을 가로막는 과오를 우리는 더 이상 용납해서는 안 된다. 쓸데없는 원로들의 목소리가 끼어 들 틈을 주지 않아야 한다. 이번 의회쿠데타를 계기로 쿠데타세력인 냉전수구집단에 대한 청산작업을 마무리지어야 한다.

 

더 나아가 우리 사회가 이제 합리적 보수세력과 진보적 개혁세력의 대립구도를 띠게 만들어 이들 사이의 경쟁과 견제 및 균형을 취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 일고 있는 합리적 보수세력으로의 지나친 쏠림 현상이 굳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이제 수구냉전세력이 활개치는 옛날 판을 일소하여 마무리짓고, 동시에 진보적 개혁세력이 탄력을 받을 수 있는 구도의 새판 짜기로 나아가야 할 시점이다.

 

어떤 민주주의인가?

 

우리는 탄핵정국을 민주와 반민주의 대립전선으로 보았다. 여기서 민주주의는 무엇인가? 아마 여러 종류의 민주주의를 각기 그리고 있긴 하지만 베버나 슘페터가 말하는 상호경쟁 하에서 국민의 선택에 의해 선출되어 의사결정에서 국민의 의사를 수렴 및 반영하는 통치를 의미할 것이다.

 

물론 이 같은 절차와 형식의 문제를 중심으로 보는(how to rule) 형식-간접 민주주의의 요건은 민주주의에서 기초이고 필요조건이지만 결코 충분조건은 아니다.

 

주로 정치영역에 국한시키는 민주주의 원칙은 경제, 일상생활, 가족 등의 여러 영역으로 확대되어 일상생활의 민주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또 우리의 헌법이 명시하는 국민주권이 간접 및 형식 차원이 아니라 실질적 차원에서 직접적으로 국민이나 인민이 의사결정의 주체가 되고 그들의 보편적 이익이 관철되는 의사 결정구도가 확대되어야 한다. 이는 통치주체의 문제(who rules)로서 국민권력화 또는 인민권력화라고 볼 수 있고 오히려 알의 형식민주주의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이다.

 

이번 의회쿠데타에 의한 탄핵을 주도한 냉전수구세력은 이를 다수결에 의한 민주적 절차를 밟았다고 항변한다.

이 해석은 의회다수 결정이 국민다수 결정의 상위개념이라는 의미로서 국민주권이나 인민권력화를 위배한다. 비록 국민전체의 참여에 의한 의사결정인 직접민주주의가 현실적으로 모든 부문에서 적용되는 데는 한계가 있으므로 간접민주주의가 필수적 요건이라 할지라도 이 둘이 상충될 때는 당연히 국민전체 참여의 의사결정에 따라야 한다.

 

이런 점에서 경미한 문제를 트집 잡아 국민전체참여의 결정에 의해 창출된 통치권력을 정지시킨 탄핵소추 가결은 반민주적 폭거와 의회쿠데타로 규정되어져야 한다. 또 이를 주도한 냉전수구세력은 민주질서 파괴범으로서 단죄를 받아야 한다.

 

과거청산은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문제

 

위기는 기회를 낳을 수 있듯이 우리는 이번 탄핵정국을 한국사회의 민주화와 개혁의 전기로 만들어야 한다. 이에 실패할 경우 친일파-군부독재 청산 실패의 결과처럼 한국민주화와 사회개혁은 장기간 중단된 채 퇴행적 역사행로를 걷게 될 것이다.

 

만약 해방 후 친일파청산이 제대로 되었다면 이회창이 대통령후보로, 박관용이 국회의장으로, 조순형이 민주당대표로, 최돈웅이 다수당의 재정위원장으로서 차떼기의 주동자로, 김용균이 국회법사위간사로 될 수 있었을까? 만약 6월항쟁에서 군부독재세력이 제대로 인적청산 되었다면 최병렬이 대표로, 김기춘이 법사위원장으로, 박근혜가 다수당 새 대표로, 홍사덕이 다수당 총무로, 김용갑-정형근이 국회의원으로 될 수 있었을까?

 

천부당만부당한 이야기다. 제대로 청산되었더라면 이번 의회쿠데타의 진원지이고 주도자인 이들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고 응당 탄핵정국은 없었을 것이다.

 

이같이 친일파 청산과 군부독재 청산의 실패는 결코 과거의 지난 일이 아니다. 지금 당장 탄핵파동을 일으켜 민주화와 사회개혁에 족쇄를 채우려는 현재의 문제다. 다시는 친일파 청산과 군부독재 청산의 실패라는 역사적 과오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역사적 교훈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 그리고 냉전수구의 낡은 판을 완전히 허물고 온전한 새 판을 일구는 촛불을 계속 밝혀야 할 것이다.

2004년03월26일 ⓒ민중의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