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마가복음 14장 1-11절

주제 : 함께 한다는 것에 대하여

과월절 이틀전 곧 무교절 이틀전이었다.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은 어떻게 하면 몰래 예수를 잡아 죽일까하고 궁리하였다. 그러면서도 “백성들이 소동을 일으킬지 모르니 축제 기간만은 피하자”고 하였다. 예수께서 베다니아에 있는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때의 일이다. 마침 예수께서 음식을 잡수시고 계셨는데 어떤 여자가 매우 갑진 순 나르드 향유가 든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것을 깨트리고 향유를 예수의 머리에 부었다. 그러자 거기 같이 있던 몇 사람이 매우 분개하여 “왜 향유를 이렇게 낭비하는가? 이것을 팔면 삼백 데나이온도 더 받을 것이고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었을텐데!”하고 투덜거리면서 그 여자를 나무랐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참견하지 말아라. 이 여자는 나에게 기특한 일을 했는데 왜 괴롭히느냐?”

[말씀들여다보기]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 후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옛날부터 머리에 향유를 붓는 것은 예언자가 왕을 임명할 때 행하는 하나의 의식이었다. 그런데 이 여성은 옛날처럼 군림하는 왕이 아니라 수난당하며 처절하게 십자가의 길을 가는 수난의 메시아, 예수에게 향유를 붓고 있다. 죽음을 예감하며 “내 장례를 위해 내 몸에 향유를 바르는 일을 앞당겨 했다”는 예수의 말처럼, 예수가 가야할 고난의 길에 이 여인은 어떻게든 자기의 사랑을 표현했다.

마가복음 (14:3-9)과 마태복음 (26:6-13)에서 향유를 부은 이 여인의 이야기는 예수의 수난이야기의 일부분으로 들어있다. 마가복음을 살펴보면 이 이야기의 조금 앞에는 세 번에 걸친 예수의 수난예고 (8장11장)와 예루살렘입성(11장) 부분이 나오고, 바로 앞에는 과월절 이틀전에 예수를 죽일 음모를 꾸미는 대제관들과 율사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바로 뒤에 이어지는 내용은 예수를 배반하기로 계획하는 유다의 이야기이다.

제자들의 배반이야기가 연이어 계속되는 이야기의 전체 구성에서 드러나듯이, 예수에게 닥칠 수난의 운명에 함께 하는 마음으로 예수의 죽음을 준비하는 이 여인의 행동이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에게도 주는 깨닭음은 무엇일까?

 

[말씀묵상]

사람은 어려운 상황이 닥칠 때 자신의 본모습이 드러납니다. 사실 고통스러워하는 사람 곁에 함께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분명히 아닐 겁니다. 더구나 자신의 신변이 위협받을수 있는 상황이라면 누구라도 피하고 싶은 마음을 쉽게 떨쳐버릴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와 한패로 몰릴 위험을 무릅쓰고 예수의 처형장소에까지 죽음의 마지막 순간을 끝까지 지켜낸 이 여인은 유일하게 예수의 수난을 함께 한 친구였고 동지였습니다.

가는 곳마다 몰려드는 무리앞에서 우쭐대고,  권력의 한자리를 탐하는 제자들과는 달리 최후의 시간, 진정한 때를 눈치챈 것은 향유를 부운 바로 이 여성이었습니다.

이 여성이야말로 예수가 누구인지, 어떤일을 행할 존재인지 재대로 알았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예수를 메시아로만 여겨 체제전복 후의 영화만을 꿈꾸는 그런 제자들과는 달리, 이 여성은 예수의 죽음의 여정에 동참하면서 줄곧 참된 제자로서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곁에서, 무엇을 해야할 때 “올 곧게 제자로서, 친구로서의 삶을 지키면서” 사는 삶이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요?

 

[도전받기 ]

이웃에게 비추어진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