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위원회 안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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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한 가난한 동네에 있는 공부방인 꿈터에서 사진 한 장을 받아들었다.
공연이 끝나고 무대 위에서 촬영한 기념사진이었다.
여자 어린이들은 예쁜 드레스를 입고, 입가에는 함박웃음을 머금은 채,
손에는 꽃다발을 들고 있다. 남자 어린이들은 흰색 와이셔츠에 나비넥타이를 매고,
장미꽃 한 송이 씩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 속 어린이들은 마치
하늘나라에서 내려온 천사들 같았다. 어린이들 생애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이
간직된 사진이었다. 나비넥타이, 턱시도, 예쁜 드레스 모두 태어나 처음으로
입어본 것들이었다.
공연은 그 자체가 감동이었다. 어린이들은 그랜드 피아노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을 연주 했고 드럼과 기타로 ‘마법의 성’을 연주했다.
‘거위의 꿈’을 합창으로 불렀다.
‘그래요 난, 난 꿈이 있어요 그 꿈을 믿어요 나를 지켜봐요’를 부를 때는
모든 어린이가 울었다. 이를 구경하던 부모도 울었고, 지도한 선생님도 울었다.
공연장은 눈물바다가 되었다.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지적 장애인인 어린 소녀의 피아노 연주였다.
그 소녀는 그랜드 피아노 앞에 앉았고, 건반을 누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잘했으나 계속 틀렸다. 소녀의 손가락은 건반 위에 멈췄고,
이를 구경하는 친구들과 선생님, 그리고 학부모들은 애를 태웠다.
사람들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소녀는 틀린 부분을 찾아 바르게 쳤고,
끝까지 차분히 연주를 마쳤다. 곡이 끝나자마자 친구들과 선생님 그리고
학부모들이 모두 일어나서 환호성과 함께 기립박수를 쳤다.
지적 장애 소녀가 피아노 한 곡을 다 마친 것이다. 문화 예술교육이 갖고 있는
위대한 힘이 발휘된 것이었다. 그 소녀의 어머니는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꿈터 어린이들이 살고 있는 곳은 지금은 아파트가 들어섰지만 예전에는 변두리로
어려운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이었다. 이런 모습은 지금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어린이들의 부모는 대부분 하루씩 벌어서 먹고 사는 사람들이고,
적잖은 어린이들이 편부나 편모 밑에서 크고 있다.
어린이들은 어려운 환경 때문에 문화적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어린이들 소원은 피아노를 배우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 달에 7만~8만원씩이나 하는
교습비를 내며 음악학원에 다닐 수 있는 어린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러한 모습을 지켜본 어떤 부부가 발 벗고 나섰다.
우선 공부방 꿈터를 만들어 어린이들을 모았다.
어린이들에게 꿈을 키워주고, 자신감과 자존감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문화예술교육을 해야 한다는 결심을 하고는 사방팔방으로 뛰어 다녔다.
다행히 어떤 이웃이 그 이야기를 듣고는 쓰던 피아노를 기증하였다.
장소도 마련하였고, 이젠 가르칠 선생님만 모시면 되었다.
그러다 우연히 알게 된 것이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의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이었다.
꿈터는 즉시 사업신청서를 제출했다. 다행히 진흥원 측에서 지원해주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꿈터 식구들은 날아갈 듯 기뻤다.
작은 꿈을 이룰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봄 여름 가을 동안 선생님들은 열심히 가르쳤고, 어린이들도 열심히 배웠다.
그 무덥던 여름날에도 결석자는 한 명도 없었다.
단풍이 빨갛게 물들던 늦가을 어느 날, 교육의 결실을 나누고자 음악회를 열었다.
장소는 대학 강당이었다.
공부방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어떤 교수가 강당을 쓸 수 있게 다리를 놓아줬다.
어린이들은 그곳에서 꿈에 그리던 공연을 하게 된 것이었다.
꿈터는 올해 베토벤바이러스를 신청하였다. 드라마 영향이 컸다.
드라마 속 이야기처럼 작은 교향악단이 꿈터에서 만들어지고,
모든 어린이가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될 것 같다.
문득 한 어린이가 공연을 마치고 느낀 소감을 적은 글이 생각난다.
“공연을 마치니 너무 뿌듯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공연을 잘했다고
엄지손가락이 열개 있다면 열개 다 위로 올리고 싶었다. 밖은 추웠지만
별들이 잘했다고 박수를 치듯 반짝거렸다. 오늘 하루가 꿈만 같다.”
백형찬 서울예술대 교수[매일경제-테마진단, 2009년 3월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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