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9일-교회의 일꾼 (골 1:24-29)
노재열장로 임직 권면사

이 시간에는 담임목회자로서 오늘 장로 임직을 받은 노재열장로님께 권면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바울로 선생은 감옥에 있으면서 여러 교회에 편지를 썼는데, 신약성서 중에는 목회서신이라 하여 세 개의 편지가 남아 있습니다. 그중의 하나 골로사이서의 1장 24절로 29절까지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기꺼이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몸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나는 하느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따라 여러분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남김없이 전하기 위해서 교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이 심오한 진리는 과거의 모든 세대, 모든 사람에게 감추어져 있던 것인데 이제는 하느님의 성도들에게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방인들에게 드러내신 이 심오한 진리가 얼마나 풍성하고 영광스러운 것인가를 성도들에게 알리려 하신 것입니다. 이 심오한 진리는 곧 이방인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는 사실과 또 영광을 차지하게 되리라는 희망입니다. 우리는 바로 이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고 성숙한 인간으로 하느님 앞에 서도록 하려고 우리는 지혜를 다하여 모든 사람을 경고하며 가르칩니다. 나는 이를 위해서 내 안에서 강하게 활동하시는 그리스도께 힘입어 애써 노력하고 있습니다.”

바울로는 옥에 갇혀 있으면서 자신이 교회의 일꾼으로서 부르심을 받은 사명을 두 가지로 요약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바울로는 교회를 위해 자신이 고통을 받고 있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몸으로 채우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고난이 좋아서가 아니라 참 믿음의 삶이란 진리를 따르는 삶이기에 고난과 고통을 피해갈 수 없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지난 몇 년 동안 노재열장로님께서 강정구교우님과 더불어 국가보안법이라는 악법으로 인해 당하시는 고난을 보아왔습니다. 단지 재판을 받고 교수직을 정직당하는 아픔뿐만이 아니라 빨갱이라 하여 사회적으로 엄청난 비난과 모멸을 한 몸에 받아왔습니다.

한 밤중에도 걸려오는 전화로 모욕적인 언사나 협박을 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노재열장로께서는 그 얼굴에 침뱉음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아들들 또한 보이지 않는 심적 피해를 당하였습니다. 이런 고난 중에도 노재열장로님은 이를 신앙으로 극복하여 오셨습니다. 새벽마다 이 성전에 홀로 나와 눈물로 기도하셨고 지금도 기도하고 계십니다. 진정 몸으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워 오시고 계십니다. 그러면서도 우리 모두가 아는 대로 지난 몇 년 동안 매주일 꼬박꼬박 감사헌금을 드리고 있습니다.

바울로선생은 하느님이 자신을 부른 이유를 하늘의 심오한 진리가 얼마나 풍성하고 영광스러운 것인가를 성도들에게 알리려 하기 위함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만, 노재열장로님 또한 이 하늘의 풍성함을 우리들에게 직접 보여주고 계십니다. 다른 사람보다 더 크고 좋은 집에서 세상 즐거움을 즐기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영광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와 그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서도 매주 감사의 제목을 찾아내는 그 신앙이 바로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이 땅의 축복이요 영광이라고 믿습니다. 참기 어려운 모욕과 고통 속에서도 언제나 삶 속에서 감사의 제목을 찾아내는 장로님의 신앙은 우리 모두가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바울로 선생은 자신이 교회의 일꾼으로 부름 받은 이유를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고 성숙한 인간으로 하느님 앞에 서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보통 장로로 임직되는 것을 당회원이 되는 것으로 한정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예수님의 제자삼기나 사도직 파송, 그리고 오늘 바울로 선생의 얘기에 의하면 교회의 일꾼이 되는 이유는 사람들을 성숙한 인간으로 하느님 앞에 서도록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물론 이는 단지 장로님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고 교회 안에 직임을 맡은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이 되는 말씀입니다. 저는 무슨 회의를 하든지 일 중심이 아니라 사람중심으로 논의가 진행되기를 바랍니다. 그것도 교회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믿음의 초보자들을 중심에 놓고 생각하는 회의가 진행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 교회를 부임하면서부터 장로님들에게 계속해서 이런 부탁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람을 섬기는 장로님이 되시라고. 그건 단지 차를 끓이고 식당에서 밥을 퍼주는 그런 섬김이 아닌 가정의 어머니 아버지와 같이 처음 믿는 성도들이 믿음 안에서 잘 자랄 수 있도록 양육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소그룹의 인도자가 되라고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평화나눔공동체나 구역이나 그리고 본인이 원하는 소모임들을 만들어 10명 내외의 교인을 자주 그리고 깊게 만나고 그래서 그들의 신앙적 고민과 삶의 아픔을 이해하고 기도해주는 사람이 되어달라고 부탁을 드리고 있습니다. 매해 10명씩을 깊게 만나고 알아간다면 6년의 시무가 끝났을 때는 적어도 60명의 교인들을 알아가는 기쁨을 얻게 될 것입니다. 사람을 깊이 알아가는 것, 영혼과 영혼이 만나는 것, 여기에 섬김과 양육의 기쁨이 담겨 있습니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평신도목회의 근본정신입니다. 교인들이 단지 목회운영위원회나 제직회와 같은 조직의 의장이 되는 것을 넘어서서 한 사람의 영혼과 함께 아파하고 그의 손을 잡아주고 함께 기도하는 일이야 말로 진정한 목회인 것입니다.

부모의 기쁨은 딸 아들을 낳고 이들을 자라 결혼을 하고 손자나 손녀들을 낳아 기르는 모습을 볼 때입니다. 저는 아직 손녀나 손자가 없지만 손녀나 손자를 품에 안는 할머니나 할아버지의 기쁨이 어떤 것인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교회를 오래 다니신 분들이나 지도자들은 모두 이 기쁨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믿음의 딸이나 아들을 본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잘 자라 그들이 또 믿음의 딸과 아들을 낳는 그래서 자신은 믿음의 손녀나 손자를 보는 분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런 얘기를 하면 많은 사람들은 내게 무슨 그런 능력이 있는가? 하고 스스로 반문합니다. 이런 질문을 하지 못하도록 바울로 선생은 오늘 본문 마지막에서 이렇게 우리에게 말합니다. ‘나는 이를 위해서 내 안에서 강하게 활동하시는 그리스도께 힘입어 애써 노력하고 있습니다.’ “내 안에서 강하게 활동하시는 그리스도께 힘입어.” 이 그리스도의 힘은 성서를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는 자기 훈련에서 나오는 것이지 다른 어떤 기적적 현상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이 말씀이 여러 교우님들에게 신앙의 길잡이가 되기를 바라고 특히 노재열장로님께는 오늘 장로 임직식을 통해 바로 이러한 목회의 의무와 권리가 주어졌다고 하는 것을 깊이 깨닫고 6년의 시무가 끝나 안식년을 맞이할 때 목회의 기쁨을 고백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