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칼럼에 대한 안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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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염호석동지 추모와 삼성재벌 규탄 거리기도회
2014년 5월 25일
지난 주말 서른네 살의 젊은이 “고(故) 염호석씨는 지회가 승리할 때까지 시신을 안치해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한 많은 그러나 뜻이 담긴 귀한 생을 마감했다. 열흘 전 쯤 쓰러진 대기업 총수의 병세에 대해서는 이번 주 내내 언론이 다양한 추측과 분석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지만, 이름 없는 한 청년의 죽음에 대해 언론들은 대부분 침묵하고 있습니다. 삼성의 이건희씨와 삼성전자서비스의 하청 노동자로 일했던 고 염호석 씨. 똑같은 생명이지만, 국내에서 가장 많은 재산을 소유하고 있는 재벌 회장, 그는 이미 죽은 목숨과 다름없는 식물인간이지만, 돈으로 목숨을 연장하고 있고, 염호석씨는 비록 한 달에 100만 원도 벌지 못하는 가난한 노동자였지만 사회의 불의를 고발하며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 이 사건은 이 사회가 안고 있는 부조리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염호석씨는 삼성전자의 로고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고장 난 삼성전자의 제품들을 고쳤습니다. 사람들은 당연히 그를 삼성전자의 직원이라고 생각하지만 삼성은 그를 삼성의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청업체를 통한 간접고용된 곧 비정규직 노동자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남한 사회는 정규직 노동자보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더 많습니다. 이 비율은 점점 더 심화되고 있습니다. 이는 더 많은 돈을 움켜쥐고자 하는 비인간적인 재벌들의 탐욕 때문입니다. 노조 간부였던 염호석 씨는 고의적으로 일감을 주지 않아 지난 3월엔 70여만 원, 4월엔 41만 원을 받았습니다. 지난 해 10월 자결한 최종범씨도 "삼성 서비스 다니면서 너무 힘들었고 배고파서 못살겠다"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현재 대기업에 유리한 고용 환경, 노동법 하에서 약자인 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함께 뭉쳐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도 그렇게 했습니다. 지난 해 7월 14일 노동조합을 출범시켰습니다. 그러나 '무노조 경영'이라는 잘못된 삼성은 노조를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탄압하고 있습니다. 지난 3월엔 노조활동이 활발한 부산 해운대와 아산, 이천센터를 아예 폐업시켜 노동자들을 거리로 내몰았습니다.
"더 이상 누구의 희생도 아픔도 보질 못하겠으며 조합원들의 힘든 모습도 보지 못하겠기에 절 바칩니다. 저 하나로 인해 지회의 승리를 기원합니다." 더 이상 저항할 수단이 없기에 그가 가진 마지막 저항 수단, 절박한 상황에 내몰린 사람들의 마지막 무기가 되어버린 것, 생명을 내놓은 것이다.
그는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승리하는 날, 자신의 시신을 화장해서 정동진에 뿌려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 유언은 지켜지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경찰 300여 명이 장례식장에 들이닥쳐 조합원들과의 물리적 충돌 끝에 고인의 시신을 '탈취'해 가는 초유의 사태가 벌여졌기 때문이다. 이는 44년 전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노동법 책을 들고 ‘노동법을 지키라’며 이를 자신의 몸과 함께 불태운 전태일열사가 당했던 모습과 흡사합니다.
그의 동료들은 그를 유쾌한 사람으로 기억했으며 그의 유서엔 다른 조합원 가족의 병원비를 걱정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전태일열사가 ‘나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였듯이 염호석열사 또한 같은 얘기를 우리에게 남겼습니다.
염호석동지가 어떤 신앙을 가졌는지는 모르지만, 전태일열사는 교회를 열심히 다녔고, 어머님을 통해 신앙을 지켰으며 그는 예수의 삶을 본받고자 애썼던 사람입니다. 성서를 보면 사실 예수는 가난한 자와 억울한 자 차별받는 자들과 함께 자유와 평등, 평화의 가치가 이루어지는 하느님 나라를 이 땅에 세우기 위해 살다가 권력자들에게 미움을 받아 십자가 위에서 처형을 당했습니다. 대표적 인물이 예루살렘을 식민지로 지배한 빌라도 로마총독입니다. 복음서에는 예수가 바리새인들이나 제사장과 같은 유대종교지도자들에게 미움을 받아 십자가 처형을 당한 것으로 기록이 되어 있어 다른 신앙이 죽음의 이유인 것으로 오해되고 있지만, 그건 겉으로 드러난 얘기이고 실제는 정치적 이유로 살해당한 것입니다.
물론 예수의 가장 큰 가르침은 사랑입니다. 미움은 폭력을 낳게 되는데,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폭력을 반대했을 따름이지 예수의 목적은 가난한 자들과 약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성전에 들어가 채찍을 휘둘러 권력의 비호를 받았던 상인들 오늘날로 말하면 재벌들의 탁자와 돈궤짝을 뒤집어 엎으셨고 헤롯왕을 여우에 비유하여 야유하고 부자들에게는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하늘나라 들어가기가 더 힘들다고 하시며 철저한 나눔을 촉구하셨습니다.
거지 나자로와 부자의 얘기도 했습니다. 한 부자가 하루가 멀다하고 친지들과 친구들을 불러 성대한 잔치를 열었습니다. 그는 매일 들어가고 나오면서도 문지방에 앉아 구걸하는 나자로를 외면했습니다. 그래서 거지 나자로는 쓰레기통을 뒤져 먹을 것을 해결했고, 병에 걸려 죽었습니다. 얼마 후에 부자도 죽었습니다. 이 부자가 지옥을 가서 뜨거운 불에 시달리는데, 천국에 있는 나자로가 보였습니다. 목이 말라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애원을 합니다. 저기 나자로를 시켜 저의 목에 물한모금 넣게 해 주십시오. 이제 얼마 있지 않아 이건희는 지옥의 타는 불 가운데서 천국에 있는 염호석동지나 최종범동지에게 물 한 모금을 달라고 애원을 할 것입니다.
예수가 처음 세상에 나오면서 이런 선언을 합니다. 가난한 자에게 기쁜 소식을 묶인 자들에게 해방을 눈먼 사람들을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여기서 은총의 해란 희년을 말합니다. 희년은 50년마다 돌아오는 해로 이 해에는 모든 빚은 탕감하고 땅은 본래의 집안에게 돌려주고, 모든 노예에게 자유를 선포하는 모두가 하느님 앞에서 평등해지는 해입니다. 말로 평등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평등해지는 날입니다. 요즘 이런 것을 주장하면 빨갱이라고 말하겠지요. 그러나 성서는 이렇게 혁명을 주장하는 책입니다. 세상 부조리한 일, 잘못된 일 그대로 눈감고 노예처럼 살다가 천국가도록 안내하는 책이 아니라, 이 땅의 잘못된 것을 고치고 펴서 정의가 강물처럼 넘치도록 하라는 명령이 담긴 책입니다.
2011년 당시 서울대 총장을 역임한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은 재벌들이 너무 많은 이익을 독점하는 불공정한 구조를 고치기 위해 ‘초과이윤공유제’라는 말을 꺼냈는데, 이건희씨가 이를 ‘사회주의 용어인지 공산주의 용어인지 자본주의 용어인지 도무지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이라고 폄하를 했습니다. 그는 자본가가 노동자들을 이용하여 돈 많이 버는 것이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반론을 제시한 것인데, 이는 노블레스 노블레제라는 가진 사람들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는 아주 무식한 사람의 발언이자, 이웃이 아픔에 전연 동감할 줄 모르는 차가운 냉혈인간의 발언입니다. 누진세라는게 있습니다. 미국도 노조가 힘을 가졌던 50년 전만 해도 누진세 최고 세율이 90%였습니다. 사회는 많이 버는 만큼 그 책임을 요구했습니다. 지금은 자본가들의 힘에 밀려 45% 정도로 낮아졌고 남한은 누진세가 가장 낮은 나라 중 하나입니다.
세계적 기업 가운데 삼성과 같이 노조를 인정하지 않고 노조 결성을 방해하고 자기 회사에서 일하다 백혈병을 비롯한 여러 직업병에 걸려도 책임을 회피하는 악덕기업은 없습니다. 약자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자기 회사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생명보다 돈을 더 소중히 여기는 삼성기업이 만약 회개하지 않는다면 저는 목사로서 이 회사가 망하기를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예전에 신문기사를 보니까 이건희씨가 스포츠카 운전을 좋아해서 강원도 어디에 전용시설을 갖고 있고 여기에는 한 대에도 십억이 훨씬 넘는 세계 브랜드의 스포츠카가 몇 대씩 있다는 걸 보았습니다. 자신의 회사를 위해 일하는 노동자가 굶어 죽어가는 데도 모른 채 하고 자기만의 말초신경을 만족하기 위해 이런 놀이를 하는 것은 죄악입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예수께서는 빌라도의 의해 학살당한 갈릴리 사람들과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서 죽은 18명의 예루살렘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죄가 많아서 죽은 것이 아니다. 너희들도 회개하지 않으면 그렇게 될 것이다라는 경고를 하시는데, 여기서 회개는 단순한 마음의 뉘우침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성전에서 빌라도에 학살당한 갈릴리 사람들은 다름 아닌 폭동으로 인해 희생당한 사람들입니다. 실로암 망대는 예루살렘 성전을 지키는 로마군대가 거주하는 망대입니다. 망대가 무너졌다는 말은 폭동이 일어나서 무너진 것입니다. 곧 여기서 죽은 사람들은 곧 유대 나라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투쟁하다 죽은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인데, 너희들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망할 것이다라는 예수님의 경고는 너희들고 그렇게 자유와 해방을 위해 투쟁하다가는 죽을 것이라는 경고의 뜻으로 말씀하신 것일까요? 그렇다면 회개는 다름 아닌 그런 자유와 해방의 투쟁을 모른채 하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밖에 없습니다. 자유와 독립을 위한 투쟁을 못 본 채 하는 것이 회개가 될수는 없습니다. 나라가 남의 나라가 식민지가 되든 말든 너희들은 너희들 자신의 일만 열중하라. 그러면 너희들은 살 것이다 그런 뜻으로 해석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너희들이 그런 정의로운 투쟁을 모른 채 한다고 해서 너희들의 목숨이 안전할 줄 아느냐? 모른 채 하면 너희들도 같은 죽임을 당할 것이다. 이런 얘기입니다. 너희들 자신에게 지금 당장 위험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모른 채 하여 방관자가 된다면 너희들도 얼마있지 않아 같은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다. 이런 뜻입니다. 한치 앞만 바라보는 이기적인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회개의 참 뜻입니다.
히틀러에 저항하던 니뮐러목사가 한 말 속에 바로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회개의 촉구가 담겨 있습니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왜냐하면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치가 사회민주당원들을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왜냐하면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치가 노동조합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왜냐하면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나치가 유대인들 체포할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나에게 왔을 때,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주위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지금은 자본이 인간의 생명을 하나하나 죽여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살아나기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자신만의 스펙쌓기에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어떻게든 나만 성공하면 된다는 이기주의가 이 사회를 휩쓸고 있습니다. 그러한 결과가 바로 세월호 참사입니다. 안전 규정에는 관심이 없고, 뇌물에만 관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보다 정의롭고 보다 평화가 넘치는 세상으로 만들어 후손에게 넘겨줄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인간다움입니다.
염호석열사는 바로 이 정신을 깨달았습니다. 현실의 절망 앞에서 쓰러지느니 차라리 자신의 한 몸을 던져 이를 지키고자 했던 것입니다. 더 이상 이런 희생자가 나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우리는 그가 피로써 쓴 유서를 다시 한번 들으면서 우리의 각오를 다짐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삼성서비스지회 여러분께
저는 지금 정동진에 있습니다. 해가 뜨는 곳이기도 하죠.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우리 지회가 빛을 잃지 않고 내일도 뜨는 해처럼 이 싸움 꼭 승리하리라 생각해서입니다. 저를 친동생처럼 걱정해주고 아껴주신 부양(부산양산)지부 여러분, 또 전국의 동지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아무 것도 아닌 제가 여러분 곁에 있었던 것만으로도 기쁨이었습니다.
더 이상 누구의 희생도 아픔도 보질 못하겠으며 조합원들의 힘든 모습도 보지 못하겠기에 절 바칩니다. 저 하나로 인해 지회의 승리를 기원합니다.
저의 시신을 찾게 되면 우리 지회가 승리할 때까지 안치해 주십시오.
저희가 승리하는 그 날 화장하여 이곳에 뿌려주세요.
마지막으로 저희 배현 조합원의 아버지가 아직 병원에 계십니다.
병원비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습니다. 협상이 완료되면 꼭 병원비 마련 부탁드립니다.
저는 언제나 여러분 곁에 있겠습니다.
승리의 그날까지 투쟁!
양산분회 분회장 염호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