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김경희입니다.

저는 텔레비전 드라마를 쓰는 사람입니다.

열일곱 사춘기 때 저의 꿈은 마흔에 작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작가가 되기엔 저는 너무도 부족하고 형편없다고 생각했기에, 그 때까지 살아보면 적어도 한 줄은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소망에서였지요.

그토록 저는 어릴 적부터 심한 열등감과 자괴감에 빠져 늘 마음이 어둡고 괴로웠습니다. 하지만 그런 열등감과 자괴감은 또 다른 나르시시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못나고 부족한 스스로에게 화가 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세상이 어리석어 저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 때 저의 유일한 친구는 하느님이었습니다.

‘하느님, 하느님은 아시죠, 제가 그렇게 형편없지는 않다는 걸요.’ 라고 말이죠.

그렇게 밤마다 잠자리에 들 때마다 전 하느님과 만났고 그 버릇은 아직도 여전합니다.

그저 허심탄회하게 시시콜콜한 고민도 털어놓고 사소한 악행도 고백하고 반성하며 작은 것에 감사도 하고 원하는 것을 빌기도 했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저는 이러한 하느님과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아주 사적인 신앙을 키워왔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가족 중 아무도 종교를 갖고 있지 않아 저 혼자 성당에 다니는 친구를 따라 성당에 다니기 시작한 게 중학교 시절부터입니다.


하지만 역시나 대학에 가서 사회과학을 공부하고 운동하는 무리 틈에 섞여 있다 보니 종교에 관한 회의와 의심이 들었고 제 신앙 자체가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러다 어떤 결론도 내릴 수 없던 저는 연애에 몰두하며 청년의 에너지를 모두 불태워버렸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치열한 연애도 저의 근본적인 마음의 불안과 상처를 치유해주지 못했고 인생의 이정표도 찾아주진 못했습니다.


그렇게 다시 방황하다 찾은 것이 바로 글을 쓰는 일이었습니다.

방송사 공모에 당선이 되었을 때, 그 기쁨과 환희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사춘기 적 수줍은 꿈이 십년이나 일찍 이루어졌으니 말이죠. 정말 최고였죠. 하지만 제 인생의 그래프는 바로 하향곡선이었습니다.


그 이후 전 총알과 대포가 난무하는 방송판이라는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해 정말 앞뒤 안보고 전투적으로 살았습니다. 하느님은 생각할 겨를도 없었고 남을 이기지 못해 안달했고 시기와 질투로 괴로워했으며 가족이나 친구조차 시간과 에너지를 뺏는 걸림돌이었습니다.

앞이 절벽임을 알면서도 지금 달리는 이 말의 고삐를 멈출 수 없는, 그런 심정으로 몇 년을 보내다 벼랑 끝에서 그제야 하느님을 찾았습니다. 제 손을 잡아달라고요.


이것은 제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어도 저의 근본적인 문제이자 어쩌면 모든 인간의 한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사실 전 지금도 두렵습니다. 언제 또 이 잡은 두 손을 뿌리치고 절벽 밑으로 달려갈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 향린을 만나고 같은 데를 바라보며 함께 가는 여러분이 있어 작은 위안이 됩니다.

향린의 정신을 ‘청년 예수’ 라고 했던 부분에 큰 공감이 갑니다.

저 역시 여기 와서 저의 청년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삶에 대해 치열했고 ‘나’ 가 아닌 ‘우리’ 를 생각하고, 끊임없이 어떻게 살아야하는가를 고민했던 그 때... 

그 정신으로 수많은 향린의 청년예수들과 두 손 꼭 잡고 가고 싶습니다. 그 길이 비록 예수가 간 고난의 십자가 길이라도 절벽은 아닐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