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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수 8
따사로운 봄날, 한 늙은 노동자의 죽음을 생각하며…
그의 나이 쉰다섯,
수명이 길어진 요즘 별로 나이가 많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태백, 삼팔선, 사오정, 오륙도, 88만원세대에 이르기까지 이 땅에서 일과 나이의 연관성을 나타내는 가슴 아픈 용어들이 일반화된 시대에 쉰다섯의 그를 자연스럽게 ‘늙은’ 노동자라고 부르게 된다.
성실한 택시노동자의 삶을 살면서,
노동조합 일에도 열성을 냈고,
우리도 많이 갔던 평택, 대추리 투쟁에 평통사 회원으로서 적극 참여했던 그,
민주노동당 당사에 부근에 가면 민노당에서 늦게까지 일하는 이들을 집에까지 태워 드렸던 그였다.
그런 그가 죽었다.
그것도 자신의 몸에 스스로 불을 당겨…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것도,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우리 민중을 덮쳐 오는 한-미자유무역협정의 거대한 파고를 어떻게든 막아 보고자 자신의 몸을 살랐다.
우리네 대다수 평범한 인간은 죽음 앞에서 그리 당당하지 못하다.
아무리 쉰다섯에 딸린 가정이나 아이가 없다 하더라도, 자신에게 닥칠 죽음에 초연할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지금 생각하면 별 것 아닌 일에도 목숨을 걸어야 했던 박정희-전두환의 엄혹한 시절,
지금 그 시절로 되돌아 간다면 다시 선뜻 나설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가난한 이웃의 삶을 걱정하며, 한-미FTA의 파고를 불사른 몸으로 막고자 했던 그 늙은 노동자는,
이 제는 직장생활을 하며, 아이 키우고, 교육비 들이고, 집값 갚고, 부모님 건강 걱정하고, 가끔은 노후도 염려하며, 가족의 울타리에 안주해 있는 생활인의 처지에서, 이 시대를 지배하는 ‘물신’에게 그나마 절하지 않겠다고 아둥바둥 거리는 게 고작인 내 자신에게, 내 자신을 들여다 보라고 말한다.
죽음을 스스로 맞이하는 것,
그것은 분명 극단이다.
그러나 베드로가 그물을 버리고, 가족을 버리고 예수를 따랐듯이,
내게 있는 것을 하나 둘 버리는 것이 진리를 향한 득도의 길이라면,
내 자신을 버리는 소신공양, 십자가의 죽음은 진리의 막다른 목적지인지도 모른다.
작년 늦가을,
모든 게 척박한 이 땅에서
민주화와 통일을 이루겠다고, 민중해방의 새 세상을 열겠다고 나섰던 모든 이들이,
한번쯤 세례를 받았을 전태일의 동상 앞에서 마흔 중반에 들어선 삶을 다시 생각했다.
내게 있는 것을 버리기도 힘들고, 이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있지도 않지만,
“자네 같은 사람이 몇 천 명이 있어야, 몇 십 명이 앞장 서서 나아갈 수 있는 걸세”라고 하셨던 문익환 목사님 말씀을 핑계 삼아, 그 몇 천 명 중 한 사람 몫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미자유무역협정 저지를 위한 여러 활동은,
우리 가운데 있는 작은 자에게 하는 것이 곧 당신께 하는 거라는 성서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
지금 거기서 아파하시는 하느님의 음성을 듣고 연대하는 것,
그들의 초월과 해방을 통해 우리 자신의 구원이 이뤄지는 예수 사건에 참여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아빠 노릇 좀 제대로 하려고 애쓰는 게 아닐까 싶다.
안 그래도 경쟁에 내 몰리는 우리 아이들이 그 속에서 부대끼며 커 가는 이 세상을 제대로 만들어 놓기 위한 활동이니까.
돈이 엄청나게 많아 미국에 이민 가서 살게 아니라면,
먹을 거리, 의료보험, 환경, 문화, 경제, 농촌, 노동, 공공성, 우리 사회의 주된 흐름을,
OECD 국가 중 가장 천박한 미국 방식으로 바꾸겠다는 한-미자유무역협정을 막아내고,
그나마 이어 오고 있는 우리 사회의 공공성을 지키면서 더욱 강화하는 것이,
결국 내 아이를 위한 것이고, 우리 아이들을 위한 것이니 말이다.
개나리, 진달래, 매화, 목련, 라일락…
활짝 핀 꽃들이 눈이 부시는 따사로운 4월 봄 날에
1년 전 4월 15일 허세욱 님의 죽음을 생각하며
25년 전 내 자신을 떠 올린다.
20년 뒤 내 자신을 그려 본다.
그의 나이 쉰다섯,
수명이 길어진 요즘 별로 나이가 많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태백, 삼팔선, 사오정, 오륙도, 88만원세대에 이르기까지 이 땅에서 일과 나이의 연관성을 나타내는 가슴 아픈 용어들이 일반화된 시대에 쉰다섯의 그를 자연스럽게 ‘늙은’ 노동자라고 부르게 된다.
성실한 택시노동자의 삶을 살면서,
노동조합 일에도 열성을 냈고,
우리도 많이 갔던 평택, 대추리 투쟁에 평통사 회원으로서 적극 참여했던 그,
민주노동당 당사에 부근에 가면 민노당에서 늦게까지 일하는 이들을 집에까지 태워 드렸던 그였다.
그런 그가 죽었다.
그것도 자신의 몸에 스스로 불을 당겨…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것도,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우리 민중을 덮쳐 오는 한-미자유무역협정의 거대한 파고를 어떻게든 막아 보고자 자신의 몸을 살랐다.
우리네 대다수 평범한 인간은 죽음 앞에서 그리 당당하지 못하다.
아무리 쉰다섯에 딸린 가정이나 아이가 없다 하더라도, 자신에게 닥칠 죽음에 초연할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지금 생각하면 별 것 아닌 일에도 목숨을 걸어야 했던 박정희-전두환의 엄혹한 시절,
지금 그 시절로 되돌아 간다면 다시 선뜻 나설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가난한 이웃의 삶을 걱정하며, 한-미FTA의 파고를 불사른 몸으로 막고자 했던 그 늙은 노동자는,
이 제는 직장생활을 하며, 아이 키우고, 교육비 들이고, 집값 갚고, 부모님 건강 걱정하고, 가끔은 노후도 염려하며, 가족의 울타리에 안주해 있는 생활인의 처지에서, 이 시대를 지배하는 ‘물신’에게 그나마 절하지 않겠다고 아둥바둥 거리는 게 고작인 내 자신에게, 내 자신을 들여다 보라고 말한다.
죽음을 스스로 맞이하는 것,
그것은 분명 극단이다.
그러나 베드로가 그물을 버리고, 가족을 버리고 예수를 따랐듯이,
내게 있는 것을 하나 둘 버리는 것이 진리를 향한 득도의 길이라면,
내 자신을 버리는 소신공양, 십자가의 죽음은 진리의 막다른 목적지인지도 모른다.
작년 늦가을,
모든 게 척박한 이 땅에서
민주화와 통일을 이루겠다고, 민중해방의 새 세상을 열겠다고 나섰던 모든 이들이,
한번쯤 세례를 받았을 전태일의 동상 앞에서 마흔 중반에 들어선 삶을 다시 생각했다.
내게 있는 것을 버리기도 힘들고, 이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있지도 않지만,
“자네 같은 사람이 몇 천 명이 있어야, 몇 십 명이 앞장 서서 나아갈 수 있는 걸세”라고 하셨던 문익환 목사님 말씀을 핑계 삼아, 그 몇 천 명 중 한 사람 몫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미자유무역협정 저지를 위한 여러 활동은,
우리 가운데 있는 작은 자에게 하는 것이 곧 당신께 하는 거라는 성서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
지금 거기서 아파하시는 하느님의 음성을 듣고 연대하는 것,
그들의 초월과 해방을 통해 우리 자신의 구원이 이뤄지는 예수 사건에 참여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아빠 노릇 좀 제대로 하려고 애쓰는 게 아닐까 싶다.
안 그래도 경쟁에 내 몰리는 우리 아이들이 그 속에서 부대끼며 커 가는 이 세상을 제대로 만들어 놓기 위한 활동이니까.
돈이 엄청나게 많아 미국에 이민 가서 살게 아니라면,
먹을 거리, 의료보험, 환경, 문화, 경제, 농촌, 노동, 공공성, 우리 사회의 주된 흐름을,
OECD 국가 중 가장 천박한 미국 방식으로 바꾸겠다는 한-미자유무역협정을 막아내고,
그나마 이어 오고 있는 우리 사회의 공공성을 지키면서 더욱 강화하는 것이,
결국 내 아이를 위한 것이고, 우리 아이들을 위한 것이니 말이다.
개나리, 진달래, 매화, 목련, 라일락…
활짝 핀 꽃들이 눈이 부시는 따사로운 4월 봄 날에
1년 전 4월 15일 허세욱 님의 죽음을 생각하며
25년 전 내 자신을 떠 올린다.
20년 뒤 내 자신을 그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