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역사(5-2) 존재와의 만남
렘 1:4-10; 갈 2:11-24

지난주 저는 사도행전을 따라 교회와 사회와의 역사적 전개를 살펴보면서 저자 루가가 전하는 다마스쿠스에서의 바울로가 받은 계시의 얘기를 하였습니다만, 오늘은 바울로 자신이 증언하는 계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같은 얘기를 두 번씩 하는 이유는 이 두 얘기가 서로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고, 더 중요한 이유는 일반 교인들뿐만 아니라 목사들의 경우에도 사도행전에 기록된 루가의 얘기를 바울로 자신의 얘기보다 더 사실로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서를 바울 서신보다 더 사실적이고 보는 것은 타당한가?]

그러면 왜 우리는 당사자가 하는 얘기보다 삼자가 전하는 얘기를 더 진실하다고 믿게 되었는가? 일반적으로 이러한 믿음이 유포된 경위는 이러합니다. 우선 바울로는 역사적 예수를 만난 적이 없다. 따라서 바울로는 역사적 예수에 대해 별로 아는 바가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가 기록한 서신을 보면 그는 역사적 예수에는 관심이 없고 부활의 그리스도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따라서 역사적 예수에 관한 기록은 복음서가 더 진정하다는 이 믿음은 일반 신도들뿐만이 아니라 많은 신학자들에게도 퍼져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주에도 언급한 바 있는 [바울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다] 라는 책 2장에서 게리 윌즈는 이러한 믿음이 잘못되어 있음을 매우 설득력 있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저도 그의 설득에 마음이 움직인 사람입니다. 오늘은 이 부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바울로는 역사적 예수에 대해 누구 못지않은 객관적인 정보를 많이 갖고 있었고 필요에 따라 그는 자신의 글에서 역사적 예수의 말씀들과 행적을 정확하게 인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복음서를 기록한 4명의 저자들 또한 역사적 예수를 직접 본 것이 아니라 예수님 사후 적어도 50년이 지나 예수 어록자료를 비롯한 원복음서와 구전으로 전해 오던 이야기를 섞어 기록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역사적 예수를 보지 못한 것은 바울로나 복음서 저자가 같은데 우리가 수십 년이나 후에 씌어진 복음서를 바울로의 편지보다 더 사실적으로 보는 것은 논리적이지 않습니다.

[루가에 대한 오해]

이런 생각의 전환은 제가 오랫동안 갖고 있던 한 신학적인 질문을 풀어나가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4복음서 가운데 우리는 가장 사실에 가깝게 썼을 복음서를 뽑으라면 대부분이 루가복음을 선택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흔히 루가는 의사로 알려져 있어 과학적인 사실적 태도를 견지했을 것이라는 믿음과 두 번째는 그가 루가복음 첫머리에 쓴 글 때문입니다. ‘존경하는 데오필로님, 우리들 사이에서 일어난 그 일들을 글로 엮는데 손을 댄 사람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그들이 쓴 것은 처음부터 직접 눈으로 보고 말씀을 전파한 사람들이 우리에게 전해 준 사실 그대로입니다. 저 역시 이 모든 일들을 처음부터 자세히 조사해둔바 있으므로 그것을 순서대로 정리하여 각하께 써서 보내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하오니 이 글을 보시고 이미 듣고 배우신 것들이 틀림없는 사실이라는 것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우리는 데오필로 각하라고 불리는 로마의 관료가 과연 실제 인물이냐?는 질문이 있습니다. 데오필로는 번역하면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사람 이름치고는 뭔가 야릇한 기분이 듭니다. 두 번째 만약 데오필로라는 사람이 루가가 어떤 사람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면 그리고 루가가 사실 그대로를 전하고 있었다면 굳이 루가가 자신이 전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강조할 필요가 있을까요? 우리는 이 머리말 때문에 루가가 가장 객관적인 역사적 예수를 전하고 있다고 믿지만, 사실 뒤집어 말하면 자라보고 놀란 사람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루가는 미리 자신의 얘기에 대한 사실질문을 차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손님 그 값이면 정말 싸게 사는 겁니다. 저도 오늘 장사가 하도 안돼서 본전이라도 건지라고 미지고 파는 겁니다.’ 요즘은 정찰제가 자리를 잡아 이런 얘기를 듣기 힘들지만, 한 20년 전만 해도 이런 얘기는 자주 듣던 얘기입니다. 장사하는 사람의 미지고 판다는 이 말을 믿는 사람을 순진한 사람, 때로는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불렀지요.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루가가 전하는 역사적 예수가 가장 사실적이다.라는 주장에는 객관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고 오히려 바울 자신의 얘기에 근거해서 사도행전을 평가한 게리 윌즈는 이는 당시 헬레니즘 시대상을 반영한 ‘신학적 소설’에 가깝다고 말하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복음서에서의 지리 구조]

아까 제가 그간 풀리지 않는 신학적 질문이 있었고 이것이 풀려가는 느낌을 갖는다고 했는데, 그것은 루가가 설정한 지리적 중심의 문제입니다. 여러분 아시는 대로 마태오복음과 마르코복음 그리고 요한복음은 모두 예수님의 부활에 근거한 새로운 복음 운동의 시작점을 갈릴래아로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무덤을 찾아간 여인들에게 마르코는 천사를 통해 부활의 주님은 이미 전에 얘기한 대로 “너희보다 앞서서 갈릴래아로 가셨다. 거기 가서 그분을 만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고, 마태오복음에서도 같은 얘기가 선포되고 무덤가를 찾아온 여인들에게만 살짝 나타나셨다가 사라지신 다음 제자들에게는 갈릴래아에서 나타나시고 우리가 잘 아는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는 선교명령은 갈릴래아에서 선포됩니다. 요한복음에서 부활의 주님은 예루살렘에서 여인들을 비롯하여 여러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지만, 결국 제자들은 갈릴래아로 돌아갔고 갈릴래아 해변에서 그들은 부활의 주님을 다시금 만나고 거기에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세 번의 질문과 ‘내 양을 치라’는 목회명령을 하십니다. 그러니까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이 세복음서에 있어 갈릴래아는 예수가 펼치신 하느님 나라 운동의 시작과 중심이었고, 그 뒤를 이은 제자들에게 있어서도 그러합니다.

그런데 오직 루가만이 예수 이후의 하느님 나라 운동의 시작을 갈릴래아가 아닌 예루살렘으로 보고 있습니다. 우선 루가는 첫 번째 책 루가복음에서 엠마오를 향해 가던 두 제자가 부활의 주님을 뵙고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장면으로 얘기를 마친 다음 두 번째 책 사도행전에서는 이 부활의 주님이 지상에 40일 동안 계시다가 하늘나라로 올라가시는데, 그때 이런 명령을 내립니다.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가 전에 일러준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려라.” 갈릴래아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예루살렘이 그 중심이 되어 있습니다. 오히려 승천하는 주님을 바라보는 제자들을 향해 천사가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너희는 여기에 서서 하늘만 쳐다보고 있느냐?’ 여기서 갈릴래아는 어리석은 사람들이라는 암시를 던지고 있습니다. 저는 왜 루가가 예수 이후의 하느님 나라 운동을 갈릴래아가 아닌 예루살렘으로 바꾸었는가에 대한 신학적 질문을 마음속에 품고 있었습니다. 루가의 인류구원의 관점에서는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복음운동의 중심으로 보는 것은 당연하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심각한 신학적 문제가 발생합니다.

[예수 운동의 핵심이 뒤틀리다.]

우리는 갈릴래아와 예루살렘이라는 이 두 단어가 복음서 안에서는 단지 지리적인 명칭만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갈릴래아는 억압받던 민중들의 삶의 대명사이고 예루살렘은 정치경제종교의 중심으로 지배자의 상징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를 비판하고 대항했던 사람들은 단지 바리사이파나 사두가이파 혹은 제사장이라는 단순 직업적 계층이 아니라 거기에는 자주 ‘예루살렘에서 내려 온’ 사람들이라고 하는 수식어가 붙어 다닙니다. 그러니까 신학적으로 말하면 갈릴래아와 예루살렘은 항상 예수파와 적예수파라는 대층적인 의미에서 사용되고 있고 마르코복음에서는 아주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루가는 결국 반민중적인 복음이 아닌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그러나 동시에 가난한 자에 대한 관심은 루가가 제일 많습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 세리장 자캐오의 이야기, 가난한 자에 대한 축복 선언에 이은 부자에 대한 저주 선언 등은 루가만의 이야기입니다.

[공관복음서에 대한 새로운 해석]

우선 저는 이점에서 루가복음의 위상을 새롭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흔히 신학자들은 4개 복음서 가운데 요한복음을 제외한 나머지 3개의 복음서를 공관복음서라고 말합니다. 같은 관점에서 보았다. 그런 의미입니다만, 저는 이 공관복음이라는 단어는 별 의미가 없다고 보고 있고, 굳이 이를 써야 한다면 지리구조적 관점에서 오히려 마태오 마르코 요한을 하나로 묶어 공관복음서라 말하고 루가를 따로 떼어내는 것이 옳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불현듯 얻게 되었습니다. 지리가 갖는 위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은 김태준집사님의 교수퇴임 기념문집인 3권으로 된 [문학지리; 한국인의 심성공간]이라는 책을 통해서 매우 잘 제시되어 있습니다. 여기 서문을 보면 “사람에게 고향이 있듯이 문학에도 고향이 있다. 내 고향이 장연이라면 <춘향전>의 고향은 남원이고, 민요 <아리랑>의 고향은 한민족의 마음이다. 고향은 땅이다. 땅은 사람이 태어나고 살아가는 공간이며, 걸어가는 길이다. 그것은 자리[空間]이며 지리[地理]이다. 이 자리와 지리를 얻어서 문학은 자기의 세계를 해석하고, 무한한 우주와도 호흡한다.” 문학에 있어 지리가 갖고 있는 중요성을 매우 간략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복음서 또한 문학의 범주에 속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지리에 근거한 적대적 대칭을 잘 알고 있는 루가가 왜 그의 복음서에서는 의도적인 변경(twist)을 꾀했을까요? 우선 루가는 이방인을 위한 복음을 썼다고 하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즘 말로 한다면 ‘세계화’의 시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단적인 예가 예수의 족보를 설명함에 있어 마태오는 아브라함에 그 근원을 두지만, 루가는 아브라함을 거슬러 올라 에녹 에노스 셋 아담 그리고 하느님에게 그 근원을 두고 있는데서 그의 전 우주적인 그리고 세계 인류 구원에 대한 관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루가는 마르코의 갈릴래아와 연계되어 있는 계층적 언어인 ‘민중’이라는 그리스어 ‘ochlos’라는 단어를 보다 ‘국민’이라는 보편적 집단을 표현하는 그리스어 ‘laos’로 바꿔 쓰는 것을 보아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루가가 반민중적이었다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의 관심은 팔레스타인을 넘어 유대민족을 넘어 세계 인류 구원이라는 목적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루가복음의 후편인 사도행전에서는 이방인 복음전도자 바울로에게 집중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전체의 그림에서 보면 예수님의 직접 제자 열두 사도들은 모두 바울로의 이방인 사역을 위한 디딤돌로 설명되고 있을 따름입니다. 이방지역까지 복음이 전파되기 위해서는 유다와 사마리아의 복음전도가 언급되어야 하기에 단지 언급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물론 베드로를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지만 사실 이 베드로 경우도 고넬료의 만남에 대해서 이례적으로 매우 자세히 언급하고 있어 이 또한 바울로의 이방인 사역을 변호하기 위한 목적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루가의 폭넓은 세계관 그리고 열린 역사관에 대해 감탄을 하면서 동시에 그가 이를 위해 사실 비틀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루가의 세계화 시각에 대한 비판]

요즘말로 하면 루가는 복음의 ‘세계화’의 시각을 갖고 있었던 선각자입니다. 물론 우리는 지금 세계화라는 단어를 무비판적으로 당연하게 받아드립니다. 세계화는 곧 벽을 허무는 일이고 자유라는 개념과 거의 같은 동일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자유주의라는 세계화의 물결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한미FTA나 한EU FTA를 찬성하는 입장이 그러합니다. 그래서 이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마치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 혹은 닫힌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로 비쳐집니다. 그런데 벽을 허문다고 할 때, 이때의 벽은 어떤 차별이나 편견의 벽을 말합니다.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지금 FTA에서 말하는 관세와 무역의 벽은 오히려 약자 보호가 아닌 강자보호를 위한 벽 허물기입니다. 사람은 마음대로 넘어갈 수 없고 자본만 마음대로 넘나드는 벽 허물기입니다. 따라서 세계화라는 말을 사용할 때는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그 결과는 어떠한 것인지에 대한 주의가 요구됩니다. 세계화라는 말 속에는 분명히 세계를 하나로 묶어가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동시에 지역적 특성과 약자를 죽이는 부정적인 면도 있습니다.

실제 있었던 유명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러시아가 경제위기를 맞아 국제통화기금의 제재를 받았을 때, 한 언론인이 그들이 작성한 구조조정문서 사본을 하나 입수했는데, 이 문서에서 통화기금은 모든 국영기업을 민영화하고 모든 수입 관세를 없애는 방법을 논하고 있습니다. 이 문서 중간부분에서 이 언론인은 Russia가 아니라 South Korea라는 단어를 발견하게 됩니다. 남한을 대상으로 요구했던 문서를 그대로 러시아에 요구했는데 컴퓨터가 단어 하나 바꾸는 것을 실수한 것입니다. 국제통화기금이 말하는 세계화는 마치 군대와 같이 너도 나도 모두 같은 제복을 입히고 같은 음식을 먹이고 그렇게 해서 경제의 효율성을 높여 많은 이득을 올리자는 것입니다. 세계화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는 누가 어떤 의미에서 사용하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온다는 것입니다. 세계가 하나가 되면 분명 세계 사람들은 자유롭게 오고감으로 소통이 빨라지고 자유화의 시대가 올 것입니다.

그러나 역효과도 상상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에 고속도로가 많이 깔리고 철도가 빨라지면 도농간의 격차가 좁아질 것이라고 예견했지만, 실제로는 도시집중화가 이루어지고 서울 외곽으로는 수많은 빈민계층이 만들어지듯이 세계가 같은 꼴이 되고 말 것입니다. 자유는 좋지만 누구를 위한 자유인가가 물어져야 하고 이익 또한 누구에게로 집중하는가 하는 것도 관심해야 합니다. 자유와 이익에서 평등이 상실되면 그건 독재자의 자유와 자본가의 이익만을 말합니다. 우리는 세계화라는 단어 속에 숨어 있는 이 모순을 보아야 하는데, 루가복음과 사도행전에는 바로 이런 모순이 숨어 있다는 것입니다.

루가가 이방인 구원을 위해 우리의 시야를 팔레스타인 땅 밖으로 이끌어낸 공헌은 결코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함으로 복음서의 기조가 되어 있는 가난과 억압받는 지역으로서의 갈릴래아와 억압하는 예루살렘이라는 적대적 대칭을 버림으로 인한 예수 복음의 근본적 외침인 해방이 종교적 구원으로 축소 혹은 대체되고 말았다는 비판을 피할 길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도행전을 읽을 때에는 이러한 루가의 세계적인 시각을 비판적으로 파악한 다음에 읽어나가야 제대로 성서 읽기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루가복음이 다른 세복음서보다 더 사실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나 초대교회의 역사를 이해할 때 사도행전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흔히 영지주의자라 하여 초대교회 이단자로 공격받는 마르시온이라는 사람이 왜 루가복음만을 진정한 복음서로 받아들이고 다른 세복음서는 버렸는지에 대해서도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루가가 없었다면 복음의 세계화는 매우 늦어졌을 가능성이 있고, 사도행전이 없었다면 초대교회의 모습은 암흑 속에 감추어져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루가의 얘기를 전적으로 신뢰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바울로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여기까지가 오늘의 서론이고 이제야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바울로가 어떻게 예수 전도자가 되었는가 하는 경험은 사도행전에 기록한 루가의 얘기보다는 바울로 자신이 말하는 갈라디아서의 얘기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고 오늘 다시금 그 얘기를 하는 이유입니다.

우선 오늘 갈라디아 본문에서 그가 첫 번째로 강조하고 있는 것은 그가 받은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그에게 계시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 구체적 계시 방법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이 다마스쿠스를 가던 도중에서 일어났는지 아니면 다른 장소에서 일어났는지 아니면 루가가 말한 대로 순간적으로 일어난 계시사건인지 아니면 점진적인 깨달음에 의한 것인지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바울로는 유다교에 있을 때에 하느님의 교회를 몹시 박해하던 사람이었다는 것과 아예 교회를 없애버리려는 교회 박멸운동에 가장 앞장선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박해를 예루살렘에서 했는지 아니면 그 밖에서 했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히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는 22절에서 유다에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들은 자기를 직접 대할 기회는 없었고 소문만 들어 알고 있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가 변화되기 전 예루살렘에서 활동했다는 사도행전의 얘기들은 신빙성이 떨어집니다. 그가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으로 유대교 정통파에 속해 있고 그런 교육을 받았다고 고백하지만, 그가 예루살렘 당대의 최고의 랍비인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했다는 루가의 얘기 또한 신빙성이 떨어집니다.

다만 그는 자기가 지나치게 광신적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는 것과 자기만이 옳다는 편견과 극단에 사로잡혀 있었다. 다른 말로 하면 세뇌되어 있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좋게 말해 그는 세상의 잘못된 질서를 바로 잡고 사람들의 삶을 완전하게 하려는 열망을 갖고 있었는데, 그 방식은 모세가 전한 율법 그리고 그 율법을 해석해온 유대교 전통에 의해서만이 가능하다고 보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명목상으로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바울의 서신들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고백하지만, 실제 믿음의 형태로 보면 변화 이전의 바울의 신앙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변화 이전의 바울이 이해한 종교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종교는 어떤 일을 하는 것, 어떤 일이 일어나게 하는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믿음은 일 곧 행실에 관련되어 있습니다. 누가 예수를 잘 믿는 사람입니까? 이렇게 물으면 백이면 백 행실에 관련한 답변을 할 것입니다. 성서를 꾸준히 읽는 일, 기도를 열심히 드리는 일, 십일조와 성수주일을 잘 지키는 일, 이웃을 사랑하는 일.. 일.. 일.. 일에 매여 있고 일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유대교 안에 있을 때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믿음이란 종교란 일이 아닙니다. 일로 표현되기는 하지만 일은 아닙니다. 일로 표현하고 나면 병상에 누워 사지를 움직일 수 없는 사람들은 결코 하느님을 잘 믿을 수가 없습니다. 잘 믿는 다는 말, 종교의 핵심은 하느님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적 인식에 있습니다. 종교란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 앞에 자신을 내어 맡기는 포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행위 자체를 포기하는 인식입니다. 여기서 저는 영성신학자 유진 피터슨의 얘기를 그대로 인용하고자 합니다. “바울은 훌륭한 신학자였지만 하느님 자신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자기가 받은 교육을 활용하는 데 너무 바빴고, 자신의 종교적 과업으로 너무 바빴고, 풍요로운 문화적 유산과 신학적 식견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하느님을 위한 여지는 없었다.” ([자유] 김명희역 IVP 2007 65쪽]

저는 이글을 읽으면서 나에게 하느님을 위한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닌가? 하는 자기 반성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과연 나도 과거 유대교에 있었던 바울처럼 사회적 이슈가 담긴 신학적 논증에는 관심이 많지만, 정작 하느님 자신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내가 받은 교육과 지식을 알리고 그리고 종교적 과업들, 제가 향린교회 목사로서 수행해야 할 여러 가지의 목회적 업무들, 직원들을 돌보고 교인들의 필요에 따라 응하고 교회 안팎의 다양한 회의나 모임에 바쁘지만, 과연 나는 하느님을 위한 나의 삶의 자리는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단순히 기도시간이 많다 적다가 아니라 얼마나 존재적으로 하느님과 가깝게 서 있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아마 바쁘게 뛰어다니던 바울이 이런 질문을 문득 하게 된 것이 아닐까요? 내가 과연 이렇게 유대교의 충실한 신자로서 예수를 따르는 자들을 잡아 가두는 일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러면서 돌에 맞아 피를 흘리고 죽어가면서도 돌을 던지는 광분한 폭도들을 향해 천사의 미소를 지으며 ‘저들을 용서하소서.’라고 하는 스데파노의 기도소리를 갑작스레 떠올린 것은 아닐까요? 나는 이렇게 하느님의 일을 한다고 미움과 분노에 휩싸여 저 멀리 외국에까지 가는데, 그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자신을 죽이려드는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었을까? 종교의 본성이 사랑과 자비라면 스데파노가 제대로 믿고 있었던 것이고 내가 잘못된 믿음에 있는 것은 아닌가? 아니 본래 하느님의 법의 근본정신이 정의와 평화였지 않는가? 그러면서 오랫동안 자신을 짓누르고 있던 검은 먹구름 사이로 희미한 깨달음의 빛이 스며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깨달음의 경험을 바울은 루가가 그려내는 다마스쿠스의 극적 장면과는 달리 오늘 15절 본문에서는 ‘하느님께서는 내가 나기 전에 이미 은총으로 나를 택하셔서 불러주셨고 당신의 아들을 이방인들에게 널리 알리게 하시려고 기꺼이 그 아들을 나에게 나타내 주셨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났다는 계시적 사건을 말하고는 있지만, 이때가 언제였는지 어디였는지에 대해서 말하지 않습니다. 그냥 고백적으로 ‘내가 나기 전에 이미 은총으로 나를 택하셔서 불러주셨다.’고 말합니다.

[내가 나기 전에]

저는 이 ‘내가 나기 전에’라는 이 고백은 신앙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고백이라고 생각합니다. 흔히 부모님들로부터 신앙을 배운 모태신앙인들이 이런 표현을 씁니다만, 이건 단순히 내가 태어나기 전이라는 시간을 말하는 부사가 아닙니다. 이는 나의 종교적 행위 전체를 부정하고 하느님만을 나의 믿음의 근거로 삼는다는 고백입니다. 나의 나됨은 나의 노력이나 나의 결단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나의 노력 그리고 나의 결단을 낳게 한 또 다른 부름이 있었다는 깨달음입니다. 그리고 나의 존재를 들여다보니까 이건 도대체 그럴만한 가치가 전혀 없는 존재인데 절대적 존재가 나를 특별히 부르셨구나 하는 은혜의 깨달음입니다.

예레미야의 고백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너를 점지해 주기 전에 나는 너를 뽑아 세웠다.” 표준새번역 성경에는 “내가 너를 모태에서 짓기도 전에 너를 선택하고.”라고. 저도 ‘내가 나기 전에’ 라는 말을 시간적 부사로 생각한다면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목사였던 할아버지의 40년 넘은 기도에 그리고 이 기도를 성취하고자 결혼 이전에 이미 첫 아들은 목사가 되게 하자고 약속 하셨던 아버님과 어머님의 기도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독교중고등학교를 다녔고 저의 자의식이 형성되는 중학교 2학년 때 장래 희망을 묻는 질문에 목사라고 적었는데 이는 당시 기독교학교에서 조차 희귀한 희망이 되어 저는 목사라는 별명이 붙었고 자연스레 종교부안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제가 신학교를 가야한다고 하는 집안의 강요는 없었고, 하느님으로부터도 목사가 되어야 한다는 기도의 계시를 받은 적도 없었지만, 목사 이외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에 신학교를 선택했고 저는 거기서 훌륭한 스승님들을 통해 지성과 영성의 깊음을 맛보기 시작했고 당시의 격동하던 독재정치사회 속에서 비판적 사회정신을 키워왔습니다.

[값비싼 은혜]

분명히 ‘내가 나기 전에’ 부르셨다고 하는 바울의 고백 그리고 모태에서 내가 형성되기 이전에 부르셨다는 예레미야의 소명의 고백을 나의 고백이라고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고백은 저와 같이 이렇게 부모님의 기도에 의해 목사가 된 사람만이 드리는 고백이 아닙니다. 이 고백은 누구나가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누구나가 드리는 신앙인의 고백이라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최후의 순간에 하느님의 관심 대상에 들어간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고 어쩌다가 우연히 하느님의 눈에 띄어 구원의 반열에 들어간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알기 이전에 하느님께서 이미 우리를 아시고 우리를 부르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진짜 은혜이고 값비싼 은혜입니다.

문자로 은혜란 값없이 주셨다는 말이지만, 이것이 하느님과 연계되었을 때는 나의 생 자체에 대한 깊고 깊은 감사의 고백이 되는 것입니다. ‘그의 은혜로’라는 말은 하느님이 그분의 목적에 누가 가장 잘 맞는지를 비교하고 확인한 후에 부르셨다는 말이 아니라 우선 먼저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일은 후차적입니다.

여기에 참 믿음은 오히려 하느님 앞에 그냥 자신을 비우고 내려놓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하여 주님으로 임하는 평화를 얻어야 합니다. 이 평화는 단순히 산 속에서 얻어지는 속세를 떠난 공허의 평화가 아닙니다. 오히려 나를 비우고 하느님의 뜻으로 자신을 채워가는 평화입니다. 따라서 이제부터 하는 일은 그분이 원하시는 일을 그분이 주시는 능력에 힘입어서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실패도 성공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하지만 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느님이 예수 안에서 내게 베푸신 사랑과 용서와 생명의 힘과 평화와 정의에 대한 열망을 그냥 나누는 일에 불과합니다. 적으면 적은대로 많으면 많은대로 그냥 나누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나누다보면 언제인지 모르지만 내 잔이 차고 넘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바울이 깨달은 은혜, 자기는 사도 중에 가장 막내요 가장 작은 사도라는 은혜가 바로 오늘날의 바울을 만든 것은 아닐까요?

바울은 소위 말하는 부활의 주님과의 계시적 깨달음을 통해 그는 하느님 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자신이 매일 필요가 없는 자유로운 존재를 깨달았습니다. 거기서 세상에서 자신이 이룩한 모든 것을 냄새나는 똥으로 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는 새로운 존재로 거듭났습니다. 그는 변화의 이 순간을 ‘내가 그리스도를 믿기로 결단했을 때...’라고 말하지 않고 오늘 본문에서 ‘기꺼이 그 아들을 나에게 나타내 주셨을 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주체가 아닌 하느님이 주체가 된 변화입니다. 제가 바울로의 경험을 회심이나 회개라고 표현하는 것에 거부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입니다. 회심, 회개라는 단어에는 그 주체가 인간입니다.

내가 어떤 잘못을 고백할 때는 회개라는 단어가 맞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계시적 경험과 같이 신적 존재와의 만남을 통해 근본이 180도 뒤바뀌어지는 종교적 체험을 단지 회개라는 단어로 표현하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예수 핍박자에서 예수 전도자로 전 존재가 거꾸로 뒤집혀지는 일회적 사건을 우리가 하루에도 몇 번씩 하는 회개나 회심과 같은 선상에 놓을 수는 없습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뒤집어짐’ 혹은 '혁명적인 존재변화'라고 하는 것이 맞습니다.

[고독의 시간]

그리고 이후의 그의 삶이 또 중요합니다. ‘또 나보다 먼저 사도가 된 사람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도 않았고 곧바로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마스쿠스로 돌아갔습니다.’ 여기서 이 아라비아를 아라비아 사막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지리적인 개념보다는 십자가에서 죽은 나자렛 예수가 어떻게 해서 구약성서에서 말하는 메시야가 되는지에 대해서 공부하고 묵상하기 위한 자기 성찰의 시간을 말하는 것입니다. 종교인은 단지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이 아닌 고독과 자기 성찰의 시간을 통해 신 앞에 선 자신의 벌거벗음을 보는 사람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 내 생명, 내 가족까지 모두를 내려놓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지난 주 금요일 20여명의 목사님들과 기독교인들과 함께 18일째 단식 중인 해고당한 KTX 여승무원들과 연대하기 위해 서울역 앞 길가에 있는 천막에 갔습니다. 이곳에 처음은 아니었지만, 금요일은 제게 있어서는 설교를 쓰는 날이기에 쉽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지난 주 말씀 드린 대로 몸의 아픈 곳에 우리의 전 신경이 쏠리고 그래서 몸의 중심이 되듯이 사회의 아픈 곳이 사회의 중심이 되고 하느님은 거기에 전 관심을 쏟으시기 때문에 실상 저는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그곳에 갔습니다. 그곳에서 그들에게 임하는 하늘의 메시지를 듣기 위해 갔습니다. 천막 안이었지만, 도로를 질주하는 차 소리와 사람들의 발자국소리로 가득 찬 곳에서 개회 예배를 드렸습니다. 목사님의 메시지가 중간쯤 진행되었을 때에 바로 옆에서 접촉사고가 일어나 둘이서 싸우는 소리가 크게 들렸고 이분들이 차를 치우고 싸우면 좋겠는데, 차를 세우고 싸우니 뒤에 서 있는 차들이 경적을 울려대기 시작했습니다. 매우 소란스러워졌습니다. 저는 약간 귀가 어두운데다 주위 소음이 높아져서 목사님의 메시지가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래 묵상을 하였습니다. 18일째 금식하는 저들에게 오늘의 본문 말씀 곧 바울이 경험한 계시적 사건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바로 그 시간 상암의 홈에버와 강남 뉴코아에서는 경찰들의 강제해산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저는 너댓명의 경관들에 의해 강제로 몸이 끌려가는 장면을 연상하면서 그들의 외침과 분노를 보았고 작년에 제가 평택의 논바닥에서 5명의 형사들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던 경험이 함께 떠올랐습니다. 이들도 지난 500여일이 넘은 투쟁 속에서 그런 끌려가는 경험을 이미 여러 번 했습니다.

아마도 그들 가운데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은 몸이 들려 강제로 끌려 나가는 그 순간 하늘을 향해 이런 질문을 하였을 것입니다. ‘하느님, 어디에 계시는가요?’ 독일 유대인 수용소에서 유대 포로들이 보는 가운데 동료가 형틀에 목이 매여 죽어갑니다. 숨이 끊어지는 순간 고통스런 비명과 함께 허공에 떠 있는 몸이 고통스럽게 뒤틀립니다. 누군가가 자조 섞인 목소리로 탄식하며 말합니다. ‘하느님은 도대체 지금 어디에 계시지?’ 옆의 동료가 말합니다. ‘지금 저기 저 사람과 함께 매어달려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나요?’

저는 30명으로 단식을 시작했지만, 18일째를 맞아 5명만이 남아 있고 오늘은 20일째를 맞아 몇 명이 남아 있는지는 모르지만 덤덤한 어조로 7월말까지는 계속 하겠다는 민세원지부장을 비롯한 몇몇의 여승무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단지 자신의 생존만을 위한 투쟁이 아닌 이 죽음에의 경험을 통해 하느님의 딸로서의 자신의 깊은 존재를 깨닫고 생명을 살리기 위한 하느님 나라의 정의와 평화실현을 위해 더 힘차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그곳이 서울역 광장이 아닌 또 하나의 다마스쿠스 도상이 되어 역사를 변혁시키는 오늘의 많은 바울로들이 나타나기를 기도했던 것입니다.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