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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뜻펴기'(설교)를 문서로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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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30일 한가위와 감사
신 8장 11-18절, 골로사이 3장 12-17절
[명절 스트레스]
성당을 다니는 아주 가까운 친구가 혼자 아버님 성묘를 다녀오는 길에 저희 집에 잠시 들렀습니다. 저녁을 먹고 가라는 권유에 제사 때문에 집에 가봐야 한다고 하면서 덧붙이기를 ‘이제는 아내가 제사음식을 준비하는 일에 매우 힘들어하고 3,4일전부터 아파하기도 하고 신경이 높아져서 가정불화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소위 말하는 명절증후군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가정입니다. 주부의 87%가 이런 저런 명절 스트레스에 시달린다고 하니 여러분 가운데서도 많은 분들이 이런 스트레스를 겪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뉴스에 어떤 부부는 시댁과 친정 중 어느 집을 먼저 방문하는 문제로 부부싸움을 하다가 남편이 홧김에 아파트 창문 밖으로 뛰어내려 죽었다고 하니 이제 남아 있는 식구들에게는 한가위는 기쁨과 안식을 주는 명절이 아닌 평생 후회의 아픔을 상기시키는 고통의 날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뉴스를 들으면서 한가위 제사문제는 단순한 가정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요 국가적 문제인 것을 새삼스레 깨달았습니다.
그래 친구에게는 아내 고생시키지 말고 추모예배로 대신하라고 했습니다. 내년부터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제 얘기를 오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제가 지금 제사를 폐지하라고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제 친구 가정은 형제자매가 모두 미국에 있어 음식을 함께 나눌 가정도 없고 제사음식 준비로 가정불화가 있다고 하니까 제가 그렇게 얘기를 했던 것이고 오히려 다른 많은 가정들은 제사를 드리지 않을 때 집안에 더 큰 문제를 가져올 수도 있으니까 지혜롭게 처신해야 할 문제입니다.
전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기에 제사를 드려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외국 생활을 하고 돌아왔기에 선산이 있는 본가와도 멀어져 있습니다. 저는 할아버지 산소를 돌봐야 하는 유일한 종손이지만, 거리가 멀어 일 년에 한번 가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집안 어른들의 보이지 않는 압력도 있고 예수교는 조상도 모르는 불효막심한 종교로 낙인찍힐까봐 명절 때만 되면 벌초도 못하는 제 마음이 편치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
[제사와 조상 탓]
우리말에 ‘조상 탓’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기 잘못도 남의 탓으로 돌리는 일은 인간의 본성입니다. 주스가 담긴 컵을 자녀가 부주의하여 발로 차서 쏟으면 그런 것도 보지 못하느냐고 야단을 치는 아버지도 자신이 부주의하여 쏟으면 누가 여기에 컵을 놓았느냐고 야단을 칩니다. 에덴동산의 첫 인간 아담과 하와는 먹지 말라는 선악과의 열매를 뱀의 유혹에 넘어가 먹은 후에 ‘왜 명령을 어겼느냐?’고 하느님으로부터 추궁을 받자 아담은 하와가 주었다고 책임을 돌리자 하와는 당신이 만든 뱀이 자기를 유혹했다고 하여 결국 하느님께 책임을 전가합니다. 이는 자기 잘못을 고백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보여주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조상 탓’이라는 단어가 다른 민족에게도 있는 말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단어에서 저는 우리 민족의 부정적인 단면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차분하게 먼저 자신에게 잘못은 없는지 생각해 보고 그리고 상대방과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나가기보다는 화부터 내고 다른 사람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운전사고가 나면 큰소리를 내며 싸우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고 특히 언론에 가장 많이 회자되는 정치인들이 그러합니다. 여야는 말 그대로 오른편 왼편 하듯이 반쪽에 해당하니까 상대방의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공격을 해야 하는데 무조건 상대방 비난입니다. 그저 조그마한 흠만 발견되면 침소봉대하여 공격하고 있고 그로인해 남는 것은 상처투성이 뿐입니다. 이 상처는 국민들의 상처로 남아 정치인에 대한 불신 그리고 정치에 대한 극심한 혐오증을 남기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물론 정치 지도자들의 잘못도 크지만 언론의 책임이 더 큽니다. 나라의 미래를 바라보고 백성을 옳은 길로 선도해가기 보다는 조그마한 사건도 크고 굵은 글씨로 제목을 만들어 국민을 호도합니다. 때로는 제목이 너무 선정적이고 선동적이어 유치하기 짝이 없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권력에 아부하고 군부독재 시절에는 온갖 아양을 떨며 자기 몸짓을 불려온 재벌 언론들이 사회적 약자 보호라는 본래의 언론의 기본 정신을 잊어버리고 강자 편에 서서 자기 이익만 챙기려는 모습을 보면 역겨울 때가 많습니다.
그래 ‘조상 탓’이라는 단어에 자꾸만 신경이 쓰입니다. 남 탓도 아니고 환경 탓도 아닌 웬 조상 탓인가? ‘탓’이 잦아질 때 자기 책임감이 없어지고 그로인해 사회적 정의감은 상실되어 갑니다. 특히 ‘조상 탓’이라는 말 속에는 자기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운명적 힘이 조상들로부터 온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저는 많은 가정이 가정불화를 겪으면서도 제사를 드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제사 종교 행위인가? 효 문화 행위인가?]
제사가 단지 조상 추모라는 효의 문화 행위인지 아니면 조상신을 섬기는 종교적 행위인지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것이라고 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저 흩어졌던 가족들이 함께 모여 조상을 기억하고 지나온 삶을 감사하는 자리로 생각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마치 조상신을 섬기는 자세로 예를 엄격히 지키면서 제사를 드리는 분도 있습니다. 그분들의 마음속에는 예를 다해 잘 모시지 않으면 조상들이 화를 내고 그래서 나나 자손에게 화가 미친다고 믿고 있습니다. 일종의 샤머니즘입니다.
저 멀리 수 만 년 전 시베리아까지 그 뿌리를 찾아갈 수 있는 샤머니즘 자체를 좋다 나쁘다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민속종교학적으로 얼마든지 긍정의 요소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21세기에 제사 음식을 만들어 조상들에게 먹게 하고 그 상의 음식은 어떠어떠해야 하고 그 그릇들이 어떻게 놓여야 한다는 생각은 아무리 생각해도 유치해 보입니다. 불과 한 이백 년 전만 해도 3년 상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그 묘 옆에 초가를 짓고 거기서 살면서 하루 세끼 밥과 국을 해서 드렸습니다. 3주일도 아니고 3개월도 아닌 3년을 말입니다. 나라의 중요한 관료들도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관직을 포기하고 그렇게 했습니다. 공을 위해 사를 희생하는 것이 당연하거늘 사를 위해 공을 희생하는 것을 오히려 명예로운 일로 가르쳤습니다. 충과 효는 유학의 가장 큰 정치이념이지만, 이것이 서로 부딪힐 때에는 효가 앞선 것입니다. 그것도 살아계실 때라면 이해가 가지만 돌아가신 후에 그러했다는 점에서 저는 동의하기 힘듭니다. 여기서 가족이기주의가 나오고 이는 자연히 공공윤리나 도덕에 소홀하게 만듭니다.
한 달 전쯤입니다. 주일 아침에 교회를 오던 중, 앞서 달리던 렉서스 차의 창문에서 먹던 커피와 함께 컵과 넵프킨이 인도로 냅다 던져졌습니다. 제가 너무 화가 나서 좇아가서 야단을 쳤습니다. 차에 타고 있는 사람을 보니까 20대 말의 남매간으로 보였는데, 정장 차림을 미루어 보아 교회를 가는 것 같았습니다. 분명히 대학을 나왔을 것이고 외제차를 모는 것을 보아 유학도 다녀왔을 것이고 직장도 있을 것이고 게다가 교회까지 열심히 다니니 그들은 누가보아도 사회의 엘리트입니다. 그러나 내 차만 깨끗하면 되었지 차 밖 길거리가 더러운 것은 자기와는 아무런 상관없다는 도덕적 불감증은 어디에서 오는 것입니까?
이전 황우석 사건이나 지금의 신정아 사건에 관련된 지도자들의 거짓 학력은 우리 사회의 도덕적 불감증이 얼마나 깊게 병들어 있는 것인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외국 언론들이 이를 꼬집고 있어 얼굴 들기가 부끄러울 정도입니다. 저는 우리 사회의 무너진 도덕불감증은 가족이기주의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고 있고 이 가족이기주의는 제사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보고 있습니다.
최근 정수복이란 학자가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이란 두꺼운 책을 출판했습니다. 한때 대학교수였지만, 대학사회의 부조리를 경험하고 학교를 나와 환경운동연합과 크리스챤아카데미에서 사회운동을 하고 방송계에도 일했던 그는 남한 사회를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 다시금 유학생활을 했던 파리로 가서 저술과 강연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남한 사회의 부정적인 문화적 문법을 12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근본적 문법으로는 <현세적 물질주의, 감정우선주의, 가족주의, 연고주의, 권위주의, 갈등회피주의>를 말하고, 이의 파생적 문법으로는 <감상적 민족주의, 국가중심주의, 속도지상주의, 근거없는 낙관주의, 수단방법중심주의, 이중규범주의>를 말하고 있습니다. 대강 제목만 보았고 미래의 대안을 어떻게 제시하고 있는지는 끝까지 읽어보아야 하겠지만, 일단 그의 지적에 동의하고 쉽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무엇인가 자신을 계속 억누르는 억압의 실체를 찾아내고자 했고, 고국에 돌아와 지식인으로 활동하면서도 여전히 불화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찾고자 했는데, 그것이 바로 이러한 문화적 문법이었다고 말합니다. 이 문법들은 시대가 바뀌어도 쉽게 변하지 않고 현재를 살아가는 개인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역사의 축적물’이자 ‘마음의 습관’이 되었고 이러한 뿌리를 무교와 유교로 보고 종교문화적 차원에서 비판적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는 기독교 또한 같은 차원에서 비판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제사에 한정하여 얘기를 하고 있기에 더 깊게 얘기를 하지는 못하겠지만, 여러분도 기회가 되는대로 이 책을 통해 자신 안에 있는 뿌리깊은 부정의 문법들을 찾아내 보시기를 바랍니다. 불교 도교 유교와 기독교가 우리 문화에 있어 어떻게 만나고 융합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수복씨는 제사가 가져온 민족적 폐해를 지적하고 있지만, 저는 반대로 이 제사를 보다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길을 찾고 싶습니다. 어제 심예원교우가 출연하는 타악기로 이루어진 국악연주회를 가보았습니다. 흔히 말하는 퓨전음악 형태였습니다. 특히 이자람이라는 주목받는 젊은 국악가가 심청가의 일부분을 개작하여 창도 아니고 뮤지칼도 아닌, 아니! 창도 되고 뮤지칼도 되는 새로운 형태로 부르는데, 거기에는 여러 국악기와 기타 드럼 전자 올갠이 함께 어우러져 있었습니다. 마지막 무대에는 아프리카 드럼과 사물놀이, 세 명의 아프리카인들이 직접 추는 현란한 몸짓과 농악 춤이 서로 만나 어우러져 하나의 예술을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새로운 세대에 매우 파격적인 방식으로 접근하는 시도가 매우 좋았습니다. 상당한 자극을 받았고 저는 오늘의 교회에 등을 돌리는 젊은 세대에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남한 교회가 예전이나 설교 예배 형태에 있어서도 이러한 파격이 필요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유교와 기독교의 교리적 충돌과 문화적 융합]
우리나라의 유교는 서시 372년 고구려에 태학이 건립되던 해에 들어와 지금까지 1,600년의 세월이 지나오는 동안 우리 민족의 얼을 형성하여 오고 있으며 한때는 국가이념을 주도하며 민족종교로서의 역할을 담당하여 나라에서는 종묘를 만들어 선왕들을 섬겼고 양반들은 집에 가묘를 만들어 조상을 섬겼습니다. 우리가 싫든 좋든 기독교인이든 불교인이든 상관없이 우리 삶의 한부분이 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그 가르침이 매우 현세적이고 삶에 직결된 가르침이 많아 종교라기보다는 윤리나 도덕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유교의 제사를 보다 쉽게 받아들이는 일면이 있고 그러하기에 천주교는 이미 1931년에 교황청의 교시로 제사를 인정했습니다.
요즘은 기독교의 보수운동이 너무 거세 기독교의 토착화 신학이 매우 쇠퇴하여 있습니다. 그런데 이 운동은 1960년대 이후 감리교의 윤성범교수나 변선환교수와 같은 몇몇 신학자들에 의해 주도된 최근의 신학운동이 아니라 천주교가 전해지던 수세기전에 유학자들에 의해 꾸준히 추구되어 왔던 일입니다. 유학의 실학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16세기의 지봉 이수광 17세기의 성호 이익 그리고 18세기 남인 계통의 권철신, 정약전 약종 약용 삼형제, 이벽과 같은 사람들이 이런 토착화를 시도했던 사람들입니다. 그중 이벽은 <천주공경가>와 <성교요지>를 통해 기독교의 천주 영혼불멸 죄 지옥 천당과 유교의 교훈이 모순 없이 공존합니다.
그의 44조의 시구를 한번 보겠습니다.
집안에는 어른있고 나라에는 임금있네
내몸에는 영혼있고 하늘에는 천주있네
부모에는 효도하고 임금에는 충성하네
삼강오륜 지켜가자 천주공경 으뜸일세
(조요한 ‘한국에 있어서의 유교와 기독교의 만남’ <한국문화와 기독교 윤리> 1986년 136-158쪽)
그러나 이러한 토착화운동은 1791년 진산의 사대부인 유지충과 권상연이 제사를 폐지하고 신주를 불사르면서 ‘군주의 명은 어길 수 있고, 부모의 명도 어길 수 있지만, 천주의 가르침은 극형을 당하더라도 바꿀 수 없다.’는 확신을 밝힘으로 신유사해라는 천주교 박해가 시작되어 이후 100년에 걸쳐 만 명 이상의 희생자를 내는 수난의 역사를 당하게 되고 이조말기 문호개방 그리고 일제의 침략에 맞물려 서양선교사들에 의한 기독교는 새로운 장을 열게 됩니다.
지금은 기독교와 유교는 불과 이백년 전에 비해 그 상하 위치가 완전히 뒤바꿔져 있습니다. 그런데 겉으로는 기독교가 유교를 지배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성서가 말하는 하느님 나라의 의의 추구나 자신으로 인해 아버지와 아들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갈라선다는 말씀이나 죽은 자는 죽은 자로 하여금 장사를 지내고 너는 나를 따르라는 말씀보다는 국가권력에 충성하고 부모님께 효를 다하라는 가르침이나 남녀차별과 가부장적인 권위주의 그리고 관혼상제를 중시하는 유교의 주류 사상들은 교회 안에 여전히 힘 있게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게다가 많은 기독교인들이 스스럼없이 무당을 찾아가 점을 치고 부적을 사고 있으며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자손이 불행해진다고 믿고 있고 영생과 부활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도 좋은 묘 자리를 위해 큰돈을 들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율법과 복음의 교리적 충돌과 문화적 융합]
2천년 전 초기 그리스도인들도 거의 비슷한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골로사이교회에 보낸 사도 바울로의 편지 2장 8절을 보면 “여러분은 헛된 철학의 속임수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그것은 세속의 원리를 기초로 인간이 만들어서 전해 준 것이지 그리스도를 기초로 한 것은 아닙니다.” 16절에 가면 “그러므로 여러분은 먹고 마시는 문제나 명절 지키는 일이나 초생 달 축제와 안식일을 지키는 문제로 아무에게도 비난을 사지 마십시오.” 20절 이하에 가면 “여러분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세속의 유치한 원리들을 버렸다면 어찌하여 아직도 이 세상에 속하여 사는 것처럼 이것은 집지 말고 저것은 맛보지 말고 그것은 건드리지 말라 하는 따위의 규정에 묶여 있습니까?” 주로 당시 모세의 율법에 근거한 제사법 안식일법 정결법과 같은 세세한 계명들로 인한 교회 내의 폐해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갈릴래아의 민중들과 함께 하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의 아들로 고백하고 믿었지만 아브라함 때로부터 내려오는 유대의 문화적 전통을 지켜가려는 사람들과 이는 부활의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폐지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사이에 계속 논쟁거리가 되고 있었고 이는 교회공동체를 깰 위험에 처해 있었던 것입니다.
[손가락이 아닌 달을 보라]
도교나 유교의 가르침이 본래 그러하지는 않았지만, 오늘 우리 사회에 부정적 요인으로 드러나듯이 모세의 율법 또한 본래 정신이 인간의 자유를 억누르는 억압의 기제는 아니었습니다. 오늘 구약성서 본문에서 모세가 분명히 말한바와 같이 율법은 ‘가나안에 들어가 배불리 먹으며 좋은 집을 짓고 소떼 양떼가 불어나 교만한 생각이 들어 하느님 야훼를 잊어버릴까봐’ 그리고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내신 하느님을 잊지 않고 기억하도록 하기 위해’ 주신 것이라고 재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본래의 뜻은 사라지고 계명만 남아 있게 된 것입니다. 사실 이렇게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달로 착각하고 믿는 일은 오늘날에도 흔하게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어찌 보면 성수주일이나 십일조도 같은 것입니다. 모두 하느님의 해방과 구원역사를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하느님의 은혜와 감사를 잊지 않도록 위해 지키라고 명한 것들인데, 이제는 이것들이 하느님을 대신하는 법으로 그래서 지키지 않으면 구원에서 제외되는 공포기제로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골로사이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사도 바울로가 비난하는 ‘세속의 원리를 기초로 한 헛된 철학의 속임수’ 혹은 ‘세속의 유치한 원리’란 무엇입니까? ‘이런 규정들은 실상 육체의 욕망을 제어하는 데는 조금도 힘이 없습니다.’ 곧 육체의 욕망을 일으키는 것들은 모두 헛된 철학의 속임수나 세속의 유치한 원리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사주팔자를 보는 점이 헛된 철학의 속임수라고 말할 수 있고, 제사에서 동쪽에는 무슨 음식이 놓여야 하고 숟갈과 젓가락은 어떤 방향을 향해야한다는 얘기는 세속의 유치한 원리라고 비유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화와 복이라는 세상 욕망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로가 중요시 여겼던 신앙의 원리는 무엇이었습니까? ‘이제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천상의 것들을 추구하십시오.’(3장 1절) 이 천상의 것들을 추구하는 사람을 그는 새 인간이라 부르고 이 새 인간은 새로운 안목을 갖게 되는데 그것은 ‘그리스인과 유다인, 할례 받은 사람과 받지 않은 사람, 국적인과 비국적인, 노동자, 주인 따위의 구별이 없고 오직 그리스도만이 전부로서 모든 사람 위에 군림한다.’고 하는 만인평등 사상을 외칩니다. 지금은 이 말이 너무도 당연시 여겨지는 말이지만, 당시 로마는 노예에 기초한 사회였고 유다는 할례에 기초한 사회였던 것을 감안하면 이는 국가전복을 꾀하는 외침이 되는 것입니다. 홍근수목사님은 북한 공산당에도 인간을 사랑하는 휴머니즘이 있다고 해서 친북용공발언을 했다고 하여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물론 지금도 강정구교수 이시우선생 그리고 조신원집사의 아들 조성봉군이 모두 이와 비슷한 이유로 국가보안법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만인평등을 주장했던 바울이야 말로 당시의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위반자였지요. 그래 그 또한 로마 감옥에 갇히고 십자가 처형을 받았습니다. 바라기는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시작하기 전에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국가보안법을 무효화하는 성명을 하고 평화를 향한 회담을 하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로는 이렇게 출신과 국적에 따른 인간 차별이 당연시되는 사회에 예수 그리스도의 화해의 복음을 제시하고 그 복음을 실천하는 공동체로 교회를 세웠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새로운 개인 윤리를 제시하는데 그것은 ‘여러분은 하느님의 새로운 가족으로 서로 동정심을 갖고 친절을 베풀며 겸손과 온유와 인내로 서로 도와주고 피차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용서해주고 서로 사랑을 실천하라.’는 본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5절에서 17절까지의 이 유명한 사도바울로의 권면 마지막 부분을 보면 각절 끝에 계속 반복되는 말이 있습니다. 15절에서는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십시오.’ 16절에는 ‘그리고 성시와 찬송가와 영가를 부르며 감사에 넘치는 진정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찬양하십시오.’ 17절에는 ‘여러분은 무슨 말이나 무슨 일이나 모두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분을 통해서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감사가 계속 강조되고 있습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로 거듭난 새 인간에게 있어 가장 큰 특징은 감사인 것입니다.
[감사의 절기]
한 종교의 얼은 행하는 예식에 담겨 있습니다. 유대교의 3대 예식은 과월절과 칠칠절과 수막절의 절기예식이며 이는 모두 감사의 예식입니다. 과월절은 애굽의 노예생활로부터 해방 받았음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칠칠절은 보리 수확이 끝난 후에 수막절은 가을추수가 끝나 모든 곡식열매를 창고에 드린 후에 드리는 감사의 절기입니다. 바로 한가위감사주일과 같습니다. 한가위의 제사도 본래는 감사정신에 있었다고 봅니다. 내가 힘써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늘이 도와준 것이다. 그래서 하늘 옥황상제에게 제사를 드렸던 것이 오늘날 집안 조상제사로 좁혀진 것입니다. 저는 제사에 있어 이 감사를 어떻게 회복하느냐에 따라 제사가 세속의 헛된 제도가 되지 않고 가족을 하나로 묶는 축제와 예배로 바꿔지는 영적 원리가 된다고 봅니다.
성경에는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이 예배하는 조상들의 있습니다.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 요셉입니다. 모두가 고난 속에서 감사를 말하지만 특히 요셉이 그러합니다. 그는 형들의 미움으로 죽음의 구덩이 속에 빠졌다가 외국 상인들에게 노예로 팔려갔고 그 이후 고생 끝에 보디발이라는 치안대장의 한 집안을 책임지는 집사가 되었지만, 자신의 욕망이 거절당한 안주인의 거짓고발로 감옥 속에 갇혔습니다. 그의 일생은 한마디로 구덩이에서 떠돌이노예로 그리고 감옥으로 고난의 연속입니다. 그런데 성서 구절을 보면 그에게 하느님이 항상 함께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구덩이에 빠지고 노예로 팔려가고 억울한 감옥살이에 하느님께서 함께 하셨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고통 가운데 있는데, 사람들이 여러분을 보고 그 사람은 참으로 하느님께서 함께 하는 사람이야 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무엇을 보고 하는 말이겠습니까? 단지 기도하고 의지하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는 기독교인이 아니어도 누구든지 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고난 속에서도 감사를 잃지 않았을 때입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고나서 자신을 노예로 팔았던 형들을 만났습니다. 과거에 그가 당한 고통과 죽음의 공포를 생각한다면 정말 그들에게도 그런 고통을 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고백합니다. ‘형님들 과거의 일로 두려워하지 마세요. 하느님이 형님들을 구하게 하시려고 나를 미리 이곳에 보내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자신의 삶에 대한 사명의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볼 수 있습니다. 요셉은 자신이 하느님께 쓰임 받을 것을 바라보고 살았기에 고난의 삶 속에서도 미움의 뿌리를 키워가는 대신에 감사의 열매를 맺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한가위감사주일이 단지 예배형식에 전통적인 것들을 추가하는 것으로 그치거나 제사의 적극적인 교회의 수용의지만으로 그칠 수는 없습니다. 또는 자연의 결실의 풍성함만 생각하는 감사는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때로 태풍이나 홍수로 그런 결실이 맺히지 못할 때도 많기 때문이고 지금도 우리들 주위에는 그러한 삶의 고난 속에 살아가는 분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감사는 고난 속에서 나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이 고통스러웠던 과거 속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기억하며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구덩이에 빠졌을 때 하느님은 어디에 계셨는지, 내가 쇠고랑을 차고 노예로 팔려갈 때, 하느님은 어디서 무얼 하고 계셨는지 그리고 내가 감옥에 있을 때, 하느님은 어디에 계셨는지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바닷가 모래밭의 발자국이란 사진의 내용은 유명합니다. 한 신앙인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습니다. 두 개의 발자국과 한 개의 발자국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가만히 보니 자신이 힘들 때는 하나의 발자국 편할 때는 두 개의 발자국으로 된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 하느님께 항의합니다. ‘하느님 당신은 내가 힘들 때에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시지 않았습니까? 왜 그런데 제가 힘들 때 저를 모른 채 하셨습니까? 저 발자국을 말해주고 있지 않습니까?’ 하늘에서 조용히 음성이 들립니다. ‘얘야, 그건 너의 발자국이 아니라 나의 발자국이란다. 네가 너무 힘들어 쓰러져 있을 때에 너를 안고 간 나의 발자국이란다.’
과거의 고난과 역경 속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눈물로 회개하고 뜨겁게 만나 포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만이 우리는 현재의 아픔을 이겨내고 미래를 새롭게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 미래는 세상이 말하는 장밋빛 찬란한 국민소득 3만불의 헛된 속임수에 빠져 허우적대는 미래가 아닌 차가운 현실을 따뜻한 인간미로 녹이는 그래서 이 땅이 정의와 평화의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그 미래를 말합니다. 이 미래의 바탕은 여전히 위를 향한 오늘의 감사입니다.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신 8장 11-18절, 골로사이 3장 12-17절
[명절 스트레스]
성당을 다니는 아주 가까운 친구가 혼자 아버님 성묘를 다녀오는 길에 저희 집에 잠시 들렀습니다. 저녁을 먹고 가라는 권유에 제사 때문에 집에 가봐야 한다고 하면서 덧붙이기를 ‘이제는 아내가 제사음식을 준비하는 일에 매우 힘들어하고 3,4일전부터 아파하기도 하고 신경이 높아져서 가정불화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소위 말하는 명절증후군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가정입니다. 주부의 87%가 이런 저런 명절 스트레스에 시달린다고 하니 여러분 가운데서도 많은 분들이 이런 스트레스를 겪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뉴스에 어떤 부부는 시댁과 친정 중 어느 집을 먼저 방문하는 문제로 부부싸움을 하다가 남편이 홧김에 아파트 창문 밖으로 뛰어내려 죽었다고 하니 이제 남아 있는 식구들에게는 한가위는 기쁨과 안식을 주는 명절이 아닌 평생 후회의 아픔을 상기시키는 고통의 날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뉴스를 들으면서 한가위 제사문제는 단순한 가정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요 국가적 문제인 것을 새삼스레 깨달았습니다.
그래 친구에게는 아내 고생시키지 말고 추모예배로 대신하라고 했습니다. 내년부터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제 얘기를 오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제가 지금 제사를 폐지하라고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제 친구 가정은 형제자매가 모두 미국에 있어 음식을 함께 나눌 가정도 없고 제사음식 준비로 가정불화가 있다고 하니까 제가 그렇게 얘기를 했던 것이고 오히려 다른 많은 가정들은 제사를 드리지 않을 때 집안에 더 큰 문제를 가져올 수도 있으니까 지혜롭게 처신해야 할 문제입니다.
전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기에 제사를 드려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외국 생활을 하고 돌아왔기에 선산이 있는 본가와도 멀어져 있습니다. 저는 할아버지 산소를 돌봐야 하는 유일한 종손이지만, 거리가 멀어 일 년에 한번 가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집안 어른들의 보이지 않는 압력도 있고 예수교는 조상도 모르는 불효막심한 종교로 낙인찍힐까봐 명절 때만 되면 벌초도 못하는 제 마음이 편치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
[제사와 조상 탓]
우리말에 ‘조상 탓’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기 잘못도 남의 탓으로 돌리는 일은 인간의 본성입니다. 주스가 담긴 컵을 자녀가 부주의하여 발로 차서 쏟으면 그런 것도 보지 못하느냐고 야단을 치는 아버지도 자신이 부주의하여 쏟으면 누가 여기에 컵을 놓았느냐고 야단을 칩니다. 에덴동산의 첫 인간 아담과 하와는 먹지 말라는 선악과의 열매를 뱀의 유혹에 넘어가 먹은 후에 ‘왜 명령을 어겼느냐?’고 하느님으로부터 추궁을 받자 아담은 하와가 주었다고 책임을 돌리자 하와는 당신이 만든 뱀이 자기를 유혹했다고 하여 결국 하느님께 책임을 전가합니다. 이는 자기 잘못을 고백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보여주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조상 탓’이라는 단어가 다른 민족에게도 있는 말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단어에서 저는 우리 민족의 부정적인 단면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차분하게 먼저 자신에게 잘못은 없는지 생각해 보고 그리고 상대방과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나가기보다는 화부터 내고 다른 사람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운전사고가 나면 큰소리를 내며 싸우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고 특히 언론에 가장 많이 회자되는 정치인들이 그러합니다. 여야는 말 그대로 오른편 왼편 하듯이 반쪽에 해당하니까 상대방의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공격을 해야 하는데 무조건 상대방 비난입니다. 그저 조그마한 흠만 발견되면 침소봉대하여 공격하고 있고 그로인해 남는 것은 상처투성이 뿐입니다. 이 상처는 국민들의 상처로 남아 정치인에 대한 불신 그리고 정치에 대한 극심한 혐오증을 남기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물론 정치 지도자들의 잘못도 크지만 언론의 책임이 더 큽니다. 나라의 미래를 바라보고 백성을 옳은 길로 선도해가기 보다는 조그마한 사건도 크고 굵은 글씨로 제목을 만들어 국민을 호도합니다. 때로는 제목이 너무 선정적이고 선동적이어 유치하기 짝이 없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권력에 아부하고 군부독재 시절에는 온갖 아양을 떨며 자기 몸짓을 불려온 재벌 언론들이 사회적 약자 보호라는 본래의 언론의 기본 정신을 잊어버리고 강자 편에 서서 자기 이익만 챙기려는 모습을 보면 역겨울 때가 많습니다.
그래 ‘조상 탓’이라는 단어에 자꾸만 신경이 쓰입니다. 남 탓도 아니고 환경 탓도 아닌 웬 조상 탓인가? ‘탓’이 잦아질 때 자기 책임감이 없어지고 그로인해 사회적 정의감은 상실되어 갑니다. 특히 ‘조상 탓’이라는 말 속에는 자기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운명적 힘이 조상들로부터 온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저는 많은 가정이 가정불화를 겪으면서도 제사를 드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제사 종교 행위인가? 효 문화 행위인가?]
제사가 단지 조상 추모라는 효의 문화 행위인지 아니면 조상신을 섬기는 종교적 행위인지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것이라고 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저 흩어졌던 가족들이 함께 모여 조상을 기억하고 지나온 삶을 감사하는 자리로 생각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마치 조상신을 섬기는 자세로 예를 엄격히 지키면서 제사를 드리는 분도 있습니다. 그분들의 마음속에는 예를 다해 잘 모시지 않으면 조상들이 화를 내고 그래서 나나 자손에게 화가 미친다고 믿고 있습니다. 일종의 샤머니즘입니다.
저 멀리 수 만 년 전 시베리아까지 그 뿌리를 찾아갈 수 있는 샤머니즘 자체를 좋다 나쁘다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민속종교학적으로 얼마든지 긍정의 요소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21세기에 제사 음식을 만들어 조상들에게 먹게 하고 그 상의 음식은 어떠어떠해야 하고 그 그릇들이 어떻게 놓여야 한다는 생각은 아무리 생각해도 유치해 보입니다. 불과 한 이백 년 전만 해도 3년 상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그 묘 옆에 초가를 짓고 거기서 살면서 하루 세끼 밥과 국을 해서 드렸습니다. 3주일도 아니고 3개월도 아닌 3년을 말입니다. 나라의 중요한 관료들도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관직을 포기하고 그렇게 했습니다. 공을 위해 사를 희생하는 것이 당연하거늘 사를 위해 공을 희생하는 것을 오히려 명예로운 일로 가르쳤습니다. 충과 효는 유학의 가장 큰 정치이념이지만, 이것이 서로 부딪힐 때에는 효가 앞선 것입니다. 그것도 살아계실 때라면 이해가 가지만 돌아가신 후에 그러했다는 점에서 저는 동의하기 힘듭니다. 여기서 가족이기주의가 나오고 이는 자연히 공공윤리나 도덕에 소홀하게 만듭니다.
한 달 전쯤입니다. 주일 아침에 교회를 오던 중, 앞서 달리던 렉서스 차의 창문에서 먹던 커피와 함께 컵과 넵프킨이 인도로 냅다 던져졌습니다. 제가 너무 화가 나서 좇아가서 야단을 쳤습니다. 차에 타고 있는 사람을 보니까 20대 말의 남매간으로 보였는데, 정장 차림을 미루어 보아 교회를 가는 것 같았습니다. 분명히 대학을 나왔을 것이고 외제차를 모는 것을 보아 유학도 다녀왔을 것이고 직장도 있을 것이고 게다가 교회까지 열심히 다니니 그들은 누가보아도 사회의 엘리트입니다. 그러나 내 차만 깨끗하면 되었지 차 밖 길거리가 더러운 것은 자기와는 아무런 상관없다는 도덕적 불감증은 어디에서 오는 것입니까?
이전 황우석 사건이나 지금의 신정아 사건에 관련된 지도자들의 거짓 학력은 우리 사회의 도덕적 불감증이 얼마나 깊게 병들어 있는 것인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외국 언론들이 이를 꼬집고 있어 얼굴 들기가 부끄러울 정도입니다. 저는 우리 사회의 무너진 도덕불감증은 가족이기주의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고 있고 이 가족이기주의는 제사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보고 있습니다.
최근 정수복이란 학자가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이란 두꺼운 책을 출판했습니다. 한때 대학교수였지만, 대학사회의 부조리를 경험하고 학교를 나와 환경운동연합과 크리스챤아카데미에서 사회운동을 하고 방송계에도 일했던 그는 남한 사회를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 다시금 유학생활을 했던 파리로 가서 저술과 강연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남한 사회의 부정적인 문화적 문법을 12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근본적 문법으로는 <현세적 물질주의, 감정우선주의, 가족주의, 연고주의, 권위주의, 갈등회피주의>를 말하고, 이의 파생적 문법으로는 <감상적 민족주의, 국가중심주의, 속도지상주의, 근거없는 낙관주의, 수단방법중심주의, 이중규범주의>를 말하고 있습니다. 대강 제목만 보았고 미래의 대안을 어떻게 제시하고 있는지는 끝까지 읽어보아야 하겠지만, 일단 그의 지적에 동의하고 쉽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무엇인가 자신을 계속 억누르는 억압의 실체를 찾아내고자 했고, 고국에 돌아와 지식인으로 활동하면서도 여전히 불화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찾고자 했는데, 그것이 바로 이러한 문화적 문법이었다고 말합니다. 이 문법들은 시대가 바뀌어도 쉽게 변하지 않고 현재를 살아가는 개인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역사의 축적물’이자 ‘마음의 습관’이 되었고 이러한 뿌리를 무교와 유교로 보고 종교문화적 차원에서 비판적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는 기독교 또한 같은 차원에서 비판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제사에 한정하여 얘기를 하고 있기에 더 깊게 얘기를 하지는 못하겠지만, 여러분도 기회가 되는대로 이 책을 통해 자신 안에 있는 뿌리깊은 부정의 문법들을 찾아내 보시기를 바랍니다. 불교 도교 유교와 기독교가 우리 문화에 있어 어떻게 만나고 융합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수복씨는 제사가 가져온 민족적 폐해를 지적하고 있지만, 저는 반대로 이 제사를 보다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길을 찾고 싶습니다. 어제 심예원교우가 출연하는 타악기로 이루어진 국악연주회를 가보았습니다. 흔히 말하는 퓨전음악 형태였습니다. 특히 이자람이라는 주목받는 젊은 국악가가 심청가의 일부분을 개작하여 창도 아니고 뮤지칼도 아닌, 아니! 창도 되고 뮤지칼도 되는 새로운 형태로 부르는데, 거기에는 여러 국악기와 기타 드럼 전자 올갠이 함께 어우러져 있었습니다. 마지막 무대에는 아프리카 드럼과 사물놀이, 세 명의 아프리카인들이 직접 추는 현란한 몸짓과 농악 춤이 서로 만나 어우러져 하나의 예술을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새로운 세대에 매우 파격적인 방식으로 접근하는 시도가 매우 좋았습니다. 상당한 자극을 받았고 저는 오늘의 교회에 등을 돌리는 젊은 세대에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남한 교회가 예전이나 설교 예배 형태에 있어서도 이러한 파격이 필요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유교와 기독교의 교리적 충돌과 문화적 융합]
우리나라의 유교는 서시 372년 고구려에 태학이 건립되던 해에 들어와 지금까지 1,600년의 세월이 지나오는 동안 우리 민족의 얼을 형성하여 오고 있으며 한때는 국가이념을 주도하며 민족종교로서의 역할을 담당하여 나라에서는 종묘를 만들어 선왕들을 섬겼고 양반들은 집에 가묘를 만들어 조상을 섬겼습니다. 우리가 싫든 좋든 기독교인이든 불교인이든 상관없이 우리 삶의 한부분이 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그 가르침이 매우 현세적이고 삶에 직결된 가르침이 많아 종교라기보다는 윤리나 도덕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유교의 제사를 보다 쉽게 받아들이는 일면이 있고 그러하기에 천주교는 이미 1931년에 교황청의 교시로 제사를 인정했습니다.
요즘은 기독교의 보수운동이 너무 거세 기독교의 토착화 신학이 매우 쇠퇴하여 있습니다. 그런데 이 운동은 1960년대 이후 감리교의 윤성범교수나 변선환교수와 같은 몇몇 신학자들에 의해 주도된 최근의 신학운동이 아니라 천주교가 전해지던 수세기전에 유학자들에 의해 꾸준히 추구되어 왔던 일입니다. 유학의 실학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16세기의 지봉 이수광 17세기의 성호 이익 그리고 18세기 남인 계통의 권철신, 정약전 약종 약용 삼형제, 이벽과 같은 사람들이 이런 토착화를 시도했던 사람들입니다. 그중 이벽은 <천주공경가>와 <성교요지>를 통해 기독교의 천주 영혼불멸 죄 지옥 천당과 유교의 교훈이 모순 없이 공존합니다.
그의 44조의 시구를 한번 보겠습니다.
집안에는 어른있고 나라에는 임금있네
내몸에는 영혼있고 하늘에는 천주있네
부모에는 효도하고 임금에는 충성하네
삼강오륜 지켜가자 천주공경 으뜸일세
(조요한 ‘한국에 있어서의 유교와 기독교의 만남’ <한국문화와 기독교 윤리> 1986년 136-158쪽)
그러나 이러한 토착화운동은 1791년 진산의 사대부인 유지충과 권상연이 제사를 폐지하고 신주를 불사르면서 ‘군주의 명은 어길 수 있고, 부모의 명도 어길 수 있지만, 천주의 가르침은 극형을 당하더라도 바꿀 수 없다.’는 확신을 밝힘으로 신유사해라는 천주교 박해가 시작되어 이후 100년에 걸쳐 만 명 이상의 희생자를 내는 수난의 역사를 당하게 되고 이조말기 문호개방 그리고 일제의 침략에 맞물려 서양선교사들에 의한 기독교는 새로운 장을 열게 됩니다.
지금은 기독교와 유교는 불과 이백년 전에 비해 그 상하 위치가 완전히 뒤바꿔져 있습니다. 그런데 겉으로는 기독교가 유교를 지배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성서가 말하는 하느님 나라의 의의 추구나 자신으로 인해 아버지와 아들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갈라선다는 말씀이나 죽은 자는 죽은 자로 하여금 장사를 지내고 너는 나를 따르라는 말씀보다는 국가권력에 충성하고 부모님께 효를 다하라는 가르침이나 남녀차별과 가부장적인 권위주의 그리고 관혼상제를 중시하는 유교의 주류 사상들은 교회 안에 여전히 힘 있게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게다가 많은 기독교인들이 스스럼없이 무당을 찾아가 점을 치고 부적을 사고 있으며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자손이 불행해진다고 믿고 있고 영생과 부활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도 좋은 묘 자리를 위해 큰돈을 들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율법과 복음의 교리적 충돌과 문화적 융합]
2천년 전 초기 그리스도인들도 거의 비슷한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골로사이교회에 보낸 사도 바울로의 편지 2장 8절을 보면 “여러분은 헛된 철학의 속임수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그것은 세속의 원리를 기초로 인간이 만들어서 전해 준 것이지 그리스도를 기초로 한 것은 아닙니다.” 16절에 가면 “그러므로 여러분은 먹고 마시는 문제나 명절 지키는 일이나 초생 달 축제와 안식일을 지키는 문제로 아무에게도 비난을 사지 마십시오.” 20절 이하에 가면 “여러분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세속의 유치한 원리들을 버렸다면 어찌하여 아직도 이 세상에 속하여 사는 것처럼 이것은 집지 말고 저것은 맛보지 말고 그것은 건드리지 말라 하는 따위의 규정에 묶여 있습니까?” 주로 당시 모세의 율법에 근거한 제사법 안식일법 정결법과 같은 세세한 계명들로 인한 교회 내의 폐해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갈릴래아의 민중들과 함께 하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의 아들로 고백하고 믿었지만 아브라함 때로부터 내려오는 유대의 문화적 전통을 지켜가려는 사람들과 이는 부활의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폐지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사이에 계속 논쟁거리가 되고 있었고 이는 교회공동체를 깰 위험에 처해 있었던 것입니다.
[손가락이 아닌 달을 보라]
도교나 유교의 가르침이 본래 그러하지는 않았지만, 오늘 우리 사회에 부정적 요인으로 드러나듯이 모세의 율법 또한 본래 정신이 인간의 자유를 억누르는 억압의 기제는 아니었습니다. 오늘 구약성서 본문에서 모세가 분명히 말한바와 같이 율법은 ‘가나안에 들어가 배불리 먹으며 좋은 집을 짓고 소떼 양떼가 불어나 교만한 생각이 들어 하느님 야훼를 잊어버릴까봐’ 그리고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내신 하느님을 잊지 않고 기억하도록 하기 위해’ 주신 것이라고 재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본래의 뜻은 사라지고 계명만 남아 있게 된 것입니다. 사실 이렇게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달로 착각하고 믿는 일은 오늘날에도 흔하게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어찌 보면 성수주일이나 십일조도 같은 것입니다. 모두 하느님의 해방과 구원역사를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하느님의 은혜와 감사를 잊지 않도록 위해 지키라고 명한 것들인데, 이제는 이것들이 하느님을 대신하는 법으로 그래서 지키지 않으면 구원에서 제외되는 공포기제로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골로사이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사도 바울로가 비난하는 ‘세속의 원리를 기초로 한 헛된 철학의 속임수’ 혹은 ‘세속의 유치한 원리’란 무엇입니까? ‘이런 규정들은 실상 육체의 욕망을 제어하는 데는 조금도 힘이 없습니다.’ 곧 육체의 욕망을 일으키는 것들은 모두 헛된 철학의 속임수나 세속의 유치한 원리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사주팔자를 보는 점이 헛된 철학의 속임수라고 말할 수 있고, 제사에서 동쪽에는 무슨 음식이 놓여야 하고 숟갈과 젓가락은 어떤 방향을 향해야한다는 얘기는 세속의 유치한 원리라고 비유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화와 복이라는 세상 욕망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로가 중요시 여겼던 신앙의 원리는 무엇이었습니까? ‘이제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천상의 것들을 추구하십시오.’(3장 1절) 이 천상의 것들을 추구하는 사람을 그는 새 인간이라 부르고 이 새 인간은 새로운 안목을 갖게 되는데 그것은 ‘그리스인과 유다인, 할례 받은 사람과 받지 않은 사람, 국적인과 비국적인, 노동자, 주인 따위의 구별이 없고 오직 그리스도만이 전부로서 모든 사람 위에 군림한다.’고 하는 만인평등 사상을 외칩니다. 지금은 이 말이 너무도 당연시 여겨지는 말이지만, 당시 로마는 노예에 기초한 사회였고 유다는 할례에 기초한 사회였던 것을 감안하면 이는 국가전복을 꾀하는 외침이 되는 것입니다. 홍근수목사님은 북한 공산당에도 인간을 사랑하는 휴머니즘이 있다고 해서 친북용공발언을 했다고 하여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물론 지금도 강정구교수 이시우선생 그리고 조신원집사의 아들 조성봉군이 모두 이와 비슷한 이유로 국가보안법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만인평등을 주장했던 바울이야 말로 당시의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위반자였지요. 그래 그 또한 로마 감옥에 갇히고 십자가 처형을 받았습니다. 바라기는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시작하기 전에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국가보안법을 무효화하는 성명을 하고 평화를 향한 회담을 하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로는 이렇게 출신과 국적에 따른 인간 차별이 당연시되는 사회에 예수 그리스도의 화해의 복음을 제시하고 그 복음을 실천하는 공동체로 교회를 세웠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새로운 개인 윤리를 제시하는데 그것은 ‘여러분은 하느님의 새로운 가족으로 서로 동정심을 갖고 친절을 베풀며 겸손과 온유와 인내로 서로 도와주고 피차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용서해주고 서로 사랑을 실천하라.’는 본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5절에서 17절까지의 이 유명한 사도바울로의 권면 마지막 부분을 보면 각절 끝에 계속 반복되는 말이 있습니다. 15절에서는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십시오.’ 16절에는 ‘그리고 성시와 찬송가와 영가를 부르며 감사에 넘치는 진정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찬양하십시오.’ 17절에는 ‘여러분은 무슨 말이나 무슨 일이나 모두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분을 통해서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감사가 계속 강조되고 있습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로 거듭난 새 인간에게 있어 가장 큰 특징은 감사인 것입니다.
[감사의 절기]
한 종교의 얼은 행하는 예식에 담겨 있습니다. 유대교의 3대 예식은 과월절과 칠칠절과 수막절의 절기예식이며 이는 모두 감사의 예식입니다. 과월절은 애굽의 노예생활로부터 해방 받았음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칠칠절은 보리 수확이 끝난 후에 수막절은 가을추수가 끝나 모든 곡식열매를 창고에 드린 후에 드리는 감사의 절기입니다. 바로 한가위감사주일과 같습니다. 한가위의 제사도 본래는 감사정신에 있었다고 봅니다. 내가 힘써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늘이 도와준 것이다. 그래서 하늘 옥황상제에게 제사를 드렸던 것이 오늘날 집안 조상제사로 좁혀진 것입니다. 저는 제사에 있어 이 감사를 어떻게 회복하느냐에 따라 제사가 세속의 헛된 제도가 되지 않고 가족을 하나로 묶는 축제와 예배로 바꿔지는 영적 원리가 된다고 봅니다.
성경에는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이 예배하는 조상들의 있습니다.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 요셉입니다. 모두가 고난 속에서 감사를 말하지만 특히 요셉이 그러합니다. 그는 형들의 미움으로 죽음의 구덩이 속에 빠졌다가 외국 상인들에게 노예로 팔려갔고 그 이후 고생 끝에 보디발이라는 치안대장의 한 집안을 책임지는 집사가 되었지만, 자신의 욕망이 거절당한 안주인의 거짓고발로 감옥 속에 갇혔습니다. 그의 일생은 한마디로 구덩이에서 떠돌이노예로 그리고 감옥으로 고난의 연속입니다. 그런데 성서 구절을 보면 그에게 하느님이 항상 함께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구덩이에 빠지고 노예로 팔려가고 억울한 감옥살이에 하느님께서 함께 하셨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고통 가운데 있는데, 사람들이 여러분을 보고 그 사람은 참으로 하느님께서 함께 하는 사람이야 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무엇을 보고 하는 말이겠습니까? 단지 기도하고 의지하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는 기독교인이 아니어도 누구든지 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고난 속에서도 감사를 잃지 않았을 때입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고나서 자신을 노예로 팔았던 형들을 만났습니다. 과거에 그가 당한 고통과 죽음의 공포를 생각한다면 정말 그들에게도 그런 고통을 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고백합니다. ‘형님들 과거의 일로 두려워하지 마세요. 하느님이 형님들을 구하게 하시려고 나를 미리 이곳에 보내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자신의 삶에 대한 사명의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볼 수 있습니다. 요셉은 자신이 하느님께 쓰임 받을 것을 바라보고 살았기에 고난의 삶 속에서도 미움의 뿌리를 키워가는 대신에 감사의 열매를 맺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한가위감사주일이 단지 예배형식에 전통적인 것들을 추가하는 것으로 그치거나 제사의 적극적인 교회의 수용의지만으로 그칠 수는 없습니다. 또는 자연의 결실의 풍성함만 생각하는 감사는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때로 태풍이나 홍수로 그런 결실이 맺히지 못할 때도 많기 때문이고 지금도 우리들 주위에는 그러한 삶의 고난 속에 살아가는 분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감사는 고난 속에서 나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이 고통스러웠던 과거 속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기억하며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구덩이에 빠졌을 때 하느님은 어디에 계셨는지, 내가 쇠고랑을 차고 노예로 팔려갈 때, 하느님은 어디서 무얼 하고 계셨는지 그리고 내가 감옥에 있을 때, 하느님은 어디에 계셨는지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바닷가 모래밭의 발자국이란 사진의 내용은 유명합니다. 한 신앙인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습니다. 두 개의 발자국과 한 개의 발자국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가만히 보니 자신이 힘들 때는 하나의 발자국 편할 때는 두 개의 발자국으로 된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 하느님께 항의합니다. ‘하느님 당신은 내가 힘들 때에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시지 않았습니까? 왜 그런데 제가 힘들 때 저를 모른 채 하셨습니까? 저 발자국을 말해주고 있지 않습니까?’ 하늘에서 조용히 음성이 들립니다. ‘얘야, 그건 너의 발자국이 아니라 나의 발자국이란다. 네가 너무 힘들어 쓰러져 있을 때에 너를 안고 간 나의 발자국이란다.’
과거의 고난과 역경 속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눈물로 회개하고 뜨겁게 만나 포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만이 우리는 현재의 아픔을 이겨내고 미래를 새롭게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 미래는 세상이 말하는 장밋빛 찬란한 국민소득 3만불의 헛된 속임수에 빠져 허우적대는 미래가 아닌 차가운 현실을 따뜻한 인간미로 녹이는 그래서 이 땅이 정의와 평화의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그 미래를 말합니다. 이 미래의 바탕은 여전히 위를 향한 오늘의 감사입니다.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