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누가 23장 46절~49절
진리를 깨달은 제자, 의리를 지킨 친구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하고
이를 구경하러 모인 무리도 그 된 일을 보고 다 가슴을 치며 돌아가고
예수를 아는 자들과 갈릴리로부터 따라온 여자들도 다 멀리 서서 이 일을 보니라
[말씀 살펴보기]
유다인들의 고전적인 사형제도는 돌로 치는 것이다. 간음하다 붙잡혀 온 여인을 보고 군중들을 향해 ‘너희 중에 죄없는 자가 돌로 이 여인을 치라’고 한 예수의 말이나 돌을 맞아 죽은 초대교회 집사 스테반의 죽음 등이 그렇다.
그런데 예수는 십자가형으로 사형을 당했다. 십자가형은 로마의 형벌로 초기에는 주로 노예나 외국인, 반란을 일으킨 자들에게 내려졌고 후기에는 주로 정치범들의 사형 방법으로 사용된 극형 중 하나였다. 예수가 십자가형을 받았다는 것은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즉 예수에게 십자가형을 선고한 세력들은 어떤 이유에서든 예수와 그의 동행자들의 행동에서 정치적인 위기의식을 느꼈다는 것이고 또 지도자였던 예수를 극형으로 처벌해 그 지도자를 따르던 운동과 흐름의 맥을 근본적으로 말살하겠다는 상징적인 의미도 있다. 그 방법은 성공했고 실제로 예수가 재판을 받기도 전에 체포되고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예수를 따르던 제자들은 흩어져 도피했고 예수를 지지하던 군중들은 침묵했거나 이탈하거나 또는 희롱하고 모욕하는 군중들과 합세하게 된다. 드디어 예수의 십자가형이 집행되던 날 예수의 죽음의 증언자들이 된 사람들은 예수를 아는 익명의 군중들과 갈릴리에서부터 따라온 여성들이었다.
[말씀 묵상]
골고다 해골 골짜기. 자신에게 도전하고 저항하는 모든 외침들을 철저히 못 박는 절대 권력만이 생존하는 공간이다. 갈릴리에서부터 예루살렘까지 예수와 동행한 여인들에게 예수의 체포 소식은 청천벽력이었다. 바로 온 몸에 전율이 흘렀다. ‘이것이었구나. 바로 이것이었구나! 선생님께서 그토록 고뇌하며 이야기 했던 죽음이라는 것, 십자가라는 것이 바로 이것이었구나. 선생님은 당신이 이렇게 죽을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베드로가 말렸을 때 화까지 내시더니. 그리고 우리에게도 각자의 십자가를 지라고 하던 예수.’
왜 일까? 예수는 왜 저리도 무력하게 십자가 위에서 처절하게 죽어가는 걸까? 그는 결코 어떤 권력도 지위도 명예도 원하지 않았었다. 그는 빼앗지도 않았고 폭력을 사용하지도 않았다. 그저 하나님의 나라만을 이야기했고 병든 사람들을 고쳤고 귀신들을 내어 쫒았으며 왜틀어지고 상처 받고 소외당하는 사람이면 부자 던 가난한 사람이던, 귀족이던 창녀든 차별하지 않고 친구가 되었다. 배고픈 자에게 먹을 것을 주었고 배부른 자들은 자신 것을 나누어 주도록 하신 분. 제자들에게도 서슴없이 친구가 되겠다고 하신 그 분이 그렇게 죽어간다. 왜 예수님은 이 십자가를 용납한 걸까? 정말 피할 수 있었던 길이 없었던 걸까?
로마와 권력의 수혜자들은 이렇게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였다. 그리고 그 외 더 많은 사람들, 한 때 예수님의 능력에 놀라 그를 따랐던 사람들까지 이제 조롱하고 야유하는 저 무리들 안으로 들어갔다. 예수님의 인정을 받으려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겠다고 호언장담하던 남자들은 모두 도망갔다. 그래 그러리라. 어떠한 상황이 되어도 예수님의 곁을 떠나지 않겠다. 내 눈으로 똑똑히 보고 모두 전하리라. 그리고 예수님의 죽음의 과정에 드러난 각각의 사람들의 모습에서 나는 어디에 서 있을 것인지 끝없이 질문할 것이다. 언제나 이렇게 죽음의 자리까지 예수님을 따를 수 있을 것 인가?
[도전 받기]
1. 예수의 죽음은 그와 관계 맺어왔던 많은 사람들에게 다양하고 상이한 반응을 불러왔다. 향유를 부은 여인, 예수를 고발한 대제사장과 사두개파 사람들, 재판한 총독 빌라도, 못 박은 로마 병정들, 십자기를 잠깐 대신 진 구레네 시몬, 무덤을 내어준 아리마대 요셉, 흩어진 남성 제자들, 자리를 지킨 여인들... 예수의 역사적 죽음의 과정에 내가 있었다면 나는 어디에 어떻게 있었으며 어떤 역할을 했었을까? 어느 인물과 가장 비슷할까 생각해 보자.
2. ‘예수가 우리의 죄를 대속했다.’ 중세의 신학자 안셀롬의 대속 신학에 동의 하는지 동의한다면 어떤 면에서 이고 동의 하지 않는다면 어떤 면인지 생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