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민족통일의 정책방향

김 낙 중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국회의원-시민단체협의회 고문)

(1) 머리 말씀

우리 민족은 지금 남북으로 분단된 채 21세기의 문턱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런데 21세기는 지구촌 모든 민족, 모든 나라들을 빠른 속도로 하나의 세계로 통합해가고 있습니다. 교통 통신 수단의 급속한 발달은 민족과 국가들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지구촌 모든 사람들이 모두 함께 더불어 살 것을 강요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수천 년 피를 나누며 함께 더불어 살아오던 한 민족이 반세기가 지나도록 남과 북으로 갈리어 반목 상쟁하는 모습을 언제까지나 계속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나는 21세기 세계사는 분명히 우리 민족에게 하나로 통일되어야만 하고, 그것을 또한 평화적으로 이룩해야만 하는 중대한 사명을 안겨주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글에서 우리 민족이 평화통일을 어떤 방향에서 어떻게 이룩할 수 있을 것인지를 함께 찾아보자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는 먼저 인류의 역사가 그 동안 어떻게 전개되어 왔으며, 지금 21세기를 시작하는 세계사는 드디어 어디까지 와서, 어떤 문제를 갖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알아야만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은 지난 수천 년 세계사가 진행되는 동안, 그 안에서 어떻게 살아왔으며, 또 앞으로 이 민족이 어떻게 해야만 분단을 극복하고,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 세계사 속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니고, 평화통일을 이룩해서 살아갈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을 여러분과 함께 차례로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2) 세계사와 3대문화권의 형성 발전과 문명사의 한계

우리가 세계사 책을 읽으면, 이 지구촌에는 여러 곳에 문명의 발상지들이 있었습니다. 동쪽에서는 황하와 양자강 강변에서, 서쪽에서는 나일 강변과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변에서 남방에서는 갠지스 인더스 강변에서 그리고 이집트, 바빌로니아, 시리아 등지에서 발생한 문화가 그리스와 로마로 흘러가서 이루어진 지중해문화 등 인류 문화의 발상지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밖에도 세계사적 역할을 담당하지는 못했으나 잉카문명이나 마야문명과 같이 중남미 대륙에서 발생했던 문명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계사적 역할을 담당했던 세계 주요 문화는 크게 분류하면 인도문화권, 중국문화권 그리고 지중해문화권 즉 서양문화권의 3대문화권이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세계문화는 지중해문화(즉 서양문화)에 의하여 지배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지구촌은 서양문화권에 의해서 거의 단일화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세계사의 문제는 지금까지 지구촌의 인류가 무한한 욕망 추구를 위해 발달시켜온 인류문명사가 과연 이대로 계속 진행해도 좋을 것인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동안 수천 년간 진행된 인류 문명사는 크게 보면 자연을 정복대상으로 삼는 “도구의 발달”이라는 하나의 수레바퀴와 또 이웃 인간집단들을 정복대상으로 삼는 “무기의 발달”이라는 또 하나의 수레바퀴라는 두 바퀴로 인간의 무한한 욕망을 추구하며 굴러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현대를 지배하고 있는 서양문화는 인류 역사상의 3대문화권 중에서도, 과학기술의 발달이라고 불리는, 도구의 발달, 무기의 발달을 추진하는 문명사의 역할을 가장 급속하고 충실하게 담당해 온 문화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복대상으로만 생각했던 자연은, 인간들이 도구를 가지고 진행하는 자연 정복사업 즉 개발사업에 대해서 반기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자연환경의 오염, 자연자원의 고갈, 생태계의 파괴로 인한 기상이변 현상의 속출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고 문명발달의 또 하나의 수레바퀴인 이웃 인간집단을 정복하기 위한 “무기의 발달” 역시 한계에 도달하였습니다. 인류문명은 다른 인간집단을 정복하기 위해서 부단히 무기를 개발해왔으며, 그 결과는 드디어 대량살상이 가능한 생화학무기와 핵무기를 개발해내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지난날의 인류 문명사에서는 보다 우수한 무기를 가진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원리가 지배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비슷한 두뇌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또 사람의 지식은 다른 사람에게 쉽게 전파될 수 있다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수한 무기를 가지고 강자의 역할을 담당한다는 것은 결코 영구히 독점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무기에 의한 정복대상자가 그들 자신도 그 신예무기를 가진다는 것은 시간문제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웃 사람에 대한 정복수단으로서의 무기란 사람을 죽이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사람을 죽이는데 정도(正道)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무기를 가지고 정면으로 싸워 죽이는 것은 정당하고, 힘이 없거나 좋은 무기를 갖지 못한 약자가 밤중에 몰래 숨어 들어가서 뒤통수를 때려서 죽이는 것은 정당성이 없다고 판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아랍인들의 자살 폭탄테러나 9.11테러가 그런 예이며, 또 북한이 핵무기로 세계 최강의 미국 앞에서 버티기를 하는 것도 모두 그런 것입니다. 모두 강자에 대한 약자의 대항 방법일 따름입니다.
그런데 21세기의 세계사는 지금 인류가 자연을 정복대상으로 삼을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모든 동식물들이 함께 더불어 살 것을 요구하고 있듯이, 또 다른 인간 집단을 정복대상으로 해서 약육강식을 진행할 것이 아니라, 강한 자와 약한 자가 모두 평화적으로 공존 공영하며함께 더불어 사는 지구촌의 창조를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세계사 속의 우리 민족의 역사

그런데 우리 Corea 민족이란 세계에서 가장 큰 육지인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큰 바다인 태평양의 서쪽 끝인 Corea 반도에서 수천 년 동안 삶을 영위하면서 이루어진 작은 민족입니다. 그러면서도 Corea 민족은 세계3대문화권에서 형성된 정신적 문화적 유산들을 그 누구보다도 충실하게 소화, 흡수하면서 이 땅에서 수천 년을 살아온 문화민족이기도합니다.
돌이켜보십시다. 우리가 단군 조선왕국시대에는 “홍익인간”의 이념으로 나라를 세우고 살았으나, 대륙에 세워진 “한”제국의 침략에 의해서 무너졌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삼국시대와 신라 및 발해의 남북조시대에 이은 고려왕국을 세우고 인도문화의 에센스인 불교문화를 가지고 몇 백 년을 조용히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후 이씨조선왕국 시대에는 중국문화의 에센스인 유교, 도교문화를 가지고 또 몇 백 년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수천 년 동안 이 땅에 살면서 우리가 이웃 민족을 침략 정복한 일은 한번도 없이 평화를 사랑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19세기 이후의 개화기에는 열심히 서양문화를 도입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함석헌 선생님은 우리나라를 “세계문화의 쓰레기통”이라는 말씀까지 하셨을 정도로 우리는 세계문하를 골고루 흡수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난날의 세계사는 “약육강식”의 역사였으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 민족은 주변에 강대국이 세워질 때마다 그들의 침략을 받고 많은 고난을 겪으며 살 수밖에 없었던 작은 문화민족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대체로 19세기 까지는 한, 당, 원, 명, 청 등 대륙에 성립한 제국들의 영향을 피할 수가 없어 조용히 순응하며 살아왔습니다. 중국대륙을 지배하는 대륙세력의 제국들에 비하면 우리 민족이 세운 나라들은 너무도 작은 나라였기 때문에 “약육강식”의 역사 속에서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 선조들은 자신들의 문화적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 피나는 노력을 하면서, 이 땅을 지키고 살아 왔습니다.
그러다 19세기 말경부터는 서세동점(西勢東漸)하는 서양문명의 물결이 태평양을 건너 밀려오면서부터, 우리 민족의 운명이 해양세력에 의해서 결정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해양세력인 일본은 같은 해양세력인 영국과 영·일동맹을 맺고, 그것을 배경으로 러·일전쟁과 청·일전쟁을 치렀고, 태평양 건너 미국과 맺은 “테푸트·가쓰라 밀약”을 배경으로 조선왕국을 병탄하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일제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은 1945년 일본이 패전한 후에도 해양세력인 미국에 의하여 남북 분단국가가 되었고, 남과 북이 동족상잔을 하며 반세기를 살아온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우리 Corea 민족이 오랜 동안 겪은 고난은 결코 무의미한 것이 아니며, 또 우리가 고난의 의미를 깨닫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은 민족도 아니라고 확신합니다. 우리 Corea 민족은 약육강식하는 몇 천 년의 문명사 속에서 세계 3대문화권의 문화들을 골고루 흡수하면서, 슬기롭게 자기를 지키며 살아온 문화민족입니다. 특히 우리는 1905년 을사조약으로 나라를 잃고 100여년 동안 계속 아픔의 세월을 살았으며, 1945년 남북으로 분단되어 60여 년간 분단의 세월, 그리고 비극적인 6.25전쟁 이래 동족상쟁하며 50여 년간 쓰라린 세월을 살아왔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약육강식”이 아니라 “화해상생”만이 우리의 살길임을 깊이 깨닫게 되었으며, 그리하여 이제 세계사 속에서 우리는 강대국과 약소국, 만방이 “화해상생”하며 “공존공영” 하는 “홍익인간”의 시대를 창조하는데 선구적 역할을 해야만 할 세계사적 사명을 갖게 되었다고 믿습니다. 우리 Corea 민족은 수 천 년의 역사 속에서 약육강식은 결코 인류가 갈 길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뼈아프게 깨닫고 있는 평화 애호적 문화민족이기 때문입니다.

(4) 현재 우리 민족의 처지와 남북관계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잠시 오늘날의 우리 자신을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민족의 마지막 왕조인 조선왕국이 어떻게 망국의 비운을 맞게 되었습니까? 19세기 말엽 전국 도처에서 농민들의 민란이 일어났고, 1894년에 동학 농민봉기가 일어나자 왕실 양반들은 농민들의 아픔이 무엇 때문인지는 살피려하지 않고, 당시의 강대국인 청국의 군대를 불러들여 진압하려 하였습니다. 이에 일본은 청군의 조선 진출을 구실로 조선에 출병하여 청일전쟁으로 청군을 물러가게 한 다음, 조선 농민군을 무력으로 진압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는 강대국 미국과 “태푸트·가츠라밀약”을 맺어 조선 병탄을 실현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망국 50년만인 1945년 8월에 우리 민족은 일본제국이 패전으로 물러가게 되어 그들의 굴레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런데 국토는 강대국 미국의 의사에 의하여 38선으로 분단되었고, 소위 민족의 지도자들은 친미 우익과 친소 좌익으로 분열되어 강대국 힘에 의존하여 권력 싸움을 벌였습니다. 그 결과로 남쪽에서는 미국의 힘에 의지하여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세웠고, 북쪽에서는 소련의 힘에 의지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국가를 세운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북과 남의 국가 권력은 각기 소련 탱크의 힘으로, 또는 미국 비행기의 힘으로 “한 줌도 안 되는” 상대방 지배층을 타도하고, 민족통일을 이룩하겠다며 무력통일정책을 추구했습니다. 결국 1950년 6.25에서-1953년 7.27에 이르는 만3년여 간의 치열한 동족상잔의 전쟁을 감행한 것입니다. 그런데 역사는 남과 북에서 수백만의 백성들이 죽고, 전 국토가 잿더미가 되는 상처만 남긴 채, 그 어느 쪽에도 승리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 후 1945년에서 62년, 그리고 1953년 정전협정 성립에서 54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 백성은 그 동안 동족간의 좌우 분열을 강대국 무기의 힘으로 해결하고, 통일을 이룩하려고 한 것이 잘못이었음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휴전반대 북진통일을 주장하던 이승만 대통령은 자기 의사와는 반대로 미국에 의하여 정전협정이 성립하자 정전협정에 따라 휴전 감시임무를 맡고 와 있던 “중립국감독위원회”의 활동을 무력화할 목적으로 청년 단체들과 학생들을 동원해서 첵코, 폴란드 등 북측이 지명한 중립국감독위원들의 축출을 위한 가두시위운동을 대대적으로 벌렸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정전협정 제2조 13항 ㄹ목에는 “한반도에는 외부로부터 일체의 무기 도입이 금지”되어 있었고, 오직 기존하는 무기의 갱신 교체만 가능하며, 그 교체를 위한 무기 도입은 중립국감독위원의 입회 감시 하에서만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하루 속히 미국 신예무기를 도입하여 국방군의 군사력을 강화해야만 북진통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중립국감독위원회의 활동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중립국감독위원들은 많은 청년들이 자기들을 쫓아다니며 “물러가라”고 가두시위를 하는 상황에서 신분의 위협을 느끼고 판문점으로 철수했으며, 그 기능은 마비되었습니다. 그리고 북측이 정전위원회를 통해 이에 항의하자 유엔군 사령관은 1957년6월21일자로 일방적으로 휴전협정 제2조 13항 ㄹ목의 폐기를 선언했습니다. 그리하여 1956년부터 꼭 50년 동안 남과 북은 치열한 적대적 군비경쟁의 시대로 들어갔습니다. 따라서 2007년의 오늘, 한반도의 평화와 우리 모두의 생존을 위협하는 “북의 핵, 미사일 사태”라는 것은 1957년 이래 지난 반세기 동안 남북이 추구한 적대적 군비경쟁의 결과적 산물임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남한은 그동안 한미동맹을 강화하며, 미국 핵우산의 엄호 하에서 부단히 미국의 신예무기를 도입하는데 열중했습니다. 이에 반하여 한·미동맹에 맞설 만큼 탄탄한 조·중동맹 또는 조·소동맹 체제를 갖지 못한 북조선은 1970년대까지는 “전국토요새화, 전인민무장화”로 한·미동맹하의 남측과 미국에 대응하려고 애쓰면서, 미국을 향해 부단히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어 전쟁상태를 종결하자고 외쳐댔지만 반응이 없었습니다. 전쟁으로 폐허화한 2000만의 북조선 사람들로서는 한미동맹 하에서 핵으로 무장한 미군과 또 핵우산의 엄호를 받는 한국군을 상대로 적대적 군비경쟁을 계속한다는 것은 힘겨운 일이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1980년대 들어 북조선은 제조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 생화학무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드디어 1990년대와 2000년대에는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에 전력을 다한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북조선은 핵무기와 미사일을 보유한 국가로서 미국을 상대로 벼랑 끝 외교전쟁을 진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한은 1950년 6월 북조선이 한줌도 안 되는 남한 지배층을 타도하고 남한 인민을 해방하려 했던 것과 똑같이 “한줌도 안 되는” 북조선 지도층을 타도하고 북조선 주민을 해방하겠다면서, 힘센 미국의 눈치만 살피고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실정인 것입니다.
그렇지만 망국 100여년과 분단 60여년 그리고 휴전협정이 성립한지도 50여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 백성들은 상대방을 타도하기 위해 보다 좋은 무기를 가지려고 안간힘 쓰며 남북간 적대적 군비경쟁을 추구한 사실에 대해서, 점차로 그것이 잘못이었음을 깨달아 가게 되었습니다. 조선왕국 말년 농민들의 민란을 강대국 무기의 힘으로 해결하려한 것이 망국을 가져왔고, 8.15후 동포간의 좌우대립을 강대국 무기의 힘으로 해결하려한 것이 동족상잔의 전쟁을 초래했으며, 무기의 힘으로 분단을 해결하려한 군비경쟁의 추구가 분단 고착화만 가져왔으며, 드디어는 민족공멸의 파국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1992년 2월19일 각각 국가원수들이 직접 비준 서명한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이라는 문서를 교환하여 발효의 절차를 밟았습니다. 그리고 또 2000년 6.15에는 남과 북의 국가원수들이 직접 만나서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해서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약속하고, 전 민족과 세계에 앞에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남북 쌍방 당국간 화해의 약속들은 그 동안 마치 휴지 쪽 같이 되어 버린 채, 남과 북에 존재하는 두개 정부는 세계적으로 최대의 군사 강국인 미국 정치인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위치에 놓이고 말았습니다. 1994년에 클린턴 대통령 시절에 만들어 놓은 “제네바 북·미 핵합의”와 2000년의 워싱턴 “북·미 공동선언”으로 진전되고 있던 북·미관계가 부시 대통령의 출현으로 정지상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부시 2세가 2002년 미국 대통령에 당선 되자, 크린턴 정부가 북·미간에 이루어 놓은 것을 모두 무시하는 정책을 취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소위 부시대통령의 A.B.C (anything but Clinton)정책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는 이라크, 북한, 이란과 같은 “악의 축과는 아무런 대화가 필요 없다.”고 주장하며, 낡은 시대의 수단인 힘에 의한 타도정책을 고집했습니다. 더구나 우리 민족 자신도 아직 구시대적 사고를 채 벗어나지 못하고 힘을 믿으며 상대방에 대한 타도의 의사를 깨끗이 청산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앞에 말씀드린바와 같이 이 땅에는 1948년 남과 북에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두개의 분단국가를 수립하면서 서로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헌법을 만들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엄연히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규정하였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헌법에는 역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전체 조선인민을 대표한다”고 규정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헌법 규정들은 “남북기본합의서”나 “6.15공동선언”과 상치하는 것이며, 또 같은 국제연합 회원국으로서 국제연합의 목적을 규정한 헌장 제2조의 규정과도 상치하는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휴전선 이북의 영토를 사실상 관할하고 있지 못한 대한민국 그리고 사실상 휴전선 이남의 백성들을 대표할 수 없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하국은 현실과 불합치 하는 헌법 규정들에 대해서 남과 북은 그것을 개정하든지, 아니면 최소한 그 해석을 변경하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남과 북은 아직도 상호인정 존중하는 관계를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부시대통령의 일방주의적 타도 추구 정책을 만났었고, 이제는 다시 미국 부시 대통령이 태도를 바꾸어 “9.19 핵합의”와 “2.13 핵합의”를 찬성하는 정책이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부시대통령은 드디어 김 정일 위원장과 평화협정에 서명할 의사가 있다는 말도 나오게 된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과연 부시 대통령의 대북 정책이 “9.19 핵합의”나 “2.13 핵합의”에 대해서 얼마나 성실하게 실천할 의지가 있는 것인지는 아직도 알 수 없습니다. 만약 부시대통령이 이라크전의 실패 때문이든, 국방비 팽창으로 인한 미국 재정적자의 어려움이나 미국국민의 여론 때문이든, 대북적대시정책을 끝내고, 그의 임기 중에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정책적 결단을 내려서 “9.19핵합의”나 “2.13 핵합의”를 성실하게 실천하게 된다면, 우리로서는 더 이상 고맙고 반가울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국제정치를 약육강식의 논리로 이해하고, 일방적 힘의 정책을 추구하던 미국의 정치지도자가 앞으로는 지구촌에서 약자와 강자가 함께 더불어 사는 “화해상생”의 정책을 진심으로 추구하게 될 것인지는 아직 낙관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자신들의 운명에 대해서 그 누구의 힘을 믿고 의지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기 위한 또 21세기의 세계사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통일정책 방향을 찾아 나가야만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5) 민족통일의 정책방향

그러나 문제는 아직도 우리의 정치지도자들은 강대국 정치인의 의사에 의해서 민족의 운명이 좌우되는 처지에 놓여 있음을 보면서도, 우리는 결연한 자세로 화해상생의 길로 가겠다는 의사를 표시하지 못한 채 불안해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관연 Corean들은 21세기에도 세계최강인 미국 정치인들 눈치만 잘 살펴보고 있으면 저절로 자기의 살길이 생긴다는 믿고 있어도 좋을까요? 우리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21세기 세계사의 새 시대를 맞으면서, 그 어느 강대국의 힘을 믿고 의지하는 사대주의를 이제는 청산해야만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인류는 도구의 힘, 무력의 힘으로 자연과 이웃 사람들을 정복의 대상으로 삼던 약육강식의 시대를 끝내야만 한다는 세계사적 요구 앞에 놓여있기 때문입니다. 새 시대를 열어야할 21세기를 시작하면서 우리는 민족의 운명을 언제까지나 강대국 패권정치의 종속변수로 남겨둘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제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운명의 주인이 되어야만 합니다.
“3.1독립선언서”에서 우리의 선열들은 “위력의 시대가 거하고, 도의의 시대가 래하도다”라고 선언하였습니다. 우리 Corea민족은 약육강식의 낡은 시대를 청산하고, 약자와 강자가 평화로이 함께 더불어 사는 “화해상생” “홍익인간” “대동세상”을 만드는 일에 그 누구보다도 앞장서 나가야 할 세계사적 사명을 갖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러자면 민족의 통일문제에 관해서는 우리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확고한 통일정책 방향을 견지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민족통일문제에 관해서는 정파적 이익을 초월하여, 남과 북이 서로 상대방에 대해 타도를 추구하던 종래의 정책을 깨끗이 청산하고, 화해상생의 입장에 서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해야만 합니다. 정파적 이익 때문에 계속 타도 추구의 입장을 고수하는 것은 민족에 대한 배신이며, 역사적 교훈에 대한 반역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따라서 여와 야, 남과 북을 막론하고 1992년 노태우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 시절에 이룩한 “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화공동선언”을 존중 준수하고,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 사이에 이룩한 “남북 6.15공동선언”을 성실하게 실천할 의사를 분명히 재천명하고, 피차 상대방의 법적 실체를 인정 존중하는 입장에서 출발해야만 합니다.

셋째, 그러기 위해서는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여야 정당을 초월하여 위의 원칙들을 지지하는 정치인들의 서명을 받아 이를 전 국민 앞에 공표하고, 이 합의에 기초하여 제2차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토록 하여 남북정상회담에서 “한반도평화선언”을 채택하여야 한다.

넷째, 이 “한반도평화선언”에서는 지금까지 남북 쌍방 당국간에 이루어진 “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화공동선언” 그리고 “6.15남북공동선언” 등을 확실하게 이행실천하기 위한 법적조치들을 강구하기로 재확인하고, 남과 북은 “남북기본합의서”제2장에 규정된 바와 같이 어떤 경우에도 서로 상대방에 대한 무력 사용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표현해야만 합니다.

다섯째, 그리고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이루어진 “한반도평화선언”에 기초하여 남측에서는 여야 합의로 “남북기본합의서”를 국회에서 비준 동의하여 그 법적 기속력을 부여하는 절차를 밟아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남과 북은 비록 국가와 국가 사이는 아니지만, 서로의 법적 실체성을 인정 존중하면서, “6.15공동선언”에서 약속한대로 국가연합 내지는 연방제적 방법으로 점진적 평화통일을 추구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섯째, 남과 북이 가지는 이념과 사상, 정치, 경제 제도의 차이를 해소하는 문제는 어디까지나 당해지역 주민들의 자주적 자유의사에 기초하여 점진적으로 변화 발전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하며, 또 점진적 자율적 변화를 토대로 하나의 민족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한 조치들을 적극 강구하도록 해야만 합니다.

일곱째, 이상과 같이 남북이 화해상생의 길을 열어 갈 때, 우리는 주변강대국들이 동북아시아에서 공동안보체제를 이룩하는 것이, 비단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에 토대가 될 뿐 아니라, 21세기 세계평화의 길이며, 그것이 지구촌에 홍익인간, 대동세상을 만들어 인류의 평화와 안전을 확보하는 길임을 주변 국가들에 함께 설득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합니다. 주변 강대국들 안에는 지난 세기의 관성 때문에, 그리고 자신들의 군수수요와 이익 때문에 일방적인 힘의 논리를 펴며, 분단 고착화와 긴장의 지속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변 열강 국가들 안에도 21세기의 세계사적 요구인 “화해상생”과 “평화공존”의 대동세세상 창조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날로 많아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 민족이 정성을 다해 합께 노력하면 그것이 반드시 21세기의 세계사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