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40주년을 금혼식으로
2004.12.19(일)


김영과 나는 1964년 12월 19일 정동감리교회 교육관인 젠센홀에서 김정준 박사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렸다. 그래서 부부가 되었다. 김정준 박사는 당시 우리 내외가 다니던 한신대 학장이었다. 우리가 결혼한 것은 우리가 신학교를 졸업하기 약 석달 전이었다. 그러니까 금년 12월 19일이 우리가 결혼한 지 꼭 40주년이 되는 날이다.
결혼 50주년이면 ‘금혼식’이라고 하여 성대한 잔치를 베풀지만, 결혼 25주년은 ‘은혼식’이라고 하여 적은 의미를 둔다. 그러나 요즘 같이 이혼율이 늪은 세상에서 은혼식을 맞이한다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은혼식도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40은 주로 기독교적 의미에서 중요한 수자이고 중요한 해이니 만큼 상당히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결혼 50주년을 금혼식으로 하면 결혼 40주년을 ‘은혼식’으로 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아니 그 반대로 결혼 40주년을 금혼식으로 하고 결혼 50주년을 은혼식으로 하는 것이 의미가 더 있을 것 같다. 60세에 환갑을 하고 70세 지역에 따라 다른 것 같다. 보통 70세를 ‘고희’라고 하여 자식들이 지켜주는 것이라고 하고, 61세에 진갑을 하는 곳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70세에 진갑으로 지키는 곳도 있는 것 같다.
에 진갑을 하듯이 말이다.
옛날 10대에 결혼하듯이 조혼하는 것이 아니고 요즘 같이 30세 가까이 되어 결혼하는 만혼이 유행이라면 결혼 50주년에 금혼식을 갖기란 사실 보통 사람들이게는 불가능한 경우가 많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평균연령을 70세로 보더라도 그렇다.
사실 한 여자, 한 남자가 서로 몸을 맛대고 잔지 40년이 된다는 것은 결코 예사로운 일은 아니다. 그것은 사적인 일은 결코 아닌 것 같다. 가정적이고 사회적이다. 그것이 결코 사적인 일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한 개인이 40년을 다른 같은 개인과 아내와 남편으로 함께 산다는 것이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니지만, 그 보다도 인류사회가 이어져 가는 것은 바로 그러한 가정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라는 지점에 이르러서는 이것이 사적인 일이 아니라 사회적인 일인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으리라.
성서에도 있지만, 사람이 혼자 살도록 창조되지 않았다. 적어도 장성한 남.녀 둘이 함께 살면서 부부를 이루고 가정을 이루어 함께 살면서 서로 사랑하고 위로하며 격려하도록 한 것이다. 이것이 천륜이고 성서에 의하면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나 물론 동성연애주의자나 독신주의도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에는 변함 없다. 게이들 - 또는 레스비안들 - 이 가정을 이루는 것은 후천적이 아니고 선천적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그러므로 어떤 인간이 동성연애자로 태어난 것은 자신의 책임 보다 구태어 책임을 따지자면 하느님의 책임이다. 그러므로 동성연애를 허용하여야 한다.
독신주의는 개인의 전문성을 추구하다 보니 결혼 적령기를 놓치고 또 시시한 남자나 여자로 인해 고생하는 것 보다 혼자 사는 편이 마음 편하다고 생각하여 독신주의가 되어 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정부가 결혼한 부부에게 세금 혜택을 주는 등 온갖 노력을 하고 있으나 별로 효과가 없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보면 현대 사회구조상 독신주의도 존중해야 할 것이다.
어쨌던 같은 상대끼리 40년을 함께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지만, 인류 보존의 법칙에서 보더라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러나 모든 인류가 동성연애자이고 독신주의로 가면 인류 역사는 곧 끝나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동성연애와 독신주의를 허용하는 문제와 그것이 유일한 인류사회의 법칙이 되어야 한다는 말은 별개의 것이다. 나는 전자를 존중하지만, 그것이 곧 후자를 부정하거나 배격한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후자를 부정하고 배격한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함께 산다는 것이야 말로 ‘불가능의 가능’이다 라고 표현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여기에는 한 쪽으로 부터의 희생, 보통 한국 - 보통 가부장적인 동양의 경우가 흔하지만 - 에 있어서는 여자 편에서의 헌신적인 희생이 있어 가능할 경우가 많다. 이는 하필 여성주의자(feminist)의 시각이 아니어도 수긍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며 이를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이렇게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함께 가야한다면 이 길을 선택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것이 또한 성서적인 관점일 것이다. 역사이래로 지금까지 여성에 비해 남성은 우수한 지위에 있었고 여성은 남성의 지배를 받아 왔다. 약자에게 관심하고 약자의 하나님은 바로 이러한 약자를 더 사랑한다는 것 - 소위 말해 ‘약자 우선적인 하나님의 사랑’ -이 성서의 중심적인 가르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