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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뜻펴기'(설교)를 문서로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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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수 55
은총의 나라(10월 21일)
레위기 25, 8-13 ; 마태오 20, 1-16
한 문 덕 전도사
"넌 꿈이 뭐니?", "커서 뭐가 되고 싶어?" 2006년 서울노회 청소년부 연합수련회의 분반공부 시간에 8명의 아이들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요즘 청소년들에게 왜 공부를 하냐고 물으면 상당수의 학생들이 "그냥이요", "부모님이 하라니까요", "좋은 대학에 가려고요"라고 답하거나, 어물어물 얼버무리기 일쑤입니다.
"넌 꿈이 뭐니?"라는 저의 질문에 한 학생이 "전 인도네시아에 갈 겁니다."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이 학생의 특이한 답변에 "어 그래! 왜 인도네시아에 가려고 하는 거니?" 하고 되물었습니다. 혹시 선교사로 간다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모르는 이 친구의 원대한 뜻이 있나? 내심 속으로 잔뜩 기대를 하고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랬더니 학생이 하는 말이 이렇습니다.
"인도네시아는요, 우리나라보다 훨씬 땅값도 싸고 물가도 싸대요! 그래서 인도네시아에서 땅을 많이 사서 좀 여유롭게 살아 보려고요!"
저는 순간 할 말을 잃었습니다. 다행히 향린교회 청소년부 학생은 아니었으나 저는 씁쓸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었습니다. 우리들이 얼마나 잘못 살고 있는가를 이 학생의 한 마디 대답에서 느낄 수 있었고, 회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꿈을 꾸고 있고,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삶이 가치 있고, 의미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혹시 카드사 광고와 아파트 광고를 유심히 보신 적 있나요? "당신의 능력을 보여 주세요"라고 시작하는 모 카드회사의 광고는 유명연예인을 등장시켜 엄청 호화롭고 여유로운 삶이 가능할 것처럼 우리를 부추깁니다. 그 카드만 가지고 있으면 하룻밤에 300만원하는 유람선 여행도 가능하다고 우리를 유혹합니다. 또 다른 광고를 보면 얼굴값만 100억이 넘는다는 모 탤런트를 등장시켜 수영하는 모습, 사격연습, 선물코너에서 선물 고르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유럽식 건물 앞에서 꽃다발을 들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어디론가 향하고, 야외 음악당을 지나며 "멋지게 살아요"를 남발하며, 파도와 갈매기가 한껏 분위기를 자아내는 바닷가에서 오토바이를 등받이 삼아 멋지게 여유를 부리는 모습이 펼쳐집니다.
이런 모든 것은 경제적 능력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고, 소비 능력이야말로 곧 그 사람의 신분을 나타내는 표지가 됩니다. 광고를 보는 대중들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소비능력의 신장에 마음이 끌리게 됩니다. 세상은 이런 꿈을 꾸라고 우리들에게 속삭입니다.
아파트 광고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줍니다"라는 말부터 "당신이 하는 것은 모두 따라하고 싶어요. 왜냐면 당신은 푸르지오에 사니까요"라는 광고카피는 인격과 인간의 가치를 그가 사는 공간에 의해서 평가하도록 만듭니다.
누구나 300만원이 있으면 하룻밤의 유람선 여행을 할 수 있습니다. 돈은 만민을 평등하게 만들어 주는 것처럼 보입니다. 누구나 300만원이 있으면 배우든 배우지 못했든, 남자든 여자든, 아이든 어른이든 멋지게 보이는 하루의 여유와 낭만을 즐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환상 속에 빠져 있을 때, 그 300만원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생긴 것인지, 도덕적으로 합당한 노력에 의해 생긴 것인지, 그 돈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성찰은 사라지고 맙니다. "내가 사는 곳이 나를 말해준다"라는 것에 생각이 가 있는 사람은 점심을 굶는 결식아동,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에 대해서는 눈꼽만큼도 생각할 여유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함석헌 선생님이 "생각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말씀하셨다지만, 정말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무슨 생각을 할 것인가?'입니다. 예언자들이 욕망과 물신을 섬기는 우상숭배에 대해 심판을 외치고, 바울 사도가 '세상을 본받지 말고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그분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를 분간하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노래 한 곡 듣고 설교를 계속 하겠습니다.
Imagine - John lennon
Imagine there's no heaven
It's easy if you try
No hell below us
Above us only sky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for today
Imagine there's no countries
It isn't hard to do
Nothing to kill or die for
And no religion too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life in peace...
You may say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
I hope someday you'll join us
And the world will live as one
Imagine no possessions
I wonder if you can
No need for greed or hunger
A brotherhood of man
Imagine all the people
Sharing all the world...
잘 들으셨나요? 지난 해 영국의 버진 라디오에서 영국인 7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을 때 가장 좋아하는 곡으로 뽑혔던 존 레논의 이매진(imagine)입니다.
이 노래의 가사는 이렇습니다.
“상상해보세요 천국이 없는 세상을/ 당신이 노력한다면 그건 쉬운 일입니다/ 지옥도 없을 것이고/ 우리 위에는 오직 하늘만 있을 뿐/ 상상해보세요 모든 사람들이 오늘을 위해 사는 것을/ 상상해보세요 국경이 없는 세상을/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누굴 죽이거나 죽을 이유도 없겠지요 / 종교도 없어지겠지요/ 상상해보세요 모든 사람이 평화스럽게 사는 것을 / 상상해보세요 소유가 없는 세상을 / 당신이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소유가 없다면 탐욕도 굶주림도 없고/ 사람은 모두 한 형제가 될텐데/ 상상해보세요 모든 사람이 이 세상을 함께 공유하는 것을/ 그대는 나를 몽상가라 부를지 모르지만/ 나는 혼자가 아닙니다 / 언젠가 당신도 우리와 함께 하길 바랍니다/ 그러면 세상은 하나가 될 겁니다.”
"이매진"은 레논의 삶과 사상이 집약된 노래인데, "사랑과 평화"에 대한 그의 꿈과 열망이 녹아 있습니다. 나라도 민족도, 천국도 지옥도 없고, 소유나 탐욕도 사라지고 오로지 모든 인간이 형제애를 가지고 오늘을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세상에 대한 꿈이 들어 있습니다. 존 레논 스스로 얘기했듯이 이 노래는 "반종교적, 반민족주의적, 반인습적, 반자본주의적" 노래입니다. 종교가, 민족이, 자본이, 인습이 인간을 억압하고, 평등을 해치고, 자유를 옥죄일 때 존 레논은 노래로써 자신의 꿈을 말했던 것입니다.
존 레논은 한참 세계적으로 인기를 누리던 1966년 비틀즈 멤버들과 함께 "우리는 전쟁을 혐오한다. 결코 동조할 수 없다"는 기자회견으로 첫 사회적 발언을 시작함으로써 평화운동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는 대중가요를 대중의 취향에 영합하는 인기 창출의 수단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에 대해 바른 인식으로 꿰뚫고 그 인식을 전달하는 매개물로 생각하였습니다.
1969년 영국이 비아프라와 나이지리아 내전에 참전하자, 존 레논은 그가 받았던 국가최고훈장(MBE)을 반납하고,(평화에게 기회를)라는 노래를 만듭니다. 이 노래는 1969년 12월 워싱턴 국회의사당 앞, 베트남전쟁 반대시위에서 25만 명의 군중들이 합창함으로써, 세계적인 ‘운동가요’로 떠올랐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1980년대 말 동유럽 사회주의국가의 민주화운동 과정에서까지 애창되었습니다.
1972년에는 북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영국군이 주민을 학살한 이른바 ‘피의 일요일사건’이 발생하자(일요일, 피에 젖은 일요일)라는 노래를 만들어 노래와 공연의 수익금을 아일랜드공화군(IRA)에 기부하기도 하고, 43명의 재소자가 사망한 아티카교도소사건을 다룬 노래와 흑인여성운동가 안젤라에 대한 미국 정부의 부당한 탄압을 비판한 노래 등을 만들어 인권탄압에도 항의하였습니다. (당시 흑인여성운동가 안젤라를 감옥에 가두고 그의 배우자를 죽였던 정부의 인물은 바로 캘리포니아 주지사였고 나중에 대통령이 되었던 로날드 레이건이었습니다)
그는(혁명), (노동계급의 영웅), (민중에게 권력을), (난 군인이 되고 싶지 않아) 등 직설적이고 과격한 메시지의 노래들을 불렀고, 또한 아내 오노 요코의 영향으로 대중가요로는 최초로 여성해방운동을 다룬 (여성은 세계의 노예)를 만들었으며, 1975년 오노와의 재결합 이후 은퇴선언을 하고 아예 집에 들어앉아 전업주부로서 아들 숀의 육아와 가사에 전념하는 등 행동으로 페미니즘을 실천하였습니다.
어떤 꿈을 꾸느냐? 어떤 가치를 소중한 것으로 여기느냐는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인류의 양식인 고전들에는 언제나 이상사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중국의 고전인 예기의 예운편에는 이런 이상향이 담겨 있습니다.
"대도가 행해진다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서로 남이라고 여기지 않으며 현명하고 능력 있는 인재들이 등용되고 서로 믿고 화목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부모와 자식만을 사랑하는 이기적 생각을 갖지 않고, 노인네들이 노후를 편안히 보낼 수 있고, 젊은이들은 직업이 없이 전전하지 않으며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방황하지 않고 바른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합니다. 또한 홀아비, 과부, 고아, 가족 없이 혼자 사는 노인들,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처럼 소외된 이웃들도 모두 보살핌을 받게 합니다. 남자는 자기 일이 있고 여자는 가정이 있습니다. 경제적 부를 함부로 낭비하는 것은 지탄의 대상이 됩니다만 그렇다고 자신만의 사리사욕을 위해 꼭꼭 숨겨두지 않습니다. 자기 능력을 묵혀두는 것도 좋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능력을 발휘할 때는 자신만을 위해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혼란을 틈타 사욕을 채우려는 생각들이 고개를 들 수 없고 도둑이나 강도가 준동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바깥문을 닫지도 않습니다. 이것을 크게 하나 되는 사회라고 합니다.”(大道之行也, 天下爲公, 選賢與能, 講信, 修睦. 故人不獨親其親, 不獨子其子, 使老有所終, 壯有所用, 幼有所長, 矜寡孤獨廢疾者皆有所養. 男有分, 女有歸. 貨惡其弃於地也不必藏於己, 力惡其不出於身也, 不必爲己. 是故謀閉而不興, 盜竊亂賊而不作, 故外戶而不閉, 是謂大同.) 『예기』「예운편」
고대 그리스 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릴 수 있는 플라톤도 『티마이오스』에서 그의 스승이었던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어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하고, 사유재산도 거의 갖지 않고 공동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돕는 이상사회를 그리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에는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의 눈물을 씻어 주시고, 다시는 죽음도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는 세상을 꿈꾸지요.
강정구 교우는 지난번 결심공판의 마무리 진술서에서 진실을 가로막고 자유를 옥죄는 한국의 현실을 개탄하면서 진리와 진실 속에서 모두가 자유로워지는 꿈을 말하였습니다. 사팔뜨기가 된 우리의 눈들이 제대로 돌아, 산이 산으로, 내가 내로, 하늘이 하늘로, 나무가 나무로, 새가 새로, 짐승이 짐승으로, 사람이 사람으로 제대로 보이"게 되는 문익환 목사님의 꿈을 우리 모두 꾸자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말하는 꿈과 동서양의 고전들과 지식인들이 들려주는 이상사회에 대한 꿈은 어떻게 다른가요? 전자는 개인적 욕망과 사적인 이기주의에 머물러 있는 꿈들입니다. 후자는 세계의 부조리와 부정의를 극복하고 평등과 참 자유의 세상을 그리는 공적 영역의 꿈입니다. 그렇다면 성서에서는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요?
오늘 여러분이 읽으신 구약의 말씀은 희년법에 관한 것입니다. 희년은 안식년을 일곱 번 지나 50년째가 되는 해로 전국 주민들에게 해방을 안겨주는 해입니다. 누구나 자기의 상속재산을 되찾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매각한 농토와 집들이 본래의 소유자에게로 되돌아갔습니다. 또한 노예들도 해방되었는데 단순한 노예해방이 아니라 그들에게 생산기반까지 제공해 주는 해방이었습니다. 이 희년법은 땅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누구도 토지를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는 원칙에서 나온 것으로 이 법은 하나님의 백성은 누구나 자유로운 하나님의 땅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천명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법은 인간에 대한 불평등과 부정의를 낳는 당시의 왕권제도, 토지의 자유매매제도, 잉여재산의 상속제도를 거부하여 평등사회를 세우고 유지하려는 정신에서 나온 것입니다.
희년법은 철저하게 공적인 영역의 문제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능력과 노력을 통해 부자가 된 사람들, 종을 부릴 위치에 선 사람들은 희년이 되었을 때 무척이나 억울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노력의 결실을 어떻게 빼앗아 갈 수 있는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 몸 같은 형제와 자매가 굶주리는데 어찌 자신만 배불리 먹을 수 있겠습니까? 나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생각한다면 원래 제자리로 돌리는 것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들 또한 하느님이 주신 땅이 없었다면 그들이 누리는 부와 명예는 불가능하였을 것입니다. 모든 것은 하느님으로부터 왔다는 인식이 있다면 모든 이들에게 공평하게 되돌리는 희년법을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희년법은 바로 모두가 함께 나누는 삶에 대한 이상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었던 것은 최초로 살 터전을 주신 하느님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꿈은 공적영역에 머물러야 합니다. 자신이나 가족, 자기가 아는 사람만 잘되는 꿈이면 안 됩니다. 향린교회만 잘되는 꿈도 안 됩니다. 세상 모두가 잘 되는 꿈을 꾸어야 합니다. 향린교회는 주일 평균 출석인원이 300명 정도 되는 작은 교회입니다만 8개의 부서와 14개의 신도회와 19개의 구역모임, 7개의 평화나눔작은공동체, 그리고 다양한 소모임들이 있고, 이런 모임들이 일년 동안 교회내적으로 대 사회적으로 하는 일들은 엄청나게 많습니다. 때로는 많은 부서와 일들이 서로 부딪히기도 하고, 때론 자기 부서나 신도회의 욕심으로 서로 감정이 상하게 되기도 합니다. 특히 연말이 되면, 각 부서의 예산 책정과 일꾼 임명이 있는데 이럴 때에는 자기가 속한 부서나 신도회 생각만 하지 마시고, 교회 전체 나아가 이 사회 전체를 위해서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셔야 합니다.
한국 개신교와 교회의 변혁을 위해 "2007년 교회의 날" 행사가 10월 22일 월요일부터 27일 토요일까지 연세대학교 신과대학과 우리 향린교회 본당에서 열립니다. 한국 교회의 현 상황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우리의 신앙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이 있습니다. 각 신도회에서는 신도회별로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개인별로도 참여하고 후원도 하면 더욱 좋지요. 에큐메니칼 차원에서 여러 교회와 단체가 함께 일하려고 해 보면 개교회주의 때문에 일이 거의 안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교회의 날 행사가 우리 교회 행사라고 생각하시고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사랑과 평화의 세상을 일구는 공적 영역의 꿈을 가지고 활동할 때 기억해야할 마지막 말씀을 드리고 설교를 마칠까 합니다.
오늘 예수님이 해 주신 비유는 오후 다섯 시에 와서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은 사람에게 온전하게 하루 품삯을 준 포도원 주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비유를 읽으면서 "하느님 나라의 부름은 다양하며 누구는 하느님 나라를 위해 하루 종일 일하고 누구는 한 시간만 일할 수도 있구나" 라고 오해하면 안 됩니다. 그럴 분은 없으시겠지만 이 비유를 읽으면서 "피고용자의 임금을 정하는 것은 주인 마음이구만" 이라고 생각하시면 큰일입니다.
저는 이 비유를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라고 생각합니다.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는 사람들은 포도원 주인을 만나 각각 9시간, 6시간, 3시간, 그리고 1시간이나마 일할 수 있었고, 노동의 기쁨과 더불어 삶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세상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일도 시켜주지 않는 이들도 포도원 주인의 행동에서 보듯이 하나님의 은총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루 종일 일한 사람이나, 한 시간 일한 사람이나 궁극적으로 살아가는 힘은 사실 제 노력과 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에서 나온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당시 유대 사회는 철저한 공로지향적 사회였습니다. 그리하여 누가복음에 나오는 바리새인은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욕심이 많거나 부정직하거나 음탕하지 않을뿐더러 세리와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일주일에 두 번이나 단식하고, 모든 수입의 십분의 일을 바칩니다."라고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들은 아무런 공적을 쌓지 못한, 지지리도 못난 사람들 즉 사회 부적응자들이 하느님의 나라에 초대받는다는 예수의 선포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이른바 잘난 사람들, 즉 제 힘으로 성공하거나 출세하였다고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은총을 공정한 분배 정의의 파괴라느니, 사회 질서의 혼란이라느니 하는 따위의 구실을 내걸고, 비방하였습니다. 공로지향적 사회에서는, 사회에 대해 공적을 행하지 못하는 여인,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무시되었으며 가난하고 병들고 죄인 취급받는 이들은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오늘의 비유는 이런 사람들도 똑같이 대접받는 사회가 하나님 나라라는 사실을 알려 주고 그들을 살 수 있도록 하는 데 그 핵심이 있는 것입니다.
이 비유에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첫째는 개개인에게 내리는 하느님의 은총은 인류 전체 생명 전체에게 주시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대다수의 한국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의 아낌없이 주시는 은총을 개인의 사적 욕망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은총은 인류 모두에게 해당하는 공적 영역의 것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사유화하는 것은 그 순간 욕망의 노예가 되어 우상숭배에 빠지게 되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나의 배부름이 누군가의 배고픔을 야기시키는 것이라면 그 배부름을 하느님의 은총이라고 말해서는 절대 안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기억하여야 할 사실은 인간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산다는 것을 제대로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향린교회는 공적인 영역의 꿈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는 공동체입니다. 거기에 대한 자부심도 있고, 기쁨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내가 잘나거나 나의 지식이나 능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에서 온다는 사실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산다는 생각이 있을 때에 만이 이율배반에 빠지지 않습니다. 존 레논은 소유 없는 세상을 노래했지만 자신은 이미 최고의 인기 있는 대중가수로 당시에 평범한 사람이 누릴 없는 부를 소유하고 있었고, 플라톤의 이상국가는 노예의 고된 노동에 의해 세워지는 나라였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산다는 것을 제대로 깨달은 사람만이 이런 이중성과 교만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하느님 은총으로만 살아가는 사람! 은총의 나라에서 사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처럼 들의 핀 백합 한 송이에서 솔로몬의 영광 이상을 보게 되고, 일용할 양식만으로도 배부르며, 나누고 섬기며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화가 나지 않고, 묵묵히 하느님에게로 나아갈 것입니다.
비전문가들로 구성되었지만 한국교회 새로운 합창문화에 새로운 물줄기를 터 온 '새하늘새땅' 합창모임이 어느새 10년이 되었고, 세 번째 앨범인 "이미 시작된 나라"가 나왔습니다. 음반의 타이틀로 나온 "이미 시작된 나라"의 가사는 이렇습니다.
"기다림에 지쳐서 잠든 새벽녘
밤새도록 내리는 새벽이슬 같은
아직 오직 않았다고 절망할 때에
이미 내 삶 한복판에 꿈틀대는 나라
아름다운 꽃무리 보고 싶거든
여린 새싹 소중하게 보듬는 일부터
그의 나라 나로부터 시작되는 나라
이미 내 삶 한복판에 꿈틀대는 나라"
이미 여러분의 삶 한복판에 꿈틀대는 하느님의 은총의 나라를 만나시는 일주일 되시기 바랍니다.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
레위기 25, 8-13 ; 마태오 20, 1-16
한 문 덕 전도사
"넌 꿈이 뭐니?", "커서 뭐가 되고 싶어?" 2006년 서울노회 청소년부 연합수련회의 분반공부 시간에 8명의 아이들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요즘 청소년들에게 왜 공부를 하냐고 물으면 상당수의 학생들이 "그냥이요", "부모님이 하라니까요", "좋은 대학에 가려고요"라고 답하거나, 어물어물 얼버무리기 일쑤입니다.
"넌 꿈이 뭐니?"라는 저의 질문에 한 학생이 "전 인도네시아에 갈 겁니다."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이 학생의 특이한 답변에 "어 그래! 왜 인도네시아에 가려고 하는 거니?" 하고 되물었습니다. 혹시 선교사로 간다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모르는 이 친구의 원대한 뜻이 있나? 내심 속으로 잔뜩 기대를 하고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랬더니 학생이 하는 말이 이렇습니다.
"인도네시아는요, 우리나라보다 훨씬 땅값도 싸고 물가도 싸대요! 그래서 인도네시아에서 땅을 많이 사서 좀 여유롭게 살아 보려고요!"
저는 순간 할 말을 잃었습니다. 다행히 향린교회 청소년부 학생은 아니었으나 저는 씁쓸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었습니다. 우리들이 얼마나 잘못 살고 있는가를 이 학생의 한 마디 대답에서 느낄 수 있었고, 회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꿈을 꾸고 있고,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삶이 가치 있고, 의미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혹시 카드사 광고와 아파트 광고를 유심히 보신 적 있나요? "당신의 능력을 보여 주세요"라고 시작하는 모 카드회사의 광고는 유명연예인을 등장시켜 엄청 호화롭고 여유로운 삶이 가능할 것처럼 우리를 부추깁니다. 그 카드만 가지고 있으면 하룻밤에 300만원하는 유람선 여행도 가능하다고 우리를 유혹합니다. 또 다른 광고를 보면 얼굴값만 100억이 넘는다는 모 탤런트를 등장시켜 수영하는 모습, 사격연습, 선물코너에서 선물 고르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유럽식 건물 앞에서 꽃다발을 들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어디론가 향하고, 야외 음악당을 지나며 "멋지게 살아요"를 남발하며, 파도와 갈매기가 한껏 분위기를 자아내는 바닷가에서 오토바이를 등받이 삼아 멋지게 여유를 부리는 모습이 펼쳐집니다.
이런 모든 것은 경제적 능력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고, 소비 능력이야말로 곧 그 사람의 신분을 나타내는 표지가 됩니다. 광고를 보는 대중들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소비능력의 신장에 마음이 끌리게 됩니다. 세상은 이런 꿈을 꾸라고 우리들에게 속삭입니다.
아파트 광고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줍니다"라는 말부터 "당신이 하는 것은 모두 따라하고 싶어요. 왜냐면 당신은 푸르지오에 사니까요"라는 광고카피는 인격과 인간의 가치를 그가 사는 공간에 의해서 평가하도록 만듭니다.
누구나 300만원이 있으면 하룻밤의 유람선 여행을 할 수 있습니다. 돈은 만민을 평등하게 만들어 주는 것처럼 보입니다. 누구나 300만원이 있으면 배우든 배우지 못했든, 남자든 여자든, 아이든 어른이든 멋지게 보이는 하루의 여유와 낭만을 즐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환상 속에 빠져 있을 때, 그 300만원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생긴 것인지, 도덕적으로 합당한 노력에 의해 생긴 것인지, 그 돈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성찰은 사라지고 맙니다. "내가 사는 곳이 나를 말해준다"라는 것에 생각이 가 있는 사람은 점심을 굶는 결식아동,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에 대해서는 눈꼽만큼도 생각할 여유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함석헌 선생님이 "생각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말씀하셨다지만, 정말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무슨 생각을 할 것인가?'입니다. 예언자들이 욕망과 물신을 섬기는 우상숭배에 대해 심판을 외치고, 바울 사도가 '세상을 본받지 말고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그분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를 분간하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노래 한 곡 듣고 설교를 계속 하겠습니다.
Imagine - John lennon
Imagine there's no heaven
It's easy if you try
No hell below us
Above us only sky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for today
Imagine there's no countries
It isn't hard to do
Nothing to kill or die for
And no religion too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life in peace...
You may say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
I hope someday you'll join us
And the world will live as one
Imagine no possessions
I wonder if you can
No need for greed or hunger
A brotherhood of man
Imagine all the people
Sharing all the world...
잘 들으셨나요? 지난 해 영국의 버진 라디오에서 영국인 7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을 때 가장 좋아하는 곡으로 뽑혔던 존 레논의 이매진(imagine)입니다.
이 노래의 가사는 이렇습니다.
“상상해보세요 천국이 없는 세상을/ 당신이 노력한다면 그건 쉬운 일입니다/ 지옥도 없을 것이고/ 우리 위에는 오직 하늘만 있을 뿐/ 상상해보세요 모든 사람들이 오늘을 위해 사는 것을/ 상상해보세요 국경이 없는 세상을/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누굴 죽이거나 죽을 이유도 없겠지요 / 종교도 없어지겠지요/ 상상해보세요 모든 사람이 평화스럽게 사는 것을 / 상상해보세요 소유가 없는 세상을 / 당신이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소유가 없다면 탐욕도 굶주림도 없고/ 사람은 모두 한 형제가 될텐데/ 상상해보세요 모든 사람이 이 세상을 함께 공유하는 것을/ 그대는 나를 몽상가라 부를지 모르지만/ 나는 혼자가 아닙니다 / 언젠가 당신도 우리와 함께 하길 바랍니다/ 그러면 세상은 하나가 될 겁니다.”
"이매진"은 레논의 삶과 사상이 집약된 노래인데, "사랑과 평화"에 대한 그의 꿈과 열망이 녹아 있습니다. 나라도 민족도, 천국도 지옥도 없고, 소유나 탐욕도 사라지고 오로지 모든 인간이 형제애를 가지고 오늘을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세상에 대한 꿈이 들어 있습니다. 존 레논 스스로 얘기했듯이 이 노래는 "반종교적, 반민족주의적, 반인습적, 반자본주의적" 노래입니다. 종교가, 민족이, 자본이, 인습이 인간을 억압하고, 평등을 해치고, 자유를 옥죄일 때 존 레논은 노래로써 자신의 꿈을 말했던 것입니다.
존 레논은 한참 세계적으로 인기를 누리던 1966년 비틀즈 멤버들과 함께 "우리는 전쟁을 혐오한다. 결코 동조할 수 없다"는 기자회견으로 첫 사회적 발언을 시작함으로써 평화운동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는 대중가요를 대중의 취향에 영합하는 인기 창출의 수단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에 대해 바른 인식으로 꿰뚫고 그 인식을 전달하는 매개물로 생각하였습니다.
1969년 영국이 비아프라와 나이지리아 내전에 참전하자, 존 레논은 그가 받았던 국가최고훈장(MBE)을 반납하고,
1972년에는 북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영국군이 주민을 학살한 이른바 ‘피의 일요일사건’이 발생하자
그는
어떤 꿈을 꾸느냐? 어떤 가치를 소중한 것으로 여기느냐는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인류의 양식인 고전들에는 언제나 이상사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중국의 고전인 예기의 예운편에는 이런 이상향이 담겨 있습니다.
"대도가 행해진다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서로 남이라고 여기지 않으며 현명하고 능력 있는 인재들이 등용되고 서로 믿고 화목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부모와 자식만을 사랑하는 이기적 생각을 갖지 않고, 노인네들이 노후를 편안히 보낼 수 있고, 젊은이들은 직업이 없이 전전하지 않으며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방황하지 않고 바른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합니다. 또한 홀아비, 과부, 고아, 가족 없이 혼자 사는 노인들,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처럼 소외된 이웃들도 모두 보살핌을 받게 합니다. 남자는 자기 일이 있고 여자는 가정이 있습니다. 경제적 부를 함부로 낭비하는 것은 지탄의 대상이 됩니다만 그렇다고 자신만의 사리사욕을 위해 꼭꼭 숨겨두지 않습니다. 자기 능력을 묵혀두는 것도 좋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능력을 발휘할 때는 자신만을 위해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혼란을 틈타 사욕을 채우려는 생각들이 고개를 들 수 없고 도둑이나 강도가 준동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바깥문을 닫지도 않습니다. 이것을 크게 하나 되는 사회라고 합니다.”(大道之行也, 天下爲公, 選賢與能, 講信, 修睦. 故人不獨親其親, 不獨子其子, 使老有所終, 壯有所用, 幼有所長, 矜寡孤獨廢疾者皆有所養. 男有分, 女有歸. 貨惡其弃於地也不必藏於己, 力惡其不出於身也, 不必爲己. 是故謀閉而不興, 盜竊亂賊而不作, 故外戶而不閉, 是謂大同.) 『예기』「예운편」
고대 그리스 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릴 수 있는 플라톤도 『티마이오스』에서 그의 스승이었던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어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하고, 사유재산도 거의 갖지 않고 공동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돕는 이상사회를 그리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에는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의 눈물을 씻어 주시고, 다시는 죽음도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는 세상을 꿈꾸지요.
강정구 교우는 지난번 결심공판의 마무리 진술서에서 진실을 가로막고 자유를 옥죄는 한국의 현실을 개탄하면서 진리와 진실 속에서 모두가 자유로워지는 꿈을 말하였습니다. 사팔뜨기가 된 우리의 눈들이 제대로 돌아, 산이 산으로, 내가 내로, 하늘이 하늘로, 나무가 나무로, 새가 새로, 짐승이 짐승으로, 사람이 사람으로 제대로 보이"게 되는 문익환 목사님의 꿈을 우리 모두 꾸자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말하는 꿈과 동서양의 고전들과 지식인들이 들려주는 이상사회에 대한 꿈은 어떻게 다른가요? 전자는 개인적 욕망과 사적인 이기주의에 머물러 있는 꿈들입니다. 후자는 세계의 부조리와 부정의를 극복하고 평등과 참 자유의 세상을 그리는 공적 영역의 꿈입니다. 그렇다면 성서에서는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요?
오늘 여러분이 읽으신 구약의 말씀은 희년법에 관한 것입니다. 희년은 안식년을 일곱 번 지나 50년째가 되는 해로 전국 주민들에게 해방을 안겨주는 해입니다. 누구나 자기의 상속재산을 되찾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매각한 농토와 집들이 본래의 소유자에게로 되돌아갔습니다. 또한 노예들도 해방되었는데 단순한 노예해방이 아니라 그들에게 생산기반까지 제공해 주는 해방이었습니다. 이 희년법은 땅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누구도 토지를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는 원칙에서 나온 것으로 이 법은 하나님의 백성은 누구나 자유로운 하나님의 땅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천명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법은 인간에 대한 불평등과 부정의를 낳는 당시의 왕권제도, 토지의 자유매매제도, 잉여재산의 상속제도를 거부하여 평등사회를 세우고 유지하려는 정신에서 나온 것입니다.
희년법은 철저하게 공적인 영역의 문제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능력과 노력을 통해 부자가 된 사람들, 종을 부릴 위치에 선 사람들은 희년이 되었을 때 무척이나 억울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노력의 결실을 어떻게 빼앗아 갈 수 있는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 몸 같은 형제와 자매가 굶주리는데 어찌 자신만 배불리 먹을 수 있겠습니까? 나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생각한다면 원래 제자리로 돌리는 것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들 또한 하느님이 주신 땅이 없었다면 그들이 누리는 부와 명예는 불가능하였을 것입니다. 모든 것은 하느님으로부터 왔다는 인식이 있다면 모든 이들에게 공평하게 되돌리는 희년법을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희년법은 바로 모두가 함께 나누는 삶에 대한 이상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었던 것은 최초로 살 터전을 주신 하느님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꿈은 공적영역에 머물러야 합니다. 자신이나 가족, 자기가 아는 사람만 잘되는 꿈이면 안 됩니다. 향린교회만 잘되는 꿈도 안 됩니다. 세상 모두가 잘 되는 꿈을 꾸어야 합니다. 향린교회는 주일 평균 출석인원이 300명 정도 되는 작은 교회입니다만 8개의 부서와 14개의 신도회와 19개의 구역모임, 7개의 평화나눔작은공동체, 그리고 다양한 소모임들이 있고, 이런 모임들이 일년 동안 교회내적으로 대 사회적으로 하는 일들은 엄청나게 많습니다. 때로는 많은 부서와 일들이 서로 부딪히기도 하고, 때론 자기 부서나 신도회의 욕심으로 서로 감정이 상하게 되기도 합니다. 특히 연말이 되면, 각 부서의 예산 책정과 일꾼 임명이 있는데 이럴 때에는 자기가 속한 부서나 신도회 생각만 하지 마시고, 교회 전체 나아가 이 사회 전체를 위해서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셔야 합니다.
한국 개신교와 교회의 변혁을 위해 "2007년 교회의 날" 행사가 10월 22일 월요일부터 27일 토요일까지 연세대학교 신과대학과 우리 향린교회 본당에서 열립니다. 한국 교회의 현 상황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우리의 신앙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이 있습니다. 각 신도회에서는 신도회별로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개인별로도 참여하고 후원도 하면 더욱 좋지요. 에큐메니칼 차원에서 여러 교회와 단체가 함께 일하려고 해 보면 개교회주의 때문에 일이 거의 안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교회의 날 행사가 우리 교회 행사라고 생각하시고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사랑과 평화의 세상을 일구는 공적 영역의 꿈을 가지고 활동할 때 기억해야할 마지막 말씀을 드리고 설교를 마칠까 합니다.
오늘 예수님이 해 주신 비유는 오후 다섯 시에 와서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은 사람에게 온전하게 하루 품삯을 준 포도원 주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비유를 읽으면서 "하느님 나라의 부름은 다양하며 누구는 하느님 나라를 위해 하루 종일 일하고 누구는 한 시간만 일할 수도 있구나" 라고 오해하면 안 됩니다. 그럴 분은 없으시겠지만 이 비유를 읽으면서 "피고용자의 임금을 정하는 것은 주인 마음이구만" 이라고 생각하시면 큰일입니다.
저는 이 비유를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라고 생각합니다.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는 사람들은 포도원 주인을 만나 각각 9시간, 6시간, 3시간, 그리고 1시간이나마 일할 수 있었고, 노동의 기쁨과 더불어 삶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세상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일도 시켜주지 않는 이들도 포도원 주인의 행동에서 보듯이 하나님의 은총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루 종일 일한 사람이나, 한 시간 일한 사람이나 궁극적으로 살아가는 힘은 사실 제 노력과 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에서 나온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당시 유대 사회는 철저한 공로지향적 사회였습니다. 그리하여 누가복음에 나오는 바리새인은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욕심이 많거나 부정직하거나 음탕하지 않을뿐더러 세리와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일주일에 두 번이나 단식하고, 모든 수입의 십분의 일을 바칩니다."라고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들은 아무런 공적을 쌓지 못한, 지지리도 못난 사람들 즉 사회 부적응자들이 하느님의 나라에 초대받는다는 예수의 선포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이른바 잘난 사람들, 즉 제 힘으로 성공하거나 출세하였다고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은총을 공정한 분배 정의의 파괴라느니, 사회 질서의 혼란이라느니 하는 따위의 구실을 내걸고, 비방하였습니다. 공로지향적 사회에서는, 사회에 대해 공적을 행하지 못하는 여인,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무시되었으며 가난하고 병들고 죄인 취급받는 이들은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오늘의 비유는 이런 사람들도 똑같이 대접받는 사회가 하나님 나라라는 사실을 알려 주고 그들을 살 수 있도록 하는 데 그 핵심이 있는 것입니다.
이 비유에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첫째는 개개인에게 내리는 하느님의 은총은 인류 전체 생명 전체에게 주시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대다수의 한국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의 아낌없이 주시는 은총을 개인의 사적 욕망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은총은 인류 모두에게 해당하는 공적 영역의 것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사유화하는 것은 그 순간 욕망의 노예가 되어 우상숭배에 빠지게 되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나의 배부름이 누군가의 배고픔을 야기시키는 것이라면 그 배부름을 하느님의 은총이라고 말해서는 절대 안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기억하여야 할 사실은 인간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산다는 것을 제대로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향린교회는 공적인 영역의 꿈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는 공동체입니다. 거기에 대한 자부심도 있고, 기쁨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내가 잘나거나 나의 지식이나 능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에서 온다는 사실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산다는 생각이 있을 때에 만이 이율배반에 빠지지 않습니다. 존 레논은 소유 없는 세상을 노래했지만 자신은 이미 최고의 인기 있는 대중가수로 당시에 평범한 사람이 누릴 없는 부를 소유하고 있었고, 플라톤의 이상국가는 노예의 고된 노동에 의해 세워지는 나라였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산다는 것을 제대로 깨달은 사람만이 이런 이중성과 교만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하느님 은총으로만 살아가는 사람! 은총의 나라에서 사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처럼 들의 핀 백합 한 송이에서 솔로몬의 영광 이상을 보게 되고, 일용할 양식만으로도 배부르며, 나누고 섬기며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화가 나지 않고, 묵묵히 하느님에게로 나아갈 것입니다.
비전문가들로 구성되었지만 한국교회 새로운 합창문화에 새로운 물줄기를 터 온 '새하늘새땅' 합창모임이 어느새 10년이 되었고, 세 번째 앨범인 "이미 시작된 나라"가 나왔습니다. 음반의 타이틀로 나온 "이미 시작된 나라"의 가사는 이렇습니다.
"기다림에 지쳐서 잠든 새벽녘
밤새도록 내리는 새벽이슬 같은
아직 오직 않았다고 절망할 때에
이미 내 삶 한복판에 꿈틀대는 나라
아름다운 꽃무리 보고 싶거든
여린 새싹 소중하게 보듬는 일부터
그의 나라 나로부터 시작되는 나라
이미 내 삶 한복판에 꿈틀대는 나라"
이미 여러분의 삶 한복판에 꿈틀대는 하느님의 은총의 나라를 만나시는 일주일 되시기 바랍니다.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