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는 “민족해방의 날”이 아니다.

김 낙 중

해마다 8월이 오면 우리는 8.15 기념행사를 한다. 국경일로 정해서 하루를 쉬며 기념행사를 하기도 하고 “경축 8.15”라는 대형현수막을 내 걸리기도 한다. 과연 무엇을 경축하고, 기념하고 있는 것일까? 선배들이 했으니 우리들도 하고, 작년에도 했으니 금년에도 하는 단순한 관례행사로 하는 것은 아닐까? 8.15를 우리는 지금까지 흔히 “8.15해방”이라고 불렀고, 역사학자들 조차 1945년 8.15 이후의 역사를 “해방 3년사” “해방30년사” 하며 8.15가 마치 “해방의 날”인 것처럼 불러왔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1945년 8.15에서 61년의 세월이 흘렀고, 이제 다시 62년째의 날을 맞으니 한번쯤 멈춰 서서 숨을 고르고, 냉정한 이성을 가지고 1945년 8.15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때가 되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 천황이 미·영·중·소 등 연합국에 대하여 “무조건 항복을 선포 한다”는 방송을 듣고 우리의 선배들이 흥분해서 그날을 곧 “민족해방의 날”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어느 면에서 당연했다. 왜냐하면 제2차 세계대전 과정에서 미·영·중 연합국 수뇌들은 1943년 12월1일 카이로에 모여 “조선인민들의 노예상태에 유의하여 적당한 시기에 조선을 자유 독립케 할 것을 결정 한다”는 “카이로선언”을 발표했고, 또 이들 3개국 수뇌들이 1945년 7월20일에는 다시 “포츠담선언”을 발표하여 “카이로 선언의 조항들은 이행될 것임을 재확인”했으며, 소련도 1945년 8월 8일 대일본 선정포고를 통해서 ”소비에트 정부는 연합국에 대하여 자국의 임무에 따라 연합국의 제안을 수락하고 1945년 7월 20일의 연합국 선언에 참가하였다고“ 카이로, 포cm담 선언에 대한 동참의사를 분명히 표시했기 때문이다. 즉 우리의 선배들이 순진하게 믿었던 것처럼, 1945년 8.15 이후 연합국들 특히 미국과 소련이 이와 같은 국제적 약속들을 충실히 이행하기만 했다면, 일본이 패전으로 식민지 지배를 끝내고 물러간 조선에는 독립 국가를 수립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으며, 따라서 일본제국이 항복을 선언한 8.15가 우리 민족에게는 “해방의 날”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제국으로부터의 해방이 “조선의 독립”으로 연결될 것을 기대했던 우리 선배들의 믿음은 배신당하고 말았다.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명분으로 38선의 남과 북을 분할 진주한 미군과 소련군은 “노예상태의 조선인민”에게 민족적 독립국가 건설 대신에, 각기 자국의 국익에 맞는 두개 분단국가를 수립하고, 저마다의 무기를 뒤대주며, 세계적 패권 추구의 방편으로 삼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민족은 처참한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렀고, 지금까지도 적대적 분단 상태는 계속되고 있다.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면, 1945년의 8.15는 결코 “민족 해방의 날”이 아니라, 그날은 분명히 미·소에 의한 “민족 분단의 날”이 되고 만 것이 아닌가?

그러나 저마다의 입장에 따라서는 비록 아직도 분단 상태에 있기는 하지만, 1945년의 8.15가 1948년의 국가 수립 즉 대한민국 수립 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의 기초가 되었기 때문에 여전히 “해방의 날”이라 해도 무방하다고 고집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1945년의 8.15는 분명히 일본이 패전으로 조선에서 물러가게 된 날이고, 일본이 물러갔기 때문에 1948년 8월의 대한민국, 그리고 1948년 9월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수립할 수 있게 된 뜻 깊은 날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대한민국 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분단국가임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며, 또 이런 분단국가의 수립이 일제하에서 조선의 독립을 위해서 투쟁한 항일운동 선열들의 뜻을 이룬 민족의 독립일 수는 없다. 목숨을 바쳐가며 투쟁한 항일운동 선열들이 추구한 것은 결코 이런 상태의 실현이 아니고, 우리 Corea 민족이 통일 민족국가를 수립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수천 년 동안 하나의 민족을 이루고 살아온 Corea 민족이 하나의 민족국가를 이루지 못한 채, 두개의 분단국가를 세우고 반세기가 넘도록 골육상잔을 지속하면서 강대한 외세의 눈치나 보고 있어야 하는 이 모습이 어떻게 민족의 독립국가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민족”이라는 것은 긴 세월 속에서 역사적으로 형성된 하나의 운명공동체가 아닌가? 그런데 민족이라는 것을 “역사적으로 형성된 하나의 운명공동체”로 보는 이상, 자기 입장이 대한민국 편이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편이든, 1948년의 분단국가 수립을 두고 “민족국가”의 수립이라고는 말할 수 없으며, 그래서 8.15를 “해방의 날”이라고 부르는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내 몸의 반쪽을 내 맘대로 움직일 수 없는 처지인 사람이, 나머지 반쪽만은 자기 마음대로 쓸 수 있다고 해서 자기는 해방된 자유인이며, 독립된 사람이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비록 내 몸의 반쪽이 자유와 자주를 말할 수 있더라도, 나머지 반쪽이 부자유한 몸이면, 어찌 나를 해방된 몸, 자유의 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지난 반세기 동안 남과 북의 두개 정권은 때로는 무력으로, 또 때로는 기타 모든 방법으로 상대방의 존재를 말살해 없애버리려고 애써 오지 않았는가? 우리는 지금 냉철하게 어제의 자신들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겉으로는 ‘평화적 통일’을 내세웠고, 1972년에는 남북 최고위급 국가원수의 뜻을 받들고 만난 밀사들이 “민족적 대단결”을 주장하며 “7.4공동성명”을 발표했고, 또 1991년에는 남북의 국무총리들이 “남과 북은 서로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 존중한다”며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 (남북기본합의서)조인하고, 1992년에 남북 국가원수가 비준한 그 비준서를 교환하기도 했다. 그리고 또 2000년에는 남과 북의 국가원수들이 직접 만나서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 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며 “6.15골동선언”을 발표하기도 했지만, 그 어느 하나도 제대로 이행실천 되지 못하고, 계속 적대적 군비경쟁 상태를 유지하며 민족통일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이 남북간의 상호불신 때문이든, 그것이 소위 국제정세라는 외세의 압력 때문이든, 남이든 북이든 진정 자신들이 자주적 민족국가임을 자부하며, 8.15를 “민족해방의 날”이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이런 사태는 능동적으로 극복할 수 있어야만 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외세에서 해방된 어떤 민족의 지도자들도 자기 민족 내부의 국민적 통합을 이루어내지 못한 채, 독립된 “민족국가”를 건설한 예는 인류 역사에 없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비록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인류 역사의 과정에서 불행하게 어느 나라의 식민지가 되었던 민족이라도 민족적 통일단결이 있는 경우에는 능히 강대한 외세를 물리치고 통일 독립된 민족국가를 이룩했다. 그렇지만 아무리 강대했던 국가라도 국민들이 분열 상쟁하면 반드시 새로운 외세가 틈새를 배집고 들어와서 그 국가를 망하게 하고, 그 민족을 종속화 했던 것이다.

그렇게 볼 때 1945년의 8.15가 “해방의 날”이 되지 못하고 “민족 분단의 날”이 된 것을 미·소 등 강대 외세의 책임이라고만 생각하는 것은 극히 위험한 일이다. 분명 38선을 획정한 것은 미국이고, 그것을 수용한 것은 소련이었지만, 8.15 직후의 정국에서 우리 민족은 국민통합을 이루지 못하고 스스로 친소좌익과 친미우익으로 분열하여 권력투쟁을 전개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우리는 동족상잔의 전쟁과 반세기가 넘는 분단 대립을 극복하지 못했다.

이 점은 지난날 독일에 의하여 강제로 합방되었던 오스트리아가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 연합국에 의하여 분단 점령되는 처지에 있었다는 점에서 우리와 같은 처지였지만, 우리 민족과는 달리 미·소 냉전과정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분단 10년만인 1955년에 중립국으로 통일독립을 쟁취한 사실에서 많은 교훈을 찾을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21세기를 벌써 7년이나 지나고 있는 지금, 우리 민족은 중대한 민족적 대오각성을 요청받고 있다. 북핵문제를 계기로 미국 부시대통령이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할 용의가 있다고 했지만, 과연 얼마나 미국을 믿어도 좋은 것일까? 지난날 우리 선배들이 민족의 해방과 독립이 강대국들의 “카이로, 포츠담 선언”과 같은 선심 덕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하며, 1945년 8.15를 “행방의 날”이라고 믿고 좋아했던 순진성에서 교훈을 얻고, 우리는 이제 꿈을 깨야만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인류 역사에는 어떤 국가도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것이지, 약소민족, 피억압민족의 해방을 위해 자기들의 이익을 희생하여 자선을 베푸는 “자선국가”는 없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해야만 한다. 오랜 역사 속에서 잘못 길들여진 우리는 지난날 가졌던 외세 의존적 심리를 철저히 회개 반성하고, 스스로 자신들의 사적 또는 정파적 이익을 초월하고, 우리 민족 내부의 지역적 계층적 차이를 넘어, 민족 통합의 길을 열심히 찾아야만 한다.

그러자면, 우리는 우선 8.15를 해방이라고 호칭하는 일부터 고쳐야 한다. 1945년 8.15는 “해방의 날”이 아니라, 분명히 미·소에 의한 “남북분단의 날”이고, 또 친미우익과 친소좌익에 의한 “민족 분열의 날”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8.15를 “분단의 날” “분열의 날”로 재인식하는데서 출발해야만, 우리 민족이 참으로 통일 독립된 민족국가를 이룩하는 평화통일의 길을 열어 갈 수 있을 것임을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