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진: 섬기는 사람들
(2004.11.26. 오후 5시 30분. 인천사랑병원 6주년 기념예배)
요한 13: 1-5, 12-20, 마태 20: 20-28

인천사랑병원의 6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오늘 향린교회의 목사인 조헌정 목사가 설교하도록 되어 있습니다만, 그가 가정 사정으로 갑자기 미국을 가야했기 때문에 오늘 제가 대신 이 자리에 섰습니다. 작년만 빼고 제가 매년 이 병원에서 설교한 셈입니다. 그러니까 은퇴하기 전까지 매년 이 병원에서 생일 기념 설교를 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요즘 정말 설교를 제대로 했는가? 하고 반성하고 있습니다. 조 목사님이 있었으면 했을 훌륭한 설교를 잘 할 수 있을까 저어기 걱정이 되면서 몇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기도합시다.

예수님은 목회 말기에 한 중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그가 이 세상에 온 것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고 섬기려 왔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이 말씀은 바로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 하는 것만이 아니고 기독교란 과연 어떤 종교인가 하는 것도 또한 말해 주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기독교는 어떤 종교입니까? 보통 ‘사랑의 종교’라고 특징지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하기에는 사랑의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표현인 ‘섬김의 도’로 이해합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구체적으로 사람들을 섬겼습니다. 그는 만민이 믿는 분이고 섬김을 받는 것이 마땅하지만, 그는 섬김을 받으려 온 것이 아니고 사람들을 섬기러 왔다고 그의 본분을 말하였습니다. 그는 친구 없는 자들의 친구가 되어 주었고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라고 했으며, 그는 사람들의 온갖 병을 고쳐주시고 배고픈 사람들을 먹이는 등 구체적으로 사람들을 섬김으로써 도와주었습니다.
그는 특히 오늘 요한복음 본문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보이셨습니다. 특히 14절 이후 16절까지를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발을 씻긴 이유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스승이며 주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어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너희도 그대로 하라고 본을 보여 준 것이다. ..이제 너희는 이것을 알았으니 그대로 실천하면 축복을 받을 것이다.”(요한 13: 14-16)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시고 있는 대로 “종이 주인보다 더 나을 수 없고 파견된 사람이 파견한 사람보다 더 나을 수는 없”듯이 스승이요 주인 예수님은 섬김을 받아야 하는 대도 불구하고 오히려 자신을 낯추어 제자들의 더러운 발을 씻겨 스스로 섬기는 자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본래 목사나 집사란 말의 원어는 섬긴다는 의미의 말입니다.

저는 최근에 책을 한 권 읽었습니다. 그것은 한 후배 목사가 좋다고 읽으라고 준 책입니다. 그래서 저는 최성현님의 {일화와 함께 보는 장일순의 글씨와 그림: 좁쌀 한 알}이라는 최근에 나온 좀 색다른 제목의 책을 읽었습니다. 평소에 알지 못하던 강원도 원주의 장일순 선생에 관한 책입니다만, 그는 이 책에서 ‘...신부나 목사에게는 신도가 하느님이다’는 매우 흥미로운 관찰을 하였습니다. 그는 같은 책에서 ‘자네 집에 밥 잡수시러 오시는 분들이 자네의 하느님이여...’ 최성현, {좁쌀 한 알}(2004.5. 도울 출판사), 46.
라고 말하였습니다.
정말 맞는 말입니다. 아브라함도 손님들을 대접했는데 그 중 한 분이 바로 하느님이었고 그래서 아브라함은 본의 아니게 하느님을 대접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하느님은 우리가 기대하는 다른 분이 아니고 우리들 옆에 살고 있는 같은 인간, 그 중에도 아주 보잘 것 없는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마지막 심판 떼에 모든 인간을 염소와 양으로 나누고 양은 오른 쪽에, 염소는 왼쪽에 둔다는 것입니다. 오른 쪽의 양에 대해서는 축복의 말씀을, 왼 쪽에 있는 염소에 대하여는 저주의 심판을 내린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른 쪽의 양들을 향하여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사람들아, 와서 창세 때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한 이 나라를 차지하여라’라는 축복의 말을 하고 있습니다. 축복의 이유를 ‘너희는 내가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로 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병들어 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고 했습니다.
물론 주님이 언제 굶주리고 목말라하였으며 나그네 되었고 감옥에 갔을 때 도왔습니까 라고 물었을 때 주님은 ‘여기 있는 지극히 작은 자 한 사람에게 한 것이 바로 나에게 한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염소를 향해서 비판하고 심판했을 때 그들은 물론 양들과 같은 질문을 하였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역시 중대한 말씀,, ‘여기 있는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안 한 것은 곧 나에게 안 한 것이다’고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이 우리 인간 중 가장 작은 자와 자신을 동일시했다는 사실입니다.
여기 우리가 주목할 것은 믿음이란 제도적인 교회에 충성하고 어떤 교리나 율법을 잘 지키는 것이 아니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기준입니다. 구약성서는 율법의 책이라고 할 만큼 율법이 많은 것 같습니다. 성서에서 ‘하지 말아라,’ 또는 ‘하라’는 계명이, 어떤 분이 헤어보니까, 6백 여개가 더 된다고 했습니다. 제 자신 그것을 헤어보지는 않았습니다만, 하여간 그 수는 많고 대부분은 오늘 우리들이 지킬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그 구약성서에서도 하느님은 자신의 종, 미가라는 예언자를 통하여 가르치기를 ‘이 사람아, 야훼께서 무엇을 좋아 하시는지 무엇을 원하시는지, 들어서 알고 있지 않느냐? 정의를 실천하는 일, 기꺼이 은덕에 보답하는 일, 조심스레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일 그 일 밖에 무엇이 더 있겠느냐?’(미가 6: 8)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보는 하느님의 모습은 예수님이 보여주신 하느님의 모습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들이 이기적인 존재들이 되어 자신이 손해 날 일은 조금도 하지 않고 이익을 위해서 사생 결단하는 인간 타입은 정말 기독교인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어떤 사람은 과학자와 기독교인을 비교하여 관찰한 결과 과학자는 평소에는 매우 어리석고 바보같은 사람이지만, 실험실에 들어가면 한치의 에누리도 없으나, 기독교인들은 예배할 떼에만 거룩하고 선한 사람이 되지만, 평소에는 에누리 없는 이기적인 존재였다는 것입니다.

병 치료를 위해 이 벙원을 왔다가 우리 인간을 섬기러 왔다고 말하는 예수님을 만난다면 더 이상 좋을 것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 말에 ‘금상첨화’란 말이 있습니다만, 정말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병원은 몸이 아픈 사람들이 오는 곳이고 이 병원도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이 병원을 찾는 많은 사람들은 의사와 직원들, 오늘 이곳에 6주년 기념예배에 오신 분들과 같이 건강한 사람도 없지 않겠지만, 대게는 몸이 아픈 사람이 방문하는 곳입니다. 그러나 신앙적인 차원에서 말한다면 만일 예수를 만나서 정신의 병, 또는 영혼의 병을 치료받고 구원을 받는 다면 이에서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입니다.
제 자신 얼마 전에 이 병원에서 신체검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제 아내도 이 병원에서 신체검사를 받았습니다. 물론 원장의 부탁도 있었겠지만 두 번 다 매우 친절한 것을 경험했습니다. 지금은 미국에서 목회하고 있습니다만, 제 아내가 이 병원에서 얼마나 친절했던지 지금도 기억하고 그 바쁜 중에 선물까지 사서 보냈습니다.
그러니까 이 병원을 왔다가 정신적인, 혹은 영혼의 치료를 받는다면 더 이상의 축복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병원은 필수사항이 아닌 원목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앞에서 인용한 장일순 선생과 같은 생각을 벌써 100 여년 전에 가졌던 종교인이 있습니다. 그가 동학의 교주였던 최재우 선생이었습니다. 그는 이 세상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하늘 같이 생각하고 섬기라는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그는 그 당시 인종차별 폐지를 아주 과격한 방법으로 시행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집에 하인으로 있던 사람을 며느리로 삼은 것은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정말 기독교는 섬김의 도입니다. 신학이 있다면 섬김의 신학, 봉사의 신학일 것입니다. J. 칼로는 에수님의 섬김,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일에 관해 ‘섬기는 사람의 기도’ 홍근수, 기독교는 민족의 희망인가?(도서 출판 세훈, 1997), 147-48
를 우리에게 남겼습니다. 마지막으로 그의 기도를 인용하겠습니다:
“스승이면서 모든 이의 종이 되신 예수님!
섬기는 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타인을 밟고 올라서려는 욕망을 버리고
이웃의 필요에 응답하는 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이웃의 소원이나 바램을 알고 이를 채워 주는 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도움을 청하는 사람에게 즐겨 도움의 손길을 펴 봉사하는 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모처럼의 봉사가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지 않도록 기쁘게 봉사하는 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마음 내키지 않는 일을 받아들이고 이웃이 즐기지 않는 임무까지도 자진해서 이행하게 해 주십시오. 하찮은 봉사라도 이웃을 위한 하나 하나의 행위에 자신을 온통 쏟을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이웃의 행복만을 바라고 봉사할 때에는 자신을 잊으며 갚음이나 감사를 바라지 않는 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형제 (자매) 한 사람에게 한 것은 내게 한 것이다’ 라고 말씀하신 예수님, 형제 (자매)를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주님을 섬기고 주님께 마음 바치는 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아멘.”(J. 칼로)

“지역주민과 함께 호흡하는 문턱 없는 젊은 종합병원으로, 지역주민의 병원, 지역공동체 병원으로, 의료와 복지를 통합적으로 실현하는 병원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병원으로”를 이 병원의 본분으로, 사명으로 규정하는 인천사랑병원은 분명 섬김의 도를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병원입니다.
우리는 칼로의 ‘섬기는 사람의 기도’를 다 같이 반성해 볼 일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천상의 어떤 거룩한 신적인 존재라기 보다도 내 옆에 있는 인간인 존재, 그 중에도 우리의 섬김이 필요로 하는 지극히 작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반성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