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인권위는 조계종에 가입할 것인가?
2005.1.8.


지난 해 11월 22일에 나는 조계종에 갔다. 다리가 아픈 때였지만, 일부러 시간을 내어 참석했다. 그 까닭은 이 날 거기서 불교인권위의 창립 15주년 기념행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 때 여러 가지를 생각한 중 다음 것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어 보려한다.
기독교의 엔.시.시.의 인권위보다는 역사가 그렇게 오래지는 안지만, 우리 나라에서 장자 종교라 할 수 있는 불교가 ‘인권위원회’란 이름의 기구를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불교 인권위의 제 15주년 창립을 더욱 진심으로 축하한다.
나는 최근에 진관 스님과 같이 다닐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진관 스님이 동국대를 졸업했기 때문에 선배.후배 사이에 퍽이나 인기가 좋았던 모양이다. 특히 그가 여승들에게 인기가 좋은 것을 알았다. 추운 겨울에도 재야 투쟁 때문에 추운 한데에서 오랫동안 떨었기 때문에 그렇지만, 찾아가면 따뜻한 안방에 앉게 하고 한데서 추위에 꽁꽁 언 몸을 놓이곤 하였으며 맛있는 음식으로 배를 채우기도 했다. 보통 때 볼 수 없는 진관 스님의 따뜻한 인정에 찬 행동이었다.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은 불교 사회-정치 참여는 진관 스님 혼자에게 맡겨놓은 것처럼 말하는 것이었다. 불교 제도권 안에 있지 않는 분은 내가 이야기하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할지 모르겠다. 나도 사실은 잘 몰랐지만, 나는 진관 스님을 알고서 같이 다니고 부터 불교의 내막과 불교인권위도 잘 알게 되었다.
우선 인권위에 불교라고 붙었지만, 그것이 조계종에 소속된 인권위가 아니다. 그러니까 엔.시.시.에 속해 있는 인권위원회와 틀리고 제도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불교란 이름만 붙었지, 사실은 독자적인 인권단체이다. 다만 불교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고 스님이나 고명한 사회인사 중 불자가 인권위의 위원장이란 것이 다르며 아마 뜻이 있는 불교의 스님이나 불자들의 후원으로 이 인권위원회가 존속하고 있다는 것만 다르다.
그 다음으로 불교가 반민족적인 종교이다 시피 된 불교를 진관 스님이 거의 혼자서 시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과거 나라와 민족이 수난이나 위기를 당했을 때 보여주었지만, 그 때는 진정한 민족적인 종교였다. 그런데 지금 불교는 어용적이라고 할 수 있을지언정, 진정한 민족적인 불교는 아닌 것 같다. 임금이나 정권이 도망을 가서 나라를 지키지 못했을 때 스님들이 의병을 일으켜 외군과 전쟁을 해서라도 이 사회가 맞이한 위기를 타개하고 위기에 처한 나라와 민족을 구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님은 진관 스님의 이야기를 통해서이다. 그는 역사에 밝다. 그러한 전통을 따르고 있는 것이 바로 지금 진관 스님의 인권위원회라는 말이다. 진관 스님이 제일 존경하는 스님이 바로 민족해방의 거목이기도 한 만해 시인이고 스님이었다. 진관 스님 역시 시인이고 스님이다.
다음으로 지금의 한국 불교 일반이 탈속세적이고 염세적인 종교인 듯한 잘못된 전통을 진관 스님이 시정해 주고 있는 것 같다. 불교가 국교인 때가 과거 한국사에 있었다. 그 때의 불교는 물론 사회-정치 참여적인 종교였다. 그때는 정.교 분리의 원칙 같은 것을 잘 몰랐기 때문이기도 하였겠지만, 불교가 권력과 돈 맛을 안 다음에는 타락하고 부패하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어떤 왕조는 전 왕조가 그러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다른 종교를 국교로 하고 불교를 탄압하여 절이 결국 사람들이 사는 동네에 못 있고 산 속으로 그 소재지를 옮겨 짓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곳들이 명당이 되었고 불교사찰은 일정한 특권을 누리고 있다. 당시에는 스님들이 도시에 들어와서 활동 하는 것 까지 금지시켰을 정도였다. 될 말이 아니었지만, 그 당시는 그것이 통용되었다.
불교는 결코 염세적이거나 탈 세속적인 종교라고 할 수 없는 종교인데도 마치 그런 염세적이고 탈세속적인 종교인냥 특성을 짓기조차 했다. 이는 불교인들도 책임이 없지 않을 것이다. 어쨌던 지금은 너무 편안하다고 생각해서인지, 아니면 불교가 너무 돈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권력이 던져 준 뼉따기를 물고 있느라 짓을 수 없는지 모르지만, 어쨌던 진관 스님 말고는 거의 사회-정치 참여를 하고 있지 않고 사회-정치 비판을 하지 않고 - 못하고 - 있다. 지금의 불교는 그렇게 건전한 종교로 보이질 않고 있는 것은 자업자득인 듯 하다. 흡사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이나 어용화한 기독교인들과 같이 반사회적이라고 할 수 있고 탈 속세적이고 그러기 때문에 그렇지만, 타계지향적인 - 그러면서도 더 속세적이고 현세적이다 - 종교로 전락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마저 든다.
지금은 불교인권위도 인간관계이겠지만, 제도권 안으로 들어 갈 것 같다. 지금 조계종 관계자들의 조계종 소속의 진관 스님과 관계이겠지만, 불교인권위원회가 조계종에 들어가는 날 아마 진정한 인권위원회가 종을 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과거 불교인권위가 선정한 그런 사람에게 인권상을 줄 수 있겠는가? 라고 물어 볼 때 그 답변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가령 정부가 탄압하고 있는 카토릭 교회 병원 노조위원장이나 단병호 위원장(당시 민주노총의 위원장)이나, 정부가 친미적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반미적인 카다피 리비아 대통령이나 더구나 2004년에 인권상을 주었지만, 간첩으로 유명하고 감옥살이까지 한 깐슈 같은 교수에게는 인권상을 줄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조계종이 정부와 마찰을 원치 않고 있기 때문에 - 정부와 마찰을 빚을 만큼 불교가 용기가 없는 종교이고 이미 어용화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 앞으로는 그런 사람들에게 인권상을 주지 못하지 않겠는가?
어떤 대학 처럼 한국 사회에서 반체제 인사나 장기수 ‘죄인’ - 그것도 단순한 잡범이 아니고 공산주의 때문에 이념범으로 징역을 살았다 - 을 교수로 임용하는 용기를 불교에서 가질 수 있을까? 아마 불교인권위가 조계종에 들어가는 것은 시간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내 걱정은 태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