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大 신은희 교수가 들려준 ‘요즘 북한 대학생’

[신동아 2007-02-01 00:00]

2003년부터 4년째 북한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세계종교문화를 강의하고 있는 신은희(38·美 아이오와 심슨대 종교철학부) 교수. 그의 국적은 캐나다이고, 거주지는 미국이다. 따라서 북한에 가는 것도, 북한에 대해 말하는 것도 자유로울 텐데 그는 “조심스럽다”고 말한다. 강연이라도 갈라치면 국정원 직원이 따라와 앉아있다가 강연 내용을 기록해 가기도 한다는 것이다. 북한 이야기는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금기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 또 하나, 그는 자신의 발언이 의도와 달리 북과 남 양쪽에서 이용당할 위험이 있다는 걸 알기에 “더 조심스럽다”고 한다.

그가 북한을 처음 방문한 것은 2003년 3월이다. 봄방학이 시작되자마자 새벽 첫 비행기를 타고 평양으로 향했다. 어머니 고향이 함경북도 북청이라는 것말고는 북한과 어떤 인연도 없었다. 방북은 순전히 학문적 열정에서 비롯됐다. 로스앤젤레스의 고려서점에서 구입한 북한 관련 서적을 읽으면서, 그리고 북측 인사들을 만나면서 생긴 북한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처음으로, 그것도 여자 혼자서 가는 길이었지만 그는 두렵기는커녕 오히려 가슴이 설레었다고 한다. 그 뒤 매년 봄·가을마다 정기적으로 방문해 북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세계 종교문화에 대한 특강을 하고 있다.

‘주체사상가’ 예수

“평양을 방문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북한 사회는 다른 종교의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한다는 거예요. 특히 기독교에 대한 필요성을 거의 느끼지 못하죠. 북한에도 봉수교회나 칠골교회 등이 있지만, 북에서 교회는 일종의 문화선전을 담당하고 복지물자를 조달하는 기관일 뿐이에요. 북한 주민들에게는 이미 주체사상이 가장 감동적인 영성이요 종교이며 신앙이 되어버린 겁니다.”

그는 기독교인에다 미국의 대학에서 종교철학을 가르치고 있음에도 파격적인 주장을 폈다. “예수도 주체사상가였다”며 기독교와 주체사상의 만남을 시도한 것이다. 그에 따르면, 기독교가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 고유한 종교문화라면, 주체사상은 ‘수령 아버지’를 믿는 북한의 고유한 종교문화라고 한다. 게다가 기독교의 절대적 배타성에 비하면 주체사상의 유일사상 체계는 상대적으로 정도가 덜한 편이라고까지 말한다.

겉으로 보이는 북한 사회는 분명 우리에게 커다란 문화적 이질감을 갖게 한다. 그러나 그는 편견 없이 북한의 주체사상을 바라보면 이성이나 선악의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기 어려운 ‘종교적 영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주체사상이 정치 이념을 넘어 하나의 국가종교로 정착되면서 창시자인 김일성 주석의 신격화가 진행됐어요. 종교학적 관점에서 그것은 예수의 신격화 과정과 흡사한 종교 현상일 뿐입니다. 따라서 기독교의 예수 신격화는 정상이지만 주체사상의 김일성 신격화는 비정상이라는 선입관은 재고할 필요가 있어요.”

또한 그는 “종교성(신격화)이란 늘 열광적인 추종자를 동반하게 마련”이라고 했다. 따라서 2004년 용천 폭발사고 때 김일성의 초상화를 꺼내오다 불길 속에서 숨진 여교사를 ‘이상하다’고만 할 수 없다고 한다. 아프리카 오지에서 복음을 전파하다가 죽어간 기독교인이나 그 여교사나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또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작고했을 때 수많은 사람이 모여들어 애도한 것이나, 김일성이 사망했을 때 많은 군중이 울부짖으며 애도한 것도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전도사와 치료사

“남한에서는 북의 정권이 유지되는 것이 세뇌교육 때문이라고 비판합니다. 하지만 사실 어느 정도의 세뇌는 누구나 경험하며 살죠. 종교인도 종교적 세뇌 과정을 거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돈과 물질에 세뇌되어 살아가고 있잖아요.”

주체사상으로 무장된 북한 사회를 고유한 민족종교를 신봉하는 ‘또 다른 종교사회’로 해석하는 그의 관점은, 남한 사람들에게 문화적 다양성이란 관점에서 북한을 ‘이상한’ 사회가 아니라 ‘다른’ 사회로 바라보게 해준다. 그는 “일단 공평하게 바라보자”고 주장한다. 다원적으로 바라보고 대화하면서 비판은 그 안에서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조건 북을 ‘제거의 대상’으로, 주체문화를 ‘위반의 문화’로 보지 말고 북한 사회를 좀더 깊이 들여다볼 것을 권한다.

보수진영에서는 이런 그에게 ‘주체사상 전도사’라는 별명을 붙였다. 이에 대해 그는 “한국은 전반적으로 사고의 다양성이 부족하다”며 “인식의 폭을 넓히기 위해 문화적 접근을 하는 것이지, 좌경친북 차원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실제로 그는 북한 주민들의 알 권리 제한, 순혈주의, 사고의 유연성 부족 등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비판한다. 하지만 그 비판은 무조건적 비난이 아니라 ‘해결해 보자’는 차원의 비판이다. 그는 “‘죽어라’ 하는 식의 증오 어린 비판은 안 된다”고 말한다. 누군가 그를 두고, 분단이 만들어낸 외눈박이 시각을 평화적 담론으로 교정해주는 ‘치료사’라고 했다. 과연 그는 ‘주체사상 전도사’일까, ‘평화 치료사’일까.

불꽃 튀는 치맛바람

“참 이상한 것이, 지극히 평범한 경험도 북에서 하면 특이하고 이색적으로 느껴져요. 같은 껌인데도 북에서 만든 껌은 더 오래 씹어보고 싶어요. 아마도 오랫동안 쌓인 북에 대한 거리감과 낯설음 때문일 거예요. 세월이 만들어놓은 이 거리감은 결국 세월로 치유해야 할 것 같아요. 지금은 그저 열린 마음으로 북한의 많은 것을 느끼고 싶을 뿐이죠.”

4년 동안의 북한 체험을 통해 그는 “사람 사는 모습은 다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사상과 이념이 아무리 달라도 그것은 그저 사상이고 이념일 뿐이라는 것.

“흔히 북한에선 모든 것이 기계적이어서 인간미를 전연 느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것도 선입관일 뿐이죠. 그들도 우리처럼 극히 정상적이고 일상적인 삶을 이어가고 있어요. 20%쯤을 제외한 80%는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아요.”

그가 평양에서 보낸 첫날은 ‘국제 부녀절’이란 공휴일이었다. 우리의 ‘여성의 날’과 같은 것으로 여성이 모든 노동에서 자유로워지고 남성은 여성을 위해 철저히 봉사해야 하는 날이다.

그는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일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여성에 대한 성차별이 없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마중 나온 영접국 여직원에게 “북한에는 성차별이 없지 않냐”고 물었더니 “아휴, 있습네다. 조국은 봉건이 아주 네다”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4년 동안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강의한 신 교수는 “우리의 선입관과 달리 북한 대학생들이 밝고 쾌활하다”고 전했다.

그 여성에 따르면, 사회에서는 여성차별이 없는 편이지만 집안에 들어오는 순간 상황은 달라진다고 한다. 똑같이 사회봉사하고 들어오는데 남편은 집안일을 전혀 안 한다는 것이다.

“옆에서 그 말을 듣고 있던 남자 직원이 자신은 아내 봉사를 아주 열심히 한다고 자랑하더라고요. 그렇게 집안일로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우리네 사는 모습과 똑같았어요. 내심 그들이 북의 좋은 점만 말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마치 친한 친구라도 만난 듯 진솔하게 털어놓는 게 인간적으로 보였어요.

그들은 입으로는 미국을 욕하면서도 미제 물건을 아주 좋아해요. 북한의 치맛바람도 남쪽 못지않죠. 자식을 김일성종합대학에 보내기 위해 돈이 없으면 현물을 바쳐서라도 과외공부를 시킬 정도입니다. 끼니를 제대로 못 이을지언정 자식이 원하면 400∼500달러짜리 영어 전자수첩도 흔쾌히 사주고요.”

‘얄미운 년’

평양 모란봉 산길은 청춘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데이트코스로 유명한 모양이다. 그는 커다란 수목이 만들어낸 그늘 속에서 젊은 남녀가 진한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간간이 목격하기도 했다.
“전기 사정이 열악해 평양의 밤은 아주 어두워요. 북한 청춘남녀들의 사랑 고백이 유난히 야하게 느껴지는 것은 평양의 밤이 어둡기 때문인지, 북에 대한 여전한 제 선입관 때문인지 모르겠어요.”

북한 사회가 외형적으로 주체사상이나 선군(先軍)정치의 기풍으로 딱딱하고 여유 없어 보이는 듯해도 실제 북한 사람들의 일상은 인간적이고 유머가 가득하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특히 정치적인 토론이 남쪽에 비해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어서인지 북한에는 진한 육담(肉談)이 발달해 있다고 한다.

“김일성종합대학의 남자 교원 한 분이 친근하게 제 팔짱을 끼며 결혼했냐고 물어요. ‘아직 못 했다’고 하니까 ‘못 한 게 아니라, 안 한 거 아니냐’고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저 같은 여자를 남쪽에선 ‘얄미운 년’이라고 하지 않느냐고 해요. ‘줄 듯 줄 듯하다 결국 안 주고 끝내는 얄미운 년’이라고요(웃음). 순간 제 귀를 의심했어요. 그렇게 진한 농담은 생전 처음 들었는데, 그것도 사상교육의 강도가 엄청나다는 김일성종합대학 교정 한복판에서 듣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죠.”

북에는 ‘금요노동’이란 것이 있다. 직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모두 노동현장으로 나가 육체노동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빗댄 농담이 있다고 한다.

“처녀와 연애하면 ‘사회노동’, 과부와 연애하면 ‘애국노동’, 아내와 하면 ‘강제노동’이라고 한다는군요. 페미니스트들이 들으면 열 받을 농담이죠. 그런데 더 재미있는 것은 이런 다양한 ‘노동사업’을 하다 소문이 나면 입질하는 자(소문내는 사람)가 ‘반동’이 된대요. 공동체를 균열시키기 때문이라는 거죠.”

그는 이런 농담들이 있는 것을 보면 북에도 다양한 애정관계가 존재하는 것 같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북한에도 ‘불륜’이 있다고 살짝 귀띔한다.

영어에 ‘미친’ 대학생들

북쪽 학생들의 삶의 목표는 한 가지다. 국가와 민족을 세계에 빛내는 일이다. 영어를 배우는 것도 그 때문이다. 남쪽 학생들이 개인의 안위를 위해 영어를 배운다면, 북쪽 학생들은 민족의 발전을 위해 영어를 배운다.

신 교수가 북한 대학생들에게 “영어를 왜 배우느냐”고 묻자 대부분 “이제는 세계가 다원화했기 때문에 공존하기 위해 다른 문화 양식을 이해하려고 배운다”고 답했다. 내심 ‘조국의 적 미 제국주의자들을 까부수기 위해서’라는 전투적인 대답을 예상했던 그는, 북한 청년들의 사고가 유연해진 것에 새삼 놀랐다고 한다.

북한에는 영어에 ‘미친’ 대학생이 많다고 한다. 유학은커녕 어학 연수 한 번 다녀오지 않았는데도 남한 학생들보다 영어를 더 잘하는 학생이 많다는 것. 북한은 영어에 대해 상당히 배타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평양외국어대학의 경우 중국어와 함께 영어가 제일 인기 있어요. 영어 수업은 준비된 자료들을 바탕으로 완전히 자유토론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특정 나라의 기후와 풍토, 정치, 문화 등을 이해하고 자율적으로 토론하는 형식이죠. 물론 수업은 모두 영어로 진행돼요. 평양외국어대학에서는 대학 구내에 들어서면 누구든 영어나 전공 외국어로 대화를 해야 해요. 북의 영어 교육은 선군정치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속도가 대단히 빠르고 절도가 있어요.”

교재는 주로 영국에서 수입한 교재를 편집해서 사용하는데, 뉴스나 외국 영화 등도 정기적으로 보여줘 외국 문화의 흐름을 익히게 하는 모양이다. 그가 북한 대학생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영화 ‘타이타닉’을 가지고 갔는데, 학생들은 이미 몇 차례씩이나 그것을 봤다고 한다. 영화는 주로 ‘사운드 오브 뮤직’ 같은 명작 위주로 보여주는데, 학생들은 로맨틱 코미디를 몹시 좋아한다고 한다.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세계 종교문화의 다양성을 강의하는 신은희 교수.

평양외국어대학 영어 전공학부 교수들이 그에게 말하길, 전에는 영국식 영어를 많이 했는데 요즘 학생들은 미국식 영어를 많이 한다고 한다. 그래서 교원들이 학생들 따라가기에 바쁘다고. 전에는 미국과의 적대적 관계 때문에 미국에 관한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만 인식해 영국식 영어를 구사했지만 국제무대에서 미국식 영어가 보편적인 요즘 상황에서 ‘미제’라는 이유만으로 거부할 필요가 없다는 게 젊은이들의 생각이다.

“중국이나 다른 지역에 나가 무역을 하는 인구가 늘어나면서 학생들은 그들로부터 미국 서적이나 영화 CD를 얻을 수 있게 되었어요. 그것을 가지고 목숨 걸고 공부해 고급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해요. 정말 깜짝 놀랐어요. 난방이 안 돼 손이 얼어 필기를 제대로 못할 만큼 열악한 환경에서도 열심히 배우는 학생들이 사랑스럽고 기특해 어떻게라도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 들더군요.”

평양외국어대학은 국제회의에서 활약할 통역관을 양성한다. 1980년대까지 북에는 동시통역사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국제회의가 있을 때마다 외화를 주고 해외에서 통역관을 구해 써야 했다. 그러다 국제관계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민족의 운명을 우리의 머리와 입으로 해결하자’는 취지 아래 동시통역 교육이 시작됐다고 한다. 그리고 북미관계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국가의 운명이 달린 외교 사업으로서의 통역 교육은 군사 훈련만큼이나 중요한 것으로 인식됐다고 한다.

“북에서는 김일성종합대학, 평양외국어대학이 최고로 꼽혀요. 두 대학의 교육 과목은 주체사상 학습을 제외하고는 한국이나 미국 대학들과 크게 차이가 없어요. 두 대학은 분위기가 많이 다른데, 평양외국어대학이 외국어대학이라 그런지 더 개방적이에요. 남쪽의 고려대와 연세대가 경쟁 관계에 있듯, 이들도 서로 자존심 싸움이 대단해요. 경시대회에서 상대 대학보다 성적이 나쁘면 선배들에게 혼나기도 한대요. 북은 개인 대 개인으로 경쟁하지 않는 대신, 공동체 간에 경쟁하는 거죠.”

‘놀랍도록 행복한’ 학생들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청년동맹 조직의 학생 대표들을 만났을 때, 그는 인생에 대해 어떤 고민을 하는지를 물어본 적이 있다고 한다. 이에 그들은 한결같이 자신들은 남쪽 학생들처럼 추상적이고 개인적인 고민은 하지 않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어떻게 충성할까에 대해 고민한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들은 개인 각자가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려고 몸부림치지 않아요. 개인적 어려움과 고민은 공동체 속에서 모두 해결된다고 생각해요. 국가를 위해,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고 충성하면 국가가 모든 것을 보상해준다는 거죠. 국가에서 알아서 무엇을 하라고 정해주는데 왜 고민 하냐는 거예요.”

북한의 대학생들은 국가사업에 필요한 일에 복무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예를 들어, 지도부에서 ‘큰배 사업’의 일꾼이 부족하다며 “청년들은 바다로!”라는 구호가 전해지면 모든 청년이 어민이 된다. 그해는 그렇게 어민이 최고의 직업이 되는 것이다. 또 다른 해에 자연 개조 사업을 위해 “청년들은 간척지 전투장으로!”라는 구호가 전해지면 모든 청년은 간척지로 모여든다.

이렇듯 북은 공동체가 필요로 하는 방향으로 청년들의 가치관이 정해진다. 그들은 인간의 참다운 삶과 인권이란, 공동체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고 믿는다. 또한 개인의 ‘자아실현’이란 공동체와 국가의 자주성과 존엄성 속에서 완성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런 공동체 중심의 삶이 얼마나 고통스럽겠냐는 것은 우리의 걱정일 뿐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들은 놀랍도록 충만하고 강인하고 행복하다”는 것.

국가사업에 필요한 대로 복무하는 것이 최고라고 여기지만, 그래도 젊은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나름대로 선호 직업이란 게 있기는 하다.

“여학생의 경우 여전히 예술단원이나 영화배우를 선호하지만 최근엔 스튜어디스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졌어요. 스튜어디스가 되려면 외모와 실력, 집안 등 조건이 완벽하게 갖춰져야 한다는군요. 남성 전유물이던 기자직도 여학생들에게 각광 받고 있고요. 남학생의 경우, 예나 지금이나 군인을 가장 영예롭게 생각하지만 요즘엔 해외 무역이나 컴퓨터 관련 직종이 새롭게 뜨고 있어요. 특히 인터넷 기자가 인기래요. 교수는 변함없이 남녀 모두에게 인기 있는 직업이고요.”

남과 북은 연애 중?

우리는 너무도 당연하게 북이 남처럼 변해야 한다고 말한다. 북이 그르고 남이 옳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는 이런 오만함을 버리고 남과 북은 이제 “새로운 연애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남북관계의 원리는 연애의 원리와도 같아요.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며 하루를 보내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슬퍼하는지, 무엇을 힘들어하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무슨 아픔이 있는지… 상대를 먼저 배려하고 이해하고 사랑하고자 하는 진실한 마음, 우리에게는 그런 사랑 넘치는 가슴이 필요해요. 서로 불신하고 증오하는 냉전의 관계를 넘어 시간의 여유를 갖고 서로 조심스럽게 알아가야 해요. 서로 사귀는 동안 정도 깊어지고 그리움도 싹트죠.”

그래서였을까, 그는 최근 남한 사람들이 북한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북한에서의 체험과 자신의 생각을 담은 에세이 ‘우리, 다시 사랑할 수 없을까’를 펴냈다.

인터뷰가 끝날 즈음, 그가 지난해 가을 방북 때 북측 인사에게 들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평양에서 열린 남북 장관급 회담 때의 일이다. 전기 사정이 열악한 탓에 회담 중 여러 차례 전기가 나갔다. 이에 북측 실무자들은 내심 걱정을 했다. 예전 같으면 남한에서 정전 사태를 크게 기사화하고, 사회주의가 실패한 빈곤의 나라라고 보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쪽 신문들을 확인해보니 그에 관한 기사는 한 줄도 등장하지 않았다. 그때 그들은 남쪽도 민족의 아픔을 감싸안을 여유가 생겼다면서 흐뭇해하고 고마워했다는 것이다.

그는 “살아가는 것은 곧 사랑하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우리, 다시 사랑할 수 없을까’라고 묻고 있지만, 이미 그는 ‘우리가 다시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에 대한 선입관을 버려야 하며, 그들을 우리 식대로 바꿔야 한다는 오만함을 버려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작가 J. 오스틴은 ‘오만과 편견’에서 진실한 사랑을 하려 할 때 오만과 편견만큼 지독한 방해꾼이 없다고 했어요. 북한에 대한 우리의 오만과 편견이 우리의 사랑을 방해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해요. 먼저 그 오만한 생각과 편견을 버리고, 그러고 나서 바라보세요.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