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어떤 방법으로 북한을 따시켰는가?

그 답은 북한 농축우라늄 정보를 조작해서... 입니다.

한겨레신문의 3월 7일자 워싱턴 리포트의 제목이 "미국은 왜 북한 농축우라늄 정보를 조작했는가?"를 읽어보면 자세한 내용이 나옵니다.

최근 몇 년간 남한, 북한, 일본, 중국 등 동북아를 둘러싼 정세의 변화에 미국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어떤 방법으로을 대처해왔으며, 어떤 변화가 왜 일어났는지를 잘 설명해주는 글입니다.


http://wnetwork.hani.co.kr/polaris/view.html?listtype=F&blog_board=7&st=&log_no=3510

미국은 왜 북한농축우라늄 정보를 조작했는가 | 워싱턴 리포트 2007/03/07 02:13


워싱턴리포트-7


미국은 왜 북한 농축우라늄 정보를 조작했는가


▲ 부시 대통령
미국 부시 정권의 도덕성과 신뢰성이 또다시 땅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부시 정권이 지난 2002년 8년전 북한과 합의했던 제네바 기본합의의 이행거부를 선언하면서 그 이유로 제시했던 북한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 관련 정보가 실제보다 크게 풀려 왜곡했던 사실이 최근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이라크 침공의 명분이었던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도 허구였음이 드러난 데 이어 농축우라늄 프로그램 의혹도 조작됐던 것으로 판명됨에 따라 부시 정권은 ‘거짓말 정권’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됐습니다. 이솝우화에서 늑대가 나왔다고 상습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바람에 이웃들로부터 믿음을 잃어버린 양치기 소년처럼 부시 대통령도 이른바 ‘악의축’ 국가들을 상대로 거짓정보를 바탕으로 전쟁을 벌이거나 적대정책을 펴온 데 대한 댓가를 치르고 있는 셈입니다.


실제로 부시 정권은 현재 국민적 신뢰 상실이라는 심각한 역풍을 맞고 있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사태 혼미의 배후로 이란을 지목하고 이란에 대한 강경드라이브를 걸고 있지만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이번에도 또 거짓말 아니냐”며 냉소적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전혀 약발이 먹히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국제적으로도 미국은 고립되고 있습니다. 부시 대통령의 이란 배후설 주장에 동조하는 나라는 거의 없습니다.

고위관리들의 조작 고백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왜 지금 시점에서 부시 정권의 고위관리들이 과거의 거짓말에 대해 ‘고백’을 하고 나왔느냐는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고위 인사들의 ‘고해성사’가 부시 대통령의 대북정책이 근본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북한과의 후속실무협상을 앞두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농축우라늄 프로그램에 대한 고리를 풀지 않고서는 베이징 213합의자체가 원점으로 돌아갈 수도 있는 위험성을 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사안의 심각성을 잘 알고 있는 고위관리들은 협상의 장애물을 미리 제거할 필요성을 느꼈을 법합니다. 부시 정권의 입장에서는 정보 조작의 ‘고백’에 뒤따르게 될 도덕적 비난과 베이징 합의의 무산에 따르는 정치적 부담을 저울질했을 때 ‘고백’ 쪽이 부담이 가볍다고 판단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속된 말로 하면 쪽팔리는 게 낭패로 끝나는 것보다 낫다는 뜻입니다. 만약 농축우라늄 문제로 후속협상이 난관에 부딪쳐 6자회담 합의자체가 좌초할 경우 그 부담은 고스란히 부시 대통령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북핵문제의 해결을 유일한 외교정책의 성공사례로 만들기 위해 자존심을 접고 북한과의 직접 협상을 수용한 부시 대통령으로서는 북핵 협상의 성공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 미리 제거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북한 농축우라늄 프로그램에 대한 미국 관리들의 ‘고해성사’는 부시 정권이 북핵 문제의 해결에 대해 갖고 있는 의지의 강도를 가늠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해 주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바로 이점에 이번의 베이징 합의와 실패로 끝난 2005년의 합의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점이기도 합니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베이징 합의 직후 부시 대통령의 확고한 지지의지를 밝히면서 정권 구성원들의 충성을 요구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부시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지는 6자 북핵 합의를 뒷받침할 후속이행조치들이 차질 없이 진행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미국 외교 정책의 의문

하지만 농축우라늄 정보 조작의혹은 미국의 외교정책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실체적 진실을 면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전문가들의 분석을 종합하면 북한은 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추진하려고 했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사안이 대단히 복잡하지만 몇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첫째는 북한이 1990년대말 파키스탄 핵개발의 ‘아버지’로 불리는 A.Q. 칸으로부터 우라늄 농축에 필요한 원심분리기 약20여개를 구입한 사실입니다. 이점은 파키스탄 정부가 칸을 조사한 뒤 미국에 통보함으로써 확인된 바 있습니다.

둘째는 북한이 그 뒤 우라늄농축 시설에 필요한 알루미늄 튜브 등을 구입하려고 몇차레 시도했던 적이 있다는 점입니다. 북한의 이 시도는 실패로 끝났습니다. 여기까지가 논란의 여지가 없는 사실의 영역입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시도가 실패하자 북한은 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더 이상 진행시키지 못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물론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는 북한이 파키스탄으로부터 구입한 원심분리기를 역엔지리어닝을 통해 대량생산했을 가능성을 제기함으로써 농축우라늄 프로그램에 대한 의혹을 여전히 풀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농축우라늄 대량생산 공정에는 엄청난 량의 전기가 사용되는데 북한은 그 전기를 공급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실현성이 없다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정보조작

문제는 미국 중앙정보국(CIA)가 2002년 의회에 보낸 보고서에서 확실한 근거없이 북한이 고농축우라늄 공장을 건설중에 있으며 2005년 상반기중에 완공될 것이라고 주장한 점에 있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이를 근거로 1994년의 제네바 기본합의를 파기했습니다. 최근 미국 고위 관리들이 고백한 내용의 요지는 바로 이 부분의 신빙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조작됐음을 사실상 시인한 셈입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폴 월포위츠 당시 국방부 부장관을 포함한 네오콘의 핵심인사들이 정보 조작을 주도한 것으로 관측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부시 정권은 북한농축우라늄 정보를 조작한 것일까?

20002년 11월의 의혹제기

이에 앞서 우리는 부시 정권이 북한농축 우라늄 프로그램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한 2002년 11월이라는 시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시점에 우라늄 정보조작의 비밀을 이해할 수 있는 코드가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시점은 그해 9월17일 이뤄진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방북과 평양선언을 계기로 북일 수교 협상과 일본의 대규모 경제원조 등 북일관계의 획기적 개선이라는 역사적 전환점을 앞두고 있던 순간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시점은 2000년 6월15일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역사적인 첫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가 급물살을 타면서 남북이 경의선 및 동해선 철도 연결 공사 착공(9월18일)과 개성공단 프로젝트의 본격적 추진 등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의 정세가 긴장해소와 상호협력 국면으로 급속히 이행하고 있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미국은 부시 행정부가 요청한 이라크 전쟁선포 결의안의 의회 표결을 앞두고 있던 미묘한 시점이었습니다.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 침공 준비작업에 모든 역량을 투입하고 있었기 때문에 동북아의 지정학적 지각변동을 심도 있게 검토하고 대처할 여력이 없었던 셈입니다.

뿐만 아니라 북한의 농축우라늄 의혹은 이미 1980년부터 제기돼 온 해묵은 사안이었기 때문에 미국의 정보기관들이 그 시점에서 특별히 관심을 기울일 이유도 별로 없었습니다. 1990년대에 들어 미국은 파키스탄이 농축우라늄 방식으로 핵무기 개발에 착수한 이후 파키스탄의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북한의 관련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미국의 에너지부는 1999년 보고서를 통해 북한이 농축우라늄 생산의 초기 단계에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비슷한 시점에서 한국과 일본의 정보기관도 북한이 농축우라늄 프로그램에 관한 정보를 입수하고 미국측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북한의 농축우라늄 시도

하지만 이 시점에서 북한의 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은 장비 구입의 문제와 관련 기술의 미비 등으로 더 이상 진전을 이룩하지 못한 채 ‘계획’ 단계에서 머물러 있었던 것으로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농축우라늄을 통한 핵무기 개발이 북한이 추진하다 동결한 플루토늄 방식에 비해 고도의 기술과 첨단장비가 필요한데 이는 북한의 능력으로서는 해결하기 어려웠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핵전문가들에 따르면 우라늄 핵폭탄을 제조하기 위해서는 약 60킬로그램의 고농축우라늄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이는 1300개의 고성능 원심분리기를 3년간 풀가동해야 얻을 수 있는 양입니다. 북한이 파키스탄으로 구입했다는 20개의 원심분리기로는 180년이 걸린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물론 북한이 원심분리기를 대량으로 자체생산했다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하지만 그 시점에서 북한은 국제사회의 엄중한 감시를 뚫고 농축우라늄의 대량생산체제를 갖출 수 있는 현실적 능력은 갖고 있지 않았다고 전문가들을 보고 있습니다. 그 당시 미 정보기관들도 2005년쯤에야 북한이 농축우라늄 생산설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 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은 실행단계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미국이 제네바 기본합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상황에서 재협상을 위한 협상력 제고 차원에서 한번쯤 추진해볼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만약 그 시점에서 북한은 농축우라늄 대량생산 시설을 갖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를 굳이 미국에 알려야할 의무는 없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네바 기본합의에서는 1기 경수로의 건설 공정의 상당부분이 완료된 이후에 농축우라늄을 포함한 미신고 핵시설에 대한 사찰을 하는 것으로 매우 애매하게 규정돼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경수로 공사가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의 상세한 내역을 신고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을지도 모릅니다.

핵주권 포기

또 농축우라늄은 저농축일 경우 경수로의 핵연료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에 그 자체로서는 핵확산금지조약에 위배되지 않습니다. 핵확산금지조약 가입국은 농축우라늄 시설을 보유할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 경우 국제원자력기구의 엄격한 사찰을 받아야 합니다. 한국의 경우 1992년 비핵화선언을 하면서 이 부분을 포기했기 때문에 경수로 원자로에 소요되는 저농축 핵연료를 비싼 외화를 지불하면서 해외로부터 구입하고 있습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한국은 핵주권을 스스로 포기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원자력발전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나 핵과학자들은 노태우 정권이 1992년 한반도 비핵화선언을 하면서 한국의 농축우라늄 생산 권리를 포기한 데 대해 큰 불만을 갖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국은 중수로 방식의 원전에서 나오는 폐연료봉의 재처리 시설도 보유를 포기했습니다. 일본이 핵재처리 시설을 허용받아 매년 수백개의 핵폭판을 제조할 수 있는 플로토늄을 재처리하고 있는 것을 보면 한국의 결정이 과연 현명한 것이었는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미국의 부시 정권은 집권 초기에 북한의 농축우라늄 프로그램 의혹에 관해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클린턴 정권으로부터 각종 정보를 인수받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시 미국은 북한의 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이 하나의 구상단계에 있을 뿐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고농축 우라늄의 대량생산 설비는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고 결론을 내리고 본격적으로 대처할 시급성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또 이라크와의 전쟁이 초읽기에 들어간 긴박한 상황에서 불필요하게 북한의 농축우라늄 의혹을 제기해 전선을 복잡하게 만들 이유가 없기도 했습니다.

고이즈미 방북 변수

▲ 고이즈미 전 일본 총리
그러나 미국은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평양 방문이 임박했다는 정보를 입수하면서 사태의 심각성을 뒤늦게 깨닫고 본격적인 대응에 나서게 됩니다. ‘일본의 수호천사’로 불릴 정도로 부시 행정부 내부에서 대표적인 친일파로 분류되는 리차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이 일본 설득에 발벗고 나섰습니다. 아미티지 부장관은 미일동맹의 강화를 통해 중국봉쇄 전략을 추구해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헤게모니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 이른바 아미티지-나이 보고서의 주역이었습니다. 아미티지는 또 부시정권의 출범과 동시에 국무부 부장관으로 입각한 이후 아미티지 보고서의 내용을 착실하게 실천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일본인보다도 더 일본의 국익을 위해서 미국의 외교정책을 추구한다고 평가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도쿄를 방문해 고이즈미를 면담한 아미티지는 고이즈미의 방북 일정에 대해 들었습니다. 그 시점은 고이즈미의 외교정책 핵심브레인이었던 외무성의 다나카 히토시 아시아대양주 국장(현재 일본 국제교류센터 선임연구원)이 비밀리에 평양을 방문해 고이즈미-김정일의 정상회담 의제를 이미 조율하고 귀국한 뒤 였습니다. 다나카 국장은 평양 비밀 협상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일본인 납치문제에 대해 사과하고 생존납치자의 일본 귀국 허용 의사를 갖고 있다는 북한쪽의 카드를 전해들었습니다. 히토시 국장은 귀국해서 북한쪽의 카드를 고이즈미에게 보고했습니다. 고이즈미로서는 흥분하지 않을 수 없는 내용이었습니다. 자신의 북한 정책이 드디어 결실을 맺게 됐기 때문입니다.

고이즈미의 계산

▲ 리차드 아미티지 전 국무부 부장관
고이즈미가 아미티지를 만난 것은 다나카 국장의 보고 다음날 이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아미티지는 북한 농축 우라늄 의혹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우려를 전달했습니다. 아마도 아미티지는 고이즈미의 방북을 재고해 줄 것을 요청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으로부터 낭보를 접한 고이즈미에게 아미티지의 말이 귀에 들어올 리가 없었습니다. 정치지도자에게 자신의 정치적 입지 강화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고이즈미는 방북을 통해 일본 국내정치의 뜨거운 현안으로 등장한 일본인 납치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하락하는 자신의 인기를 일거에 만회하겠다는 계산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의 최대 관심사항인 농축우라늄 프로그램 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났습니다.

고이즈미는 미국이 북일 정상회담의 결과에 불만이 있더라도 결국은 추인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계산했는지도 모릅니다. 부시 대통령과의 개인적 관계가 친밀했던 고이즈미로서는 미국이 농축우라늄 문제 때문에 북일 관계정상화를 방해할 것이라까지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고이즈미는 그해 9월17일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열고 북일 수교 등을 포함한 평양선언을 발표했습니다. 미국은 고이즈미의 방북 결과를 보고 경악했습니다. 북일관계의 개선이 돌이킬 수 없는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미국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의 충격

한국이 김대중 정권의 출범과 함께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독자적인 외교노선을 걸으면서 대미종속 외교에서 이탈한 데 이어 일본마저 독자노선을 추구하게 되면 미국의 동아시아 헤게모니가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에게 일본은 동아시아 헤게모니 유지를 위해 가장 중요한 우방으로 간주돼 왔습니다.

▲ 제임스 켈리 전 국무부 동아태차관보
미국이 충격을 받았던 또 하나의 이유는 일본이 미국과 사전에 충분한 협의없이 북일 수교와 대규모의 경제지원 등 대북한 화해 전략을 추구한다는 점이었습니다. 2차세계대전이후 일본을 사실상 ‘속국’으로 여겨온 미국으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사태의 전개였다고 할 수 잇습니다.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북일 관계정상화는 동아시아의 세력균형에 중대한 변화를 초래하고 미국의 영향력을 크게 약화시키는 촉매제로 작용할 것이 분명했습니다. 부시 정권은 일본이 대북 수교와 함께 북한에 제공하게 될 경제지원이 북한의 핵무기 개발 비용으로 전용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크게 우려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미국으로서는 이같은 흐름을 팔짱을 끼고 지켜볼 수 없었습니다. 사태의 반전을 위해서는 충격요법이 필요했습니다. 국무부의 동아시아태평양차관보인 제임스 켈리를 평양에 급파한 것은 이런 배경에서 이뤄졌습니다. 고이즈미의 평양 방문 2주일 뒤인 10월3일 미국은 켈리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를 평양에 보냈습니다. 북한쪽에 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직접 추궁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사전에 북한쪽에 방북 목적에 대해 운을 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평양쪽은 켈리 방북의 정확한 의도를 몰랐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대북 관계개선을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의 일환으로 오인했을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김정일-고이즈미의 평양정상회담에 대해 미국 정부는 대외적으로는 환영한다는 입장을 표명했기 때문입니다.

켈리의 방북

켈리는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을 만났을 때 미국의 확보한 농축우라늄 프로그램 정보를 제시하면서 이 때문에 북미관계의 진전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아마도 강석주는 예상치 못한 켈리 차관보의 농축우라늄 문제 제기에 허를 찔린 듯한 기분이었을 것입니다. 강석주와 켈리가 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을 놓고 나눈 대화의 정확한 내용은 아직까지도 논란이 될 정도로 명확하지 않습니다. 켈리는 강석주가 첫날 회동에서 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의 존재를 시인한 뒤 다음날 부인했다는 것이고 북한은 처음부터 시인한 적이 없다고 부인하는 등 팽팽한 평행선을 달리고 있습니다.

▲ 강석주 북한 외무성 부상
부시 정권의 인사들은 강석주의 시인 발언에 쾌재를 불렀겟지만 이를 즉각 공개하지 않고 의회의 이라크 전쟁 승인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켈리가 미 언론에 평양방문 결과를 설명하면서 강석주의 농축우라늄 프로그램 시인사실을 공개한 것은 미국이 의회의 이라크 전쟁 동의안 비준이 끝난 직후였습니다. 이 때부터 제2차 북핵위기는 사실상 시작됐습니다. 이후 북한과 미국은 상대방에 대한 비난의 수위를 높여갔으며 북핵 위기는 북한의 핵동결 해제 및 핵시설 재가동과 핵비확산조약탈퇴 등 걷잡을 수 없이 악화돼 갔습니다.

미국의 움직임과는 별도로 일본에서도 대북 수교에 반발하는 기류가 조성되고 있었습니다. 일본의 극우파들은 김정일 위원장의 일본인 납치 시인을 빌미로 일본 국민감정을 격렬하게 선동해 북일 수교 움직임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당시 관방장관이었던 아베 신조 현재 일본 총리는 그 선봉장격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입지 강화를 위해 이 흐름에 적극 편승하고 부채질했습니다. 이에 힙입어 그는 라이벌이었던 후꾸다를 일방적으로 제압하고 총리자리에 올랐습니다.

고이즈미의 굴복

고이즈미는 결국 극우파와 미국의 압력에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그후 고이즈미 총리는 미국의 대북 강경드라이브를 앞에서 선도하는 선봉장으로 변신했습니다. 고이즈미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독도영유권 주장 등 한국과 중국의 민족감정을 자극하는 언행을 서슴치 않았습니다. 이는 국내적으로 자신의 정치적 인기를 의식한 것이기도 했지만 대북정책 면에서 미국과 대립하고 있는 중국 및 한국과의 결별선언이자 대미 추종의 의사표시이기도 했습니다.

미국으로서는 소기의 성과를 거둔 셈입니다. 이는 미국 추종 일본 외교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기도 합니다. 미국은 북일 수교 움직임을 무산시킴으로써 일본의 독자적인 동아시아 세력재편 구상에 쐐기를 박는데 성공했습니다. 일본은 다시 미국의 품안으로 돌아왔습니다. 미국의 대북 강경책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부시 정권은 한국의 대북포용정책에도 매우 큰 불만을 갖고 있었습니다. 특히 김대중 정부가 추진하는 남북 철도 연결과 개성공단 사업 등이 핵무기로서 동북아 불안을 조성하는 북한의 체제 유지에 기여하고 있다고 보고 이를 노골적으로 견제했습니다. 미국은 경의선 철도 연결 공사를 진행시키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비무장지대의 지뢰제거 작업을 한국군이 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지뢰제거 작업은 김대중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에게 요청함으로써 간신히 이루어졌습니다.

미국의 동북아 헤게모니

북한 농축우라늄 파동을 보면서 우리는 미국은, 아니 보다 정확하게는 부시 정권은, 과연 동북아의 안정과 평화를 진정으로 원하고 있는 것인가라는 본질적 의문에 부딪치게 됩니다. 부시 정권이 스스로도 위협이 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한 농축우라늄 프로그램에 대한 의혹을 제기해 북일수교를 방해하고 남북한 화해를 가로막았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들은 부시 정권의 동아시아 정책 기조가 클린턴 정권의 정책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에 있었다고 지적합니다. 대북 적대정책과 중국 봉쇄 정책은 모두 여기서 출발했다는 것입니다. 북한 농축우라늄 프로그램 의혹은 이를 위한 명분이었던 셈입니다.

하지만 2001년에 발생한 911동시테러는 미국의 중국봉쇄 정책의 수정을 불가피하게 만들었습니다. 911을 계기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을 수행하게 되면서 중국의 협조가 필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중동과 중앙아시아 등 석유자원이 풍부한 전략지역에 외교군사 역량을 집중해야하는 상황에서 동아시아에서 중국과의 대립정책을 통해 지역불안을 조성하는 것이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전략적 판단도 작용했습니다.

미사일방어계획과 북한 위협

부시 정권이 대북 정책을 고수해온 배경에는 일본과 손잡고 추진하고 있는 미사일방어계획이 깔려 있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많은 군사전문가들은 미사일방어계획이 터무니없는 환상이라고 꼬집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부시 정권이 강력하게 이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것은 이 프로젝트가 방위산업체들에게 ‘황금알을 낳는 거위’이가 때문입니다. 미사일방어계획이 완성될 경우 미국은 연간 2천억-3척언달러의 예산을 매년 쏟아 붓게 됩니다. 냉전의 종식이후 무기수요의 감소로 불황을 겪고 있는 미국 방위산업체들에게 미사일 방어계획은 숨통을 트여줄 수 있는 활력소였습니다.

미사일 방어계획을 계속 추진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라는 명분이 필요합니다. 미국의 미사일 방어계획은 미국의 방위산업과 일본의 방위산업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습니다. 딕 체니 부통령, 럼스펠드 국방장관 등은 모두 미국의 방위산업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방위산업은 석유업계와 함께 부시 정권의 중요한 자금줄의 하나입니다. 미사일 방어계획의 관점에서 볼 때 북한의 핵무기와 장거리탄도 미사일이 미국의 통제가능한 범위안에 있는 한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아니 꼭 필요한 것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북미 관계가 급속히 개선돼 관계정상화 수준까지 진전돼 북한 핵의 전면페기가 실현될 경우 미국의 미사일 방어계획은 추진력을 크게 상실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바로 이같은 우려 때문에 부시 정권은 북한의 핵위협을 과장하고 일본의 북한접근을 가로 막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라크 사태의 악화와 북한의 핵보유 등 세계정세가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미국의 부시 정권은 후퇴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난해 가을 중간선거에서 미국 유권자들의 냉엄한 부시정권 심판도 미국이 대외정책 기조 수정을 불가피하게 만들었습니다. 부시 정권은 북한과의 핵협상을 통해 핵페기와 관계정상화 및 경제지원이라는 타협안을 만들어 냈습니다. 부시 정권 고위 인사들의 북한농축우라늄 프로그램 정보 조작 고백은 그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입니다.

213베이징 6자회담 합의 이후 미국은 부시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북핵의 전면 폐기라는 궁극적인 목표의 실현을 위해 적극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콘돌리사 라이스 국무장관과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아태차관보 등 국무부의 고위 관리들이 총출동해 213합의를 적극 홍보하고 있는 점도 이같은 분위기를 반영하는 대목입니다. 지난 2005년 6자회담의 합의 직후 대북한 금융제재의 발동으로 파국을 맞고 말았던 것과는 전혀 판이한 양상입니다.

하지만 미국의 북핵 정보가 ‘그때 그때 달라요’ 식으로 시간에 따라 내용이 바뀌는 등 조령모개식으로 일관성을 결여할 때 미국의 대북정책 자체에 대해서 불신을 품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미국이 북한의 농축우라늄 프로그램 정보를 과장왜곡했다고 실토했다고 해서 북한의 농축우라늄 프로그램 문제가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상습적으로 거짓말을 해온 미국 관리들의 말을 액면그대로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다음 정권에 들어 북핵 문제가 또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지금 중요한 것은 북한 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의 의혹을 명쾌하게 규명하는 일입니다. 이를 위해 미국 정부가 그 의혹의 전모를 상세히 공개해 한점의 의혹도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해소시킬 책임이 있습니다. 또 민주당이 장악한 의회도 청문회를 열어 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의 정보 왜곡의 진상을 파헤칠 필요가 있습니다. 농축우라늄 파동의 한복판에 있었던 케리 전 국무부 차관보 등 관련 인물들을 청문회에 소환해 방북당시의 정황과 일본에 대한 북일교섭 중단 압력의 진상과 경위 등도 규명되야 합니다. 북한도 이에 대한 모든 정보를 공개함으로써 국제사회의 불신을 털어내는 자세가 바람직합니다. 이같은 과제들이 성실하게 선행될 때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향한 역사적인 대장정이 시작될 수 있을 것입니다.

워싱턴/장정수 한겨레신문 논설위원-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객원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