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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모임]<녹색희망-아직도 생태주의자가 되길 주저하는 좌파 친구들에게>(알랭 리피에츠, 박지현?허남혁 역, 이후, 2002)

"정치적 생태주의, 이는 이성의 겸손이며 의지의 포부이다"

청신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주일 아침 책읽기 모임에서는 이번에 알랭 리피에츠의 <녹색희망>을 읽었습니다. 한국의 정치적 녹색운동을 비롯해 개인과 공동체의 생태적 삶에 대해서 고민할 수 있었던 더없이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임이 단순히 함께 모인 몇 사람들만의 모임으로 그치지 않고 향린공체 안의 많은 참석치 못하신 분들과도 그 내용을 공유하고 논의를 확장시키기 위하여 간단하게나마 책과 모임의 내용을 정리하고 나누기를 원합니다. 이미 읽어보신 분들은 논의를 보태어 주시고 잘못 해석한 부분이나 빠뜨린 중요한 부분들을 지적해주십시오. 혹은 이 후기를 보신 후 책을 접하게 되는 분들은 차후에라도 후기를 덧붙여나가면 더 열린 책읽기 모임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알랭 리피에츠의 <녹색희망>은 이미 10여 년 전, 동구권 사회주의 몰락과 함께 자본주의가 확장되는 유럽사회에서 양극화와 사람을 비롯한 환경 소외현상이 심화 되는 것을 우려스럽게 바라본 정치적 생태운동가의 글입니다. 우리가 환경을 발전과 욕망의 대상으로 만드는 동안 알게 모르게 우리 옆의 타자들도 그렇게 다루도록 교육되었고 이는 결국 우리 자신들과 미래세대의 소외로 귀결되었습니다. 그는 이제 이 문제들을 개인-만인-환경-미래세대가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상반된 이해관계를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사람들을 고려하는 대면적 참여 민주주의, 개인의 자율성과 연대, 생명과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성과 같은 기본적 가치들을 발전시키며 해결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적색운동이 아우르지 못했던 여성적, 생태적 가치들을 정치적 생태주의가 극복할 수 있으므로 좌파운동이 정치적 생태운동으로 옮겨가길 강한 어조로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가 말하는 생태주의자의 가치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기회 균등'을 넘어서 매순간 각자가 스스로의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각 나라의 특정 개인이나 사회 계층의 소외를 거부하는 연대성.
2. 작업장, 농촌, 또는 사무실, 그리고 자신들의 지역에서 스스로의 활동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살펴보고 그 결과를 통제할 수 있는 자율성.
3. '필요 지향'보다는 욕구를 자제하면서 항상 지구상의 생명체들의 이해관계와 미래세대의 권리를 고려하여 이를 충족시키는 방법을 선택하는 생태적 책임성.
4. 서로 다른 요구 사이에서 빚어지는 갈등을 평화적으로 절충할 수 있는 해법을 체계적으로 찾아나갈 민주주의.

이러한 가치들을 실현하는 방법으로 그는 다음의 내용들을 제시합니다.
1. 효율성과 생산물의 질적 향상을 달성하기 위한 인적 자원의 합의된 동원.
2. 사고와 질병에 맞서는 싸움, 인간환경공학(ergonomics), 폐기물 재활용, 노동공동체가 습득할 수 있는 숙련을 우선 순위에 두는 것.
3. 진보의 지표이며 실업과 맞서 싸우는 무기로서 자유시간의 확대에 우선 순위를 두는 것, 고소득자들의 파괴적인 소비 행위에 대한 일정한 제재와 최저 소득자들에게 유리한 균형을 추구.
4. 삶의 온갖 위험들을 상쇄시킬 수 있는 강력한 수준의 소득 사회화, 모든 사람들의 소득에 대한 권리 인정과 소외된 사람들의 사회 재편입
5. 기술 및 자금 지원 등을 통한 지역 발전, 지방정부의 창업 보조, 지역의 주도권에 대한 강조
6. 민주적이고 생태적이며 사회적인 유럽의 새로운 재출범
7. 제3세계 부채를 탕감하고 기본적인 협력계약에 서명하여 각 국이 스스로 지속가능한 발전 모델을 정의할 수 있도록 지원함으로써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고장에서 살면서 일할 수 있는" 권리 보장.

그가 제시하는 생태운동가의 가치나 문제 해결 방법들은 지극히 유럽적 경험과 배경에서 나온 것이기는 하나, 멀리 아시아에서 환경(단순히 ‘자연’만이 아닌 우리들을 둘러싼 환경) 착취를 담보로 하는 경제발전과 신자유주의 가치들을 서구사회보다 더 신봉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유용한 대안적 가치와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자는 한국에서의 정치적 생태운동이 즉시 독자적인 환경정당으로 이어지는 것에는 회의적입니다. 그전에 한국의 진보진영에서 환경 이슈에 대한 사회적, 정치적 고민이 좀 더 커지는 것, 즉 부차적인 정치 의제에서 주 의제로 끌어올려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녹색평론> 김종철의 주장(오마이뉴스, <이명원의 좌우지간>2007.12.02)과도 맥을 같이 합니다. 프랑스나 독일에서 녹색당이 창당되고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사민당, 사회당과 같은 제도권 좌파정당이 있었기 때문인데 그런 배경이 없는 한국에서 녹색주의 정당은 자칫하면 보수화, 우경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 유럽의 녹색당이 창당될 때의 배경은 지금과 같이 심화된 신자유주의적 배경이 아니었다는 점, 또한 현재의 진보정당들이 이미 녹색당이 내걸만한 좋은 정책이나 구호들을 가져다 쓰고 있는 이상(물론 부차적인 수준에서) 녹색당만의 목소리 즉, 경제지상주의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내야 하는데 이는 한국사회에서 표를 얻을 수 없다는 점 등이 그 이유입니다.

그는 간디가 생각했던 촌락공동체와 같은 풀뿌리 자치공동체를 고민해봐야 할 때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정직하게 비관합니다. 우리에게 강요하고 있는 물질적 부의축적이라는 권유는 허구적일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생존 자체를 불가능하게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동시에 대의제 민주주의 체제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자치능력을 국가권력에 위임함으로써 무력화시키고, 좋은 삶에 대한 인간의 오래된 비전을 궤멸시키려는 역기능을 초래하고 있다고.

이번 책읽기 모임의 마지막은 이 두 가지 텍스트를 가지고 종합해서 이야기 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녹색희망>의 저자나 김종철의 말이 현실성 없고 책임감 없는 달나라 이야기는 아닐까라는 질문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론은 현실을 비관하고 있는 듯한 김종철이나 알랭 리피예츠 둘 다 사실은 변화에 대한 희망을 품고 각자의 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며, 아무리 그 이야기가 먼 달나라 이야기처럼 들릴지라도 하지 않는다면 그곳에 달나라가 있는 줄 아무도 모르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이 할 일은 이성적인 현실인식과 함께 달나라의 존재를 알리고 그 곳으로 가는 방법을 꾸준히 논의하고 실험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 책읽기모임의 텍스트는 <인권의 문법>(조효제, 후마니타스, 2007) 입니다. 인권의 문법을 공부하고 인권예배를 어떻게 만들어 볼지에 대해서 청신들이 함께 고민해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생각을 해봤습니다. 많은 분들이 독서모임에 함께 할 수 있길 바라며, 함께 할 수 없더라도 여러 가지 방식으로 공동체 안에서 공유되었으면 하는 작은 바램입니다.

(청신 신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