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가 제종철을 말한다
2004.12.22. 7시, 종로5가 기독교 연합회관 2층 강당.
{어느 혁명가의 초상}(민중의 소리, 2004) 출판기념회 인사말

우리는 오늘 {제종철 평전: 어느 혁명가의 초상}이란 출판기념회를 하고 있습니다. 매우 희한한 일입니다. 제종철 동지의 출판기념회 같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를 위한 출판기념회는 되지만, 막상 그 자신의 출판은 아니고 그의 추모사업회의 이용대, 편재승, 이혁희 님의 그에 관한 글을 책으로 출판하여 출판기념회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 책은 그의 역작이 아닙니다. 젊지만, 그가 의문투성이의 죽음을 죽었기 때문에 그가 직접 쓸 수 없어 이렇게 제종철추모기념사업회를 1년 전에 설립을 했고 그 추모기념사업회에서 펴낸 책을 출판기념회를 하고 있습니다. 그는 비록 비명에 갔지만, 살아있을 때보다 오히려 죽어서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떤 훌륭한 일을 하고 있습니까?

첫째로 그는 정말 민중의 벗이었습니다. 이 책의 서두에 “죽어서 얻은 이름, 민중의 벗”이란 글을 쓴 김준기 선생은 책 이름을 현재의 {혁명가} 라기 보다는 {민중의 벗}으로 하고 싶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그는 생을 달관한 철인이었습니다. 다들 증언하는 것은 그는 온화한 표정과 매우 어울리게 어떤 환경에서도 ‘백만불 짜리 웃음’을 지닌 사람으로 인정했습니다. 또 그는 인생문제에 대하여 달관한 사람이었습니다.

둘째로 그는 이타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은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허술한 옷차림으로 다녔지만, 동지를 위해서는 돈을 아끼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의 ‘재정관’ 같은 곳.
이었습니다. 그는 돈에 대하여 ‘돈이 없으면 덜 쓰고 덜 먹으면 된다’ 제종철 수모사업회 엮음, {어느 혁명가의 초상}, 351.
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언제나 사람들을 잘 배려하고 잘 챙기는 것’ 위와 같은 책, 352.
이 특징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혁명가였습니다. 사실 그의 온화한 외모에 어울리는 것은 아니나 그는 현실을 변혁시키려는 강한 의지의 사람이었고 그는 가고 없지만, 수많은 제2, 제3의 혁명가 제종철이 나와서 이 한심한 한국의 현실을 변혁시키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그는 정말 ‘혁명가’였기에 이 책의 이름은 정말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혁명가는 정말 이러해야 한다고 할 정도로 유순한 인상에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의 필요를 잘 알고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이 책의 말미의 적절한 말을 인용하고자 합니다: ‘그가 들었던 촛불은 지금도 누군가 매일 들고 있으며 그가 누볐던 의정부의 거리로 또 다른 ‘혁명가’들이 내달리고 있다. 따라서, 그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라 지금도 씌여지고 있는 연재 같은 것이다.’5) 위와 같은 책, 366

지금 국가보안법 폐지를 열망하는 이 상황에서는 그 어느 때 보다도 혁명가 제종철이 필요한 때입니다. 적어도 제2의 제종철이란 혁명가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