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에 한두 번 꺼내 입는 옷이 있다.
아주 추운 날이 아니면 무겁고 거추장스러워 평소엔 장롱 차지도 못하고
창고 비슷한 곳에 덥개 씌워 모셔 놓는 옷이다.

오늘 그 옷을 꺼내 입었다.
아마도 86년 겨울쯤에 마련한 듯 싶으니 십년 훌쩍 넘어
이십 년 가까운 세월을 함께 한 옷이다.
바람이 불어도 바깥 기온이 낮아도 그 옷 안에서 난 무척 따뜻했다.
추위가 겁나지 않았다.

그 옷만큼 묵은, 오래된 모임이 있다.
87년 아이들 예닐곱 살 때 만나 지금 애들 나이가 스물두 셋이 되었으니...
낯설은 세계에 덩그라니 혼자라며 외롭던 우리들이 '특수아동교실'에서 만나
우리가 '혼자' 아닌 '우리들'임을 확인했었다.
아주 작은 방, 참관실이라는 이름의 컴컴한 방에서
유리창밖의 내 아이들 몸짓을 하나하나 바라보며 울고 웃던 우리들.
그 속에서 아이 얘기, 남편 얘기, 아이들 형제자매 이야기,그리고 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래 결국은 고단한 내 삶의 이야기를...

우리는 그 교실을 떠난 후로도 계속 만났다.
아이들 가는 길 다 다르고 또 어른들 여러 곳으로 흩어져 살아도 우리는 ...
모임이 때론 맹숭맹숭하기도 하고 또 때론 시들하기도 했지만
오랫동안 우리를 이어준 힘은 거기엔 아이를 지켜 주고 세상을 지켜 줄
'무엇'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엄마들이 모이고 간혹 형제자매. 아빠들도 함께 한다.
처음엔 하루 운동장을 빌려 쭈볏거리며 작은 운동회로 시작한 가족모임이
이젠 이박삼일도 불사하고 스키장으로 바닷가로 여행하는 발전을 했다.

이번엔 바다에 다녀 왔다.
신문지 床 펴고 시골 김치에 우렁이쌀, 한솥밥 먹으며
항구로 방파제로 밤바다로 뭉쳐 다닌다.
한 일 자로 밀려오는 밤바다. 하얀 파도도 무섭지 않다.
시장통에 둘러 앉아 불타는 조개도 구워 먹고 펄펄 나는 새우도 통째로 맛본다.
다른 누구와도 이런 맛은 볼 수야 있겠지만
어느 누구와도 이렇게 편안한 분위기는 연출하기 어려울 터...

낡고 오래된, 거추장스럽기까지한 외투 속에서 난 새삼스레 따뜻했다.
편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