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장비상시국기도회 설교문. 2009.2월 24일,향린교회]
"네가 그 사람이라" (삼하12:7-12) - 김경재 목사

오늘 여기에 총회장 서재일 목사를 비롯하여 전국 곳곳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장 비상시국 기도회’ 이름으로 모였습니다. 한 교단이 현재 우리사회 상황을 비상시국이라고 보는 것 자체가 한없이 슬프고, 맘이 무겁고, 분하기도 함니다. 이러한 성격의 교단적 차원의 기도회는 지난 1970-80년대로 끝났으면 하는 것이 우리의 참 염원임을 하나님이 아십니다.
70-80년대 나라와 사회를 생명, 평화, 정의, 민주, 화해의 공동체로 만들고자 생명과 삶을 송두리째 바친 선배들과 무수한 열사들 앞에는 오늘까지 이런취지의 비상시국 기도회를 다시 열어야만 하도록, 사회를 ‘생명 평화 정의’로서 지켜내지 못한것이 한없이 죄송스럽게 여겨짐니다. 그러나, 성경의 하나님은 살려내기 위하여 징계하고 죽이셔야하며, 은혜는 진리와 함께 가야하며, 우리에게 징계가 없으면 사생아요, 친아들이 아니며, 실제로는 더 무서운 버림받은 자라고 일러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명박 장로대통령과 그 정권산하의 모든 정책입안자들과 정부각료들과 함께 듣고자 하는 말씀은 지금부터 3,000년전 고대 이스라엘 다윗왕 통치시절의 일어났던 사건을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의 신비스러움은, 칼 바르트가 말했듯이, 영의 귀를 열고 들으면, 다윗시대 이야기가 곧 우리의 이야기요, 바울이 몸부림 친 그의 실존적 문제가 오늘 우리의 문제가 된다는데 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와 옛 시대 사람들의 시간과 공간의 거리를 메꾸시고 동시대인이 되게하시며, 우리와 그들 사이의 모든 문화적 정치사회적 차이를 걷어내시고, 그 밑 바탕에 흐르는 사건의 본질을 드러내주십니다.

오늘 이시간, 슬프게도 설교자는 나단의 역할을 감당하는 비극적 인물로 선택되었고, 이명박 장로대통령은 다윗의 비극적 지도자로서 서도록 하나님이 각본을 쓰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의 징계 초점은 두가지입니다.


첫째, 하나님은 미모의 여성 유부녀 밧세바를 향해 한 남자로서 혈기의 욕정이 타올라 실수하여 그녀를 탐했다거나, 경건하게 금욕적으로 왕답게 처신하지 않았다고 징계말씀을 하시는 것 아님니다. 수많은 궁녀와 미모의 여성을 주위에 둔 처지이면서도, 가난하고 충직한 헷사람 우리야의 아내를 무소불위의 왕권을 빌려 빼앗아 범하고, 그녀의 남편 충직한 사병 우리아를 치열한 전투현장에 배속시켜 고의로 살해한 죄를 묻고 계시는 것입니다.

나단 선지는 은유로 다윗에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과 축복으로 왕이 되엇다고 자신도 자부하고 만인이 인정하는 이스라엘 성군인 다윗와의 통치영역 안에서, 어느 욕심많은 부자가 자기 집을 방문한 손님 대접하느라고, 자기 집 양과 소를 잡기가 아까워, 가족처럼 기르는 가난한 사람의 한 마리의 양새끼를 강제로 빼앗아다가 잡아 대접한 일이 있다고 말했지요. 이 소릴 들은 다윈은 자기 통치영역에 이런 불미스런 일이 있다니 자존심 상하고 성군의 명예를 욕되게 하였다고 느꼈습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자는 마땅히 죽을 지로다”(삼하 12:5)하고 그 나쁜 부자 놈은 사형시키고, 그의 남긴재산중에서나 자기 왕궁 내탕금에서 그 양새끼 네배를 갚아주어야 할 것이라고 큰 소리로 명령하여 자기는 하나님의 자비를 실천하고 가난한 자를 돌보는 성군임을 스스로 다짐했습니다.

다윗의 명령이 끝나자, 나단은 정색을 하고 조용하게 그러나 단호하고 분명하게 다윗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그 사람이라”. 다윗은 첨엔 당황하고 불쾌하였을 것입니다. 궁중 모든 시녀들과 문무대신들과 호위사병들이 보는 앞에서 왕의 체면을 뭉게버리는 시골 출신 이름없는 나단 선지자 하나쯤을, 왕권의 이름으로, 법질서의 이름으로, 아니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남용하는 신성모독죄로 몰아서 당장 밖으로 끌어내어 죽여버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부터 3000년전, 고대왕국 절대군주 체제에서 지아비가 있는 아녀자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거나, 직언으로 간하는 충신 하나쯤을 죽여버리는 사건은 너무나 쉬웠고 다반사였던 시대입니다.

오늘 심히 떨리는 맘으로 용기를 내어, 설교자가 장로대통령이신 이명박님에게 “당신이 그 사람이요!”라고 지금 말하는 것입니다. 장로 이대통령이 그 말을 인정할 까요. 몹시 불쾌해하고 , 설교한 김목사라는 사람이 소속한 교단이 기장교단이요, 그런집회가 열린 장소가 향린교회라는 정보를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에게 들으신다면, 본래 그 교단이 좌파 성향이 깊은 교단이요, 정부에게 잘한다는 소린 한번도 한적이 없고 모든 것을 삐딱하게 보는 병적 심정의 교단이기 때문이라고 할 것 같아 걱정됨니다. 왜냐하면, 다윗이 그랬듯이, 자기가 얼마나 자신이 통치하는 영토안에 가난한자들과 소외된자들을 염려하며, 여러 가지 복지대책을 세우려고 노력하며, 그들을 잘살게 해주려고 노력하고 있는지 자기 스스로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설교자 이 무지랭이 같은 김목사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네가 칼로 헷사람 우리아를 치되 암몬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를 삼았도다” 라고 말함니다. 장로 이명박 대통령님은 항변할 것입니다. 하나님 언제 제가 그랬단 말입니까? 저는 이 백성의 경제위기를 살려보려고, 가난한 자를 살려보려고, 불철주야 노심초사 뛰고있음을 하나님이 잘 아시지 않습니까? 제가 언제 어린 양새끼 한마리를 빼앗는 것을 방치했으며, 더욱이나 남의 집 여인을 빼앗았단 말입니까?

성령께서 말씀하십니다 : 용산 철거민 참사 사건의 처리과정에서, 네 정부책임아래서 행한 모든 행위가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너는 법질서 준수를 강조하여, 그 사건처리의 모든 과정을 합리화하지만, 죽은 철거민 농성자 가족과, 수배중인 전국철거민 연합 사람들이 약자가 아니더냐? 그들도 네가 돌보아야 할 백성이 아니더냐? 왜 모든 책임전가를 그들 약자에게 돌리고 그들의 가슴에 한을 심고 못을 박느냐? 네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 세계경제사정이 악화되어 어려움을 당하는줄 안다. 그러나, 네 책임아래 있는 정부각료의 모든 경제대책 발표가 신뢰성이 없어지니까, 네 백성중 하나인 미네르바라는 사람이 인터넷을 통해 이런저런 말을 했는데, 그 약자를 잡아가두는 너의 소행이 옳단 말이냐? 공교육 현장이 무너져 내라는 가운데서, 그래도 교사로서 교육다운 교육을 시켜보려고 애쓰고 진실하려는 초등교사, 중등교사를 파면시키고 쫒아내어 그 가족과 어린 자녀들에게 고통과 억울함을 안겨주는 것이 작은 일인줄 아느냐? 약하디 약한 양새끼 한 마리 가진 가난한 가장에게서 양새끼를 빼앗고, 밧세바 남편 우리야를 군주의 권리로 죽이는 소행과 네 소행이 무엇이 다르단 말이냐?


둘째, 하나님이 오늘의 이명박대통력과 그 정권의 가신들에게 묻고계시는 엄중한 책임물음은 하나님 보시기에 정의롭지 못하고 진실하지 못한 일들을 행하는 죄만이 아니라, 그 정의롭지 못한 일들을 은밀히 행하고, 맹목적 권력충성파들에게 줄서기를 강요하며, 아름다운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약육강식의 투쟁장으로 만들고 있음에 대한 질책입니다.


사무엘하 11장-12장에 기록된 다윗의 죄를 은폐시키려는 치밀한 음모기사를 읽다보면, 인간성의 약함과 어리석음에 대하여 함께 몸을 떨고 울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간의 심성이란게 이렇게 하나님의 형상과 사탄의 모습이 동시에 자리잡을 수 있는 연약하고 가변적이고 모호성에 휘둘리는 존재인가 하고 우리는 두려움에 떨게 됨니다. 다윗이 누구입니까? 선대왕 사울에게 자신의 생명 위협을 당하며 쫒길 때에도 사울왕과의 인간관계를 생각하며, 자기 적대자의 생명을 취할 기회가 여러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죽이지 않는 넓은 도량을 가졌던 사나이었습니다. 매정한 권력암투세계를 넘어서서 적대자의 아들 요나단과 끝까지 아름다운 우정과 신실함을 지켰던 멋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겸손하고 순수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때묻지 않은 믿음, 그 모든 모습들이 다윗의 참 모습이 아니던가요? 그런데, 그가 천하의 왕이 되고 모든 권력을 중앙집권적으로 독점하고, 법궤 곧 종교권위의 상징마져 자기가 집권한 예루살렘으로 옮겨 종교계 사제집단을 자기권력의 가신집단으로 편입시키면서 , 다윗은 딴 사람으로 변해간 것입니다. 거짓과 음모와 진실 은폐를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행하는 파렴치한이 되어갔습니다.


오늘의 성경본문 전후를 읽어보면, 우선 밧세바를 범한 이후, 일말의 양심이 남아있어, 전쟁터에서 살아있는 우리아가 맘에 걸렸던 것을 일 수 있습니다. 첨엔 밧세바가 임신한 아이의 애비가 우리아라고 생각하도록 자기죄를 은폐하려 시도했지요. 우리아는 요즘으로 말하면 전장 최전선부대 육군소위나 특무상사정도의 병사입니다. 그를 궁중까지 불러, 온갖 음식과 특별휴가를 주며, 그의 아내와 동침하도록 유도했지만, 아무것도 모른 순진한 청년병사 우리아는 자기가 존경하는 사령관 요압과 동료사병이 들판에서 찬이슬 거친 동굴에서 지내며 적군과 대치하며 나라를 지키고 잇는데, 왕의 특별배려라고 해도 혼자서 호와 호식하며 아내와 성적 욕망을 발산하며 즐기는 일을, 양심상 차마 못할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마침내, 다윗은 독한 계책을 세워 그를 죽이기로 하지요. 사령관 요압에게 알 듯 모를 듯 편지한장을 보냄니다. 자고로 충견은 주인의 뜻을 재빨리 알아차리는 법인지라, 우리아를 최전선 위험한 전장터로 보내어 실지로 부하사병을 죽여버립니다. 이러한 은밀한 통치자의 음모와 계책을 눈치채더라도, 비정한 정치현실 속에 살아가는 가신그룹은 양심의 고통을 다소 느끼면서도 침묵하며 따라가기 마련입니다.

일부 동요하는 양심그룹들에게 다웟은 심지어 이렇게 말합니다: “ 다윗이 전령에게 이르되 너는 요압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이 일로 걱정하지 말라. 칼은 이 사람이나 저사람이나 삼키느니라.”(삼하11:25) 오늘 우리 교단이 비통한 맘으로 같은 그리스도교인으로서 장로된 이병박 정권의 통치상황을 ‘비상시국’ 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문제가 이명박 대통령 개인의 문제로 그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의 나라다스리는 근본철학과 방법 때문에, 나라 전체가 거짓말과 진실은폐와 책임전가의 파렴치한 공화국으로 변질돼가고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입니다. 다윗이 거짓을 은폐하려는 시도에 대하여 양심상 괴로워하는 일부 가신들에게, “이 일로 걱정하지 말라 칼은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삼키는 것이다. 그 공략하는 적군 성벽공격에 더욱 담대하게 힘써 싸워라”라는 독려와 명령은 무엇을 의미함니까?

이명박 대통령은 첫째문제제기 때와 비슷하게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라” 지적하는 오늘 이시대의 나단과 하나님 말씀앞에서 억울하다고 극구 항변 할 것입니다. “아님니다. 나는 국민과 소통하려고 혼신의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밤잠을 않자고 서민들의 국밥집도 찾아가서 그들의 형편을 살피고, 남대문 가락동 새벽시장 현장을 방문하여 서민 애환을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우고 있는 줄 아시지 않습니까? 하나님, 억울 함니다. 대통령 못해먹겠습니다. 대통령 시간이 일분 일초가 아까운 데, 독립영화사업을 격려하기 위해 , 서민과 소통하려는 나의 진심을 알아주려나 해서 경호팀의 위험 권고를 무시하고서까지 ‘워낭소리’ 상영하는 영화관도 찾아가지 않았습니까? 교육계를 혁신하여 무한 경쟁국제사회에서 한국민들과 후손들이 잘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한반도 대운하계획 단계적 실행, 각종 교육개혁, 언롭법 개정등등을 하려고 함니다“라고 그가 믿는 하나님께 항변 호소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대통령의 그러한 맘까지 의심하거나 불신해서는 아니됨니다.

그러나 문제는, 현실적 결과가 너무나 책임이 큼니다. 경제는 파탄나고 양극화는 심화되고, 교육계는 전국적으로 성적조작, 성적 나쁜 학생의 시험참석 배제, 교사들과 교육행정 책임자들의 책임전가, 성실한 공청회 하나 치룰 자신도 없으면서 4대강 손질이라는 명분아래 무모한 행정 실적주의가 온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양심 언론세력은 위축되고 권력지향적 출세주의가 온나라를 판을 침니다. 우리가 오늘 국가가 비상시국에 처해있다고 진단하는 것은, 북한의 무력도발이 곧 있을 거라고 해서도 아니요, 국가 경제가 앞으로 몇 년간 더 어렵게 지속할 거라는 비관적 예측 때문이 결코 아니다.

다시 말하면 경제문제나 국방문제 문제보다 더 그 근본적인 문제는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무너졌고, 이 나라에 정직이나 성실이 놀이개감처럼 조롱받는 사회가 되었으며, 사람의 본 바탕을 위협하는 상황이 두렵게도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자신과 집권층이 정직해 달라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인간은 성실해야 한다고 교실에서 가르치는 것이 우습게 공허하게 들리지 않도록 제발 교육을 작은 생선 후라이판에 올려놓고 자꾸 뒤집듯이 하지 말아달라는 것입니다. ‘근본이 바로서면 살길이 열린다(本立而道生)’라는 성현의 말을 제발듣고 근본을 바르게 세우라는 것입니다. 온돌방의 구둘돌이 내려 앉아 불길이 막혀 방이 냉골이 된것이니, 쓸대없이 굴뚝을 고치려들거나 지붕을 고쳐보거나 벽지를 새로 갈아보는 땜질 노고와 예산과 시간낭비를 그만두고, 내려앚은 구둘돌을 다시 제자리에 놓아 아궁이 장작불 불길이 자연스럽게 제갈 길을 따라 흐르게 하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다윗은 큰 죄를 범한 우리와 똑같이 약한 사람이엇으나, 시편 51편 참회기도의 노래처럼, “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멸시하지 않으시리이다”(시51:17). 참회하고 거듭남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요 이스라엘의 명군의 되었던 것입니다.

아무런 정치적 다른 의도없이 진실하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권고함니다. 가급적 빠른 시간안에 순천향병원 영안실을 찾아가셔서, 용산참사 희생자 가족들에게 모든 것이 내 책임이었고사죄하는 유감을 표시하고 그들의 찢어진 맘을 위로하시오. 이 땅의 교육자들과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선한 경쟁을 통해 실력있는 국민을 육성하려는 나의 지난친 과욕이 교육현장을 황폐하게 하였소. 깊이 재고하고 다시 생각하겠소라고 말해야 함니다. 더욱이나 이 백성의 삶을 결정적으로 영향끼칠 대운하계획을 경제논리 우선적으로 처리하려 했던 것이 근본 잘못이었소라고 진정으로 사과하고 백성에게 용서를 구해야 함니다. 남북관계를 지금처럼 악화시킨 책임을 정직하게 고백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이나라가 파멸에서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 잘못된 생각에로 치우치도록 대통령을 잘 도와드리지 못한 공동책임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용서하는 맘을 우리도 가져야 할 것입니다. 특히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일등공신한국 개신교는 공동책임을 느껴야 함니다.

세계 인류 문명사는 자국의 경제문제가 당장 발 앞에 떨어진 불이겠지만, 앞으로 50년 안에 인류가 기후변화에 따른 가뭄과 물부족, 사막화와 식량부족, 질병만연등으로 대 재앙이 닥쳐와, 근본적인 삶의철학이 재정립되지 않으면 인류의 12-25억 인구가 죽을 거라는 예고가 양심있는 학자들과 각계전문가들의 입에서 계속나옴니다. 이때,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근본 경고를 들어야 할 것입니다

"사람아 주 하나님께서는 무엇이 선한 것임을 네게 보아셨나니,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한 맘을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동행 하는 것이 아니냐!”( 미가 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