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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뜻펴기'(설교)를 문서로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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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9일-성령의 역사(7) 기독교선교의 변질과 회복
말 3:19-24; 행 11:19-26, 13:1-3
한 달 전 23명의 기독교인이 아프칸에 단기선교를 떠났다가 탈레반 무장 세력에 피납이 되어 목사를 포함한 남성 2명이 살해당하고 2명의 여성이 풀려났습니다. 아직도 19명이 인질로 붙잡혀 있고 이런 상황이 얼마나 더 오래 갈는지 알 수 없는 고통스런 시간이 계속되고 있어 온 세계의 기독교인들뿐만 아니라 이슬람 교인들도 무사 석방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 또한 하루빨리 탈레반이 인도적 차원에서 아무런 조건 없이 석방할 것을 요구하고 동시에 해결의 키를 잡고 있는 미국이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하여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예수님의 생명 사랑 정신을 보여주기를 요구합니다. 이 시간 하늘의 평화의 영이 붙잡혀 있는 분들과 그들의 가족들 그리고 고통 중인 교우들에게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종교와 정치의 함수관계]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는 종교와 정치는 마치 양 날개와 같이 떼려야 뗄 수 없는 깊은 함수 관계 속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평화 시에는 이 둘은 서로 떨어질 수 있지만, 전쟁 시에는 이 둘은 하나로 인식이 됩니다. 지금 탈레반은 기독교를 단순히 하나의 외래 종교로 보지 않고 자신들의 적인 미국과 서구의 정치적 침략 세력으로 보고 있어 우리의 젊은이들의 순수한 종교적 의도를 정치적 침략 행위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나라의 선교 초기 특히 대원군 시대에도 가톨릭 신도들을 포함한 많은 선교사들이 박해를 받아 죽임을 당했는데, 이 경우도 단순한 종교적 이유가 아닌 서구의 통상요구를 외세 침략으로 보고 그래서 기독교는 외세의 도구로 여겼던 정치적 이유가 더 컸던 것입니다. 그리고 일제 독립운동에도 수많은 기독교 인사들이 참여했다고 하는 것은 종교와 정치의 깊은 함수관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직 19명의 피납자들이 풀려나지 않은 상태이기에 조심스럽긴 하지만, 기독교 언론에서는 많은 자성의 소리가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회 언론은 대형교회들의 재정의 불투명성 혹은 아들에게 교회를 물려주는 세습 형태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있어 왔습니다만, 앞으로의 교회 비판은 이전보더 더 거세게 밀어닥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에는 교회가 자성하는 의미에서 조용해야 하는데, 일부 극단적인 기독교인들의 포교활동은 반대로 더욱 극성을 피우고 있습니다. 차량에 스피커를 달고 다니면서 예수천당을 외치고 있고 이곳 명동만 해도 전에는 보지 못했던 여러 곳에서 이런 포교활동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명동의 중심가라 말할 수 있는 옛 국립극장 사거리에는 매우 오랫동안 스피커를 통해 복음송가를 부르거나 성경을 읽는 교회전도단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모습이 3주전부터 매우 노골화되고 스피커의 소리가 더욱 커졌습니다. 아프칸의 피납 상태를 자신들이 믿어온 세상말세의 초기 현상으로 보는 것입니다.
오늘은 사도행전 본문을 따라 기독교 선교에 대한 성서적이고 신학적인 입장을 비판적으로 정리해보고 저의 해외선교 경험과 향린교회의 평화선교 운동을 따라 21세기에 맞는 새로운 선교 방향을 모색해보고자 합니다.
지금 문제가 된 분당샘물교회 선교봉사팀이 선한 사마리아 사람들과 같이 인도적 봉사가 우선이었는지 아니면 기독교 선교가 우선이었는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그러나 의료봉사팀이라고는 하기에는 의사가 한명도 없고 유서를 쓰고 갔다는 점에서 우리는 선교를 목적으로 갔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왜 다른 국가도 많은데, 유독 이슬람국가를 선교 대상 국가로 정하고 그것도 내전이 계속되고 있는 이 위험한 나라 아프칸에 그것도 가장 위험한 탈레반 중심지역으로 들어갔는가? 이는 너무 무모한 행동이 아닌가? 그러나 신앙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이야 말로 참다운 신앙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선교는 순교의 위기가 있어야 한다고 하는 근본주의적인 신앙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팔레스타인의 자살폭탄자들 그리고 911의 알 케이다들은 모두 종교적 순교정신을 갖고 있어 무고한 인명을 죽이는 폭력을 저지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은 모두 천국에 간다고 하는 근본주의적 신앙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종교는 이렇게 순교를 찬양하고 타지에 나가 죽음을 각오하는 극단적 선교를 지향하는가? 자기 혼자 잘 믿으면 되지 않는가? 라고 반문하지만, 종교는 그 속성상 진리탐구가 있고 이 진리탐구는 곧 진리전파로 이어집니다. 진리를 알았는데, 이를 혼자 알고 있는 것은 참다운 진리탐구자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도를 전하는 포교활동은 진리의 속성이기도 하고 종교의 속성이기도 합니다.
사실 전도나 선교나 포교라는 점에서는 같은 말이지만, 보통 기독교 신학에서 전도는 개인적인 영혼구원 차원의 포교활동, 선교는 사회구조 차원의 포교 활동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교회에서는 국내포교활동은 전도로, 해외포교활동은 선교라고 구별하고 있습니다.
[남한교회의 해외선교의 현황]
그간 남한교회는 경제성장과 더불어 세계 유래가 없을 정도로 짧은 시간에 급성장하면서 이 남아도는 성장의 힘을 해외로 돌렸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준비되지 못한 상황에서 임기응변식으로 진행되는 해외선교였기에 그간 수많은 부작용을 만들어내었습니다. 대부분 물량공세에 의존하는 선교방식이어 새로운 사람을 교인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현지 교회의 교인을 빼앗아오는 일이 많았고 실적 위주, 선교비 각출을 위한 보고서 위주의 선교였습니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한인 선교사들이 대거 몰려 있는 필리핀 같은 지역에서는 선교사들이 값싼 노동력을 이용해서 지나치게 사치한 생활을 하여 만약 폭동이 일어나면 한인선교사부터 살해하겠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떠돌아다녔고, 러시아나 중국 미얀마 같은 경우는 국가 법률상 종교의 자유는 허락하지만, 포교 특히 외국인에 의한 포교는 법으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훈련받지 못한 선교사들이 이를 무시하여 현지 교회와의 마찰뿐만 아니라 외교적 갈등으로까지 비화되어 중국 외무성이 공개적으로 남한 정부를 향해 선교사파송을 자제해달라는 공문까지 보내었습니다.
제가 지난 3년 동안 기장 총회 해외선교위원회에 봉사하였습니다. 기장은 그래도 해외의 현지 교단과 연계하여 선교활동을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어 가장 바른 선교를 한다고 평가받지만, 여전히 선교사 훈련이나 지원을 보면 아직도 초등수준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남한 기독교의 대부분의 해외선교활동은 개 교회 위주로 주먹구구식으로 행해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게다가 지난 몇 년 전부터 시작된 해외여행 자유화와 맞물려 많은 교회들이 단기선교라는 용어를 도입하여 여름방학이 되면 휴가를 겸한 무분별한 선교활동이 우후죽순처럼 생겨 왔습니다. 여기에 지도적 위치에 있는 목사들은 기회만 되면 남한이 세계 제 2위의 선교국이니 10만 한인 선교사 파송을 이룩하자는 등 숫자에 지나치게 집착하여 달려 온 것입니다. 사실 단기선교라는 말은 서구에서는 적어도 1년 이상 3년을 봉사할 때 단기선교라는 용어를 씁니다. 우리나라는 일주일을 가더라도 단기선교라는 용어를 붙이고 그래서 단기선교사라는 자부심을 심어줍니다만 이는 선교의 질적 수준을 저하시키는 하나의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비기독교국 선교 중단해야]
8월 14일자 한겨레신문은 국민일보 기독교연구소사가 전문기관에 의뢰한 조사를 보도하고 있는데, 설문대상자의 64.5%는 기독교가 아닌 종교를 선택하고 있는 나라들에 대한 선교를 중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단지 비신자들만의 답(70%)이 아니라, 개신교 신자의 반수에 해당되는 사람(45%) 또한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봉사를 통한 해외선교활동은 반수 이상(56%)이 찬성하였지만, 절대다수(85%)는 남한 교회들이 해외 봉사선교 활동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모든 종교에 전도나 선교가 없을 수는 없지만, 서구 기독교나 현재 남한의 기독교를 볼 때, 왜 이렇게 지나친 해외 선교가 일어날까 하는 의문을 품게 됩니다. 그것은 성서에 해외선교를 향한 그런 바탕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성서 이야기가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사도행전 11장과 13장에 있는 안티오키아 교회의 이야기입니다. ‘스데파노의 일로 일어난 박해 때문에 흩어진 신도들이 페니키아와 키프로스와 안티오키아까지 가서 유다인들에게만 말씀을 전하였다. 그러나 그 신도들 중에는 키프로스 사람과 키레네 사람도 있었는데 그들은 안티오키아로 가서 이방인들에게도 말씀을 전하고 주 예수의 복음을 선포하였다.’ 바로 이 말씀에 해외 선교활동의 정당성을 두고 있습니다.
[저의 해외선교 경험들]
15년 전 제가 미국에 있으면서 섬기던 교회는 교인 150여명정도 출석하는 교회였지만, 한때 멕시코 해외선교로 유명세를 탔고 미국 한인교회 안에 해외선교에 대한 붐을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대한제국 말기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제로 지배하기 시작하던 그때에 많은 사람들이 만주나 연해주로의 탈출이 아닌 합법적인 수단으로 해외로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소위 말하는 미국 이민의 시초라 할 수 있는 하와이 사탕수수밭의 이주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들은 서류상으로는 계약 노동자였지만, 실제는 노예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라의 독립을 꿈꾸었던 많은 지식인들 특히 강제 해산을 당한 군인들은 분노를 견딜 수가 없고 독립운동을 펼치기 위한 방법으로 이 길을 선택하였고 미국선교사들 또한 이 일에 한 몫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상당수의 기독교인들이 여기에 갔습니다.
이때 이미 조선조정을 좌지우지하던 일본침략정부는 멕시코정부의 요청으로 유까딴 에니껭 농장에 한인노동자들을 팔아 치웁니다. 1905년 4월에 약 1,000여명의 우리 조상들이 한달 이상 배를 타고 멕시코 유까딴으로 가게 되었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목적지를 하와이로 알고 떠났습니다. 그간 잘 알려져 있지 않던 이때의 일을 한 13년 전에 한 작가가 소설로도 썼고, KBS 연속극도 나왔습니다. 바로 이런 일들이 고국에서 진행되고 있을 때, 제가 섬기던 교회에서 이곳 한인후예들을 위한 선교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유까딴이란 반도는 한반도의 크기에 캔쿤이라는 휴양도시로 유명하고 한때는 마야문명의 중심지이기도 했습니다. 날씨는 얼마나 더운지 낮에는 숨이 콱콱 막혀서 그늘에 그냥 서 있기조차 힘이 듭니다. 그러니까 그들의 삶은 비참할 수밖에 없고 그네침대에서 잠을 자고 그 아래에는 개나 닭들이 잠을 잡니다. 여러분이 TV에서 보시는 원주민 생활보다 약간 낫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처음 계약노동자로 도착한 한인들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달리 매우 비참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사막지역에 자라고 있는 가시가 콱콱 박혀있는 사람 키보다 큰 선인장의 일종인 에네껭을 큰 칼로 잘라내어 공장으로 운반하는 일입니다. 멕시코 사람들조차 힘이 들어 기피하는 일이었기에 육체적으로도 너무 힘이 들어 때로 도망을 하기도 했는데, 붙잡히면 발목을 잘랐다는 얘기까지 있습니다. 이 에니껭이라는 선인장 줄기를 강철판으로 짓누르면 가느다란 줄기들이 남는데, 이를 엮어서 단단한 줄을 만듭니다. 우리가 말하는 노끈이 이것으로 만들어지고 지금도 배에 쓰이는 밧줄을 만듭니다.
수년간의 이 노예와 같은 생활 속에서도 저들은 돈을 모아 독립자금을 만들어 국내로 보냈고 그들의 소식을 들은 안창호선생이 이곳에 내려와 2년을 함께 살면서 학교를 세워 그들을 지도하였습니다. 이후 고국으로 돌아올 수 없게 된 많은 사람들은 그곳을 떠나 대도시나 쿠바를 비롯한 여러 지역으로 흩어졌습니다. 그러나 원주민과 결혼을 하였거나 별다른 희망을 발견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냥 그곳에 남아서 살게 되었습니다.
초기에 저희들은 여러 마을에 들어가 한인 후손들을 찾아내는 일과 더불어 마을 전체를 대상으로 의료 미용 장학사업 활동을 했습니다. 당시 저희 교회는 이 멕시코선교를 통해 새로운 면을 열었는데, 그것은 당시 대형교회들만이 하는 해외선교를 보다 작은 교회들이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 교회가 단독으로 하던 선교를 여러 교회가 함께 하는 협력선교의 장을 열었습니다. 어떤 해에는 같은 지역의 열 개의 교회가 함께 6개월 이상 훈련과 선교활동도 같이 하여 교회의 협력하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저희 교회가 저들의 삶을 돕기 위해 농업경험이 있는 평신도선교사 두 분을 3년 임기로 파송하였는데, 이일 또한 안수 받은 목사들만이 선교사로 간다고 하는 인식의 틀을 깨고 평신도들 또한 자신의 직업을 통해 선교사로 나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12년 전 저희 교회가 처음 발을 들여 놓은 이후 수 년 만에 무려 미국전체에서 50개 이상의 교회들이 여기에 동참을 하여 왔고 지금은 남한교회들이 파송한 선교사들까지 가세하여 매우 활발하게 선교활동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안티오키아교회를 본받아]
어떻게 보면 당시 저희 교회는 마치 사도행전에 나오는 이 안티오키아교회 마냥 교인 전체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 해외 선교활동에 전념하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마치 바르나바와 바울로가 서로 의견이 갈려 다투었듯이 현지에 나가 있는 여러 선교사들끼리의 갈등이 있었고 지나친 선교집중화로 인한 내부의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생각해보면 그 당시만큼 교회가 생동감이 있었던 적도 드물었고, 무엇보다도 당시 중고등학생으로 선교에 참여했던 아이들이 지금은 모두 사회와 교회의 필요한 일군이 되어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볼 때 많은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지금은 제가 향린교회 담임목사로서 사회적 선교를 강조하고 있지만, 저도 한때는 전통적인 해외선교에 매우 많은 활동을 하여온 사람입니다. 양이 아닌 질로 따진다면 해외선교에 있어서라면 어떤 목회자보다 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교회 일 년 예산의 절반을 해외 선교비로 사용하였고, 절반에 가까운 교인들이 멕시코 선교지에 직접 가서 활동을 하는 등 개 교회가 할 수 있는 최고수준에 가까운 해외 선교를 하였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당시 저는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에도 적극 참여하였지만, 멕시코뿐만이 아니라 초기의 중국이나 러시아의 선교지도 방문하고 직접 참여하였습니다. 국제 선교컨퍼런스에도 여러 번 참석하여 해외선교에 대한 당시의 동향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때 제가 가졌던 교회 모델은 사도행전에 나타난 안티오키아 교회였습니다. 마치 안티오키아 교회가 바르나바와 바울로의 말씀훈련을 하여 비로소 그들이 그리스도인이라 불리었듯이 그렇게 교인들을 성서공부로 훈련시켰습니다. 13장 1절의 말씀 ‘성령께서 바르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워라 내가 그들에게 맡기기로 정해 놓은 일이 있다.’를 따라 평신도 두 명에게 안수하여 파송하기도 했습니다. 아마 제가 향린교회로 부름을 받지 않았다면 저도 일찍 은퇴하여 관계하던 조그마한 유까딴 신학교에 가서 일생을 마치는 꿈을 실현했을는지도 모릅니다.
제가 그러했듯이 지금 해외선교에 많은 열을 올리는 남한교회를 비롯한 미국을 포함한 서구의 교회들의 선교 모델은 바로 이 안티오키아교회이고 선교사 바울로의 삶입니다. 쉽게 말하면 사도행전은 28장으로 아무런 결론 없이(open end) 끝나는데, 이어지는 29장은 여러분이 만들어가야 한다고 하여 단지 교회를 다니는 교인으로서가 아닌 이방 지역에 나아가는 선교사로서의 부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루가와 사도행전의 실제와 다른 무리한 역사전개]
그런데 최근에 와서 저는 이러한 선교에의 열정을 품게 만들었던 사도행전이 사실은 사실에 기초한 말씀이 아니라 저자 루가의 상상력이 많이 첨가된 성서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으면서 이번 아프칸 인질 사태와 더불어 세계 선교 그리고 해외 선교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미 여러 차례의 사도행전 하늘뜻펴기를 통해 루가는 세계 인류구원과 이방인 복음전도라는 큰 틀 안에서 루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써 내려갔다고 하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다른 세복음서와는 달리 갈릴래아 대신 예루살렘을 예수 부활과 선교의 출발지로 삼고 있고, 또 사도행전에 기록된 바울의 얘기는 바울 자신의 얘기와 많은 차이가 있다는 점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은 그 자신이 역사적 사실에 기초해서 썼다고 주장하지만, 객관적으로 볼 때, 사실의 기록이라기보다는 게리 윌스를 비롯한 여러 성서학자들이 얘기하듯이 루가가 자신의 신학적 의도에 맞게 소설적 각색을 통해 재구성하였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실은 저도 게리 윌스의 [바울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다.]는 책을 통해 사도행전에 대해서는 코페르니쿠스적인 신학적 대전환을 한 셈입니다.
사도행전에 있는 베드로와 고넬료의 만남 사건이 바울 서신에 기록된 것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점을 말씀드렸습니다만, 오늘 본문에서 나타난 바르나바와 바울로의 관계 또한 과연 그러한지에 대해서 의심이 갑니다. 우선 오늘 본문을 보면 예루살렘 박해를 피해 안티오키아 교회가 섰고 예루살렘에서 파송을 받은 바르나바가 초대목회자로 갔고 이후 그가 바울로를 공동목회자로 불러들여 안티오키아 교회가 질적 양적으로 성장하게 되면서 이 교회 교인들은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불리우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에 의해 이 두 사람이 선교사로 파송을 받은 것으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여기를 보면 바울로에게 있어 바르나바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은인이자 둘도 없는 동료입니다. 비록 마가를 데리고 가는 문제로 두 번째 선교를 떠날 때에 서로 갈라서기는 했지만, 그건 지엽적인 문제였다고 봅니다.
그런데 바울의 편지를 읽어보면 실상 바르나바에 언급하는 부분은 거의 없습니다. 무두 세 번 나오는데, 직접 바르나바를 언급하는 경우는 자신이 변화 받은 지 14년이 지난 예루살렘에 올라가는데, 이때 바르나바와 함께 갔다고만 말하고 있습니다. 바르나바가 자신의 고향으로 찾아와서 함께 일하자고 청했다는 부분도 없고, 두 사람이 함께 안티오커스 교회를 섬겼다는 기록도 없고, 함께 파송을 받아 선교 여행을 같이 다녔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루가의 글이 전적으로 잘못되었다는 반증의 글도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로의 서신을 통해서 볼 때, 안티오키아 교회에 대한 루가의 기록을 전적으로는 믿을 수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바울로의 서신을 볼 때 특히 로마서 마지막 장을 보면 수십명의 선교 동역자들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어디에서 왔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사도행전에는 이방 선교를 위한 교회로는 안티오키아 교회만이 거의 유일한 교회로 나옵니다. 정말 안티오키아 교회 외에는 다른 교회는 없었을까? 그리고 바울로만이 거의 전적으로 이런 선교활동을 했을까? 사도행전은 중간 이후부터는 그렇게 중요했던 베드로를 포함한 12사도뿐만 아니라 예루살렘 교회도 사라지고 바르나바도 사라집니다. 그리고는 오직 바울로만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로의 편지를 보면 결코 그러하지 않습니다. 초대교회 역사 전체를 보아도 사도행전은 세계선교라는 주제에 너무 무리하게 엮어져 있다고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선교여행을 떠날 때인 16장 10절에서부터 갑자기 모든 문장의 주어가 우리라고 바뀝니다. 그전까지는 그들이라고 하다가 갑자기 우리라고 바뀝니다. 그래서 우리와 같은 독자들로 하여금 사도행전을 기록한 저자 루가가 바울로의 선교 여행에 동행했다고 하는 생각을 갖게 만듭니다. 그런데 바울로의 서신에는 이를 확증할 만한 단서가 없습니다. 그리고 연대상으로도 루가가 바울로와 함께 여행했다고 하는 것이 무리입니다. 왜냐하면 바울로의 선교 여행 연대와 루가복음과 사도행전 기록 연대 사이에는 40년 이상의 해명할 수 없는 너무 큰 세월의 차이가 있고 무엇보다도 바울로가 서기 51, 2년에 재임한 갈리오 총독 앞에 서 재판받는 사도행전의 이야기는 바울의 실제 연대기를 만들어내는데 너무나 큰 장애가 되고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루가가 기록한 사도행전의 비역사성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현재 기독교가 세계 선교의 틀로 잡고 있는 사도행전이 실제와는 다르고 또 성서 전체 맥락에서 보면 이는 매우 비현실적일뿐더러 무모하다는 것을 말씀드리기 위한 것입니다.
[구약성서와 선교]
성서 전체에서 보더라도 세계 사람들을 전부 야훼 하느님을 믿는 사람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은 극히 제한되어 나타납니다. 우선 구약성서는 전도나 선교의 대상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의 대상은 할례를 받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방인 전도 혹은 세계 선교라는 말은 애당초 성립이 되지 않습니다. 간혹 요나서와 같은 이방인 구원에 대한 얘기가 있지만, 이 또한 지금 우리가 말하는 세계 선교라는 말과는 그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제가 구약성서 본문으로 구약의 마지막 말씀 말라기서를 읽은 것은 거기에 세계선교라는 하느님의 의도가 나와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야훼는 천지를 창조하시고 모든 민족들로부터 찬양을 받으시는 분으로 얘기되지만, 구원의 관점에서 본다면 여전히 이스라엘 민족의 신으로 얘기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세계선교]
그러면 신약성서는 어떠한가? 우선 예수님의 사역을 전체적으로 조명하여 보면 예수님이 무슨 특별한 교리를 만들어 자신을 따르도록 하는 어떤 종파나 종교를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나는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고 한 말씀에서 분명하듯이 잘못된 유대교를 바르게 하고자 했습니다. 율법의 핵심을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으로 보고 가난한 자와 억눌린 자들을 하느님의 중심 백성으로 회복시키는 하느님 나라 운동을 펼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는 세계의 모든 백성들을 전도하겠다는 그런 야망에 찬 얘기는 없습니다. 오히려 이방 여인이 자신의 딸의 병을 고쳐달라는 간구에 자신은 다른 양들에게로 보냄을 받지 않았다고 하며 이를 완곡히 거절하셨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구절은 마태복음 28장 마지막에 나오는 부활한 예수님께서 갈릴래아의 산에서 열한 제자들에게 부탁하신 말씀입니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
사실 한때 저도 그러했지만, 현재 해외선교에 열중하는 모든 교회들은 이 한 구절을 매우 중요시여기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구절을 갖고 교인들을 의식화시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28정 16절 이하의 말씀은 몇몇 성서학자들에 의하면 후대 교회가 첨가한 말씀으로 보고 있고 저도 여기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설사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이라고 하더라도 이 말씀이 수백 개의 다른 예수님의 말씀이나 명령보다 앞서야 하는 이유는 없습니다.
[바울로의 선교에 대한 오해들]
그리고 선교사의 아버지로 알려진 바울로의 경우를 보십시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말씀은 제외하고 바울로가 직접 쓴 편지에 근거한 그의 선교활동을 보면 그의 주요 선교 대상은 다른 종교를 믿는 이방인이 아니라 유대교에 들어온 이방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도행전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입니다.(10:2, 13:26) 그가 어떤 도시를 찾아가서 복음을 전할 때에 그냥 거리에서 외친 것이 아니라, 일단은 유대인 회당을 중심으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는 같은 유대인 형제들로부터 미움을 받아 죽음의 위협을 여러 번 당했고 끝내는 로마 법정에 고발을 당한 것입니다. (Gerd Theissen, The Social Setting of Pauline Christianity. 게리 윌슨의 책에서 재인용 104쪽)
따라서 지금 남한 교회를 비롯한 서구의 보수교회들이 주로 하는 선교 방식 특히 이슬람권에 직접 들어가서 ‘알라신은 참 신이 아니니 우리가 전하는 예수를 믿으라’고 말하는 선교방식이 바울적이라고 보는 것은 잘못된 이해입니다. 과거 수세기동안 서구는 아프리카와 남미 아시아에 식민지정책을 통해 제국주의적인 기독교를 전파하여 왔습니다. 지배자의 종교로 들어왔습니다. 로마가 국교로 받아들인 이후 기독교는 세계를 지배하고자 하는 종교적 야욕을 꿈꾸어왔습니다. 이것이 서구신학에 뿌리 깊게 내려 있는 Christendom 사상입니다. 이는 그리스도(Christ)와 왕국(kingdom)의 합성어입니다. 한국에서만이 일본이 지배할 때, 서구의 기독교는 오히려 이러한 일본제국주의를 물리칠 수 있는 구원의 힘으로 이해되어졌습니다. 바로 이러한 일제의 식민지 정치적 상황이 한국에서 유독 기독교를 빠르게 전파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남한의 교회와 지도자들은 이러한 정치사회적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남한의 기독교만이 마치 하느님의 은혜를 힘입어 세계 선교를 이끌어가는 선도적인 교회로 부름을 받았다고 하는 오만방자한 태도를 갖고 있습니다. 게다가 남한의 경제성장을 교회의 성장을 하느님의 축복의 틀 안에서 하나로 인식하는 변질된 복음을 외치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의 율법이해와 같은 것입니다.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는 예수님의 축복 말씀에 정면으로 대치하는 매우 위험한 이해입니다. 여기에 남한 기독교의 근본적인 변질이 숨어 있습니다.
바울로가 선교에 열심이었던 것은 단순한 예수천당 혹은 불신지옥과 같은 교리 전파도 아니었고 기독교의 교세 확장도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바울로에게 있어 복음의 핵심은 부활한 그리스도인데, 이 부활의 그리스도를 주창하는 핵심은 천국과 연계된 영생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화해를 통한 거듭남’입니다. ‘예수는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셨다가 우리를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시기 위해서 다시 살아나신 분이십니다.’(롬 4장 25절) 그는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화해의 복음을 통해 진정한 생명을 얻기를 바랐습니다. ‘우리를 하느님과 화해하게 해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덕분으로 우리는 지금 하느님을 섬기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5장 11절) 그리고 특히 그는 이 복음이 자신의 동족인 유대민족에게서 이루어지기를 바랐습니다. “나는 혈육을 같이 하는 내 동족을 위해서라면 나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갈지라도 조금도 한이 없겠습니다.”(롬 9장 3절) 그러니까 그의 세계 선교는 사실 그가 알지 못하는 모든 세계 이방민족이 아니라 실상은 세계에 흩어져 사는 디아스포라 동족 유대민족이 우선이었습니다. 그의 서신 어디에서고 세계선교를 위해 일하라고 부탁하는 얘기는 없습니다.
결론으로 말씀드리면 지금 남한 기독교가 이해하고 있는 세계 선교라는 말은 세계를 기독교화 하겠다는 다른 말로 하면 ‘종교식민지 제국주의적’ 태도입니다. 이러한 제국주의적 선교 방식은 사도행전에 나타난 루가의 선교방식에서 보이는 일탈이었지, 결코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선교 방식이나 바울로의 선교방식은 아니었다는 말씀입니다.
[또 하나의 변질: 예수의 복음을 예수에 관한 복음으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루가의 또 하나의 결정적인 잘못은 예수님이 추구했던 하느님 나라에 대한 선교적 열정을 예수에 관한 구원 복음으로 변질시켜 버린 것입니다. 가장 극적인 구절이 사도행전 4장 12절의 “이분에게 힘입지 않고는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 주신 이름 가운데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이름은 이 이름밖에는 없습니다.” 루가복음 4장에서 예수님께서 선포하셨던 나사렛 회당에서의 희년선포 곧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눈먼 자에게는 보게 함을 억눌린 자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는 정의와 평화의 하느님 나라 운동은 사도행전에 가서는 인류구원과 세계선교라는 미명 아래 ‘예수이름 구원운동’으로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루가는 사도행전에서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에 대한 실천 믿음’을 ‘예수에 관한 구호 믿음’으로 바꿔 버린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는 변질된 전도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변질된 기독교선교를 바르게 회복시켜야 합니다. 예수님이 추구하셨던 하느님 나라 운동을 이어가는 평화와 정의와 생명의 운동으로 회복시켜야 합니다.
[향린교회의 새로운 대안으로서의 해외선교]
간혹 향린교회는 해외선교를 하지 않느냐?고 질문하는 분이 있습니다만, 일반적 선교 곧 영혼구원 혹은 복음전도라는 교세 확장의 선교는 하지 않지만, 다른 방향에서 해외선교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2003년 6월 부임한 이후 있었던 일을 간단히 살펴보면 3년 전에는 미얀마 교회협의회의 도시산업선교를 돕기 위해 빈민지역에 2층짜리 선교센터를 짓도록 하여 교회의 하느님 나라 운동에 힘을 실어 주었습니다. 2년 전에는 본 교회 출신으로 기독교장로회 총회 파송으로 인도에 선교사로 일하시는 김진목사님과 더불어 10여명의 청년들이 인도평화여행을 다녀왔고, 여러 교우들 또한 개별적으로 이 평화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이 여행을 통해 인도의 풍부한 종교적 영성을 경험하고 세계가 안고 있는 가난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점심을 먹으면서 드리는 일부 천원의 헌금 중 일부가 고산지대에서 사는 멜가트족 어린이들의 하루 한 끼 식사를 위해 쓰입니다. 2년 전에는 평양방문을 5명의 교우들이 함께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 19명이 함께 한 오키나와 평화기행이야 말로 향린의 색깔을 분명히 하는 선교여행이었습니다.
3주후에는 이분들의 하늘뜻펴기와 선교보고가 진행되겠지만, 저는 이 오키나와 평화기행을 보다 심화시키고 계속하여 진행하였으면 하는 꿈을 갖고 있습니다. 지금 세계의 모든 종교들이 관심 가져야 할 주제는 평화입니다. 현재 동아시아에서 세계가 갖고 있는 폭력적 상황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은 한반도의 철책선과 오키나와입니다. 그러나 38 철책선은 접근이 용이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오키나와는 과거 고난의 역사가 우리와 매우 흡사할뿐더러 현재 미군기지가 그 땅의 10%를 차지하고 있고 비행장이 섬 한 가운데에 놓여 있어 세계의 폭력적 상황을 피부로 강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평화에 대한 염원이 우리보다 훨씬 강할뿐더러 적은 숫자이지만 기독교 목사님들의 평화활동이 매우 강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같은 기독교인으로서 평화에의 문제를 함께 공유할 수가 있고 배울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가기도 하겠지만 동시에 저분들을 이곳으로 초대하여 함께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노력하면서 보다 깊은 신앙적인 연대를 만들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신앙의 차원을 보다 한 단계 높여갈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전 이렇게 언어와 문화를 넘은 서로 다른 민족 간에 이루어지는 평화의 나눔 속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단 두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겠다.’(마태오 18장 20절)는 말씀이 진정 실현된다고 봅니다. 내 이름으로 모인 곳이란 단지 ‘예수교회’라는 간판을 내걸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예수님이 품으셨던 정의와 평화의 하느님 나라에 대한 비전과 실천을 말합니다. 이제 21세기의 지구촌이라는 새로운 상황 속에서 그리고 각 종교 간의 적대적인 위기 속에서 이제 기독교에서 말하는 세계 선교란 인류의 하나됨과 세계 평화를 향한 하느님 나라 운동으로 전환되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이집트의 노예였던 히브리민족을 해방시키시어 구원의 민족으로 부르신 야훼 하느님의 뜻이고 오랜 세월동안 억압의 한이 서린 갈릴래아에서 시작하신 예수님의 복음 운동을 이어가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라기는 남한의 기독교가 아프칸 피납과 살해 사건을 단지 탈레반의 테러로 인한 우발적 사고로 여기거나 두 분의 죽음을 단지 순교라는 종교적 이름으로 미화하지 않고 어떻게 종교 간의 이해와 대화를 통해 세계 평화에 기여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래서 해외선교에 대한 21세기의 새로운 선교 패러다임을 만들어내고 이 일에 향린교회가 큰 몫을 감당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말 3:19-24; 행 11:19-26, 13:1-3
한 달 전 23명의 기독교인이 아프칸에 단기선교를 떠났다가 탈레반 무장 세력에 피납이 되어 목사를 포함한 남성 2명이 살해당하고 2명의 여성이 풀려났습니다. 아직도 19명이 인질로 붙잡혀 있고 이런 상황이 얼마나 더 오래 갈는지 알 수 없는 고통스런 시간이 계속되고 있어 온 세계의 기독교인들뿐만 아니라 이슬람 교인들도 무사 석방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 또한 하루빨리 탈레반이 인도적 차원에서 아무런 조건 없이 석방할 것을 요구하고 동시에 해결의 키를 잡고 있는 미국이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하여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예수님의 생명 사랑 정신을 보여주기를 요구합니다. 이 시간 하늘의 평화의 영이 붙잡혀 있는 분들과 그들의 가족들 그리고 고통 중인 교우들에게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종교와 정치의 함수관계]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는 종교와 정치는 마치 양 날개와 같이 떼려야 뗄 수 없는 깊은 함수 관계 속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평화 시에는 이 둘은 서로 떨어질 수 있지만, 전쟁 시에는 이 둘은 하나로 인식이 됩니다. 지금 탈레반은 기독교를 단순히 하나의 외래 종교로 보지 않고 자신들의 적인 미국과 서구의 정치적 침략 세력으로 보고 있어 우리의 젊은이들의 순수한 종교적 의도를 정치적 침략 행위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나라의 선교 초기 특히 대원군 시대에도 가톨릭 신도들을 포함한 많은 선교사들이 박해를 받아 죽임을 당했는데, 이 경우도 단순한 종교적 이유가 아닌 서구의 통상요구를 외세 침략으로 보고 그래서 기독교는 외세의 도구로 여겼던 정치적 이유가 더 컸던 것입니다. 그리고 일제 독립운동에도 수많은 기독교 인사들이 참여했다고 하는 것은 종교와 정치의 깊은 함수관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직 19명의 피납자들이 풀려나지 않은 상태이기에 조심스럽긴 하지만, 기독교 언론에서는 많은 자성의 소리가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회 언론은 대형교회들의 재정의 불투명성 혹은 아들에게 교회를 물려주는 세습 형태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있어 왔습니다만, 앞으로의 교회 비판은 이전보더 더 거세게 밀어닥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에는 교회가 자성하는 의미에서 조용해야 하는데, 일부 극단적인 기독교인들의 포교활동은 반대로 더욱 극성을 피우고 있습니다. 차량에 스피커를 달고 다니면서 예수천당을 외치고 있고 이곳 명동만 해도 전에는 보지 못했던 여러 곳에서 이런 포교활동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명동의 중심가라 말할 수 있는 옛 국립극장 사거리에는 매우 오랫동안 스피커를 통해 복음송가를 부르거나 성경을 읽는 교회전도단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모습이 3주전부터 매우 노골화되고 스피커의 소리가 더욱 커졌습니다. 아프칸의 피납 상태를 자신들이 믿어온 세상말세의 초기 현상으로 보는 것입니다.
오늘은 사도행전 본문을 따라 기독교 선교에 대한 성서적이고 신학적인 입장을 비판적으로 정리해보고 저의 해외선교 경험과 향린교회의 평화선교 운동을 따라 21세기에 맞는 새로운 선교 방향을 모색해보고자 합니다.
지금 문제가 된 분당샘물교회 선교봉사팀이 선한 사마리아 사람들과 같이 인도적 봉사가 우선이었는지 아니면 기독교 선교가 우선이었는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그러나 의료봉사팀이라고는 하기에는 의사가 한명도 없고 유서를 쓰고 갔다는 점에서 우리는 선교를 목적으로 갔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왜 다른 국가도 많은데, 유독 이슬람국가를 선교 대상 국가로 정하고 그것도 내전이 계속되고 있는 이 위험한 나라 아프칸에 그것도 가장 위험한 탈레반 중심지역으로 들어갔는가? 이는 너무 무모한 행동이 아닌가? 그러나 신앙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이야 말로 참다운 신앙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선교는 순교의 위기가 있어야 한다고 하는 근본주의적인 신앙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팔레스타인의 자살폭탄자들 그리고 911의 알 케이다들은 모두 종교적 순교정신을 갖고 있어 무고한 인명을 죽이는 폭력을 저지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은 모두 천국에 간다고 하는 근본주의적 신앙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종교는 이렇게 순교를 찬양하고 타지에 나가 죽음을 각오하는 극단적 선교를 지향하는가? 자기 혼자 잘 믿으면 되지 않는가? 라고 반문하지만, 종교는 그 속성상 진리탐구가 있고 이 진리탐구는 곧 진리전파로 이어집니다. 진리를 알았는데, 이를 혼자 알고 있는 것은 참다운 진리탐구자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도를 전하는 포교활동은 진리의 속성이기도 하고 종교의 속성이기도 합니다.
사실 전도나 선교나 포교라는 점에서는 같은 말이지만, 보통 기독교 신학에서 전도는 개인적인 영혼구원 차원의 포교활동, 선교는 사회구조 차원의 포교 활동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교회에서는 국내포교활동은 전도로, 해외포교활동은 선교라고 구별하고 있습니다.
[남한교회의 해외선교의 현황]
그간 남한교회는 경제성장과 더불어 세계 유래가 없을 정도로 짧은 시간에 급성장하면서 이 남아도는 성장의 힘을 해외로 돌렸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준비되지 못한 상황에서 임기응변식으로 진행되는 해외선교였기에 그간 수많은 부작용을 만들어내었습니다. 대부분 물량공세에 의존하는 선교방식이어 새로운 사람을 교인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현지 교회의 교인을 빼앗아오는 일이 많았고 실적 위주, 선교비 각출을 위한 보고서 위주의 선교였습니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한인 선교사들이 대거 몰려 있는 필리핀 같은 지역에서는 선교사들이 값싼 노동력을 이용해서 지나치게 사치한 생활을 하여 만약 폭동이 일어나면 한인선교사부터 살해하겠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떠돌아다녔고, 러시아나 중국 미얀마 같은 경우는 국가 법률상 종교의 자유는 허락하지만, 포교 특히 외국인에 의한 포교는 법으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훈련받지 못한 선교사들이 이를 무시하여 현지 교회와의 마찰뿐만 아니라 외교적 갈등으로까지 비화되어 중국 외무성이 공개적으로 남한 정부를 향해 선교사파송을 자제해달라는 공문까지 보내었습니다.
제가 지난 3년 동안 기장 총회 해외선교위원회에 봉사하였습니다. 기장은 그래도 해외의 현지 교단과 연계하여 선교활동을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어 가장 바른 선교를 한다고 평가받지만, 여전히 선교사 훈련이나 지원을 보면 아직도 초등수준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남한 기독교의 대부분의 해외선교활동은 개 교회 위주로 주먹구구식으로 행해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게다가 지난 몇 년 전부터 시작된 해외여행 자유화와 맞물려 많은 교회들이 단기선교라는 용어를 도입하여 여름방학이 되면 휴가를 겸한 무분별한 선교활동이 우후죽순처럼 생겨 왔습니다. 여기에 지도적 위치에 있는 목사들은 기회만 되면 남한이 세계 제 2위의 선교국이니 10만 한인 선교사 파송을 이룩하자는 등 숫자에 지나치게 집착하여 달려 온 것입니다. 사실 단기선교라는 말은 서구에서는 적어도 1년 이상 3년을 봉사할 때 단기선교라는 용어를 씁니다. 우리나라는 일주일을 가더라도 단기선교라는 용어를 붙이고 그래서 단기선교사라는 자부심을 심어줍니다만 이는 선교의 질적 수준을 저하시키는 하나의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비기독교국 선교 중단해야]
8월 14일자 한겨레신문은 국민일보 기독교연구소사가 전문기관에 의뢰한 조사를 보도하고 있는데, 설문대상자의 64.5%는 기독교가 아닌 종교를 선택하고 있는 나라들에 대한 선교를 중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단지 비신자들만의 답(70%)이 아니라, 개신교 신자의 반수에 해당되는 사람(45%) 또한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봉사를 통한 해외선교활동은 반수 이상(56%)이 찬성하였지만, 절대다수(85%)는 남한 교회들이 해외 봉사선교 활동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모든 종교에 전도나 선교가 없을 수는 없지만, 서구 기독교나 현재 남한의 기독교를 볼 때, 왜 이렇게 지나친 해외 선교가 일어날까 하는 의문을 품게 됩니다. 그것은 성서에 해외선교를 향한 그런 바탕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성서 이야기가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사도행전 11장과 13장에 있는 안티오키아 교회의 이야기입니다. ‘스데파노의 일로 일어난 박해 때문에 흩어진 신도들이 페니키아와 키프로스와 안티오키아까지 가서 유다인들에게만 말씀을 전하였다. 그러나 그 신도들 중에는 키프로스 사람과 키레네 사람도 있었는데 그들은 안티오키아로 가서 이방인들에게도 말씀을 전하고 주 예수의 복음을 선포하였다.’ 바로 이 말씀에 해외 선교활동의 정당성을 두고 있습니다.
[저의 해외선교 경험들]
15년 전 제가 미국에 있으면서 섬기던 교회는 교인 150여명정도 출석하는 교회였지만, 한때 멕시코 해외선교로 유명세를 탔고 미국 한인교회 안에 해외선교에 대한 붐을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대한제국 말기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제로 지배하기 시작하던 그때에 많은 사람들이 만주나 연해주로의 탈출이 아닌 합법적인 수단으로 해외로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소위 말하는 미국 이민의 시초라 할 수 있는 하와이 사탕수수밭의 이주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들은 서류상으로는 계약 노동자였지만, 실제는 노예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라의 독립을 꿈꾸었던 많은 지식인들 특히 강제 해산을 당한 군인들은 분노를 견딜 수가 없고 독립운동을 펼치기 위한 방법으로 이 길을 선택하였고 미국선교사들 또한 이 일에 한 몫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상당수의 기독교인들이 여기에 갔습니다.
이때 이미 조선조정을 좌지우지하던 일본침략정부는 멕시코정부의 요청으로 유까딴 에니껭 농장에 한인노동자들을 팔아 치웁니다. 1905년 4월에 약 1,000여명의 우리 조상들이 한달 이상 배를 타고 멕시코 유까딴으로 가게 되었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목적지를 하와이로 알고 떠났습니다. 그간 잘 알려져 있지 않던 이때의 일을 한 13년 전에 한 작가가 소설로도 썼고, KBS 연속극도 나왔습니다. 바로 이런 일들이 고국에서 진행되고 있을 때, 제가 섬기던 교회에서 이곳 한인후예들을 위한 선교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유까딴이란 반도는 한반도의 크기에 캔쿤이라는 휴양도시로 유명하고 한때는 마야문명의 중심지이기도 했습니다. 날씨는 얼마나 더운지 낮에는 숨이 콱콱 막혀서 그늘에 그냥 서 있기조차 힘이 듭니다. 그러니까 그들의 삶은 비참할 수밖에 없고 그네침대에서 잠을 자고 그 아래에는 개나 닭들이 잠을 잡니다. 여러분이 TV에서 보시는 원주민 생활보다 약간 낫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처음 계약노동자로 도착한 한인들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달리 매우 비참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사막지역에 자라고 있는 가시가 콱콱 박혀있는 사람 키보다 큰 선인장의 일종인 에네껭을 큰 칼로 잘라내어 공장으로 운반하는 일입니다. 멕시코 사람들조차 힘이 들어 기피하는 일이었기에 육체적으로도 너무 힘이 들어 때로 도망을 하기도 했는데, 붙잡히면 발목을 잘랐다는 얘기까지 있습니다. 이 에니껭이라는 선인장 줄기를 강철판으로 짓누르면 가느다란 줄기들이 남는데, 이를 엮어서 단단한 줄을 만듭니다. 우리가 말하는 노끈이 이것으로 만들어지고 지금도 배에 쓰이는 밧줄을 만듭니다.
수년간의 이 노예와 같은 생활 속에서도 저들은 돈을 모아 독립자금을 만들어 국내로 보냈고 그들의 소식을 들은 안창호선생이 이곳에 내려와 2년을 함께 살면서 학교를 세워 그들을 지도하였습니다. 이후 고국으로 돌아올 수 없게 된 많은 사람들은 그곳을 떠나 대도시나 쿠바를 비롯한 여러 지역으로 흩어졌습니다. 그러나 원주민과 결혼을 하였거나 별다른 희망을 발견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냥 그곳에 남아서 살게 되었습니다.
초기에 저희들은 여러 마을에 들어가 한인 후손들을 찾아내는 일과 더불어 마을 전체를 대상으로 의료 미용 장학사업 활동을 했습니다. 당시 저희 교회는 이 멕시코선교를 통해 새로운 면을 열었는데, 그것은 당시 대형교회들만이 하는 해외선교를 보다 작은 교회들이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 교회가 단독으로 하던 선교를 여러 교회가 함께 하는 협력선교의 장을 열었습니다. 어떤 해에는 같은 지역의 열 개의 교회가 함께 6개월 이상 훈련과 선교활동도 같이 하여 교회의 협력하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저희 교회가 저들의 삶을 돕기 위해 농업경험이 있는 평신도선교사 두 분을 3년 임기로 파송하였는데, 이일 또한 안수 받은 목사들만이 선교사로 간다고 하는 인식의 틀을 깨고 평신도들 또한 자신의 직업을 통해 선교사로 나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12년 전 저희 교회가 처음 발을 들여 놓은 이후 수 년 만에 무려 미국전체에서 50개 이상의 교회들이 여기에 동참을 하여 왔고 지금은 남한교회들이 파송한 선교사들까지 가세하여 매우 활발하게 선교활동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안티오키아교회를 본받아]
어떻게 보면 당시 저희 교회는 마치 사도행전에 나오는 이 안티오키아교회 마냥 교인 전체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 해외 선교활동에 전념하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마치 바르나바와 바울로가 서로 의견이 갈려 다투었듯이 현지에 나가 있는 여러 선교사들끼리의 갈등이 있었고 지나친 선교집중화로 인한 내부의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생각해보면 그 당시만큼 교회가 생동감이 있었던 적도 드물었고, 무엇보다도 당시 중고등학생으로 선교에 참여했던 아이들이 지금은 모두 사회와 교회의 필요한 일군이 되어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볼 때 많은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지금은 제가 향린교회 담임목사로서 사회적 선교를 강조하고 있지만, 저도 한때는 전통적인 해외선교에 매우 많은 활동을 하여온 사람입니다. 양이 아닌 질로 따진다면 해외선교에 있어서라면 어떤 목회자보다 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교회 일 년 예산의 절반을 해외 선교비로 사용하였고, 절반에 가까운 교인들이 멕시코 선교지에 직접 가서 활동을 하는 등 개 교회가 할 수 있는 최고수준에 가까운 해외 선교를 하였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당시 저는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에도 적극 참여하였지만, 멕시코뿐만이 아니라 초기의 중국이나 러시아의 선교지도 방문하고 직접 참여하였습니다. 국제 선교컨퍼런스에도 여러 번 참석하여 해외선교에 대한 당시의 동향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때 제가 가졌던 교회 모델은 사도행전에 나타난 안티오키아 교회였습니다. 마치 안티오키아 교회가 바르나바와 바울로의 말씀훈련을 하여 비로소 그들이 그리스도인이라 불리었듯이 그렇게 교인들을 성서공부로 훈련시켰습니다. 13장 1절의 말씀 ‘성령께서 바르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워라 내가 그들에게 맡기기로 정해 놓은 일이 있다.’를 따라 평신도 두 명에게 안수하여 파송하기도 했습니다. 아마 제가 향린교회로 부름을 받지 않았다면 저도 일찍 은퇴하여 관계하던 조그마한 유까딴 신학교에 가서 일생을 마치는 꿈을 실현했을는지도 모릅니다.
제가 그러했듯이 지금 해외선교에 많은 열을 올리는 남한교회를 비롯한 미국을 포함한 서구의 교회들의 선교 모델은 바로 이 안티오키아교회이고 선교사 바울로의 삶입니다. 쉽게 말하면 사도행전은 28장으로 아무런 결론 없이(open end) 끝나는데, 이어지는 29장은 여러분이 만들어가야 한다고 하여 단지 교회를 다니는 교인으로서가 아닌 이방 지역에 나아가는 선교사로서의 부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루가와 사도행전의 실제와 다른 무리한 역사전개]
그런데 최근에 와서 저는 이러한 선교에의 열정을 품게 만들었던 사도행전이 사실은 사실에 기초한 말씀이 아니라 저자 루가의 상상력이 많이 첨가된 성서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으면서 이번 아프칸 인질 사태와 더불어 세계 선교 그리고 해외 선교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미 여러 차례의 사도행전 하늘뜻펴기를 통해 루가는 세계 인류구원과 이방인 복음전도라는 큰 틀 안에서 루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써 내려갔다고 하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다른 세복음서와는 달리 갈릴래아 대신 예루살렘을 예수 부활과 선교의 출발지로 삼고 있고, 또 사도행전에 기록된 바울의 얘기는 바울 자신의 얘기와 많은 차이가 있다는 점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은 그 자신이 역사적 사실에 기초해서 썼다고 주장하지만, 객관적으로 볼 때, 사실의 기록이라기보다는 게리 윌스를 비롯한 여러 성서학자들이 얘기하듯이 루가가 자신의 신학적 의도에 맞게 소설적 각색을 통해 재구성하였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실은 저도 게리 윌스의 [바울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다.]는 책을 통해 사도행전에 대해서는 코페르니쿠스적인 신학적 대전환을 한 셈입니다.
사도행전에 있는 베드로와 고넬료의 만남 사건이 바울 서신에 기록된 것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점을 말씀드렸습니다만, 오늘 본문에서 나타난 바르나바와 바울로의 관계 또한 과연 그러한지에 대해서 의심이 갑니다. 우선 오늘 본문을 보면 예루살렘 박해를 피해 안티오키아 교회가 섰고 예루살렘에서 파송을 받은 바르나바가 초대목회자로 갔고 이후 그가 바울로를 공동목회자로 불러들여 안티오키아 교회가 질적 양적으로 성장하게 되면서 이 교회 교인들은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불리우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에 의해 이 두 사람이 선교사로 파송을 받은 것으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여기를 보면 바울로에게 있어 바르나바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은인이자 둘도 없는 동료입니다. 비록 마가를 데리고 가는 문제로 두 번째 선교를 떠날 때에 서로 갈라서기는 했지만, 그건 지엽적인 문제였다고 봅니다.
그런데 바울의 편지를 읽어보면 실상 바르나바에 언급하는 부분은 거의 없습니다. 무두 세 번 나오는데, 직접 바르나바를 언급하는 경우는 자신이 변화 받은 지 14년이 지난 예루살렘에 올라가는데, 이때 바르나바와 함께 갔다고만 말하고 있습니다. 바르나바가 자신의 고향으로 찾아와서 함께 일하자고 청했다는 부분도 없고, 두 사람이 함께 안티오커스 교회를 섬겼다는 기록도 없고, 함께 파송을 받아 선교 여행을 같이 다녔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루가의 글이 전적으로 잘못되었다는 반증의 글도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로의 서신을 통해서 볼 때, 안티오키아 교회에 대한 루가의 기록을 전적으로는 믿을 수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바울로의 서신을 볼 때 특히 로마서 마지막 장을 보면 수십명의 선교 동역자들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어디에서 왔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사도행전에는 이방 선교를 위한 교회로는 안티오키아 교회만이 거의 유일한 교회로 나옵니다. 정말 안티오키아 교회 외에는 다른 교회는 없었을까? 그리고 바울로만이 거의 전적으로 이런 선교활동을 했을까? 사도행전은 중간 이후부터는 그렇게 중요했던 베드로를 포함한 12사도뿐만 아니라 예루살렘 교회도 사라지고 바르나바도 사라집니다. 그리고는 오직 바울로만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로의 편지를 보면 결코 그러하지 않습니다. 초대교회 역사 전체를 보아도 사도행전은 세계선교라는 주제에 너무 무리하게 엮어져 있다고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선교여행을 떠날 때인 16장 10절에서부터 갑자기 모든 문장의 주어가 우리라고 바뀝니다. 그전까지는 그들이라고 하다가 갑자기 우리라고 바뀝니다. 그래서 우리와 같은 독자들로 하여금 사도행전을 기록한 저자 루가가 바울로의 선교 여행에 동행했다고 하는 생각을 갖게 만듭니다. 그런데 바울로의 서신에는 이를 확증할 만한 단서가 없습니다. 그리고 연대상으로도 루가가 바울로와 함께 여행했다고 하는 것이 무리입니다. 왜냐하면 바울로의 선교 여행 연대와 루가복음과 사도행전 기록 연대 사이에는 40년 이상의 해명할 수 없는 너무 큰 세월의 차이가 있고 무엇보다도 바울로가 서기 51, 2년에 재임한 갈리오 총독 앞에 서 재판받는 사도행전의 이야기는 바울의 실제 연대기를 만들어내는데 너무나 큰 장애가 되고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루가가 기록한 사도행전의 비역사성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현재 기독교가 세계 선교의 틀로 잡고 있는 사도행전이 실제와는 다르고 또 성서 전체 맥락에서 보면 이는 매우 비현실적일뿐더러 무모하다는 것을 말씀드리기 위한 것입니다.
[구약성서와 선교]
성서 전체에서 보더라도 세계 사람들을 전부 야훼 하느님을 믿는 사람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은 극히 제한되어 나타납니다. 우선 구약성서는 전도나 선교의 대상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의 대상은 할례를 받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방인 전도 혹은 세계 선교라는 말은 애당초 성립이 되지 않습니다. 간혹 요나서와 같은 이방인 구원에 대한 얘기가 있지만, 이 또한 지금 우리가 말하는 세계 선교라는 말과는 그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제가 구약성서 본문으로 구약의 마지막 말씀 말라기서를 읽은 것은 거기에 세계선교라는 하느님의 의도가 나와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야훼는 천지를 창조하시고 모든 민족들로부터 찬양을 받으시는 분으로 얘기되지만, 구원의 관점에서 본다면 여전히 이스라엘 민족의 신으로 얘기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세계선교]
그러면 신약성서는 어떠한가? 우선 예수님의 사역을 전체적으로 조명하여 보면 예수님이 무슨 특별한 교리를 만들어 자신을 따르도록 하는 어떤 종파나 종교를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나는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고 한 말씀에서 분명하듯이 잘못된 유대교를 바르게 하고자 했습니다. 율법의 핵심을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으로 보고 가난한 자와 억눌린 자들을 하느님의 중심 백성으로 회복시키는 하느님 나라 운동을 펼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는 세계의 모든 백성들을 전도하겠다는 그런 야망에 찬 얘기는 없습니다. 오히려 이방 여인이 자신의 딸의 병을 고쳐달라는 간구에 자신은 다른 양들에게로 보냄을 받지 않았다고 하며 이를 완곡히 거절하셨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구절은 마태복음 28장 마지막에 나오는 부활한 예수님께서 갈릴래아의 산에서 열한 제자들에게 부탁하신 말씀입니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
사실 한때 저도 그러했지만, 현재 해외선교에 열중하는 모든 교회들은 이 한 구절을 매우 중요시여기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구절을 갖고 교인들을 의식화시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28정 16절 이하의 말씀은 몇몇 성서학자들에 의하면 후대 교회가 첨가한 말씀으로 보고 있고 저도 여기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설사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이라고 하더라도 이 말씀이 수백 개의 다른 예수님의 말씀이나 명령보다 앞서야 하는 이유는 없습니다.
[바울로의 선교에 대한 오해들]
그리고 선교사의 아버지로 알려진 바울로의 경우를 보십시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말씀은 제외하고 바울로가 직접 쓴 편지에 근거한 그의 선교활동을 보면 그의 주요 선교 대상은 다른 종교를 믿는 이방인이 아니라 유대교에 들어온 이방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도행전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입니다.(10:2, 13:26) 그가 어떤 도시를 찾아가서 복음을 전할 때에 그냥 거리에서 외친 것이 아니라, 일단은 유대인 회당을 중심으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는 같은 유대인 형제들로부터 미움을 받아 죽음의 위협을 여러 번 당했고 끝내는 로마 법정에 고발을 당한 것입니다. (Gerd Theissen, The Social Setting of Pauline Christianity. 게리 윌슨의 책에서 재인용 104쪽)
따라서 지금 남한 교회를 비롯한 서구의 보수교회들이 주로 하는 선교 방식 특히 이슬람권에 직접 들어가서 ‘알라신은 참 신이 아니니 우리가 전하는 예수를 믿으라’고 말하는 선교방식이 바울적이라고 보는 것은 잘못된 이해입니다. 과거 수세기동안 서구는 아프리카와 남미 아시아에 식민지정책을 통해 제국주의적인 기독교를 전파하여 왔습니다. 지배자의 종교로 들어왔습니다. 로마가 국교로 받아들인 이후 기독교는 세계를 지배하고자 하는 종교적 야욕을 꿈꾸어왔습니다. 이것이 서구신학에 뿌리 깊게 내려 있는 Christendom 사상입니다. 이는 그리스도(Christ)와 왕국(kingdom)의 합성어입니다. 한국에서만이 일본이 지배할 때, 서구의 기독교는 오히려 이러한 일본제국주의를 물리칠 수 있는 구원의 힘으로 이해되어졌습니다. 바로 이러한 일제의 식민지 정치적 상황이 한국에서 유독 기독교를 빠르게 전파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남한의 교회와 지도자들은 이러한 정치사회적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남한의 기독교만이 마치 하느님의 은혜를 힘입어 세계 선교를 이끌어가는 선도적인 교회로 부름을 받았다고 하는 오만방자한 태도를 갖고 있습니다. 게다가 남한의 경제성장을 교회의 성장을 하느님의 축복의 틀 안에서 하나로 인식하는 변질된 복음을 외치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의 율법이해와 같은 것입니다.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는 예수님의 축복 말씀에 정면으로 대치하는 매우 위험한 이해입니다. 여기에 남한 기독교의 근본적인 변질이 숨어 있습니다.
바울로가 선교에 열심이었던 것은 단순한 예수천당 혹은 불신지옥과 같은 교리 전파도 아니었고 기독교의 교세 확장도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바울로에게 있어 복음의 핵심은 부활한 그리스도인데, 이 부활의 그리스도를 주창하는 핵심은 천국과 연계된 영생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화해를 통한 거듭남’입니다. ‘예수는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셨다가 우리를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시기 위해서 다시 살아나신 분이십니다.’(롬 4장 25절) 그는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화해의 복음을 통해 진정한 생명을 얻기를 바랐습니다. ‘우리를 하느님과 화해하게 해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덕분으로 우리는 지금 하느님을 섬기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5장 11절) 그리고 특히 그는 이 복음이 자신의 동족인 유대민족에게서 이루어지기를 바랐습니다. “나는 혈육을 같이 하는 내 동족을 위해서라면 나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갈지라도 조금도 한이 없겠습니다.”(롬 9장 3절) 그러니까 그의 세계 선교는 사실 그가 알지 못하는 모든 세계 이방민족이 아니라 실상은 세계에 흩어져 사는 디아스포라 동족 유대민족이 우선이었습니다. 그의 서신 어디에서고 세계선교를 위해 일하라고 부탁하는 얘기는 없습니다.
결론으로 말씀드리면 지금 남한 기독교가 이해하고 있는 세계 선교라는 말은 세계를 기독교화 하겠다는 다른 말로 하면 ‘종교식민지 제국주의적’ 태도입니다. 이러한 제국주의적 선교 방식은 사도행전에 나타난 루가의 선교방식에서 보이는 일탈이었지, 결코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선교 방식이나 바울로의 선교방식은 아니었다는 말씀입니다.
[또 하나의 변질: 예수의 복음을 예수에 관한 복음으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루가의 또 하나의 결정적인 잘못은 예수님이 추구했던 하느님 나라에 대한 선교적 열정을 예수에 관한 구원 복음으로 변질시켜 버린 것입니다. 가장 극적인 구절이 사도행전 4장 12절의 “이분에게 힘입지 않고는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 주신 이름 가운데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이름은 이 이름밖에는 없습니다.” 루가복음 4장에서 예수님께서 선포하셨던 나사렛 회당에서의 희년선포 곧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눈먼 자에게는 보게 함을 억눌린 자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는 정의와 평화의 하느님 나라 운동은 사도행전에 가서는 인류구원과 세계선교라는 미명 아래 ‘예수이름 구원운동’으로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루가는 사도행전에서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에 대한 실천 믿음’을 ‘예수에 관한 구호 믿음’으로 바꿔 버린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는 변질된 전도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변질된 기독교선교를 바르게 회복시켜야 합니다. 예수님이 추구하셨던 하느님 나라 운동을 이어가는 평화와 정의와 생명의 운동으로 회복시켜야 합니다.
[향린교회의 새로운 대안으로서의 해외선교]
간혹 향린교회는 해외선교를 하지 않느냐?고 질문하는 분이 있습니다만, 일반적 선교 곧 영혼구원 혹은 복음전도라는 교세 확장의 선교는 하지 않지만, 다른 방향에서 해외선교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2003년 6월 부임한 이후 있었던 일을 간단히 살펴보면 3년 전에는 미얀마 교회협의회의 도시산업선교를 돕기 위해 빈민지역에 2층짜리 선교센터를 짓도록 하여 교회의 하느님 나라 운동에 힘을 실어 주었습니다. 2년 전에는 본 교회 출신으로 기독교장로회 총회 파송으로 인도에 선교사로 일하시는 김진목사님과 더불어 10여명의 청년들이 인도평화여행을 다녀왔고, 여러 교우들 또한 개별적으로 이 평화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이 여행을 통해 인도의 풍부한 종교적 영성을 경험하고 세계가 안고 있는 가난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점심을 먹으면서 드리는 일부 천원의 헌금 중 일부가 고산지대에서 사는 멜가트족 어린이들의 하루 한 끼 식사를 위해 쓰입니다. 2년 전에는 평양방문을 5명의 교우들이 함께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 19명이 함께 한 오키나와 평화기행이야 말로 향린의 색깔을 분명히 하는 선교여행이었습니다.
3주후에는 이분들의 하늘뜻펴기와 선교보고가 진행되겠지만, 저는 이 오키나와 평화기행을 보다 심화시키고 계속하여 진행하였으면 하는 꿈을 갖고 있습니다. 지금 세계의 모든 종교들이 관심 가져야 할 주제는 평화입니다. 현재 동아시아에서 세계가 갖고 있는 폭력적 상황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은 한반도의 철책선과 오키나와입니다. 그러나 38 철책선은 접근이 용이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오키나와는 과거 고난의 역사가 우리와 매우 흡사할뿐더러 현재 미군기지가 그 땅의 10%를 차지하고 있고 비행장이 섬 한 가운데에 놓여 있어 세계의 폭력적 상황을 피부로 강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평화에 대한 염원이 우리보다 훨씬 강할뿐더러 적은 숫자이지만 기독교 목사님들의 평화활동이 매우 강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같은 기독교인으로서 평화에의 문제를 함께 공유할 수가 있고 배울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가기도 하겠지만 동시에 저분들을 이곳으로 초대하여 함께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노력하면서 보다 깊은 신앙적인 연대를 만들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신앙의 차원을 보다 한 단계 높여갈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전 이렇게 언어와 문화를 넘은 서로 다른 민족 간에 이루어지는 평화의 나눔 속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단 두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겠다.’(마태오 18장 20절)는 말씀이 진정 실현된다고 봅니다. 내 이름으로 모인 곳이란 단지 ‘예수교회’라는 간판을 내걸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예수님이 품으셨던 정의와 평화의 하느님 나라에 대한 비전과 실천을 말합니다. 이제 21세기의 지구촌이라는 새로운 상황 속에서 그리고 각 종교 간의 적대적인 위기 속에서 이제 기독교에서 말하는 세계 선교란 인류의 하나됨과 세계 평화를 향한 하느님 나라 운동으로 전환되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이집트의 노예였던 히브리민족을 해방시키시어 구원의 민족으로 부르신 야훼 하느님의 뜻이고 오랜 세월동안 억압의 한이 서린 갈릴래아에서 시작하신 예수님의 복음 운동을 이어가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라기는 남한의 기독교가 아프칸 피납과 살해 사건을 단지 탈레반의 테러로 인한 우발적 사고로 여기거나 두 분의 죽음을 단지 순교라는 종교적 이름으로 미화하지 않고 어떻게 종교 간의 이해와 대화를 통해 세계 평화에 기여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래서 해외선교에 대한 21세기의 새로운 선교 패러다임을 만들어내고 이 일에 향린교회가 큰 몫을 감당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