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이란 무엇인가?
김 낙 중

나는 최근 ‘민족통일중앙협의회’ 어느 지역 지부에서 주최하는 ‘통일학교’에서 강연 청탁을 받았다. 그런데 그분들이 나에게 부탁하는 강연 제목이 “왜 민족 통일을 해야 하나?” 라는 것이었다. 지금부터 반세기 전, 내가 젊었을 시절에는 전혀 있을 수 없는 강연 제목이었다. 왜냐하면, 민족통일이란 좌와 우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당연히 해야만 할 모두의 과제요 의무라고 생각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마 그 시절에 “왜 민족통일을 해야 하냐?” 고 묻는다면 정신병자 취급을 받았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고 보니 최근 언론에서 “민족문학작가회의”라는 단체에서는 “민족”이라는 머리말을 빼자는 주장이 심각하게 논의 되었다는 보도가 있었고, 또 일부신문들에서는 한미F.T.A를 추진하여 세계화를 추진하는 상황 속에 “민족주의”는 폐기대야 한다는 주장의 사설이 있었음도 생각났다. 그 뿐만이 아니다. 먹고살기가 어려운 요즈음의 우리 농촌에는 시집오려는 처녀들이 없기 때문에, 농촌 총각들이 베트남, 타이, 필리핀 등진에서 처녀들을 구해다 결혼을 해야 하고, 또 공장지역에서는 한국 사람들이 힘든 일을 피하려 하기 때문에 외국에서 들어와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는 처지에 있다고도 한다. 이렇게 세계화가 진행되는 추세 속에 “민족”이 극복 또는 “폐기”돼야 한다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는 판이니, 오늘 우리의 현실에서는 “왜 민족통일을 해야 하냐?”라는 강연이 필요하게 된 것도 무리는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복잡한 국제정세와 민족문제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먼저 조용히 기본적인 “민족” 개념부터 밝혀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럼 잠시 “민족”이란 무엇일까? 하는 문제를 함께 생각해보기로 하자. 사람들은 흔히 민족과 인종 또는 종족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많다. 그러나 세계에는 여러 인종이 함께 피를 나누며, 하나의 민족을 이룬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 우리 민족의 경우에도 결코 단일 종족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우리의 몸속에도 한족, 몽고족, 여진족, 왜족 등 여러 계통의 피가 섞여 있는 게 아닌가?

또 사람들은 민족을 동일한 언어, 동일한 문화풍속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을 일컫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같은 언어 풍속을 가지고 생활하는 사람들일지라도 그들의 인간관계가 노예와 노예주의 관계와 같은 것일 경우, 과연 그들이 하나의 “민족”이라 할 수 있을까? 아니다. 예를 들면 아프리카의 흑인들이 백인들의 노예로 잡혀가서 같은 영어를 사용하며 미국식 생활을 하고 있을 경우, 그들을 모두 “아메리카 민족”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민족”이란 우리말로는 “겨레”라고 한다. 그렇다면 또 ‘겨레 ’는 무엇인가? “겨레”는 한문으로 쓰면 족“族”이다. 족(族)은 겨레 족자이다. 그리고 이 족(族)자가 붙은 단어로 가족(家族) 씨족(氏族) 부족(部族) 민족(民族)이란 말들이 있다. 그런데 ‘겨레’는 국어사전에 보면 “같은 조상에서 난 자손들”이러고 설명해 놓았다. 그러나 이는 전혀 잘못된 비과학적 설명이다. 왜냐하면 “겨레”의 최소 단위인 가족을 보면 남편과 부인은 결코 “같은 조상에서 난 자손들”이라 할 수 없다. 그리고 부족(部族)의 경우도 “같은 조상에서 난 자손들”은 아니다.

가족은 한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하여 하나의 운명공동체로 결합되어 아들 딸 낳고 삶을 영위하는 최소한의 삶의 기초단위이다. 가족이라는 최소한의 운명공동체가 없이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고, 성장하여 사람으로 자랄 수도 없다. 그러기에 가족이라는 최소한의 “겨레”는 삶의 기본조건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 다음 씨족은 한 가족의 형제와 그 자손들이 같은 부모에서 난 혈연관계가 있음을 의식하면서 만들어지는 혈연적 운명공동체이다. 그러나 그 씨족 안에는 다른 씨족에서 시집온 여자 구성원들이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가족이 씨족이라는 보다 큰 운명공동체로 확대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사람이란 다른 동물들에 비해서 양육기간이 매우 길고, 그래서 한 부모의 자손들은 오랜 동안 같은 부모의 돌아봄을 받으면서 생사고락을 함께 하며 성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성장 후에도 긴밀한 유대관계를 유지하며 생활하는 혈연에 의한 운명공동체적 관계를 이루는 씨족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씨족들이 일정한 지역에 정착하여 농경생활을 하게 되면, 서로 다른 씨족들 사이에는 서로 사이에 혼인관계가 성립하고 생활상의 필요에서 상부상조하기도 하며, 외적에 대한 공동방어를 위해 협력하기도 하는 새로운 운명공동체가 형성되는데, 이것이 지연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부족이다. 여기서 부(部)자는 나눌 부, 마을 부, 하는 부락(部落)이란 뜻이며, 부족이란 지연을 토대로 하는 운명공동체를 의미하는 말이다.

그리고 이런 몇 개의 부족들이 서로 생활영역을 놓고 다투는 과정에서 부족국가, 부족연맹국가, 정복국가 또는 왕조국가를 이루고 사는 역사과정이 진행된다. 그리하여 혈연적인 씨족이나, 지연적인 부족의 범위를 넘어, 왕조국가 안에서 백성 즉 민인(民人)들이 정치 경제 문화의 공통성을 기초로 서로 피를 섞으며 함께 더불어 사는 새로운 운명공동체를 이루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민족”을 이루는 기초인 것이다. 따라서 민족은 혈연, 지연 등의 인연을 넘어, 정치, 경제, 문화를 함께하는 보다 광범한 운명공동체이다. 이렇게 볼 때 엄격한 신분계급제도가 지배하고, 상이한 계급간의 통혼이 안 된 시대에는 씨족이나 부족은 있었지만 아직 근대적 “민족”은 없었다고 보아야 한다. 예를 들면 신라의 엄격한 골품제하에서 성골이나 진골과 천민은 하나의 운명공동체적 관계에 있지는 않았다. 그러기에 장차 하나의 민족이 될 민족체( Narodnost:)로는 존재했지만, 그 구성원들이 운명공동체적 관계를 가지는 같은 민족이라고는 아직 말할 수 없었다. 그렇게 볼 때 민족이란 “한 집단의 사람들이 혈연, 지연의 벽을 넘어 서로 피를 섞으며, 정치 경제 문화(언어)의 공통성을 가지고 함께 더불어 사는 운명공동체의 관계를 가진 사람들의 무리”라고 정의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장차 이들 민족이 다시 접촉교류를 통해서 민족과 국가라는 경계를 넘어, 전 지구촌의 차원에서 새로운 운명공동체를 형성할 때, 우리는 세계사 속에서 앞으로 “한겨레”의 형성을 보게 될 것으로 전망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그 어떤 고정 불변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인간들의 삶의 조건인 “겨레”가 역사 속에서 가족->씨족->부족->민족->한겨레로 발전하는 긴 과정에서 형성되는 운명공동체의 한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우리 민족은 아직도 근대적인 통일 민족국가를 수립하지도 못한 처지에서 민족을 극복대상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시기상조이다. 왜냐하면 창차 형성될 전인류공동체인 “한겨레” 란 각 민족이 저마다의 빛깔, 저마다의 음색을 가지고 참여해서 이루어질 총천연색의 교향악인데, 우리 민족은 우리들의 빛깔, 우리들의 음색 즉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제대로 확립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서둘러 민족통일을 이룩하고 남과 북에 있는 동포들이 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