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우리가 못다한 열사의 일을 이어받아야
2004.11.25. 11시. 모란공원, 제종철 1주기를 맞아


제종철 열사의 1주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여중생 범대위의 서울 북부 지역(의정부 일대) 일을 헌신적으로 하다가 아까운 나이에 불행을 당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려 우리는 지금도 그의 ‘자살설’을 믿을 수도 받아드릴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한총련 출신인 그가 자살할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이 땅의 굴절된 역사를 바로 잡기 위해 역사의 향도로 헌신했고, 그가 젊었음은 물론 단란한 가족도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아름다운 아내, 영자님이 있었을 뿐 아니라 이 땅의 희망의 싻인 자랑스러운 어린 아들, 민국(당시 6살)이도 있었기 때문이었으며 이 땅의 역사가 바로 잡아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전혀 그가 그런 방식으로 생을 마감할 이유가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가 그 모든 책임을 방기하고 이 생을 자살로 마감했다고 객관적으로 볼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남의 아이들인 어린 여중생들의 불행했던 죽음을 위해 투쟁한 그가 자신의 어린 아들을 남겨둔 채 자살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지금도 당국의 설명을 납득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살아남은 우리들이 우선적으로 할 일은 그의 사인을 규명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그의 정확한 사인을 규명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남긴 일들, 그가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남긴 일들을 우리가 대신할 것입니다. 그가 이 땅에 살아있으면서 할 일들은 우선 가정적으로 가족을 부양하는 일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우리는 우선 부인 정영자님의 생계를 위해서, 그리고 그의 자랑스러운 아들 민국(6살)의 교육을 위해서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그가 못다 이룬 민주화를 위해 노력하여야 할 것입니다. 혹자는 지금 민주화가 다 된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듯 합니다. 민주화 기념사업회가 우리 정부의 기구로 있다는 것이 그것을 말해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민족자주를 위해서 그가 투쟁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미국으로부터 2차 대전이 끝나던 시점인 1945년부터 59년이란 세월이 흐르도록 우리 민족이 달성하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민족자주 독립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외세에서 아직 완전히 독립하지 못했고 해방된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많은 국민들은 1945년 전과 후가 다르지 않는 엄연한 사실을 느끼지 못한체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마치도 정상이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삶은 미국에 예속된 삶이지 독립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군사주권이 우리 독립되었다는 우리 대통령 손에 있는 것이 아니고 외세인 미국의 대통령 손에 있습니다. 우리가 자주 독립하지 않았다면 이를 불가능케 하는 자가 일본이던 미국이던 중국이던 그 어떤 나라도 민족도 반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비록 민족분단은 남- 미국 등 - 이 저질렀어도 민족분단의 극복은 우리 힘과 지혜로 극복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2차 대전이 끝나고 반세기가 흐르도록 독일도 통일을 기습적으로 달성했지만, 우리는 아직 민족통일을 이룩하지 못했습니다. 이는 정말 부끄러운 일입니다. 우리는 먼저 가신 제종철 열사를 본 받아 우리의 삶을 바로 그리고 굳굳히 가누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