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칼럼에 대한 안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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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몸으로서의 성전(요 2:13-22)
우리는 성서를 읽을 때에 문자로 읽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비롯한 묵시문학의 글을 문자로 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숫자와 그림 언어들에 대한 역사적 정황을 바로 이해하지 않으면 허황된 소설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을 바르게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관점은 왜 상징언어로 쓰이게 되었는지에 대한 답변입니다. 사도 요한은 로마제국의 박해를 받아 유배생활을 하는 가운데서 썼습니다. 그러기에 사도 요한은 로마 정부가 그 글을 본다하더라도 반로마적이라고 하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 더 큰 박해를 피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나온 숫자와 그림 언어들은 교회 내부인들은 알지만, 외부인들은 알 수 없는 신앙의 암호였던 것입니다.
복음서 안에도 이런 종류의 묵시문학의 글들이 있습니다만, 저는 복음서 전체를 읽을 때에도 이런 관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선 마가가 가장 먼저 쓴 유앙겔리온 ‘복음’이라는 단어 자체가 당시 로마 황제가 전쟁에서의 승리를 뜻하는 단어로 이미 로마제국에 대한 저항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복음서가 최초로 기록된 시기는 유대인들이 로마의 식민지 지배에 저항하여 독립투쟁을 일으켰다가 예루살렘 성이 완전히 초토화가 된 직후입니다. 초기 예수공동체의 활동을 보여주는 사도행전을 보면 예수의 제자들은 본래 유대교의 한 분파로 남아 있고자 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하루 세 번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예배를 드렸고, 할례 또한 주장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스데반집사에 대한 박해를 계기로 유대교 지배세력으로부터 박해를 받게 되자 예루살렘을 떠나 다마스커스, 안디옥 등등의 지역으로 퍼져나갑니다. 이런 와중에 예루살렘을 중심한 유대인들의 독립저항투쟁이 본격화되었고, 이에 로마는 대규모의 군사를 보내 예루살렘 성을 3년을 둘러싼 끝에 도망치는 자들은 모조리 붙잡아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고, 성 전체를 불태우고 쥐새끼 한 마리 머물 수 없도록 초토화를 시켜 버립니다. 이때 죽은 주민이 백만 명 이상이고 포로가 되어 노예로 팔려나간 주민만도 10만 명이나 되었습니다.
이것으로 유대의 저항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살아남은 자들은 사해 근처의 천혜요새인 마사다 등지에 모여 끝까지 항전을 계속 합니다. 로마인들이 이들을 완전히 제압하는데 또 다시 3년이 필요했습니다. 이제 로마인들은 유대인이라면 지긋지긋해 했습니다. 수많은 민족들을 다스려 왔지만, 이렇게 끈질긴 민족은 처음입니다. 물론 그들은 오래 전부터 유대인들의 유일신앙에 기초한 끈질긴 저항정신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독할 줄은 밀처 몰랐습니다. 그래 로마군은 아예 저항의 뿌리를 뽑아내고자 예루살렘 근처의 모든 주민들을 내어 쫓았고, 폐허가 된 예루살렘 성에 군대를 주둔시킴으로 감시의 눈길을 결코 멈추지 않았습니다.
예수따르미들은 바로 이러한 역사적 정황 가운데서, 모세로부터 시작한 천년의 유대교는 이제 종말을 고했다고 보고, 죽은 유대교의 대안과 미래 희망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것입니다. 먼저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 부활 이후 40년 가까이 구전으로 내려오던 예수의 말씀과 생애를 기록으로 보존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유대인들을 향한 로마 정부의 감시의 눈길입니다.
그리고 예수따르미들에 대한 로마정부가 갖는 감시의 눈초리는 매우 타당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는 폭동이 자주 일어났던 갈릴리 출신이었을 뿐더러 정치 게릴라들을 처형하는 십자가에 처형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만으로도 로마정부는 예수 집단을 반체제 집단으로 볼 이유가 충분했습니다.
복음서 저자들에게 있어 이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의 활동을 철저히 반유대교로 설명하는 것이었고, 십자가 죽음 또한 이 연장 선상에서 정치적 이유가 아닌 종교적 이유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복음서 저자들은 하나같이 총독 빌라도는 예수를 처형할 의도가 없었는데, 유대인들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처형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합니다. 아예 빌라도는 공개적으로 예수에게 죄를 발견할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진리 탐구자로 묘사가 됩니다.
심지어는 역사적으로 문제가 되는바 유월절 축제에는 사형수 한명을 풀어주는 제도가 있었다는 얘기까지 등장을 하게 됩니다. 이는 예수는 빌라도 총독에 의해 살아날 수도 있었는데, 유대종교지도자들 때문에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점을 드러내기 위한 얘기입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빌라도는 복음서에 나타난 바와 같이 자비가 많은 인물이나 진리추구자가 아니라 돈을 좋아하는 매우 포악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외부에 공개되는 복음서에는 빌라도의 책임이 면제되어 있지만, 교회 내부적으로는 예수는 로마인들에 의해 처형당했음을 계속 고백하여 오고 있었고, 시간이 흘러 로마의 박해가 사라진 교회의 공식문서인 사도신조에서는 예수가 빌라도 총독에 의해 죽임을 당했음을 명백하게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십자가 죽음에 대해 복음서는 종교적인 이유로 사도신조는 정치적 이유였음을 서로 달리 말하고 있는 이유인 것입니다.
결론으로 말씀드리면 우리는 복음서 저자들이 예수의 말씀과 생애를 기록함에 있어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두 가지의 원칙이 있었는데, 하나는 로마정부로부터 불온문서로 낙인이 찍혀서는 안 된다는 것, 둘째는 그러기 위해 예수공동체는 반로마독립투쟁을 한 유대교의 한 분파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유대교와는 그 뿌리가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는 일이었습니다. 예수 당시의 문맹률이 95%가 넘는 현실을 감안할 때, 예수는 당시 랍비였을 것이다라는 주장이 훨씬 더 사실 개연성이 높지만, 복음서에서 예수는 최하위 계층인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유대교의 지도자들과 사사건건 부딪히는 인물로 말해집니다. 예수는 유대교의 핵심인 안식일법과 정결법에 정면으로 부딪히지만, 가장 극적인 사건은 성전숙청 사건입니다.
사복음서는 모두 예수께서 채찍을 들어 상인들을 내어 쫓고 환전상들의 탁자와 비둘기 장수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셨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환전상이란 로마의 동전을 황제의 얼굴이 없는 성전용 화폐로 교환해주는 성전종사자들인 것이고, 비둘기 장사 또한 제사용 희생물로 이들 또한 단순한 상인들이 아니라 성전종사자들이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이 아닌 유대교의 핵심인 희생제사를 유지하게 만드는 중요한 종교활동이었습니다. 이를 지금 대부분의 목사들이 성전 숙청사건을 돈에 눈이 팔린 장사꾼들을 내어 쫒는 것으로 설명하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보세요. 가장 먼저 쓰인 마가복음은 성전 숙청사건을 이렇게 머물지 않고 이렇게 말합니다.“예수는 또 물건들을 나르느라고 성전 뜰을 질러 다니는 것도 금하셨다.” 여기서 물건이란 성전제사용 기구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것이 당시 일어난 사건을 그대로 기록한 것이라면, 이는 엄청난 사건입니다. 왜냐하면 당시 예루살렘 성전에는 유월절을 맞아 엄청난 순례자들로 꽉 차 있었고, 성전 뜰이라고 하는 것이 요즘 어느 대형교회의 뜨락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축구경기장 몇배에 해당하는 엄청난 크기를 말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성전에는 최소 수백 명의 성전치안대와 로마군이 경비를 서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예수 혼자서 유월절 제사를 가로막고 그 넓은 뜰을 사람들이 질러 다니는 것을 막을 수가 있었다는 말입니까? 이를 사실적으로 읽는다면 이는 민중폭동이 아니고서는 결코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제가 이 구절에 의문이 들어 미국에서 공부하던 시절 도서관에 있는 모든 주석서를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주석서도 여기에 이해가 될 만한 설명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한번 연구를 해보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은 성전숙청 사건을 마가복음보다 한 발자국 더 나갑니다. 공관복음서가 예수 생애 마지막에 일어난 사건을 생애 맨 처음으로 갖다 놓습니다. 요한은 이 사건을 예수 복음의 핵심으로 본 것입니다. 그리고는 결론으로 이렇게 외칩니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짓겠다.” 성전 숙청이 아니라 성전 허물기입니다. 교회들이 은행 빚을 내서라도 성전짓기에 열심입니다만, 이것이 과연 예수님의 뜻인가? 일단 요한복음의 뜻은 아닙니다.
우리가 배우다시피 성서에는 제사장적 전통과 예언자적 전통이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사장입니까? 아니면 예언자입니까? 예수가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더냐? 세례요한 혹은 엘리야 아니면 또 다른 예언자라고 말합니다. 일단 다른 사람들은 예수를 예언자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 베드로야 네가 제대로 말을 했다. 이제 너희 이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 이건 마태복음이 하는 얘기이고, 먼저 쓰인 마가복음은 그냥 그리스도라고 하는 고백만 나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십자가 죽음을 예언하고 베드로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말하자 예수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한다고 꾸짖습니다. 여기서 나타난 그리스도의 정체성은 자신을 희생함으로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사람 곧 제사장이 아닌 예언자입니다. 예수는 분명 제사장이 아닌 예언자였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유명한 메시야 고백에서 정말 중요한 사실을 하나 빼먹고 있습니다. 그건 고백이 이루어지고 있는 역사적 정황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갈릴리라는 지리적 정황에서 분리할 수 없듯이 이 베드로의 신앙고백 또한 그 지리적 정황에서 분리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어느 도시를 향해 가다가 이 물음을 던졌습니까? 친 로마 성격이 가장 강한 누가는 이를 뺐습니다만, 마가와 마태는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 도시는 가이사랴 빌립보였습니다. 가이사랴는 로마의 황제입니다. 빌립보는 그의 똘만이 헤롯의 아들 분봉왕입니다. 가이사랴 빌립보 도시 중앙에는 성전이 있었고 거기서 사람들은 로마 황제를 향해 당신이야 말로 신의 아들이라고 고백을 했던 것입니다. 곧 베드로의 예수 신앙고백은 반 가이사랴 빌립보 고백이었던 것입니다. 이 지리적 대치 상황과 정치적 대치 상황을 빼면 메시야 신앙고백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길거리에 나가 예수천당 불신지옥 외치는 것과 하등 다를 바가 없습니다. 예수이름으로 구원받는다는 말은 바로 이러한 로마의 정치질서에 대한 저항과 전복으로서의 정치적 고백이었던 것이지 오늘날 교회 안에서 외쳐지는 예수 아멘이 아닌 것입니다.
지금은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만, 저는 약 15년 전 역사적 예수의 연구자인 월터윙크 교수로부터 원수사랑에 대한 말씀 배후에 숨어 있는 정치적 저항으로서의 신학적 해석을 듣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그 이후로 저는 복음서를 전연 새로운 각도에서 읽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이런 예수의 민중 저항의 시각에서 우리나라 최근 역사 곧 동학혁명으로부터 기미년 31민중항쟁, 제주 43항쟁과 여순항쟁, 419민주혁명과 부마항쟁, 518 민중항쟁과 87년 6월 민주항쟁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는 크고 작은 촛불항쟁과 민중궐기들은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 갈릴리 민중운동이 그러했듯이 이 모든 것들은 모두 국가폭력에 저항하는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마가는 예수 부활의 몸은 예루살렘에서는 경험되지 않습니다. 갈릴리에서만 경험됩니다. 이는 체제 전복과 저항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요한이 말하는 예수 부활의 몸 또한 당시의 국가사회체제를 떠받들고 있는 예루살렘 성전을 허물었을 때 경험할 수 있습니다. 곧 오늘의 교회 건물 안에서는 경험할 수 없고 교회 밖 국가 폭력에 의해 신음당하는 사람들 속에서 경험되는 것입니다.
36년 전 오늘은 전두환 군사쿠데타 정권이 자신의 정권탈취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광주민중을 폭도로 몰아가기 위해 계획적인 집단 살인을 시작한 날입니다. 그 사망자 숫자는 공식적인 정부 통계에는 200명이 채 안되지만, 유족회는 6백 명 이상의 사망자 명단을 갖고 있고, 80년 당시 외국 신문들은 이천 명의 사망자가 있었다고 보도를 했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실제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해당했는지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투쟁의 전면에 나섰던 민중 대다수는 당시 구두닦이 넝마주의와 같은 가장 밑바닥의 민중들이었고, 저들을 기억할 만한 가족들이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한신의 자랑스러운 아들 류동운열사를 비롯한 수많은 민주시민들을 기억함과 동시에 그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죽어간 오흘로스들을 또한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도 국가폭력에 의한 희생자들은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도저히 정부발표로는 이해할 수 없는 천안함침몰사건, 2년이 넘도록 그 어느 것 하나 해명되지 않고 있는 세월호 사건.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6개월을 넘어 사경을 헤매고 계시는 백남기 어른.
예수 부활의 몸은 여기저기 지금도 거리의 현장에서 역사의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방관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건 예수 정신에 어긋나는 일이요 예수 말씀을 거역하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성전을 허물고 거리의 현장 역사의 현장에 나서라는 것은 예수님의 지상명령입니다. ‘땅 끝까지’ 선교명령은 단지 지구의 반대편을 말하는 공간적 개념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다하는 그날까지’라는 시간적 개념입니다.
광주민중항쟁은 비록 5일이라는 짧은 기간에 불과하지만, 우리나라 5천년 역사 안에 면면히 이어온 민중 주체성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 사건입니다. 정부는 폭동이라고 말하지만, 미국에서의 폭동과는 달리 어느 가게 하나 탈취당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광주항쟁이 빨갱이들의 조종을 받아 폭력을 일으켰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엊그제도 택시 운전수가 세월호 가족들을 비난하면서 교통사고 났는데, 이제 그만하지 그러기래 제가 세월호는 교통사고에 비유하다니 말이 되는냐고 반박을 하면서 세월호에서 건진 노트북에 실린 국정원의 지시사항을 아느냐? 그날 열 척 이상의 모든 배들이 날씨로 인해 운항이 정지당했는데, 왜 유독 세월호만 출항을 했는지 아느냐? 2년 전 4월 16일 당일 아침 4개 공영 TV가 무려 2시간 이상 구조되는 장면은 하나도 없이 그냥 물 위에 떠있는 배 한척 보여주고 ‘전원구조’라고 방송했다. 이는 청와대와 국정원의 권력 그리고 미리 준비된 조작이 아니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그랬더니 이분이 마구 흥분하면서 저보고 나이가 몇이냐고 물어요. 제가 하얀 수염이 났는데, 그 사람이 나이가 아무리 많기로 서니 제가 나이에 밀리겠습니까? 제가 몇 살 더 붙여서 말했더니 자기와 같다고 그래요. 그러더니 직업이 뭐냐고 물어요? 그건 알아서 뭐하려고 그러느냐고? 당신 혹시 어버이연합 회원 아니냐고 물었는데, 택시가 목적지에 도착해서 답은 듣지 못하고 헤어졌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국가가 주도하는 종편 언론에 노예가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이 쉽게 세뇌를 당하는 이유는 남북민족분단에 있습니다. 미국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북조선은 물론이고 이슬람과 IS 를 주적으로 만들고 끊임없이 국민들을 공포와 테러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깨어나야 합니다. 저는 이 한신동산 안에서 위대한 스승들의 영향으로 역사가 무엇인지 복음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다시금 태어났습니다. 저는 여러분 또한 깨어나고 다시 태어나기를 소망합니다. 역사의 주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기를 바랍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우리 안에 있다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닫기를 바랍니다. 목회자로서의 소명의 그 근본과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깨닫기를 바랍니다.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데, 우리가 어찌 남을 인도하겠습니까?
우리는 교의학으로 유명한 칼 바르트의 말 한마디를 기억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한 손에는 성서를 다른 한손에는 신문을. 이는 단지 그리스도인들이 성서도 알고 사회 돌아가는 것도 알아야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사회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책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복음의 선포를 통해 세상으로 하여금 사회적 불의와 그 결과를 생각하도록, 상황과 구조를 바꾸도록 촉구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는 바로 그리스인의 행동을 위해 사회 비판적인 발언을 공개적으로 표명해야 합니다. 만약 교회가 구체적으로 사회의 당면한 악의 뿌리를 공격하는 것을 주저한다면, 교회는 짖지 못하는 개가 되고 말 것이며 교회의 봉사는 지배 권력을 섬기는 일종의 하수인이 되고 말 것입니다.” 바르트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신학자 본훼퍼목사는 히틀러독재를 끊어내기 위해 암살단에 가입했다 39세의 나이에 처형을 당했습니다.
518은 국가폭력에 저항하며 민중들이 역사의 주인으로 나서는 자유와 해방의 상징입니다. 거리의 투쟁 속에서 주먹밥을 나누며 새 세상을 꿈꾼 대동세상의 상징입니다. 모든 예수따르미들이 꿈꾸었던 정의와 평등의 새 세상. 새 하늘과 새 땅의 상징입니다.
지금까지의 한신 76년의 역사가 그러했듯이 우리의 성전 문을 활짝 열고 거리로 나아가 자유와 해방의 복음을 외침으로 민족성전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국가폭력의 희생자들, 광고탑 위와 옥바라지 골목 등 생존의 벼랑 끝으로 내어 몰린 이 땅의 오흘로스들과 끝까지 함께 하는 예수의 참 제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하느님은 밖에서 우리는 안에서 쪼는 졸탁동시(啐啄同時)의 정신으로 한신의 새 역사를 창조해 나가십시다.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보냄의 말]
-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 - 중(中)
김준태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을 뚫고 나가
白衣의 옷자락을 펄럭이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
이 나라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을 다시 넘어오는
이 나라의 하느님 아들딸들이여
예수는 한 번 죽고
한 번 부활하여
오늘까지 아니 언제까지 산다던가
그러나 우리들은 몇 백번을 죽고도
몇 백번을 부활할 우리들의 참사랑이여
우리들의 빛이여, 영광이여, 아픔이여
지금 우리들은 더욱 살아나는구나
지금 우리들은 더욱 튼튼하구나
아아, 지금 우리들은
어깨와 어깨, 뼈와 뼈를 맞대고
이 나라의 무등산을 오르는구나
아아, 미치도록 푸르른 하늘을 올라
해와 달을 입맞추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