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5일 - 깔뱅 정신을 오늘에(1): 교회와 사회

시편 25장 1-11절, 로마서 11장 1-6절


        전 진정한 평화운동가 또는 진정 예수를 따르는 한 명의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군대부터 거부하는 철저함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근자에 이르러 갖습니다. 이미 이곳에는 이러한 각성을 갖고 실천에 옮기셨던 김낙중선생님을 비롯한 진정한 평화운동가들이 계시지만, 저만 해도 초등학생 입학 때부터 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혈서로 맹세했던 박정희정권의 반민족 반평화 허구적 국가론에 세뇌 당하였기에 신학을 공부하고 독재에 저항하면서도 군 징집을 거부하는 적극적인 평화운동까지는 거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군징집의 경우 그간 우리 사회 안에는 여호와의 증인교의 신도들과 같이 평화운동의 입장 보다는 교리적인 입장에서 군 입대를 거부하는 경우가 있어왔는데, 이 경우 비난의 대상이 되어왔기에 교회가 평화라는 입장에서 이 부분에 대해 성서적이고 신학적인 입장 정리를 하지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최근 한국교회협의회에서 군 기피가 아닌 대체복무를 주장하는 문서가 나왔습니다만, 남북의 군사적 이념적 대치로 올바른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흔히들 말하기를 군에 갔다 오면 사람이 된다고 하지만, 그건 망나니와 같이 거리의 깡패 짓거리를 하던 소수의 청년들에 해당하는 이야기이고 대부분의 경우는 사람이 더욱 망가져 나옵니다. 명령에 무조건 복종이라는 집단적 폭력성은 개인의 창조성을 짓누르고 살인무기를 통한 훈련은 인간의 심성 안에 야만성과 폭력성을 키웁니다. 저 스스로도 제 안에 잠재되어 있는 야만적 폭력성에 깜짝깜짝 놀랄 때도 많이 있지만, 우리 사회가 갖는 모든 부분에서의 야만적 폭력성은 적어도 제가 다녀본 여러 나라 가운데서는 으뜸 되는 것입니다. 이것들은 모두 군대문화의 유산입니다. 이러한 인간성의 파괴로 인한 손실을 경제적 수치로 환산한다면 아마 그건 컴퓨터로도 환산되지 아니할 엄청난 금액일 것입니다. 따라서 현재의 남북의 군사적 대치가 가져오는 민족적 폐해라고 하는 것은 도대체가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너무나도 엄청난 손실인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죄는 없습니다. 따라서 남북대결을 조장하는 MB정권의 죄는 너무나도 큰 것입니다. 그래 저는 사석에서조차 군대 경험을 얘기하는 것을 피해왔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하늘뜻펴기 주제에 관련된 부분이 있어 군대 얘기를 하고자 합니다.


        군징집을 받아 전반기 훈련을 마치고 전방으로 배치를 받아 후반기 교육이 시작할 때 사단 작전과의 장교 한명이 인원 한명을 뽑기 위해 이등병 훈련생 가운데 대학을 졸업한 학생 십 여 명을 한방으로 불러 시험문제를 주었습니다. <넌 전공이 뭐야?> <국문과입니다.> <그러면 이광수에 대해 써봐.> <넌 전공이 뭐야?> <미술과입니다.> <미켈란젤로에 대해 써봐.> 전공을 물어 거기에 합당한 제목을 주었습니다. 꽤나 똑똑한 장교였습니다. 제 차례가 와서 신학을 공부했다고 하니까 하는 말이 <칼빈의 예정론에 대해 써봐.> 그래 하느님의 예정이 있었던지 제가 뽑혔습니다. 그래 전 그날부터 추운 겨울의 훈련 대신 매일 작전과로 출근을 해서 그저 난로가에 앉아 불이나 쬐다가 돌아오곤 했습니다. 동료들은 저를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지요. 그런데 정작 훈련이 끝나 배치가 되는 날에는 다른 친구가 제 자리로 가게 되었는데, 그 친구 아버지가 무슨 방첩대장인가 하는 직함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 결국 전방 철책선 말단 초병으로 3년을 근무하게 되었는데, 이것도 하느님의 예정 속에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하여간 이등병 시절에는 대대 500명 전체에 대학 졸업자는 한 둘밖에 없었는데, 제가 대학을 나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술에 취한 상관으로부터 구타를 당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매일 밤 진행되던 집단 구타 같은 것은 그런대로 견딜 만 했는데, 자유정신을 추구하던 20대의 팔팔한 청년이 무조건 복종이라는 획일적인 집단사회에서 살려고 하니 정신적으로는 너무 견디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 똑똑하기만 하던 동료 한 친구는 철책선 근무에 배치 받은지 일주일만에 자신의 목에 총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겨 자살을 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하느님께서는 저로 하여금 북의 형제를 향해 총구를 겨눠야 하는 민족모순의 쓰라림을 경험하도록 함으로 평화통일의 의지를 더욱 굳건히 하도록 하신 것 같습니다. 여기에 하느님의 예정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깔뱅: 장로교의 시조]


        7월 10일이 종교개혁자 깔뱅이 태어난 지 500년이 되는 날입니다. 흔히 존 칼빈이라고 영어식으로 발음하지만, 본래 프랑스태생이니까 장 깔뱅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습니다. 깔뱅은 흔히 장로교의 창시자 혹은 뿌리라고 불립니다. 남한의 기독교에는 세계의 모든 교파들이 다 들어와 있지만, 그중 장로교가 수적으로는 가장 우세합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마 장로교의 당회제도가 유교전통의 장유유서 정신에 부합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래 감리교나 침례교는 본래 당회제도가 없는 교단인데, 유독 남한에서만 장로제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장로교는 다른 교파와는 달리 수십 개의 교단으로 갈래갈래 찢어져 있어 교파싸움의 온상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교파 싸움에 근원에는 사적인 이유가 더 많지만, 겉으로는 항상 깔뱅의 신학을 이야기합니다. 그래 보수장로교단에서는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기 위해 깔뱅에 관한 얘기를 많이 합니다만, 기장과 같은 진보적인 장로교단에서는 깔뱅에 대해 별로 언급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깔뱅의 신학을 이은 칼 바르트를 더 많이 언급합니다. 그러다보니 깔뱅에 대한 오해도 많아 아까 언급한 장교처럼 교회는 다니지도 않으면서도 장로교인 그러면 깔뱅의 예정론을 믿는 사람들로 알고 있고, 예정론을 태어날 때부터 천국 갈 사람과 지옥에 갈 사람이 정해져 있다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제 자신을 돌이켜 볼 때에도 제가 장로교 목사이면서도 개혁주일을 맞아 마르틴 루터에 대한 얘기는 했지만, 깔뱅에 대해서는 거의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 오늘과 다음 주에 걸쳐서 깔뱅이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며 어떤 활동을 했고 그래서 장로교의 기본 정신이 무엇인지를 알아보고, 그 정신을 오늘의 시대에 되살리자면 어떤 신앙과 교회 개혁들이 필요한지를 함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313년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이후 기독교는 유럽 사회에서 급속하게 성장합니다. 그리하여 주교 감독제도를 넘어 유럽사회를 하나의 종교적 국가로 만들어가는 교황제도가 생겨나게 되면서 교회는 세속적 권력과 야합하게 되었고 그래 자연스럽게 부와 권력을 소유하게 되었고 이 부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신의 이름으로 인간의 합리적 이성에 기초한 개인의 자유와 과학적인 창조성을 짓누르는 부패함이 극에 달하게 됩니다. 그래 이 시대를 역사학자들은 흔히 암흑시대라고 일컫습니다. 그러다가 인쇄술이 점차 발달하면서 유럽 사회의 구조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되어 15세기에 이르러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모든 부문에서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도전을 받게 됩니다. 정치적으로는 민족주의에 기초한 국가주의, 경제적으로는 초기 자본주의, 사회적으로는 부르죠아지라 불리는 시민계층, 문화적으로는 고전의 새로운 해석에 기초한 인본주의 휴머니즘, 종교적으로는 교황의 권력에 맞서는 성서주의가 등장하게 됩니다.


        이러한 일련의 사회적 변화에서 교황의 면죄부 판매에 제동을 걸고 나선 마르틴 루터의 교회개혁이 있었던 것이고, 이러한 독일의 교회 개혁이 시작한지 3,40년 후에 프랑스로부터 시작하여 스위스 제네바에서 꽃을 핀 깔뱅의 제2의 교회 개혁, 그리고 200년 후 영국에서의 웨슬레의 제3의 교회개혁운동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물론 루터 이전의 후스, 동시대의 멜랑히톤, 쯔빙글리 깔뱅 이후의 존 녹스를 비롯한 수많은 개혁가들이 있어서 교회개혁이 이루어졌던 것이지, 교회개혁이 순전히 세 사람만의 작품만은 아닌 것입니다. 지금 현존하는 기독교의 주요 교단들이 루터교, 장로교, 감리교이다 보니 이들 세 사람이 자주 언급될 따름입니다. 중요한 것은 유럽에서 루터의 개혁이 나름대로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깔뱅의 개혁운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경우에도 마찬가지이지만, 개혁이나 혁명은 어떤 개인 혹은 어떤 단세포적인 그룹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보이지 않는 다양한 개혁의 주체들이 숨어 있는 것입니다. 향린교회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향린교회가 추구하는 여러 교회 개혁에는 앞서간 믿음의 선배들의 땀과 기도가 있었던 것이고, 오늘 우리 눈에는 쉽게 뜨이지 않지만, 이에 동의하는 수많은 교회들과 개인들이 우리들 배후에 숨어 있는 것입니다. 이를 깨닫지 못하면 자만에 빠지고 그래 정체하게 되지요.


[깔뱅과 루터의 개혁운동]


        루터와 마찬가지로 깔뱅 또한 처음에는 법학을 공부하였고 가톨릭의 사제로서 목회활동을 하다가 교황의 교회권력에 저항하는 새로운 신앙운동을 시작합니다. 깔뱅은 자신의 개종을 <시편주석> 서문에서 다윗에 비교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의 경우는 다윗의 경우와 비교할 때 의심의 여지없이 훨씬 열등하다. 그러나 다윗이 목동으로부터 택함을 받아 왕의 자리에 올려 진 것 같이, 나도 원래는 어둡고 미천한 출신이지만 하느님의 택하심을 입어 복음의 전도자와 목회자라는 영광스러운 직분을 통하여 가치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았다. 내가 아직 어린 소년이었을 때 나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신학수업을 받도록 정해져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법률 직업이 돈을 많이 벌수 있다는 것을 알고 법학을 공부하도록 하시었다. 그러나 비록 내가 아버지의 뜻에 따르느라 모든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은 그분의 섭리 속에 감추어진 고삐를 가지고 내 삶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돌려놓았다. 내가 깊은 수렁에서 빠져나오기 힘든 교황적 미신 신앙에 집요하게 매달려 있었기에, 하느님은 굳어진 나의 생각을 갑작스런 회심을 통해 유연하게 만드셨다. 나는 본래 수줍음을 잘 타고 고요한 삶을 즐기는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항상 조용히 지내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숨어 지내고자 한 바람은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장로교의 뿌리 칼빈> 요아김 스태트케. 정미현옮김 31쪽)


        루터의 개혁운동은 중세 교회의 면죄부 판매 반대로 시작합니다. 곧 구원은 돈으로 혹은 인간의 행위로 주어지지 않는 것임을 선포합니다. 그래 그의 신앙적 관점은 ‘인간은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라는 개인의 구원문제였고 이를 위해 그는 라틴어로 된 성서를 독일 민중들이 읽을 수 있는 번역에 매어 달렸던 것입니다. 반면, 깔뱅에게 있어서는 이러한 깨달음을 갖고 가톨릭교회로부터 이탈한 사람들을 한데 모아 집단화하는 새로운 교회운동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그의 주된 신앙적 관점은 ‘인간은 왜 구원을 받았는가?’라는 소명의 문제였고 실천의 문제였습니다.


        신학적으로 본다면 루터가 면죄부 판매에서 가톨릭과 첨예한 대결을 벌였다면, 깔뱅은 주의 만찬이라는 유일회적인 예수님의 죽음 사건을 종교화 형식화시켜 계속적으로 반복하는 미사 문제에서 첨예한 대결을 벌이게 됩니다. 루터의 95개조 선언 마냥 프랑스에서도 미사를 부정하는 벽보사건이 생겼습니다. 이에 발끈한 가톨릭의 정치세력들은 프로테스탄트들은 프랑스에서 떠나라는 추방령이 떨어집니다. 이미 잠깐동안의 감옥생활을 경험했던 깔뱅은 투옥과 화형의 위험을 피해 당시 프로테스탄트들의 피난처였던 스위스로 옮겨가게 됩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지금까지 신학도들에게 읽히는 <기독교강요>를 펴내게 되는데, 이때 그의 나이 26세였습니다. 이 책에는 교리문답과 같은 십계명, 시도신조, 주기도문, 성례전과 ‘기독교인의 자유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는데, 후에 주제는 6장에서 17장으로 수정 확대됩니다. 이 책을 통해 어거스틴과 루터의 개혁운동을 이끌어낸 바울로의 핵심적 사상이 깔뱅 신학의 옷으로 갈아 입혀져 세계 장로교회의 영적토대가 된 것입니다.


[예정론의 본질]


        우리가 다 아는 대로 당시의 교회개혁가들이 핵심적으로 외친 구호는 오직 성서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이었습니다. 오직 성서라는 말은 교황의 절대적 권위에 앞선 성서적 권위를 주장함이요, 오직 믿음 이라는 말은 미사와 같은 전통과 예배 형식을 중시했던 가톨릭의 외형적인 신앙에 맞서 개인의 내면적인 신앙이 중요함을 강조함이요, 그리고 오직 은혜라는 말은 구원은 오직 하느님의 전적인 은혜에 기초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구원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은혜만으로 주어지기에 인간의 행위를 배제한다는 의미에서는 맞지만, 구원이 선택적으로 이루어질 때, 곧 누구는 구원받고 누구는 구원받지 못하는 근거를 신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사실 이 구원에 관한 논쟁은 이미 바울로 시대부터 시작된 논쟁입니다. 로마서 9장에서 바울로는 아브라함에게는 이스마엘과 이사악 두 아들이 있었는데, 하느님은 이사악만을 선택하시고 이사악에게는 에사오와 야곱의 두 아들이 있었는데, 야곱을 선택하시는 예를 들어 말하기를 “하느님의 선택을 받고 안 받는 것은 인간의 의지나 노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의 자비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뜻대로 어떤 사람에게는 자비를 베푸시고 또 어떤 사람은 완고하게도 하십니다.”(15,18절) 여기에 우리는 하느님의 선택에 대한 어떤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판단 기준을 찾아낼 수가 없습니다. 그저 단지 그것은 하느님의 예정이었다는 말 이외에 말입니다. 그러니까 본래 예정론은 중세 가톨릭의 면죄부 판매나 미사참여나 고해성사 참여와 같은 행위에 기초한 구원관을 비판하고 하느님의 주체적 구원관을 강조하면서 생겨난 신학적 교리였는데, 그만 이것이 예정이라는 단어 때문에 숱한 오해를 받아 온 것입니다.


        이어지는 오늘의 본문 로마서 11장에서는 이 선택을 이스라엘 민족과 이방민족이라는 큰 틀로 바꿔 또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버리셨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엘리야의 얘기를 들어 엘리야가 아합 왕의 폭압정치로 예언자들이 다 죽고 제단들이 다 허물어졌다고 하느님께 하소연할 때, 하느님께서는 “나에게는 아직도 바알신 앞에 무릎을 꿇지 않은 사람이 칠천 명이나 있다”고 하신 얘기를 근거로 말합니다. 그 사람들은 자기 공로로 뽑힌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 뽑힌 것이라고. 여기서 바울로는 이스라엘의 남은 자로서의 구원을 말하고 있고 바로 이어서 이방인들에게 말하기를 그들의 구원 또한 자신의 행위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실패를 통해 구원이 임하였음을 말하면서 올리브나무의 접붙임을 예로 듭니다. 곧 이방인들이 누리는 구원의 열매나 기쁨은 스스로 뿌리를 내린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는 오래된 가지에 접목을 붙인 것이라고 하는 사실, 곧 하느님의 은혜를 강조합니다. 여기에 예정론의 본질이 담겨 있습니다.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애당초 누구는 구원받고 누구는 구원받지 못했다는 것이 예정론의 본질이 아닙니다. 예정론의 본질은 모든 인간은 하느님의 구원의 계획안에 예정되어 있다는 것과 동시에 이 하느님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을 때까지 기다리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구원이란 개인의 한계를 깨닫는 사회성의 회복]


        깔뱅에게 있어 구원이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 인간의 본래적인 형상입니다. 회개와 세례를 통해 부활 승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와 연합함으로써 인간은 새 본성을 받습니다. 인간이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께 드리면 현재로서는 아직 부분적으로 인식되긴 하지만 이미 잠재적으로 새 본성을 회복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고 이 새 본성은 성화를 통해 날마다 나타나지만 죽을 때까지는 죄에 가리어진 채 존재하게 될 것이다. 깔뱅이 이해한 구원받은 인간의 모습은 구원받기 이전의 타락한 비인간성과 갈등 속에 있습니다. 사도 바울로가 고백한대로 자신 안에서 선과 악이 싸우는 곤고한 존재의 모습입니다. 신앙인은 의롭게 된 죄인이며, 거듭난 죄인이며, 그의 삶의 마지막까지 여전히 죄인으로 살아야 할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느님은 교회를 통해 이 죄인들이 함께 모여 서로의 은사를 나눔으로 이 갈등을 극복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깔뱅은 말하기를 “하느님은 인간이 교제의 존재가 되도록 창조하셨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그가 이해하는 구원받은 인간이란 개인으로서의 육체적인 한계를 인식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회적 인간입니다.


        깔뱅은 이러한 그의 신학적 견해를 펼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를 갖게 됩니다. 그것은 스위스 제네바가 하나의 도시공화국으로 가톨릭으로부터 완전 독립하는 과정에 깔뱅의 개혁운동이 맞물렸기 때문입니다. 1536년 5월 21일 일요일 성 피에르 대성당에서 가진 시민총회를 계기로 가톨릭의 미사의식과 예배 의식, 성상, 교황권의 남용을 중단시키고 대신 복음주의적이며 거룩한 하느님의 말씀 중심으로 살아갈 것을 만장일치로 결의하셨습니다. 그래 깔뱅과 그의 친구이자 멘토였던 파렐은 <기독교강요>에 기초하여 교회정치 규정을 만들었는데, 이는 단지 교회의 공동의회에서 통과된 것이 아니라, 시의회의 결의로 공포되었습니다. 이는 마치 조선시대에 유교가 통치 이념이 되고 유교의 사제들이 통치 질서를 세워나갔듯이 세속권력과 교회는 뗄레야 뗄 수없는 관계로 얽혀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깔뱅이 요즘 남한 일부 교회에서 주장하는 성시화(聖市化)운동과 같은 신정(神政)국가를 의도했던 것은 전혀 아닙니다. 이명박씨가 서울시장 당시 ‘서울시를 하느님께 봉헌한다’는 기도를 한 것은 신정국가에 대한 개념을 갖고 성시화 운동에 동참하였던 것입니다. 오히려 깔뱅은 세속권력과 교회의 불일치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그러기에 끊임없이 세속 권력에 대항했던 것입니다.


[제네바-기독교공화국]


        깔뱅은 루터와 마찬가지로 세속 정부도 교회와 마찬가지로 하느님이 세우셨으므로 각각의 정부는 그 자체의 의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한걸음 더 나아가 국가는 교회를 보호하고, 참된 신앙을 확립하며 사유재산을 보호하며, 도덕을 증진시키며, 나아가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사람들의 생활을 규제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종교가 사회법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래 그가 조직한 제네바의 행정조직의 핵심은 12명의 장로들과 목사들로 구성된 교회법원(the consistory)이었습니다. 이는 오늘날 교회 당회의 시초가 되는 것으로 후에는 평신도들로 채워졌는데, 이들은 교회뿐 아니라 국가의 관리로 간주되었습니다. 이 교회법원은 시민들이 예배에 불참하거나 도박을 하거나 춤 등 비기독교적인 행동을 한 사람들에게 여러 징벌을 내렸고, 때로는 추방 혹은 화형이라는 엄한 징벌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요즘의 시각으로 보면 매우 위험한 일이긴 했지만, 당시로서는 중세 가톨릭의 영향으로 이런 일들이 어렵지 않게 받아들여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시 전체를 하나의 교회법으로 이끌고 가려는 생각은 애초부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처음 몇 년간은 괜찮았지만, 그의 엄격한 교회 훈련 정책은 많은 반감을 불러 일으켰고, 신학적으로도 깔뱅의 이론을 공격하는 여러 부류들이 생겨나 오래 진행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있었던 14년동안 제네바시가 깔뱅의 지도력에 의해 기독교공화국으로서 민족과 국가를 가로지르는 그리스도의 공동체를 이룩했던 일은 하나의 기념비적인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깔뱅이 가졌던 신앙은 교회의 역할은 교회 내의 변화뿐만 아니라 교인들이 사는 이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일에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예언자적 신앙관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나라는 이 땅에 임하는 곧 세속적 영역 안에서 일어나는 거룩한 활동이기 때문입니다.


[국가에 대한 저항권은 신권]


        깔뱅은 국가권력이라는 정치 질서는 마지막 때를 기다리는 임시의 과도적 질서로서 공간과 시간 속에서 가능한 한 하느님의 질서에 가까운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고 본 것입니다. 그래 깔뱅은 당시의 여러 개혁가들 가운데서도 국가에 대한 저항권과 그 임무를 가장 잘 확립한 사상가입니다.(<칼빈의 사회적 휴머니즘> 앙드레 비엘레, 박성원 옮김 44쪽) 그는 말하기를 기독교인들이 어떤 정치적 권력 하에 있게 되든 정부가 요구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에 반하는 것이라면 언제든지 강력히 반대해야 하고 국가에 대한 이 저항권은 법적으로 제약할 수 없다고. 국가나 사회 안에서 행하는 모든 복종은 단지 절대적인 권위를 갖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 바쳐야 할 복종에서 비롯되는 조건적인 복종일 뿐이고, 교회와 국가 모두 복음의 정신에 따라 끊임없이 개혁되어야 할 대상으로 본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우리는 다양한 종교가 현존하는 우리 사회에서 성서에 나와 있는 기독교적인 정신만이 절대적인 복음의 정신이라고 주장해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깔뱅이 말하는 복음의 정신이란 화해, 사랑, 정의, 평화, 생명 그리고 해방과 자유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남한의 대부분의 장로교회가 깔뱅의 후예자들로 자처하지만, 이는 교리에 있어서 그럴 따름이고 보다 중요한 실생활 곧 사회나 국가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반깔뱅적인 신앙태도를 취해왔고 지금도 취하고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잘못된 정치질서를 보면서도 단지 대통령이라는 수장이 장로라는 직함을 갖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 이를 옹호하는 엄청난 잘못입니다.


[MB 정권의 종교 탄압]


        2주 전 하늘뜻펴기에서 잠시 언급하였지만, 이 정부는 6월 11일 종로5가 한국교회협의회의 정의평화위원회와 인권센터가 주관한 목요기도회 참석자 13명에 대해 소환장을 발부했습니다. (저도 거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에 항의하기 위해 지난 목요일 목회자 평신도 50여명은 혜화경찰서 앞으로 가서 기자회견을 하고 소환장을 반납하였습니다. 기자회견문의 일부입니다.


        “평소 종교의 자유라는 천부적 권리를 바탕으로 우리 사회의 현실 문제에 대해 성서적, 복음적 메시지를 전하면서 사회갈등과 사회 불의에 대해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왔던 우리의 예배와 기도가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되어 피의자로 소환된다는 것 자체에 대해 우리 목회자들과 한국교회는 커다란 충격과 분노를 느끼고 있다. 경찰은 ‘순수한 예배를 드리고 순수한 기도를 드리라’고 이야기 하는데 그러면 우리 목회자들은 설교문과 기도문을 경찰의 허락을 받고 설교하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인가? 언제부터 경찰이 감히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설교와 기도를 판단하고 순수와 불순을 가르게 되었단 말인가? 이는 우리 한국교회와 목회자들이 순교적 각오로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이다. 구약의 예언자들과 세례 요한이 고난을 받으면서 멈추지 않았던 광야의 외침을 우리 목회자들과 평신도들은 끝까지 행할 것이다. 우리는 경찰의 소환을 종교자유를 침해하는 초헌법적 행위로 규정하고 신앙수호의 순교적 자세로 대응할 것이다. 이명박 정권은 이제 민주주의 후퇴를 넘어 종교자유까지 침해하는 초헌법적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 만일 종교자유조차 침해하는 것이 이명박정권이라면, 우리는 이명박 정권에 등을 돌리고 새로운 하나님의 정권을 세우기 위해 믿음의 싸움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서 저를 포함한 6명의 목회자와 평신도를 대표하여 최명수장로님께서  시경에 이를 문서로 접수하기 위해 갔습니다. 그런데,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전경버스 두 대가 도착하더니 약 100명의 전경들이 저희들을 둘러싸더니 화장실도 가지 못하도록 한시간 가까이 인도에 감금을 하였습니다. 도대체 무슨 폭력을 행사하러가는 것도 아니고 서류를 제출하기 위해 몇 명의 목사들이 그것도 미리 전화까지 하고 갔음에도 경찰이 매우 폭압적인 자세로 나온 일에 대해 처음에는 너무 어이가 없어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지금 이 정권은 스스로 잘못을 범하는 것을 알고 있기에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는 아주 작은 일에 대해서도 매우 신경질적인 과민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너무나도 비이성적인 정신병적인 증세를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시국선언을 했다는 명분으로 전교조 사무실을 압수하고 용산참사에 대해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적반하장으로 같은 모형을 만들어 놓고 진압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교사들이 공무원이기에 처벌을 하려고 한다면 같은 공무원인 먼저 시국선언을 한 국립대학의 교수들을 처벌해야지요.


        우리 사회의 양심적인 지식인인 리영희 교수께서도 지금의 MB 정권에 대해 말하기를 이는 히틀러정권과 같은 ‘파시즘의 시대에 들어갔다.’고 진단했습니다. “현 정권은 물질을 신격화해서 인간이라는 존재 가치가 말살돼 가고 있다. 이러한 체제를 받아들인 것도 우리의 책임이고 잘못이므로, 인권과 관련된 성과를 되찾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국제 앰네스티에서도 “한국의 시민들은 지나친 공권력으로 인해 자기 의견을 표현하고 집에 참여하는데 걱정과 두려움을 갖고 있어 이는 굉장히 불행한 일”이라고 말하면서 한국의 인권시계가 거꾸로 가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오늘 깔뱅이 남한 땅에 살고 있다면 그가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지는 분명합니다. 인권을 훼손하고 사회적 약자를 짓밟고 재벌 위주의 정책을 펴는 잘못된 국가권력에 대해 끊임없이 비판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예언자적인 비판과 저항을 통한 정의 평화 생명의 하느님 나라에 대한 운동은 제네바 시의 한 도시 운동으로 끝나지 않고, 유럽 전역으로 번져갔던 것입니다. 프랑스의 위그노 교회를 만들어냈고, 네덜란드와 스코트랜드와 영국으로 번져갔으며 이는 후에 청교도들을 통해 미국으로 건너가 인권을 중시하고 의회중심의 대의적인 정치체제를 만드는 일에 깊은 영향력을 끼쳤고 그 정신은 선교사들을 통해 이 한반도에 전해져 온 것입니다. 물론 변질도 되었고, 잘못 전해진 부분도 있습니다. 바라기는 향린교회가 장로교회로서 깔뱅의 이러한 사회적 정치 개혁운동을 이어받는 진정한 후예가 되기를 희망하고 더 나아가 우리 민족의 미래뿐만 아니라 이웃 나라들의 평화의 개혁 운동에도 영향력을 끼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