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비행과 어른의 모습


지금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연말연시 현실을 말한다면 아마도 국가보안법 폐지 문제를 둘러싸고 정가 뿐 아니라 시민단체들도 초미의 관심사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 한국 사회가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치라는 것을 모두 역행하는 그런 악법, 가령 예를 들면 반민주적, 반민족적, 반통일적, 반평화적, 반인권적 등의 수식어가 붙을 수 밖에 없는 악법을 폐지하지 못한다고 해서야 말이 되겠는가? 그것도 오늘 날 같은 냉전해체 상황과 탈 반공시대에서 말이다.
우리가 이 악법 중의 악법인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여야 할 또 한 가지 중요한 이유 - 가장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 는 젊은 세대를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우리는 시대의 변천에도 불구하고 언제까지나 반공을 부르짖을 수는 없다.

우리는 아주 충격적인 소식을 신문보도를 통하여 접하고 있다. 그것은 “남고생 수십명이 1년간 여학생들 집단 성폭행: 어른들의 죄” 한겨레2004년 12월 8일(수), 8.
라는 한 중앙일간지에 난 기사이다. 이 기사에 의하면 성폭행한 남학생 수는 41명이나 되고 피해자는 여학생 4명이나 된다고 하였다. 우리는 다 같이 이 엄청난 청소년의 현실을 보고 대경실색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소식을 보도한 김광수 기자는 “가해 학생들이 성인 포르노 흉내를 냈다는 말에 크게 놀랐다”는 말과 “성인 포르노 사이트에 완전 노출된 청소년 성범죄의 한 전형”이라고 말한 경찰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그의 글을 마쳤다.
여기서 우리가 관심하여야 할 것은 성인들이 성인 포르노를 즐기고 성인 포르노 사이트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어린이들이 T.V. 시청을 제한하고 단속한다고 하더라도 그런 사이트가 있는 한 보게 되는 것이다.
그 사이트를 어린이들이 보았다고 호들갑을 떨어봐야 소용 없다, 경찰 측에서 이 거대한 사건을 다룸에 있어서 마치 피해자가 범죄인인양 착각하는 식의 행동은 우리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피해자 가족들에게 욕설하는 것은 차치하고 피해당사자들을 무릅을 꿇게 한다는 등의 ‘대우’는 우리가 이해하기 어렵다.
그리고 경찰측에서 이 거대한 사건을 다룸에 있어서 마치 피해자가 범죄인인양 착각하는 식의 행동은 우리가 이해하기 어렵다. 피해자 가족들에게 욕설하는 것은 차치하고 피해당사자들을 무릅을 꿇게 한다는 등의 대우는 우리가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 자신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성공하는 생을 살면서 자식들은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은 ‘연목구이’와 같이 어리석은 일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먼저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런 도덕적인 사회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우리가 자식들에게서 그것을 바랄 수는 없다. 내가 믿는 예수님이 가장 싫어하신 것이 위선이다. 예수님이 보시기에 바리새파 사람들이나 율법학자들이 문제가 있었던 것은 그들이 위선적인 존재였다는 것이었다. 오죽하면 예수님이 그들 바리새파 사람들의 말은 그대로 들어야 하지만, 그들의 행실은 본받지 말라고 하셨겠는가? 우리 자신이 먼저 그런 부정한 사회가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비록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지만,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든 방법으로 출세와 성공을 거두려고 하고 부정부패를 일삼는다면 우리 사회에서 범죄를, 특히 청소년 범죄를 근절할 수 없다. 금년의 부정, 청소년들의 이탈 사건만 처벌하고 해결하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문제는 그들이 매일 듣고 보고 배우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고 그들이 살아야 할 세상을 어떤 세상으로 만드느냐에 달린 것이다.우리 나라의 대통령이 되면 감옥을 가야한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과거 대통령 가운데 그런 ‘도둑놈’이 많아서 그런 말이 생겼을 것이다. 사실 핸드 폰으로 수능 부정을 하는 학생들 모습이나 성폭행을 하는 청소년들의 비행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본다. 그렇다. 어린이들은 공부하는 기계가 아니다. 그들도 독립된 인격체이다. 우리가 어린이들을 독립된 인격으로 믿고 그렇게 대우하고 그들을 가르치기 전에는 이 사회에서 입시 부정이나 청소년들의 비행을 근절시키지 못할지 모른다. 이것은 형벌을 가혹하게 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우리 어른들이 얼마나 도덕적이 되고 얼마나 올바른 사람들이 되고 얼마나 바른 행동을 하는가? 에 달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