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주일/성도추모주일

산다는 것

전도서 7, 1 - 7 ; 1고린토 15, 35 - 45


조 헌 정 목사


        류영모 선생은 자신의 살아온 시간을 햇수로 계산하지 않고 하루로 계산하므로 하루의 새벽이 자신이 태어난 생일이요 하루해가 저무는 황혼을 죽음의 시간 장례날로 여겼습니다. 우리가 류영모선생과 같이 그렇게 매일매일 그리고 매 순간 깨어있는 사람들로 살아가기는 힘들지만, 한해를 마감하는 송년주일에 자신의 살아온 한해를 돌아보고 그 마지막 시간을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는 성찰의 시간으로 삼는 것은 매우 당연하고 동시에 중요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삶의 진리를 터득하는 일은 어느 날 순간에 일어나지만, 그러나 그것이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진리의 길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애쓰는 가운데에서 어느 날 눈뜸(開眼)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참다운 눈뜸]


        시각장애인이었던 거지 바디매오가 예수를 만나 눈을 떴지만(루가 10:46-52), 예수를 만난 모든 시각장애인들이 눈을 떴던 것은 아닙니다. 그는 예수라는 사람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가 여러 가지 기적을 행한다는 애기를 들으면서 그 사람의 본질에 대해 곰곰이 묵상하기 시작했고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해 묵상하기 시작했습니다. 과연 예수라는 사람은 내 눈을 뜨게 할 사람인가? 그리고 내가 눈을 뜬다면 나는 무슨 일을 하고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그러던 어느 날 예수 일행이 자신이 사는 동네를 지나간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는 물론 아침부터 그가 지나가는 길목을 지켰을 것입니다. 그리고 일행이 지나가는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를 향해 외쳤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그러자 여러 사람이 조용히 하라고 꾸짖습니다. 그러자 그는 더욱 큰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하고 소리 질렀습니다. 이 대목이 중요합니다. 장애인들은 거의 대부분 위축된 삶을 살아갑니다. 어려서부터 집안에서부터 다르게 대우를 받을 뿐더러, 밖에 나가면 친구가 되어 주지도 않을뿐더러 때로는 놀림감이 되기도 하여 자신도 모르게 위축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더구나 시각장애인은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행동하기가 쉽지 않아, 다른 사람에 대해 매우 민감합니다. 그래 처음 그가 소리를 쳤을 때, 한 사람도 아닌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야! 장애인이 무슨 큰소리야, 조용히 해! 멀쩡한 우리도 예수하고 얘기 한마디 하기 힘든데.”라고 윽박질렀다면 어려서부터 형성된 위축 자아의식으로 말미암아 억지로 내어본 용기마저 쑤-욱 들어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는 여기에 굴하지 않고 더욱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위축될 상황에 위축되지 않고 더욱 용기를 내었다는 것은 그만큼 그가 이 순간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동안 예수를 만나기까지 예수와 자신의 만남에 대해 그리고 그 이후 펼쳐질 자신의 삶에 대해 깊은 성찰을 가졌다는 말입니다. “나의 태어남의 근본은 어디에 있는가? 하느님은 왜 내게 이런 고통을 주시는 것일까? 아니 눈을 뜬 저 사람들은 왜 세상을 본다는 것만으로도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할 터인데, 왜 맨 날 죽겠다는 얘기만 하고, 기도를 하면 달라고만 할까?” 오랫동안 품었던 자기 성찰과 깨달음의 힘이 이 절대절명의 순간에 외부환경에 굴하지 않고 더욱 큰 소리로 외치게 만들었던 것이고 그래 예수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더욱 큰 소리로 외쳐지는 그의 음성 속에서 예수는 보통의 사람들에게서 들을 수 없었던 힘, 곧 영성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그래 예수는 돌아섭니다. 그러자 사람들에 그에게 말합니다. “그분이 너를 부르신다.”

        그러자 그는 ‘겉옷을 벗어 버리고,’ 이 대목 또한 중요합니다. 겉옷은 그가 누구인지 곧 그가 시각장애인임을 보여주는 옷입니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구걸하는 사람임을 말해주는 옷입니다. 그는 이 겉옷을 벗어버립니다. 이제는 더 이상 남에게 구걸하지 않고 살아가겠다는 결단의 표시입니다. 다시는 예전의 자기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결연의 표시입니다. 여기서 예수는 다시 한 번 그의 의지를 확인합니다. “무엇을 원하는가?” “눈을 뜨기 원합니다.” 이 눈이 단지 육체적인 눈이었는지 아니면 영생의 눈이었는지는 그 다음 성서구절을 보면 확실합니다. “가라,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 예수의 말씀이 떨어지자 그는 눈을 뜨고 예수를 따라 나섭니다. 예수님은 분명 ‘가라’고 했습니다. 네가 원하는 곳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평소 그가 보고 싶었던 곳으로 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다른 치유기적의 이야기를 감안해보면 이 ‘가라’고 하는 장소는 그의 가족이 있는 곳을 말합니다. 그의 부모님과 형제가 있는 집을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미 눈을 뜬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이미 혈연으로서의 가족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영의 사람이요 예수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따라 함께 하느님 나라 복음운동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의 새로운 가족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 그는 눈을 뜨자마자 세상의 아름다움에 취하기도 전에, 가족의 모습이 어떻게 생겼는가를 확인하기 전에 예수를 따라 나섭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들은 변화하는 것이고 잠시 그렇게 우리 눈에 보일 따름입니다. 세상의 모습은 오늘과 내일이 다르고 우리가 만나는 사람의 얼굴도 오늘이 다르고 내일이 다릅니다. 잠시만 그렇게 보인다면 그것이 환영(幻影)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것이 눈을 뜬 사람이 진정 취해야 할 생각입니다.

        죽음을 경험한다는 것, 특히 평생을 함께 해온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경험할 때, 사람들은 누구나가 삶과 죽음에 대해 새로운 눈을 뜹니다. 오늘 우리는 2009년 마지막 주일을 맞아 올 한 해 우리 곁을 떠나간 교우들이나 가족들을 기억하고 그들을 추모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사실은 추모한다는 말은 우리 입장에서 하는 말이고 이미 주님 곁에 가 있는 그분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우리의 마지막을 스스로 생각해보는 성찰의 시간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는 모두 열 한분을 기억합니다. 권병길 집사님의 어머님 고 강원옥 집사님, 고경심 장로님의 아버님 고 고영일 집사님, 윤여증 권사님의 제부 고 김익상님, 오승호 집사님의 어머님 고 류시량님, 양무용 집사님의 아내 고 심연희 권사님, 유애란 권사님의 친구 고 윤길원님, 김진영 교우 친구의 어머님 고 이말선님, 이영욱 교우의 아버님 고 이무상님, 김명화 권사님의 어머님 고 이정실님, 임태환 목사님의 어머님 고 장금이 집사님 그리고 마지막으로 통일, 민주화 운동에 평생을 사시고 저희 교회에서 영결식을 가진 고 강희남 목사님이십니다. 우리와 함께 신앙생활을 하셨던 분은 심연희 권사 한분이십니다. 이제 양무용 집사께서 나오셔서 추모의 말씀을 함께 나누겠습니다.(추모의 글은 뒤에 첨부)


[죽음의 명상]


        우리는 추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양무용 집사님과 이분들의 아픔에 함께 아파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들의 먼저 간 사랑하는 사람들을 기억하면서 앞으로의 삶을 다시 한 번 조명하는 자기 성찰의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죽음을 명상하고 또 자신의 죽음을 경험한다는 것은 우리 인간됨의 근본을 깨닫고 현재 자신의 걸어가는 길을 반성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반성은 자신을 새로운 삶의 길로 인도합니다. 그리고 이 새로운 길은 과거의 길과 무늬만 다른 새로움이 아닌 그 속이 완전히 다른 길 곧 달라진 삶의 태도를 말합니다. 그리하여 이전에는 하고 싶었지만, 실패의 두려움으로 시도하지 못했던 그 길을 이왕 죽은 목숨이니 하고 달려드는 도전정신을 말합니다. 7번 넘어지면 8번 일어서리라 하는 열망이요 남이 하지 못했던 일을 시작함으로 우리 안에 담긴 하느님의 창조정신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지금은 다들 잊어버리고 말았지만, 여러분이 한 살이었을 때, 걸음마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 제대로 걷기 까지 몇 번을 넘어졌을 것이라고 짐작하십니까? 백번, 이백 번, 아이들이 평균 이천 번을 넘어지고 나서야 제대로 걷기 시작한다고 하네요.

        여러분 올해는 몇 번이나 넘어지셨나요? 넘어질 때에는 낙심이 컸을 테지요? 모든 것이 끝난 것 같기도 하고 다시는 못 일어설 것 같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천 번의 넘어짐을 통해 제대로 된 한 걸음의 발걸음을 옮겼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어쩌면 우리 인생은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계속 넘어섰다 일어서는 걸음마의 삶일지도 모릅니다. 지난 한해 뭔가 실패했다고 생각된다면 그건 제대로 된 한걸음을 위해 투자하신 것이라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죽음명상과 영성단식훈련]


        내일부터 교회에서는 몇 사람이 모여 한해를 보내는 영성단식훈련을 시작합니다.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들의 생애가 짧은 것이 아니다. 우리들이 스스로 짧게 하고 있다. 또 우리들에게 그것이 모자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이 그것을 낭비하고 있다.” 왜 우리가 생을 낭비하는가요? 우리는 그 생이 계속된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영원하리라고는 말하지 않지만, 그러나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어른들은 자라나는 청소년이나 청년들을 보면서 나라면 저렇게 살지 않을 텐데 하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이 땅을 떠나 하늘나라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를 보면서 나라면 저렇게 살지 않을 텐데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초기 미국의 흑인노예 해방운동가였던 드 보이스는 말하기를, “인간이 가난하다거나 악하다거나 무지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인간에 대해 별로 아는 바가 없다는 바로 여기에 시대의 비극이 있다.” ([그래도 한번 더 일어나라] 윤청광편 동국출판사 71쪽)고 말했고, 평화사상가 톨스토이는 “우리가 만일 인간으로서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는다면, 자신의 슬픔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느끼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누구인지를 아는 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평소에는 먹고 살기위해 계속 활동하다보면 이런 깊은 생각을 하기가 힘듭니다. 그렇기에 짧은 시간이나마. 단식을 통해 먹는 것마저 중단한 채, 죽음을 통해 삶을 조명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환영합니다. 야채효소를 먹으면서 하니 그리 힘들지는 않습니다. 단식을 한 번도 해본적인 없다. 삶에 자신이 없다. 한번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여기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식사를 줄이는 방식을 통해 욕망을 절제하는 훈련을 하시기 바랍니다.

        이천 오백년 전 그리스의 철학자 소포클레스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가끔 죽음에 대하여 생각하라, 그리고 머지 않아 죽을 것이라 생각하라. 어떠한 행동을 할 것인가 하고 그대가 아무리 번민할 때라도 죽을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면 그 번민은 곧 해결될 것이다. 그리하여 의무란 무엇인가? 인간의 소원은 어떤 것이라야 할 것인가가 곧 분명해 질 것이다. 아 아 명성을 떨치던 사람도 죽고 나면 이렇게도 빨리 잊혀지는 것일까?”

        미국의 현대 사회철학자 에리히 프롬은 이런 말을 합니다. “진정으로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는 길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석가모니, 예수, 금욕주의 철학자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가 가르친 방법이다. 이 길은 <삶에 집착하지 않는 것. 삶을 소유물로 경험하지 않는 것>이다. (<소유냐 삶이냐>에서)

        그래 전도서 기자는 앞의 말을 생략한 채 이렇게 말을 합니다. “명예가 값진 기름보다 좋고 죽는 날이 태어난 날보다 좋다.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좋다. 산 사람은 모름지기 죽는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웃는 것 보다는 슬퍼하는 것이 좋다. 얼굴에 시름이 서리겠지만, 마음은 바로 잡힌다. 지혜로운 사람은 마음이 초상집에 있고 어리석은 사람은 마음이 잔칫집에 있다.”

        삶을 멀리멀리 저 영원까지 내다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의 성공과 실패에 매달리면 그것이 성공하면 자만에 빠질 것이요, 그것이 실패하면 낙심에 빠질 것인데, 멀리 내다보면 이 모두를 피해 바른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종교가 설파하는 진리의 길이요, 바로 이 소리를 듣기 위해 우리가 교회에 나오는 것 아닙니까? 세상이 주는 지혜와는 다른, 세상을 초월해서 세상을 내려다볼 수 있는 하늘의 얘기를 듣기 위해 나오는 것이 아닌가요? 잠시 성공하려면 TV나 사회의 유행에 열중하시고 영원한 성공을 하려면 성서의 말씀과 옛 성인들의 지혜에 귀를 기우리기 바랍니다. 또 하나의 방법은 교회가 마련한 유언장을 작성해보는 일입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건강할 때 제가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것이니 여러분 모두 유념해서 들으시기 바랍니다.


[영원의 ?]


        고전 15장은 일명 부활장이기도 한 유명한 장입니다. 사도 바울로는 죽은 자들의 부활에 대해 그리고 이 부활이 기독교 진리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것임을 설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잘못하여 부활과 영생의 삶을 너무 강조하면 믿는 자들이 염세신앙인이 되거나 현실도피의 타계적 신앙으로 빠져들 수가 있습니다. 그래 그는 이생의 삶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여러분이 심는 것은 장차 이루어질 그 몸이 아니라 밀이든 다른 곡식이든 다만 그 씨앗을 심는 것 뿐입니다.” 우리의 살아가는 오늘의 삶을 씨앗으로 비유한 것이고 영생의 삶을 그 열매로 비유한 것입니다. 이렇게 말한 이유는 부활한 몸이 어떤 모습일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그건 다 씨앗으로는 다 비슷하지만, 그 열매가 다 다르듯이 그건 알 수 없다는 얘기를 하고자 한 비유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현재의 삶을 씨앗으로 비유한 이 이야기가 그 이상의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류영모선생이 백성(민, 民)을 씨?이라고 표현하셨는데, 저는 여기서 그 힌트를 얻지 않았나 추측해 봅니다. 우리 안에는 생명이라는 ?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땅에서 살아가는 ‘보이는 ?,’ 들이마시고 내쉬는 숨과 우리의 혈관을 따라 도는 뜨거운 피를 통해 유지가 되는 ?이 있는가 하면, 이것들이 모두 끝난 후에도 계속 이어지는 영원의 ?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로는 이를 아담으로 시작하는 육의 생명과 예수 그리스도로 시작하는 영의 생명으로 구분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둘 다 생명이라고 일컬어지는 이 육의 ?과 영의 ?인 둘을 어떻게 연계하여 이해할 것인가? 내가 지금 살아가는 삶과 죽음 이후에 이어지는 부활의 삶과는 어떤 연계가 있는 것인가? 그건 씨앗과 열매의 관계와 같은 것입니다. 겉으로는 한 곡물의 씨앗이 다 같아보여도 심어서 길러보면 그 열매는 다 다릅니다. 씨앗이 충실하면 열매 또한 충실하고 씨앗이 부실하면 그 열매 또한 부실합니다. 저는 부활의 삶이 다 하느님께 속한 영의 삶인 것은 분명하고 거기에 무슨 계급이 존재할 것이라고 보지는 않지만, 그러나 분명 이 땅의 삶의 모습과는 연계되어 있을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사도 바울로가 말한 대로 ‘내일이면 죽을 테니 먹고 마시자’(32절) 해도 그만일 것입니다.

        그래 사도 바울로는 부활의 심오한 하늘나라의 진리를 전하면서 그 결론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굳건히 서서 흔들리지 말고 언제든지 주님의 일을 열심히 하십시오. 주님을 위해서 하는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이 말씀이 한해가 오고가는 이 세월의 길목에서 다시 한 번 우리가 기억해야 할 말씀입니다.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파견사)


우리들의 생애가 짧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이 스스로 이를 짧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우리들에게 시간이 모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이 이를 낭비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새해 그것은 단지 달력이 바뀌는 크로노스의 새해가 아닌 진정 우리들의 삶의 자세와 가치 그리고 하느님을 만나는 방식이 바뀌는 그리하여 우리의 근본이 새롭게 시작하는 카이로스의 새해입니다. 이 새해는 꼭 2010년 1월 1일로부터 시작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이 성전 문을 열고나서는 순간부터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고 심연희 권사 추도사



양무용 집사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요 11:25~26)


        보고 싶은 심연희 권사,

        천 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은 그곳에서 이젠 기침도 멎고 물도 잘 마시며, 구부러진 허리도 쭉 펴진 온전한 모습으로 편히 쉬고 있겠지요.

        그곳으로 가기 전까지 얼마나 힘이 들었소. 오늘 당신을 위한 추도사를 준비하려니 투병하며 같이 했던 지난 1년 2개월간의 세월들이 아름답게, 또 고통스럽게 떠오르고 있소

        서울대학 병원에서 루게릭이라는 병명을 알게 되던 날, 나는 허탈했으나 당신은 조금 실망스럽다고 담담히 말하였소. 그때부터 우리는 오산리 기도원, 벧엘 기도원, 잠실 기도원 등 은사가 있는 곳이라면 부지런히 찾아다니면서 금식도하고, 숙박도 하면서 살려달라고 주님께 매 달렸었지요. 또 멀리 장호원 감곡 성당까지 가서 김웅열 신부님에게 안수도 받고 성모님 아래 엎드려 많이 울기도 했었소. 꼭 나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은 채 찬송가를 부르며 차 타고 여기저기 다니던 그때가 당신은 좋은 때라고 하였소. 그래요, 다시 오지 않을 그때가 지금 생각하니 가장 좋은 시절이었소..

        또 이곳 동두천으로 이사 오자마자 새벽기도 할 교회를 찾는다면서 다니더니 이름이 좋다고 예닮교회를 선택하여 당신이 숨지기 닷새 전까지는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새벽제단, 수요기도회, 금요 철야기도를 하였지요. 누가 당신의 신앙을 따라 갈 수 있겠소,

        그뿐이요? 매일 정해진 시간인 아침 10시면 둘이 서로 손을 마주잡고 가정예배를 드렸고 찬송을 10곡씩 부르지 않았소. 그러나 병세는 조금씩 악화되어 먹는 것도, 옷 입는 것조차 힘들 때면 나는 때로 불만스러운 기도를 하였지만 당신은 단 한 번도 하나님을 원망해본 적도, 병을 힘들어해 본적도 없이, 항상 웃는 모습으로 오히려 나를 위로해 주었소.

        심권사가 항상 즐겨 하던 말. “마음이 편하다, 내가 이런 병에 걸렸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 새벽기도 때마다 하나님이 온전히 치료해 주신다고 나를 위로해 주셨다, 사랑하는 딸아 온전히 고쳐 주마 하고 약속하셨다.” 그러면 나는 조급한 마음으로, “언제, 언제래!”


        심연희 권사,

        당신은 참으로 믿음의 사람이었소. 단 한 번도 주님의 약속을 의심해보지 않았었지요. 한번은 교회 권사님들이 심방오실 때마다, 또 교회에서 나를 통해 맛있는 것 사먹으라며 전해준 돈을 그대로 모아두었기에 내가 농담 삼아 “당신 돈 많이 들어왔네, 나 추어탕 한 그릇 사줘” 하면, “안돼, 이 돈은 내가 병 나아서 예닮교회 사모님하고 전도하러 다닐 때 전도한 사람들 선물 사줄 거야”

        참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당신이었소. 당신 떠나고 깊이 감추어둔 그 돈을 찾아서, 목사님 생활비까지 걱정했던 그 가난한 예닮교회에 전해주었소. 매달 연금이 나오는 25일만 되면 아프리카 결연아동, 북한 어린이 돕기 헌금부터 챙기었지요. 아이들 굶는다고 빨리 보내주어야 한다면서.. 너무 순진한 사람..

        또 가끔은 웃는 것이 당신 병에 좋다기에 농담으로 “심연희 권사는 바보, 멍청이” 하면 “어디 낫기만 해봐, 가만두지 않을 꺼야” 하면서 그 힘없는 발로 나를 차곤 했지요. 그래도 발에 힘이 남아 있는 게 얼마나 기쁜지, 그래 어서 나아서 더 힘차게 나를 차달라며 속으로 기도하였소. 그래도 말년에는 당신도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으면 능력도 없는 나에게 기도해달라고 팔을 내밀었겠소. “불쌍한 심연희.” 하면은 “나 불쌍하지 않아” 하던 당신이었기에 그 힘들다는 生死의 江을 그렇게 쉽게 건널 수 있다는 것을 우리들에게 참 잘 보여주었소.

        숨지기 전 당신이 남긴 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온전히 치료 받는다” 이것은 당신 기도의 절정이었고 하나님의 온전한 응답이였소. 그 마지막 글이 없었다면 우리는 패배하는 줄 알았을 것이었지만, 당신은 승리했소. 영원히 병들지 않을 몸으로 변화되는 것, 헌 옷을 벗어버리고 새 옷으로 갈아 입는 것만이 온전한 치료가 아니겠소.

지금 생각하니 당신 침대에서 편히 잠든 당신을 깨워서 119 구급차로 옮기며 운명하게 한 것이 나의 잘못이었소. 당신을 살리려고 애쓰던 이름도 모르는 소방관에게 감사의 인사도 전하지 못해 미안하오.

        당신의 장례식은 하나님이 일일이 간섭하는 것 같이 은혜스러웠지요. 당신이 생전에 섬기던 다섯 분의 교회 목사님들과 각 교회의 신도들이 시간 한번 겹치지 않고 오셔서 돌아가며 예배를 드리고 찬송하였으며, 우리 교회 목사님이 장례일정의 전체 순서도 함께 하셨으니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이요. 많은 교우들이 정성으로 예배를 드리고 애도하는 그 모습에, 절에 다닌다고 항상 걱정하던 당신 언니도 감동을 받았다고 하였으니, 언니를 전도하고자 했던 당신의 생전의 바램이 이루어 질 것 같기도 하오. 당신은 향린교우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소. 그 사랑을 언제 갚을지.


        심 권사

        한줌의 재로 변한 따뜻한 당신을 품에 꼭 안고 내 고향으로 향하던 환한 길은 봄날같이 따스한 날이었소. 당신 몸을 선산에 묻고 그 이튿날 아침엔 비가 내리고, 오후엔 함박눈이 내려 당신 덮은 잔디를 촉촉이 적셔주었지요, 삼우제 날은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초겨울 날씨에, 그날이 또 우리 집안의 묘사 날이라 전국에서 모여든 친척들이 이제 막 열조의 반열에 든 당신에게도 절을 하며 예배를 함께 하였으니 이 또한 영광스러운 일이 아니겠소.

        돌이켜 볼수록 심 권사는 참 좋은 사람이었소. 남편에게 순종한다며 자기 교회를 버리고 나를 따라 향린 교인이 되었으며, 촛불집회도, 운하반대 집회도 내가 가자면 어디든 따라 주었소. 생전에는 못했던 감사한 마음, 사랑한다는 마음, 지금 늦게 전하니 받아주시오.

이제 그렇게 슬퍼하던 아이들도 험한 모습 한번 보여주지 않고 그토록 아름답게 떠난 당신에게 감사하고 사랑한다는 마음들뿐이요.


심연희 권사,

이제 당신의 기도는 다 이루어진 것 같소..

꼭 한번이라도 다시 보고 싶은 마음으로 추도사를 마치면서 당신이 가장 좋아했던 찬송 495장 1절만 부르겠소. 당신도 따라 부르시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 나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