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1월 11일 평등세상 꿈꾸는 작은 예수들
출애굽 23:6-13; 마태오 20:8-16

(출애굽 23:6-13)
...몸 붙여 사는 사람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몸 붙여 살아보았으니, 몸 붙여 사는 자의 심정을 잘 알지 않느냐?... 칠 년째 되는 해에는 땅을 놀리고 소출을 그대로 두어 너희 백성 중에서 가난한 자들이 먹게 하고 남은 것은 들짐승이나 먹게 하여라. 너희는 엿새 동안 일을 하고, 이레째 되는 날에는 쉬어라. 그래야 너희 소와 나귀도 쉴 수가 있고, 계집종의 자식과 몸붙여 사는 사람도 숨을 돌릴 것이 아니냐?...

(마태오 20:8-16)
그들은 돈을 받아들고 주인에게 투덜거리며 '막판에 와서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은 저 사람들을 온종일 뙤약볕 밑에서 수고한 우리들과 똑같이 대우하십니까?' 하고 따졌다. 그러자 주인은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을 보고 '내가 당신에게 잘못한 것이 무엇이오? 나는 이 마지막 사람에게도 당신에게 준만큼의 삯을 주기로 한 것이오. 내 것을 내 마음대로 처리하는 것이 잘못이란 말이오? 내 후한 처사가 비위에 거슬린단 말이오?' 하고 말하였다. 이와 같이 꼴찌가 첫째가 되고 첫째가 꼴찌가 될 것이다."

[천지간의 한 괴물]

제가 여러분에게 한 인물을 퀴즈 형식으로 소개하겠습니다. 누군가 알아 맞춰보세요. 이조 오백년을 통틀어 6번의 파직과 등용을 반복했던 정치인. 최치원과 같은 고대의 시로부터 당대의 기생의 시까지 한국의 시 수 백편을 달달 외웠던 문인. 조선시대의 통치이념인 유교와 함께 불교를 숭상하고 도교적 사술을 흠모하며 천주학의 이론까지 섭렵했던 개방인. 명나라인의 글에 한글로 토(吐)를 달아 놓을 만큼 한글을 사랑했던 자주인. 단 한명의 사병을 거느리지 못하면서도 역모죄로 정죄되어 포를 뜨듯 살점을 베어내는 중형의 고통을 받은 후에 그 시신조차 수습되지 못하고 판결문도 없이 죽어야 했던 지식인. 문과중시에 장원급제하였고 정3품 벼슬까지 올랐음에도 모친 상중에 기생을 끼고 놀았다는 혐의를 받은 음란서생. 조선 팔도의 내로라하던 기생들을 친구로 삼고 그녀들과의 잠자리에 있었던 일까지 세밀하게 기록했던 자유분방인. 임금이 사형을 시키면서 사람이 아니라 개돼지를 죽이는 기쁨을 누리겠노라고 특별환영 담화문까지 반포하게 할 만큼 조정에 큰 분노를 일으켰던 이.

이조실록에는 그를 이렇게 기록하여 놓았습니다. 그는 천지간의 한 괴물입니다... 그 몸뚱이를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고 그 고시를 씹어 먹어도 분이 풀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의 일생을 보면 악이란 악은 모두 갖추어져 있습니다.(이조실록. 광해군일기 10년 4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에게 그는 매우 의로운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누구일까요? 최초의 한글 소설 홍길동전 작가인 허균(1569-1618)입니다.

나약한 음란서생에 국가전복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울분에 찬 서얼들이 함께 모여 울분을 토했다고 그리고 현실성이라곤 눈꼽만큼도 없는 상상 속의 유토피아 율도국을 그린 소설가에 대해 조정의 관료들은 왜 그리 분노하고, 심지어 나라님까지 그리 극단적인 혐오감을 드러내어 보였을까요? 그냥 정신 나간 놈의 한소리로 지나칠 수는 없었을까요?(이충범 ‘중세여성이야기’ 기상 2007년 11월호에서)

[권세가들에 눈에 비친 또 다른 괴물들]

왜 한 사람의 이름 없는 노동자의 분신에 대해 박정희정권은 그리도 무서워하며 그의 장례도 방해하고 이후 그에 관한 책은커녕 얘기도 하지 못하도록 막았을까요?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과 같이 순수한 서정시로 시작하는 노래들이 무슨 이유로 금지당해야 했을까요? 그런 노래들에는 독재정권에 대한 타도 혹은 혁명이나 투쟁이니 하는 가사 하나도 북한에 대한 찬양 한마디 없고 단지 젊음의 희망만을 노래하고 있는데 왜 독재정권은 이런 노래들을 무서워하여 금지를 시켰을까요?

새끼 노새를 타고 평화를 외치며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말하며 그 땅의 가난하고 소외되고 병든 자들을 품에 안으며 하늘 영생의 길을 전파하신 청년 예수를 왜 지도자들은 두려워하고 무서워하여 끝내는 거짓 증언자를 세워 십자가에 목 박아 죽여야만 했을까요? 그 이후 그가 다시 살아났다는 얘기를 하며 함께 모여 가진 것들을 나누고 살아가는 평화의 집단을 왜 또 다시 핍박하고 해체시키려고 했을까요? 단지 자기들과 다른 교리를 가졌다는 이유였을까요? 아니면 윤리도덕적으로 문란한 집단이어서 그렇게 했나요?

이유는 단 하나 그것은 그들이 모두 평등세상을 꿈꾸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인간은 신 앞에서 평등하다고 믿었고 그래 모든 사람은 태어나 엇비슷한 환경 속에서 자라나고 공평한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믿었고 이를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외치신 하느님 나라와 구원의 내용이 무엇이었기에 예루살렘 권력가들은 그를 죽이자고 자주자주 모의를 했을까요? 단지 죽음 후의 영생의 세계만을 말했다고 한다면 그들이 그리 위협을 느끼지 않았겠지요. 사람들이 많이 따랐다면 시기는 나겠지만, 오히려 그런 가르침은 세상 권력자들이 더 바라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예수께서 나를 구원의 주로 믿으면 죽어 천국 가서 편안하게 살게 될 것이니 세상 모든 일은 그저 운명이겠느니 하고 주어진 현실에 열심을 다하면 된다라고 가르쳤다면 세상 권세가들은 박수치고 좋아할 일 아니겠습니까?

[하느님 나라의 정의 방식]

오늘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의 비유로 말씀하신 포도원 농부의 비유는 너무 잘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핵심은 이것입니다. ‘막판에 와서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은 사람들과 온종일 뙤약볕 밑에서 수고한 사람들을 똑같이 대우하는 나라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평등한 사회라는 것이지요. 품삯은 그 사람이 일한 노동의 대가로 주는 것이니까 많이 일한 사람과 적게 일한 사람의 차이를 두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얘기입니다. 이것이 어쩌면 세상이 말하는 정의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나라에서의 품삯은 일한 노동의 대가가 아닌 생존에 필요한 만큼 똑같이 준다는 것입니다. 이를 확대해서 얘기해보면 이는 사람이 살아온 전체 인생에 비유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사실 이렇게 엉뚱한 일들이 가끔 세상에서도 일어납니다. 예를 들면 부모님께서 자식들에게 재산을 나눌 때에 건강하고 배움이 많은 자식들에게는 덜 주고 장애와 같이 생존에 어려움이 많은 자녀에게 더 많은 재산을 주는 배려를 합니다. 자식들은 불공평하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부모님께는 이것이 공평한 방법이지요. 자식들은 이를 편애라고 불리겠지만, 부모님께는 이것이 공평이지요. 큰 아들이 불평합니다. “저를 위해서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한 마리 잡아주지 않으시더니 창녀들한테 빠져서 아버지의 재산을 다 날려버린 동생을 위해서는 살진 송아지까지 잡아주시다니 말이 됩니까?!” 세상에서는 말이 안 되지만, 하늘에서는 말이 된다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이것이 하느님 나라의 정의의 방식인 사랑의 방식입니다.

많이 가진 사람들이 적게 가진 사람들을 위해서 나누는 것은 지극히 아름다운 일이지만, 세금을 조금 더 거두어 가난한 사람들의 복지를 향상 시키려고 하는 낌새만 보이면 왜 주요 보수 언론들은 좌파정권이라고 비판의 칼날을 내세울까요? 우리랑 비슷하게 살아가는 나라들 가운데서 우리만큼 세금을 적게 내는 나라는 없습니다.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이 모두 능력 있는 사람들이 돈을 더 많이 버는 자유를 허용하지만, 그러나 누진세를 통해 사회의 소득 재분배를 시행하고 있고 선진국일수록 그 비율은 높습니다. 북구는 평균 33%, 유럽국가들은 26% 영미는 23%입니다. 그렇다면 세계 12위의 우리나라는 어느 정도가 되어야 마땅할까요? 우리보다 더 국민소득이 낮은 나라들도 25%를 하고 있으니 최소한 거기에 반은 하여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실제는 반의 반도 안 되는 5%에도 미달되고 있습니다. (이정우 “한국의 미래구상” 장공기념강연자료 30쪽) 이건 우파 중의 우파이지요.

그런데 이정도로만 그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잊을만하면 우리 사회에 등장하는 것이 검은돈 뇌물 얘기입니다. 검은 돈에서 가장 깨끗해야 할 집단은 어디가 되어야 할까요? 세무서 검찰 대학 언론 이런 집단이 되어야 하겠지요? 그런데 뇌물 문제로 국세청장이 구속되고 일류 대학총장이 사퇴하고 검찰은 아예 통째로 썩어 은행구좌 번호를 들이대며 고발을 해도 모두가 자기 발등을 찍을 수는 없어 미적미적거리고 있으며, 민중의 지팡이라는 주요 보수 언론들은 노무현정권에 관련된 비리라면 크건 작건 무조건 선정적인 제목으로 대문짝만하게 대서특필하더니 정의구현사제단의 삼성고발에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건 무슨 얘기입니까? 이는 나라 상층부가 총체적으로 검게 물들어 있다는 증거입니다. 더 안타까운 사실은 국민들 다수는 내가 그런 층에 끼지 못한 것이 한이지 그런 파행과 범칙들을 당연한 관행으로 받아들이고 있고 내부 고발자를 오히려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어떤가요? 교회의 경전인 성서는 크게 보면 율법과 예언서와 복음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예언자들은 자신들이 살았던 시대에 부정의와 부조리를 힐난하게 비난하고 고발하는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부자들과 권력자들 그리고 주위 제국들의 힘의 논리를 비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형교회 목사님들 가운데 몇 퍼센트라도 이번에 일어난 오늘의 사회적 부조리에 대해 예언자적인 비판의 얘기를 하고 있을까요? 목사들이 머리를 깎고 단식을 하며 죽음까지도 불사하겠다는 비장한 결의는 이럴 때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율법은 본래 약자보호법]

야훼 하느님은 노예로 살던 히브리 백성들을 해방시켜 광야의 훈련을 시킨 후에 가나안으로 보내시면서 그들이 제대로 하느님의 뜻을 펴는 나라가 되도록 하기 위해 개인과 사회가 지켜가야 할 법률 곧 율법을 주십니다. 율법은 크게 제사법과 도덕법으로 나눌 수 있고 거기에는 개인이 지켜야 할 규범과 사회가 지켜야 할 규범이 함께 들어가 있습니다. 흔히 율법의 축약으로 말해지는 십계명은 사실 개인이 지켜야 할 종교적이고 사회적인 규범들입니다. 사회 전체가 행해야 할 법은 여기에 들어와 있지 않습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법이 안식법입니다. 십계명에는 안식일에 관해서만 얘기하고 있는데 그것도 종교적인 의미만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루를 거룩하게 지키라는 명령을 우리는 하느님께 예배드리는 날로 이해하고 있지만, 오늘 출애굽기 본문은 그 이면에 숨어있는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엿새 동안 일을 하고, 이레째 되는 날에는 쉬어라. 그래야 너희 소와 나귀도 쉴 수가 있고, 계집종의 자식과 몸 붙여 사는 사람도 숨을 돌릴 것이 아니냐?” 안식일이 본래는 예배드리는 날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위한 날이라고 하는 사실에 대해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안식일법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년법도 있었습니다. “너희는 육년 동안은 밭에 씨를 뿌려 그 소출을 거두어들이고 칠년 째 되는 해에는 땅을 놀리고 소출을 그대로 두어 너희 백성 중에서 가난한 자들이 먹게 하고 남은 것은 들짐승이나 먹게 하여라.” 땅을 쉬는 것이 땅의 지력을 높이기 위한 방법이 아니라 들짐승과 가난한 자들의 생존을 위해 쉬라는 것입니다. 지금으로 본다면 상식 이하의 얘기이지요. 아니 그렇게 하면 우리는 뭘 먹고 삽니까? 미국에서는 그렇게 한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지만, 제가 몇 년 전에 러시아를 가보니까 농부들이 땅을 일곱 등분을 해서 매해 한 등분씩 돌아가며 그대로 두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 어디가 진짜 성서의 말씀을 실천하는 기독교국가인가 하는 혼돈이 생겼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율법은 약자 보호를 위한 사회적 율법은 안식일법과 안식년법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한발자국 더 나아가는데, 이건 너무 파격적인 법이지요. 소위 말해 안식년이 일곱 번째 되는 다음해 곧 50년째마다 모든 빚은 탕감해주고 모든 노예들은 해방하고 땅은 본래의 주인에게로 돌려주라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이루어진다면 소수의 배 아픈 사람도 있겠지만, 대다수의 백성들은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르겠지요. 그래서 이 해를 기쁨의 해 희년이라고 부릅니다. 만약 남한에서 어떤 사람이 공개적으로 이런 얘기를 주장한다면 빨갱이로 몰아 죽이려 들겠지요.

그런데 이 얘기를 누가 하는고 하면 예수님이 하십니다. 루가복음에 보면 예수님이 처음 세상에 나오시면서 이 얘기를 하십니다. 흔히 나자렛회당 희년선언이라고 일컬어지지요. “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 주고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이 은총의 해가 바로 구약율법에서 말하는 희년입니다. 그래서 트로크메라는 불란서 성서학자는 주장하기를 예수님께서 서른 살 쯤에 목수 일을 그만두고 세상에 나오셨는데, 그 해가 바로 희년의 해였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율법에는 안식일법과 안식년법과 희년법만 있는 것이 아니라 더 세세하게 약자를 보호하고 있습니다. 추수를 할 때에도 가난한 사람들이 언제든지 먹을 수 있도록 다 거둬가지 말고 일부러 남겨두도록 했습니다(신 24:19-22). 이 정신에서 출발한 것이 십일조 헌금입니다. 이외에도 율법에는 지극히 생태학적 생명존중과 약자보호정신에 충실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왕정시대를 거쳐 예수시대에 이르면 율법은 기득권자를 옹호하는 법으로 변하고 맙니다. 돈 있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검은 돈을 뿌려 놓으니까 그만 사회가 온통 검게 변하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첫 하늘뜻펴기에서 가난한 자와 포로된 자를 풀어주라는 희년을 선포하시고 ‘나는 율법을 없애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마태오 5:17)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묶인 자들과 눈먼 자들과 억눌린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전태일님의 한 일기를 보겠습니다.

“끝날이 인생의 종점이겠지. 정말 하루하루가 못 견디게 괴로움의 연속이다. 아침 8시부터 저녁 11시까지 하루 15시간을 칼질과 다리미질을 하며 지내야 하는 괴로움. 허리가 결리고 손바닥이 부르터 피가 나고 손목과 다리가 조금도 쉬지 않고 아프니 정말 죽고 싶다. 육체적 고통이 나에게 죽음을 생각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고통이 더욱 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전태일님을 비롯한 수많은 노동자들의 분신을 가난이 가져다주는 육체적 고통으로부터의 탈출이었다고 쉽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아닙니다. 육체적 고통이 아닌 정신적 고통이었습니다. “두 가지 가운데 한 가지만 없어도 좋겠다. 미싱 6대에 ‘시다’가 여섯 명. 그 사람들이 할 걸 나 혼자서 다 해주어야 하니. 다른 집 같으면 재단사, 보조, 시아게 잘하는 사람 3명이 해야 할 일을 나 혼자 하니 정말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언제나 이 괴로움이 다 없어지나.”(전태일평전 1967년 3월 17일 일기에서)

여기서 그가 말하는 괴로움이란 겉으로 보면 육체적 고통에서 오는 괴로움으로 보이지만 실상 그가 당하는 괴로움은 정신적인 것이었습니다. 주인이 자기를 재단사로 승진해주고 겉으로는 일 잘하고 착한 젊은이이라고 칭찬하면서 속으로는 자기를 혹사시키는 그의 위선을 보면서 인간에 대한 심한 배신감을 느끼고 있고 돈의 포로가 된 한 인간에 대한 연민의 고통입니다.

이런 날이 계속되어가자 그는 여기서 자신이 기계가 되는 가는 것을 깨닫게 된다.

“어지럽게 들려오는 쇠금 속 소리. 짜증 섞인 미싱사들의 언성. 무엇이 현재의 실재인지를 분간 못하면서. 그 속에서 나도 부지런히 그들과 같이 해나갔다. 무의미하게. 내가 아는 방법 그대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 이외에는 무아지경이다. 아니 내가 하고 있는 일 자체도 순서대로, 지금 이 순간에 해야 될 행동만이 질서정연하게 자동적으로 행하여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의 나는 일의 방관자나 다름없다. 내 육신이 일을 하고, 누가 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때까지의 육감과 이 소란스런 분위기가 몇 인치 몇 푼을 가리키는 것이다. 다 긋고 나라시가 되고, 다 되면 또 재단기계를 잡고 그은 금대로 자르는 것이다. 누가 잘랐을까? 이렇게 생각이 갈 때에는 역시 내가 잘랐다. 왜 이렇게 의욕이 없는 일을 하고 있는지 나 자신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렴풋이 생각이 확실해질 때는 퇴근시간이 다 될 때이다. 세면을 하고 외출복으로 바꿔 입고, 인사를 하고 집으로 오면 밥상이 기다리고 있다. 밥을 먹고 몇 마디 지껄이다가 드러누으면 그걸로 하루가 끝나는 거다.”(1967년 3월의 일기에서)

그의 일기는 마치 오늘날 ‘샐러리맨의 죽음’이라는 제목이 달린 어떤 허무주의적 실존작가의 작품을 읽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문학작품들은 이런 인생의 허무성에서 맴돌다 작품은 끝납니다. 그러나 현실의 전태일님은 여기서 그냥 고민하고 사색하다 주저 않지 않았습니다. 타고난 가난의 질곡과 소외된 노동의 절망에 파묻히지 않고 그는 돌연히 일어섭니다. 이것은 아니다! 나는 노예가 아니다! 라고 외치며 일어섭니다. 이는 마치 모세가 호렙산 정상에서 타지 않는 가시나무의 영원한 불꽃을 보고 신발을 벗고 ‘나는 자유하는 하느님 야훼이다.’하는 신의 음성을 듣는 것과 같습니다.

전태일님이 쓴 소설의 한 부분입니다. [업주들은 한 끼 점심값에 2백 원을 쓰면서 어린 직공들은 하루 세끼 밥값이 50원. 이건 인간으로서는 행할 수 없는 행위입니다. ... 나이가 어리고 배운 것은 없지만 그들도 사람, 즉 인간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생각할 줄 알고, 좋은 것을 보면 좋아할 줄 알고, 즐거운 것을 보면 웃을 줄 아는 하나님이 만드신 만물의 영장, 즉 인간입니다. 다 같은 인간인데 어찌하여 빈한 자는 부한 자의 노예가 되어야 합니까. 왜 빈한 자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안식일을 지킬 권리가 없습니까? 만인이 다 평등합니다. 법률도 만인이 다 평등합니다. 왜 가장 청순하고 때 묻지 않은 어린 소녀들이 때 묻고 더러운 부한 자의 거름이 되어야 합니까? 사회의 현실입니까? 빈부의 법칙입니까? ... 그들도 인간인고로 빵과 시간, 자유를 갈망합니다.](1970년 초 소설작품 초고에서)

님은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안일한 생활은 그것이 아무리 화려한 생활의 연속일지라도 감방 안에 갇힌 죄수가 감방 벽의 돌담에 화려한 그림을 그려놓고 자기도취한 취한 꼴에 불과한 어리석은 행복의 환각이며 인간의 참된 기쁨은 서로서로를 사랑하는데 있는 것이고 오늘보다 내일이 낫도록 노력하는 것이 참된 인생의 길이라고 거듭거듭 확인하였고 그 길을 앞당기기 위해 1970년 11월 13일 점심시간에 평화시장 길거리에서 전경들과 행인들이 보는 가운데 자기 몸에 석유를 붓고 불길을 당기고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외침을 외치고 22세의 젊음의 나이를 끝마칩니다.(전태일 평전 212쪽)

[전태일님의 부활사건]

우리가 아는 대로 그의 분신자살 사건은 그냥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당시의 수많은 대학생들과 지식인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남한의 노동운동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가져오게 만듭니다.

지난 주 우리는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이라는 김진숙님을 모시고 강연을 들었는데, 그렇게 화끈한 강연은 처음 들어보았습니다. 그가 쓴 <소금꽃나무>란 책 또한 강연 못지않은 화끈한 책이더군요. 이분 또한 여성으로 삶의 밑바닥 일을 전전하고 있었고, 부산 자갈치 시장의 한 작업장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에 야학선생님을 통해 이 책을 보게 됩니다. 그때를 회상하는 글입니다. [그중에서도 제일 곤란하고 난감했던 건 화장실을 갈 때였는데, 바닥의 네모난 뚜껑 손잡이를 잡고 ‘사장님’하고 부르면 주인 아저씨가 그 구멍에 사다리를 걸쳐 줘야 밑으로 내려갈 수가 있었다. 가게에 손님이라도 있을 땐 엄두도 낼 수 없었고 화장실이 따로 있는게 아니니 시장 맨 끝에 있던 극장까지 뛰어갔다 와야 했는데, 극장 화장실은 노상 줄이 길게 서 있었다. 요령껏 새치기를 해서 숨을 헐떡이며 달려와도 “니는 싸러 오나, 일하러 오나” 하는 주인 아저씨의 구박이 다락까지 따라오니 물 한 잔 마셔도 방광은 늘 터질 것 같았고 배설조차도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어딜 가 봐도 비슷한 조건이라는 사실을 나는 일찌감치 체념하고 운명으로 받아들였고 그때마다 아버지를 원망하면서 아버지에 대한 적개심을 키워 갈 뿐이었다. 한 번도 그런 조건을 바꾸겠다는 생각을 안 했다. 아니 나는 내 존재 자체가 벌레처럼 징그럽고 싫었다. 벌레가 뭘 할 수 있으며 벌레에게 무슨 희망이 있었겠는가. 그러나 전태일은 너는 벌레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고 인간이 당연히 품어야 하는 희망에 대해서 절규하고 있었다. 희망, 세상을 우리 힘으로 바꿀 수 있다는 희망, 그 희망을 품은 인간이라는 존재.

지금보다 나은 삶이 있다는 진실이 기뻤고, 그 진실은 뭐든 할 수 있다는 용기가 되어 주었다. 그래서 24년 뿌리 깊은 어용노조를 민주노조로 바꾸는 일부터 시작했고 그 일로 대공분실 세 번, 부서 이동 두 번, 해고, 출근 투쟁, 무자비하고 끝이 없던 폭행, 수배 5년, 두 번의 감옥... 지금까지 나를 버텨왔던 건 그때의 자책과 용기가 아니었나 싶다.](49쪽)

저는 그의 글 속에서 지식인의 부끄러움을 보았고 예수님이 희년의 선포를 하시며 처음 하신 일들이 생생하게 보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세례 요한과는 달리 광야의 사람들 곧 세속을 떠난 종교적인 열정을 가진 사람들 대신에 어부들과 세리의 노동자 계급에서 사람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물론 예수님 자신이 목수로서 노동자 출신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사회적 기득권자들을 향해 계속 비판하시고 자유와 평등세상을 위한 하느님 나라 운동을 벌이십니다.

[복음서의 핵심]

한 신학자가 말한 대로 우리가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급진주의자가 되지 않는다면 그건 분명 복음서를 잘못 읽은 것입니다. ‘너희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하지만 너희 부유한 사람은 화가 있다. 너희가 이미 너희의 위안을 받았기 때문이다.’(루가 6:20-24) 어려서부터 모든 계율을 다 지켰으며, 예수를 따르길 원했던 한 젊은이는 “재산이 많았기 때문에” 슬퍼하며 예수의 곁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 젊은이가 떠나는 것을 보면서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재산을 가진 사람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참으로 어렵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지나가는 것이 더 쉽다.” 저는 그래서 솔직히 말하면 부자되라는 축복기도를 하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그건 여러분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방해 하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에 가면 가장 쉽게 듣는 얘기가 하느님 축복받아 부자되라는 얘기입니다. 하긴 그래서 누군가가 그런 말을 하더군요. 사실은 이 근심하며 떠난 젊은이가 집에 돌아가서 한 일이 교회를 세우는 일이었다고...

[요나의 기적 밖에는]

사람이 두 주인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하는데도 여전히 우리들은 두 주인을 섬기노라 정신이 없습니다. 여기서 현대인의 병이라는 스트레스가 옵니다. 전 차라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솔직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난 저 세상은 아직 확신이 없다. 그러니 보이는 이 세상에서 첫째가 되어 좀 더 편하게 살다가겠다 하든지 아니면 난 저 영원한 세상을 믿으니까 이 짧은 세상에서는 꼴찌가 되어도 좋다 하면서 좀 더 여유와 평화를 누리든지 말입니다.

우리는 바리새인들처럼 예수님께 기적을 보여 달라고 요구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요나의 기적밖에 보여줄 것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요나의 기적이란 다름 아닌 큰 고기 뱃속에서 하느님의 크신 섭리와 사랑을 깨닫고 회개하는 거듭남의 기적입니다. 세상 가치를 좇아 살던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 하늘의 정의와 평화 평등 생명의 가치로 변화되는 기적 말입니다.

우리가 오늘 한 노동자의 분신의 죽음을 기리는 것은 무슨 이유입니까? 그것은 그가 요나의 거듭남의 기적을 보여준 우리 시대의 작은 예수였기 때문이고 이 땅에서 꼴찌였던 그가 지금 하느님 나라에서는 첫째가 되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전태일님을 통해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산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이미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 송태용집사님께서 나오셔서 올해 518문학상에서 상을 받으신 ‘바보 전태일’이란 시를 낭송해 드리겠습니다.

바보 전태일

나는 다르게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작업반장이 되었을지도
소설가가 되었을지도
지금쯤 중년의 가장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청계천 다리 위에 서서
네가 노 저어 오는 소리를 듣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평화시장에서 너를 만났다
너는 너였지만,
미싱 옆에서 너가 아니었다
우리는 우리였지만,
공장 안에서 우리가 아니었다
나와 너 사이로 실밥이 거친 욕설을 바삐 나르던 곳,
우리는 작은 공 하나 쏘아 올리지 못하는 난장이였다
그곳은 평화로웠다

너는 기차로 열 시간이 넘는 바닷가 마을에서 국민학교를 마치고 올라왔다
수업보다 집안일 밭일을 더 많이 해야 했던 너는
여자 아이였던 너는
찢어진 돛폭을 미싱하며
눈멀고 귀먹은 세상에 심청이처럼 팔려왔다

저물어가는 철야근무의 수평선을 바라보며
海松 솔바람처럼 울던 너는
오른쪽으로, 더 오른쪽으로, 아니 왼쪽으로, 아니라니깐!
드르르르륵, 암초에 부딪힌 너는……
검붉은 수면 위로 잘린 손만 내밀었다

너의 삐죽 나온 사랑니에서,
때 묻은 손 위 풀빵 하나에서,
쓰러져 나간 너의 빈 의자 위에서,
거기 남아 있던 핏자국에서,
졸며 졸며 읽던 낡은 가방 속 작은 성서에서
발견했다, 근로기준법

뱃고동 소리로 출항을 외치기 위해
청계 지하 개울물 소리 깨우며 나는 돌아왔다
너에게 돌아가기 위해 나는 매년 늘어난 한 해를 지우고
다시 스물둘이 된다

한 손 땅을 짚고
한 손은 샛별을 부르는,
근로기준법 한 글자 한 단어 환하게 켜주는 다락방 촛불 되어
등대가 되어
다리는 대지 아래 묻었다
네 출항의 자리는 거기

청계천 버들다리를 다 건너지 말고 귀 기울여
개울물 소리 들어라
바보시절 삐뚤빼뚤한 몽당연필 같은
맞춤법 틀린 일기장 같은
말로 다 못해 가져온 손이 듣는, 가슴 너머 심장소리 같은
어디엔가 어디선가 노 젓는 소리

그리고 나를 건너 평화시장 골목길을 걸어가 보아라
나는 지금도 그곳에서 너를 기다린다
실밥 먼지 풀풀 날리고 다리를 저는 평화,
기계소리에 갇혀 신음하는 평화가 그곳에 있다
그곳은 지금도 평화롭다

도시 기슭까지 차오른 밤이 청계천 개울물을 재촉한다
켜지는 한 줄기 등대 불빛
나는 너를 본다,
너를 비춘다
여공과 이주 노동자와 어제 또는 오늘 또는 내일의 비정규 시민들
작은 공을 들고 머나먼 대륙을 찾아
노 저어 가는, 노 저어가는 난장이들을 본다
네 살던 바닷가까지 흘러들 청계천 개울물

발원지는 여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