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울을 밤낮으로 조사하면서 그 왕궁과 빈민가를, 빛바래가는 왕조의 광휘와 형용할 수 없이 궁핍한 삶을 보았다. 나는 또 목적없이 빈둥거리는 군중들과 그들의 중세적인 행렬을 보았다. 나는 서울의 군중들에서 오랑캐의 문화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완강한 행렬, 이제 막 태동하고 있는 중세를 해체시키려는 세력들의 면전에 좁은 길을 가득 메우고, 그들의 예법과 관습과 중세적인 군주국의 수로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안타까운 몸부림을 하고 있는 행렬을 본 것이다. 고백하건대 나는 그 행렬의 진가를 깨닫기까지 1년이 걸렸다. 그리고 인구 25만으로 추정되는 이 서울이라는 도시가 세계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수도를 가운데 하나이며 이만큼 좋은 입지조건을 가진 수도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성벽은 그것이 서 있는 언덕만큼이나 견고하게 보이도록 설계되었는데, 영국 영사관의 무관인 폭스씨의 조사에 의하면 7.5~ 12미터에 이르는 높이에, 총연장 22.5킬로미터의 길이를 가지고 있다. 성벽을 따라 끝까지 총안(銃眼)이 나 있으며, 이중, 삼중의 겹처마 기와지붕을 가진 높은 문루가 서 있는, 견고한 아치 혹은 석조 터널의 튼 성문이 8개 있다. 성문들은 무거운 빗장이 걸리고 겉에 쇠를 입혀 보강한 중국양식의 거대하고 무거운 나무문으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굳게 닫혀 있다. 이 문들의 이름은 "의로움을 돈독히 하는 문(돈의문)", "예의를 숭상하는 문(숭례문)" "휴머니티를 일으키는 문(흥인문)" 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성벽 밖에는 매혹적인 시골 풍경이 있어서 군데군데 언덕이, 숲이 우거진 골짜기가, 왕실의 거대한 무덤들이 있는 구릉과 무덤을 둘러 싼 소나무들이, 과수원과 밭의 경작지들 사이 로맨틱한 위치에 들어앉은 마을들이 나타난다. 유럽에는 서울처럼 근교에 조용한 산책을 즐길 수 있는 시골 마을이 있고, 도시의 허황한 만남으로부터 금방 달아날 수 있는 가까운 숲의 고독이 있는 도시가 없다. 또 한마디 덧붙이고 싶은 것은 유럽에는 서울처럼 치안이 잘 유지되어 여자들이 남자의 에스코트를 받지 않고도 자유롭게 나다닐 수 있는 도시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나 자신이 성벽 밖의 모든 곳을 어떤 사소한 불상사도 겪지 않고 돌아다니면서 직접 깨달은 것이다.

남산의 아름다운 언덕이나 고색창연한 궁궐 후원의 언덕에서 서울은 가장 멋있게 보인다. 매우 헐벗긴 했지만 여기저기에 검은 소나무의 그림자가 보이고 산들이 사방을 에워싸고 도시의 곳곳에 그 줄기를 드리우고 있다. 이 산들 사이에 길이 8킬로미터, 너비 4.8킬로미터나 되는 분지가 있으며 이 분지에 약 20만이 넘는 사람들이 깃들어 복닥거리고 있는 것이다. 위에서 내려다 보는 서울시는 그야말로 나즈막한 연갈색 초가지붕의 바다다. 나무 울창한 숲도, 광장도 없는 단조로운 풍경이다. 이 연갈색 바다위에 날아갈 듯한 팔작지붕을 단 문과 회색의 드높은 담장을 한 궁궐이 떠 있다. 그리고 그 안에 다양한 전각들이 우아한 곡선의 지붕을 이고 모여 있다.

3월초 처음 서울을 방문하여 남산에서 종로를 내려다 보았을 때 나는 종로를 그 전 해에 내린 눈더미가 아직 치워지지 않은 채 쌓여 있는 좁은 골목들의 미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알고 보니 종로는 길 가운데 두 줄로 늘어선 시전 상점들에 의해 교란되었을 뿐 원래는 거대한 하나의 도로였다. 또 눈더미처럼 보이던 그것은 빨래라는 한국 여인들의 그 지칠 줄 모르는 노동이 이루어놓은 하얀 한국 두루마기의 물결이었다.

이 세 개의 대로에는 흰 도포를 입고 검은 갓을 쓴 군중의 물결이 좀처럼 끊이지 않는다. 이 군중들에게 볼 일 없는 날이란 좀처럼 없어 보인다. 군중들의 대부분은 '양반'이라 불리는 귀족 계층이다. 철저한 예법의 규율은 양반으로 하여금 공식적인 혹은 개인적인 대소사들에 불참하는 행위를 용납하지 않는다. 그들 중의 대부분은 더 나은 혈친관계를 위래 꾸준히 노력함으로써 자신의 지체를 유지하는 사람들이다. 평민층의 어린이들은 그들의 거만한 표정과 팔자 걸음을 흉내내면서 깔깔거리기도 한다.

골목길은 먼지를 뒤집어 쓴 개들의 천국이다. 모든 가정집들이 개를 기르고 있으며 가정집 담마다 개가 기어나갈 수 있는 개구멍이 있다. 개들은 서울의 쓰레기를 상당부분 해결해주는 청소부이며 필수불가결한 가축이다. 개 짖는 소리는 영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도둑의 침입을 알려준다. 한국의 개들은 매우 용감하고 거칠다. 개들은 이방인들을 보면 맹렬하게 짖으며 덤벼드는데 그때마다 나는 그들을 우산으로 두들겨 패서 쫓아야 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개들은 친구도, 가족의 일부도 아니다. 한국인들은 개들을 몽둥이로 때려 죽여 봄이나 여름철에 식용으로 먹기를 좋아한다. 한국어에서 개는 철저한 경멸의 말, 혹은 욕설, 상소리에 나타나는 접두어이다.

나는 이미 빨래를 하고 물을 긷는 하층계급의 여인들에 대해 설명한 바 있다. 이들 중의 대부분은 가정의 노예이며, 한국에서는 여성들 모두가 최하층계급의 일원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한국 여성은 다른 어떤 나라의 여성들보다도 더 철저히 예속적인 삶을 꾸려가고 있다. 그런데 이와 관련하여 수도 서울에서 흥미로운 제도가 실시되고 있다. 저녁 8시경이 되면 대종(大鍾)이 울리는데 이것은 남자들에게 귀가할 시간이라는 알려주는 신호이며 여자들에게는 외출하여 산책을 즐기며 친지들을 방문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거리에서 남자들을 사라지게 만드는 이 제도는 때로 폐지된 일도 있었는데 그렇게 하면 꼭 사고가 발생했으며 그로 말미암아 폐지되었던 제도가 더욱 강력하게 시행되었다고들 한다. 내가 처음 서울에 도착했을 때 깜깜한 거리에는 등불을 들고 길을 밝히는 몸종을 대동한 여인네들만이 길을 메우고 있는 진기한 풍경을 볼 수 있었다. 그밖에는 장님과 관리, 외국인의 심부름꾼, 그리고 약을 지으러 가는 사람들이 통행금지에서 제외되었다. 이러한 제도는 범인 도피에 악용되기도 하며 어떤 자들은 일부러 긴 지팡이를 짚고 장님 흉내를 내기도 한다. 지정이 되면 다시 종이 울리는데 이때면 부인은 집으로 돌아가야 하고 남자들은 다시 외출하는 자유를 갖게 된다. 한 양반가의 귀부인은 아직 한번도 한낮의 서울 거리를 구경하지 못했다고 나에게 말하였다.

서울 밤의 정적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사람의 소리란 전혀 들을 수 없었고 거리에는 어두움이 덮여 창틈으로 흘러나오는 불빛조차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이렇듯 깊은 고요는 대종의 요란스러운 소리가 진동하듯 울리는 이른 새벽에 비로소 끝나는 것이다. [인정(人定)과 파루(罷漏)에 치는 대종소리와 또 그에 부수된 남녀 구별의 통행금지에 관한 비숍 여사의 이 증언은 이미 연구자들에 의해 고증된 바 있다/역자 주]


- 이사벨라 버드 비숍,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