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인 수련회 설교

공동체와 교육1)

 신명기 6, 1 - 7 ; 루가복음 2, 41 - 52


조 헌 정 목사/ 최 영 숙 장로

 


        6년 전 저는 함량 미달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순종이라는 너울을 쓰고 장로임직을 받았습니다. 임직 받던 날 노회장 목사님께서 하시던 말씀이 생각이 납니다. “더 잘 하려고 생각 말고 그냥 하던 대로나 하세요.”였습니다. 그때는 그 말의 뜻을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6년 시무하는 동안 3년은 교육부에서 1년은 봉사부에서 2년은 사회부에서 그리고 목회위원회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노회 총대로 총회 총대로 교회를 대신해서 활동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임직을 받기전보다 장로 임기동안 정작 전체 교우들을 관심하거나 함께 하는 일에 있어서 오히려 소홀하지 않았나 하는 반성이 되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을 통하여 도움을 드리기 보다는 저는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많은 것들을 경험하며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신앙의 선배들을 통하여 배울 수 있었고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면 물은 다 새지만 그 사이 콩나물이 자라듯 저의 신앙도 조금은 자라며 깨달음을 갖게 해주기도 하였습니다. 오히려  많은 분들의 사랑을 먹으며 저는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제가 교회를 위하여 헌신하기 보다는 교회가 저를 더욱 조금은 나은 사람으로 키워 주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부족한 사람으로 여전히 부족했지만 받아주시고 나무라지 않으시고 참아주시며 향린의 구성원으로 함께 있게 하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사랑과 교우들로부터 받은 사랑이 너무 커서 저의 남은 삶을 통해 조금이라도 갚기를 원하지만 사랑의 빚은 더욱 크기만 합니다. 지금 저의 저 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은 물론이거니와 향린 공동체의 사랑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향린교회의 창립정신 즉 평신도 교회. 입체적 선교. 나라와 민족 구원. 통일선교 및 사회선교 그리고 분가선교 등 우리교회는 기장의 정신을 살리며 정의 평화 생명을 일구는 교회로 이 모든 일은 중요하고 지속되어야 할 일임에 틀림없습니다만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우리교회가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것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차세대 리더로 키우기 위한 적극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갖고 육성하자는 것입니다. 개인이나 조직이 성장하고 발전하려면 교육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교육열이 가장 높은 나라 중에 하나이기도 하고 또 우리나라가 비교적 단 시간 내에 이만큼의 성장을 가져온 것도 교육임을 우리가 아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대한민국 투자 1순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과학기술, 정보통신산업, 중소기업육성, 사회복지 등등의 단어를 떠올리시겠습니까? 저의 대답은 청소년입니다. 우리교회 투자 1순위는 무엇이 되어야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통일선교, 민중선교, 분가선교, 평화소모임 등등 있습니다. 저의 대답은 어린이와 청소년입니다. 우리가정의 투자 1순의는 무엇입니까? 집 장만, 좋은 자동차, 좋은 가구 등등입니다. 저의 대답은 자신 없습니다만 우리 아이들입니다. 제가 자신 없어 하는 것은 답을 알면서도 노력하지 않은 부분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형상대도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보면 나라도 사회도 교회도 가정도 가장 중요한 일 중의 하나가 어린이와 청소년을 육성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한국 사회에서 입시교육으로 청소년들을 지옥의 삶으로 몰아치고 있는 현실 속에서는 더욱 절실한 내용입니다. 어른들은 교육을 시켜도 변화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변화되고 흡수력이 빠르게 나타납니다. 그러니 같은 예산을 써도 어른들에게 사용하는 것보다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사용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고 효율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중에 저와 같이 공감하시고 느끼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리라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고 있는 일들을 생각해보면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고 어린이와 청소년은 오늘 현재의 사람이 아니고 미래의 사람이라며 제외시키며 금지시키고 무시하는 일들이 얼마든지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의 내가 형성되는 것은 어느 시점 청년시절 부터가 아니고 아기시절부터 어린이 청소년. 청년시절 등이 있으므로 존재되고 그 시기를 잘 보내야 지금의 건강한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면서도 잊어버리고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심리학자들은 어린 시절을 잘 보내지 않으면 즉 어린 시절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하면 성인이 되어서 결혼해서 그 문제를 안고 살아가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린이나 청소년은 아직 아무것도 모르니 어른들의 말을 잘 따라야 된다고 생각하며 어른들의 생각을 주입시키고 꾸겨 억지로 넣어줍니다. 그래서 어린이답지도 못하고 청소년답지도 못하게 자라서 결국 어른들의 삶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착하고 안전하고 행복할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렇습니까? 어른들이 하라고 하는 대로만 하면 아이의 장래가 보장되고 행복하고 성공하는 삶이 되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우리 자신들을 한 번 돌아다 보아야 할 것입니다. 나는 부모님 말씀대로 해서 “정말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아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입니까?

        저희 집 작은 아이가 5살 때의 일입니다. 제가 무엇인가를 이야기 했을 때 저에게 “엄마 마음만 있어! 내 마음도 있어!” 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 때 그 이야기가 아직도 잊혀 지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교회 조인우 어린이가 있습니다. 그가 5살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이제 나는 아기가 아니니까 앞으로 어린이라고 불러주세요.”라고 저에게 주문을 하여 그 때부터 저는 “조인우 어린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장하린 어린이는 10살이 되면서 엄마에게 “엄마 난 이제 10대예요”라고 말하며 이제 나도 다 컸다는 것을 암시했다고 합니다.

        어린이와 청소년은 우리들이 하는 일에 관심도 갖지 말고 다만 우리가 해놓은 일에 참석하고 우리가 하라는 대로만 해야 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것은 로봇입니다.

        누가복음 2장 41-52절 말씀을 보면 청소년시절 예수의 모습을 그려놓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12살 때 부모님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예배하러 가게 되었습니다.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너무 많은 사람들이 밀리며 내려가고 있었는데 아들 예수가 일행 중에 함께 끼어 있는 줄 알고 하룻길을 가다가 생각이 나서 친척들과 친지들에게 찾아 보았으나 찾을 수 없어서 예루살렘까지 되돌아가서 사흘 만에 성전에서 그를 찾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학자들과 한 자리에 앉아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묻기도 하며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대답을 하여 경탄하게 하였다고 쓰여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모는 깜짝 놀라며 “얘야, 왜 이렇게 우리를 애태우느냐? 너를 찾느라고 아버지와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는 “왜 나를 찾으셨습니까? 나는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모르셨습니까?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이 부분에서 만일 나라면 어떻게 표현했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일단 목소리를 크게 가다듬고 “아니 얘가 정신이 있는 애야,  너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니?” “앞으로 다시 또 그런 일이 있으면 다시 함께 오지 않을거야?” “남들은 네가 착한 줄 알고 있는데 넌 이래도 되는 거니? 예수야, 임마! 너 정말 이렇게 할 꺼야? 벌써부터 부모 속을 이렇게 태우면 앞으로 뭐가 되려고 그러니?” 등등입니다.

        예수는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모르셨습니까?”라고 반문을 했는데 이 부분은 오늘 우리들 해석으로 하면 자신의 꿈을 말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 어머니들과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우리 아이들의 꿈을 잘 가꾸어 주고 기다려주고 인정해주고 도와주고 있습니까?  아니면 아니 얘가 점점 하는 소리는 이 엄마가 다 알아서 도와주는데 네가 알긴 뭘 안다고 그러냐며 꿈도 못꾸게 하고 내 꿈에 그가 들어오게 하고 있습니까? 과연 어떤 아이가 행복하고 성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향린교회에 예수의 정신과 향린의 창립정신을 이어 받으며 이 땅에 하늘나라 건설을 위하여 큰 기둥으로 자라서 이 시대와 세계를 책임지고 꿈과 사랑을 나누는 어린이와 청소년들로 키우기 위하여 유치부 어린이부 청소년부 청년부에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여 예수의 정신과 향기를 가지고 살도록 안내해 주어야 된다고 봅니다. 그렇게 하려면 부모인 우리들의 결단이 필요하고 자녀 시험 성적에 시험에 들지 않아야 합니다. 나보다 더 훌륭한 사람으로 키우려면 멀리보고  하느님께 맡기고 기도하며 기다려 주어야 합니다.

        제가 아는 어떤 목사님의 어머니 권사님은 이렇게 평생을 기도하고 계시다고 합니다. “우리 아들이 춘천의 성자가 되게 해 주십시오” 그 이야기를 아들 목사님으로부터 들으면서 저는 많이 반성하고 회개하였습니다. 저는 그 뒤로 그 목사님이 생각날 때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그 권사님의 기도가 이루어지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저의 아이들도 하는님의 사람으로 하느님을 기쁘시게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사람으로 키워주십시오” 하고 기도 하곤 합니다.

        제가 아는 장로님 한 분은 미국에 이민자로 살고 있는데 자녀들에게 “너희들은 예수님이 기뻐하시며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하셨던 것처럼 가난한 자와 병든 자 소외된 자들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해주고  공부해야 된다고 잔소리는 전혀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신 늘 그렇게 되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은 의사가 되어 어려운 이웃들을 돕겠다며 중고등학교 때부터 자원봉사활동을 많이 하고 학교생활을 너무 훌륭하게 하면서 대학원을 하버드에 입학하게 되었을 때 대학의 교수가 추천서를 이렇게 써주었다고 합니다. “이 학생은 장래 하버드대 총장감입니다.” 지금 그는 미국에서 의사로 활동하고 있는데 그의 꿈은 북한에 가서 의료 활동을 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모델이 되어주고 좋은 프로그램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과 꿈을 갖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지금보다는 좀 더 목사님들은 교회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예산과 프로그램을 지원하며 권사님도 장로님도 집사님도 모두 모든 분들이 향린의 공동체를 생각하며 내 아이만 아니고 우리아이들로 우리 청소년들로 키워내야 합니다. 아이들과 눈을 맞추고 관심을 가지고 기도가 담긴 진실된 언어로 등을 두드려주고 악수하고 포옹하며 칭찬으로 격려 해 줘야 합니다. 예를 들어보면 “너희들은 하느님의 사람들이지?”, “네 속에 감추어진 반짝이는 보석이 무엇인지 궁금하구나.”,  “네겐 남이 가지지 못한 매력이 있어.”, “넌 무슨 꿈을 꾸고 있니?”, “야 멋있다. 잘했어. 대단하구나. 아주 훌륭해. 사랑한다. 괜찮아. 장하다.”, “자랑스럽다. 믿음직스럽다.” 성서학자들이 예수님을 가르치셨듯이 우리교회에도 어린이와 청소년을 가르치는 교사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가령 유치부와 어린이부를 위해서 자연과 숲 체험 등에 관한 프로그램을 개설하고 어린이부에는 심성훈련과 리더십프로그램 청소년부는 자원봉사프로그램(소외되고 어려운 이웃), 해외문화탐방프로그램, 오키나와 탐방프로그램, 청년부는 농활프로그램, 가나안농군학교프로그램, 결혼교실 예비부모교육 등을 통하여 앞으로의 자신의 꿈을 찾게 하고 공동체 활동으로 사랑을 배우고 익히는 체험으로 스스로 배워나가도록 해야 합니다.

        이로써 자신의 삶에 꿈을 갖게 되며 목적 있는 삶을 살게 되어 주인의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기 주도적인 학습을 하게 되며 따라서 공부하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하게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봄, 여름, 겨울 방학을 이용하여 향린인재프로젝트를 실천하게 될 때에 향린의 미래는 더욱 밝고 향린이 성숙과 성장을 가져오게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이것이 향린 공동체가 해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일로 생각하며 여러분과 함께 나누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난 주간 신문을 읽다가 어느 논설에서 “오른손은 왼손으로 씻는다”라는 제목을 읽으면서 눈물이 쏟게 되었습니다. “그래 맞아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 우리가 다 알면서도 애써 외면하거나 무시하거나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 생각하면서 왼손과 오른손은 함께 있어야 되는 것이고 한 몸속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씻는 것이지 왼손이냐 오른손이냐가 아니며 씻으려면 마주 잡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떨어져서 상대 탓만 한다면 양손 모두 깨끗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오른손과 왼손의 관계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남성과 여성, 진보와 보수, 남한과 북한, 어른과 어린이, 전라도와 경상도, 부자와 가난한자” 등이었습니다. 여기서 그 어느 것도 한 가지만 있어서는 행복하지 않습니다. 서로 협동하지 않으면 성장도 행복도 없습니다.

        우리 교회 안에도 남성과 여성, 진보와 보수, 어른과 어린이, 전라도와 경상도가 함께 존재합니다. 공동체는 서로 함께 존재하며 상대방을 인정하고 나와 다른 점을 배우며 나눌 때 커지고 성숙하는 것입니다.

        지난 주간 우리들은 지금까지 대통령 중에 가장 존경할 수 있는 노무현 대통령을 왕따시키며 죽음으로 몰아치며 집단 타살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우리사회 비주류이다’라고, ‘지금까지 권위를 격하시켰다’고, 우리들은 그를 깎아내리고 흔들고 비틀고 심리적인 압박으로 못살게 하였습니다. 민주화와 조국통일을 위하며, 소외된 자들과 약자들을 대변하며, 권위주의를 청산하려했던 그의 업적을 이명박 정부가 갈아엎어 버렸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회가 탄핵했지만 이명박 정부는 국민이 탄핵을 해야 한다며 많은 사람들이 서명을 하고 있습니다. 노대통령의 죽음으로 이제 더 이상 갈등과 분열은 없어져야 하고 그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해야 됩니다. 이 죽음에서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이제 우리들은 나와 다른 이들을 존중하고 포용하며 인정하며 배우므로 용서와 화해로 통합하고 하나 되는 사회, 하나 되는 교회, 미래로 나아가는 우리로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어린이와 청소년의 창조적인 아이디어와 어른들의 합리적인 사고, 어르신들의 지혜를 지금 여기에 함께 참여시키고, 정책을 만들고, 살림을 꾸리고 예수의 정신과 향린의 정신으로 공동체가 함께 한다면 향린의 미래는 더욱 밝아질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베든 포우엘”의 시를 소개하겠습니다.


소년을 얕보지 말라


소년을 얕보지 말라

그 아이의 집이 평범하고 보잘 것 없는 집이라고

그 아이를 얕보지 말라

에이브라함 링컨의 집도 통나무집이었다.


그들의 부모가 무식하다고 소년을 얕보지 말라

셰익스피어 아버지는 그의 이름조차 쓸 수 없었다.


그들이 보잘 것 없는 직업을 택했다고 소년을 얕보지 말라.

“천로역정”의 저자 존 번연도 땜쟁이었다.


육체적 결함이 있다고 해서 소년을 얕보지 말라.

밀튼도 맹인이 아니었던가.


소년을 얕보지 말라

그들은 인생행로에 있어서

언젠가는 앞장설 수 있어서가 아니라 그것은 옳은 일이 아니고

불친절한 일이고 온당치 않은 일이며

무례한 일이기 때문이다.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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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교인 수련회 주일 설교는 조헌정 목사와 최영숙 장로가 맡았다. 전교인 수련회 주제가 “공동체와 영성”이었기에 조헌정 목사는 따로 설교 원고를 준비하지 않고 교인들과 함께 영성수련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그래서 이번 강단에는 최영숙 장로의 설교원고만 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