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역사(5) 오늘의 다마스쿠스는?
욘 2:1-10, 행 9:1-9

[바울에 대한 서로 다른 이해들]

사도행전에는 베드로를 비롯한 여러 사도들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지만,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은 사도 바울입니다. 절반 이상이 바울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양적인 의미에서 뿐만 아니라 질적인 의미에서도 그러합니다. 과연 사도 바울의 선교활동 없이 오늘의 세계 기독교가 있겠는가? 하는 질문을 하여볼 때, 사도 바울의 중요함은 아무리 강조하여 말한다 하더라도 결코 지나치지 않습니다. 단적인 예가 신약성서의 반이 사도바울의 서신이라는 점입니다. 이 서신에 의해 바울로로 인해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은 유대교의 한 분파에서 기독교라는 하나의 세계적 종교로 성장하는 신학적 기반을 만들어 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바울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 때문에 오늘날의 기독교는 크게 나뉘어져 있습니다. 중세 가톨릭의 잘못을 지적하고 새로운 신앙운동을 펼친 프로테스탄트들은 예수의 말씀에 근거해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바울의 말 곧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 인정함을 받는다는 로마서 1장 17절의 말씀에 기초하여 갈라져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 갈라져 나온 신교 안의 가장 큰 분파인 루터교와 장로교를 비롯한 개혁파(Reformed)의 갈라짐은 이 칭의에 대한 신학적 해석 때문에 또 갈라졌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세계 기독교의 현상을 분석할 때, 오늘의 본문 사도행전 9장 1-9절까지의 말씀은 단순히 바울로라는 한 개인의 종교적 체험으로만 한정하여 볼 수 없는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오늘 공동성서 번역은 그 제목을 ‘사울의 개종’이라고 붙였습니다만,(사울은 히브리식 이름이고 바울로는 로마식 이름) 이는 너무 본문을 협소하게 보았다고 여겨 저 개인으로는 불만입니다. 또 많은 경우 목사님들은 ‘바울의 회심’ 혹은 ‘회개’라고 부르기도 합니다만, 이 또한 오늘의 본문을 개인의 심리신비체험으로만 제한하기에 바람직한 제목이라고 생각하지 않ㅅ브니다.

우리들도 그러하지만, 오늘의 본문을 읽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청년 사울이 경험한 환상들의 실제 모습을 이해하려고 애를 씁니다. 하늘에서 빛이 번쩍이며 그의 둘레를 환히 비추었다는 빛은 얼마나 강렬했을까? 그런데 어째서 사울만 이 빛을 보고 함께 가던 사람들은 보지 못했을까?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는 예수님의 음성은 얼마나 컸을까? 이때 예수님은 어떤 언어를 사용했을까? 그에게 나타나신 예수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을까? 하얀 옷을 입었을까? 당시 몸의 창자국과 못자국은 그대로 남아 있었을까?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종교적 환상에 관심을 기우리며 나도 환상을 통해 그런 경험을 해보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사울이 바울로가 되듯이 그렇게 변화하는 확신 있는 참 신앙인이 되고 싶다는 희망을 품게 됩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저도 목사가 되려고 준비할 때 이런 바울이 경험한 환상을 보기를 원했습니다. 지금도 목회자로 나서는 사람 대부분은 이런 기도를 드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바울로가 경험한 다마스쿠스 이야기가 여기 9장에만 기록되어 있지 않고 사도행전 22장과 26장에도 기록되어 있는데, 세세한 장면에서 그 이야기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9장 7절에서 ‘사울과 동행했던 사람들은 그 음성은 들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는 반면에 22장 6절에서는 ‘빛은 보았지만 음성은 듣지 못했다’고 기술하고 있고 26장에서는 ‘하늘에서 번쩍이는 빛을 보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9장에서는 바울 혼자 땅에 엎드려졌지만, 26장에서는 모두가 엎드러졌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사울이 경험한 일을 문자에 매여 종교 현상학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됩니다. 이는 단지 사울이 박해를 하던 중에 하느님의 소명을 받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 소명을 9장에서는 빛을 보았다고 22장과 26장에서는 소리를 들었다고 표현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바울로의 영향력: 긍정인가? 부정인가?]

사실 우리는 사도 바울이 없는 기독교를 상상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만큼 그의 역할은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복음이 지닌 기쁨의 소식을 변질시킨 사람으로 비판받기도 합니다. 최근에 김창락목사님께서 풀리처상을 받은 미국의 문화역사가인 게리 윌즈(Garry Wills)의 [바울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다]는 책을 번역하셨는데, 이는 지금까지의 진보와 보수 양쪽의 견해를 모두 새롭게 바꾸고 있습니다. 저도 이 책을 읽으면서 바울을 새롭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인용하고 있는바 바울을 부정적으로 이해한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토마스 제퍼슨은 바울이야 말로 ‘예수의 가르침을 최초로 오염시킨 자’라고 비판하고 있고 철학자 니체는 ‘바울을 증오심을 부추기는데 천재성을 지닌 자’로 버나드 쇼는 ‘예수의 정신에 바울 정신의 결점이 덧씌워진 것보다 더 꼴사나운 덧씌우기가 여태껏 저질러진 적이 없다.’고 말하면서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혹평하였습니다. 사실, 지금도 보수교회에서 여성 목사나 장로안수를 거부하는 이유는 ‘교회에서 여자는 잠잠하라.’는 바울의 서신 때문입니다. 또 반유대적인 생각이나 독신예찬론 그리고 동성애자에 대해 치명적인 타격을 주는 사람은 바울입이다.

당시로 말하면 유대교의 가장 철저한 신봉자로서 그 세계관과 신앙의 틀을 깨고 나왔다는 점에서 당시로서는 가장 혁신적이고 혁명적인 사람이었다. 그러나 지금 교회가 추구하는 개혁적인 일들이 바울 때문에 방해받고 있다는 것은 하나의 아이러니입니다. 게다가 저도 이점에서는 바울을 비판할 수밖에 없는데, 한마디로 말하면 그는 ‘예수의 신앙’을 ‘예수에 관한 신앙’으로 변질시킨 장본인입니다. 말하자면 예수는 힘없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하여 자신의 전 삶을 다해 바쳤지만, 오늘 예수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예수가 추구했던 하느님 나라 운동은 그 중심에서 멀어져 있고, 예수 자신에 대해서만 관심하고 있는데, 여기에 가장 큰 공헌 아닌 공헌(?)을 한 사람이 바울로입니다.

[바울로에 대한 전통적인 견해와 새로운 견해]

실상 그는 예수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전하는 예수 이야기는 제자들의 이야기보다 더 우위에 있습니다. 서울에 가본 사람보다 가보지 않은 사람이 더 설득력 있게 말한다는 얘기가 있지만, 실상 바울은 예수로부터 직접 배웠던 제자들보다 더 우위에 서 있습니다. 바울은 길리기아 다소 오늘날로 말하면 시리아 출신입니다. 다소는 당시 그리스로마문명의 중심지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히브리인중의 히브리인이라는 말을 쓰고 있지만, 그는 실상 유대문화권보다는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으로 그리스로마문명에 더 익숙한 사람입니다. 루가는 바울이 당시 유명한 랍비인 가말리엘의 문하생이었다고 말하고 스데파노를 죽이는 일부터 그리고 오늘 본문에 있는 대로 제사장의 신임을 받는 예루살렘에서 매우 큰 활약을 펼친 사람으로 그리고 있는데, 게리 윌스는 여기에 대해 매우 부정적입니다. 왜냐하면 바울 자신이 쓴 서신에서는 그런 고백이 하나도 나오지 않고 오히려 갈라디아서 1장 22절에서의 고백에 의하면 그는 ‘유대지방에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들에게는 얼굴이 알려져 있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대체적으로 성서학계는 바울의 서신들은 복음서보다 먼저 기록되긴 하였지만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께서 하신 일이나 말씀들에 관한 명시적인 언급이 별로 없고 역사적 예수보다는 부활의 주님에게 집중되어 있었다고 보아 바울의 예수 이해는 역사 사실적이라기보다는 부활의 주님을 경험한 심리적 서술로 보았습니다. 불트만도 말하기를 “바울의 서신들은 예수의 역사와 설교에 관한 팔레스타인 전승의 영향을 받은 흔적을 거의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나 게리 윌wm는 신약성서학계의 이러한 전통적인 견해를 매우 설득력 있게 뒤집고 있습니다. 오히려 루가를 비롯한 복음서 저자들이야 말로 바울로보다 수십 년 뒤의 사람이고 루가가 쓴 사도행전의 바울로에 관한 이야기와 바울로 자신이 쓴 서신을 비교해보면 루가야 말로 당시에 유행하던 그리스로마식의 소설을 따르는 기독교소설을 쓰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51쪽)

분명한 것은 바울 서신은 바울 개인의 글이지만, 복음서는 그가 속한 교회공동체의 산물이라는 것이라는 점과 바울 또한 복음서 저자들이 알고 있었던 원복음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바울이 더 역사적 예수에 가깝다고 말할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게리 윌즈는 ‘바울이 전하려 했던 것이 예수가 전하려 했던 것과 다르거나 모순되지 않으며, 오히려 바울을 연구함으로써 예수를 가장 잘 알아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21쪽) 그리고 ‘바울은 자신이 결코 새로운 종교로 개종한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바울은 유대인들의 하나님인 야훼와 유대인들의 메시아를 전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역사성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언급한다면 사울이 그리스도 교회를 박해한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 로마의 지배아래 있었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면 오늘 우리가 본문에서 읽은 대로 한 유대교 광신자가 남의 집에 마구 들어가 그리스도인들을 끌어내는 일이 가능하지 않았고 더구나 치외법권 지역인 다마스쿠스라는 외국에까지 예루살렘의 제사장의 권력이 통할리 만무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 이후에 나오는 아나니아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바울 자신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고 오히려 사도로 부름 받았을 때에 ‘사람들과 의논하지 않았다.’(갈 1:16)는 진술로 보아 이것 또한 역사적 진실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실은 저도 이 게리 윌즈의 책을 읽으면서 루가는 바울로의 개인의사로서 바울로와 함께 선교여행을 동행했고 역사적 예수나 초대교회 역사에 대해 매우 객관적인 역사 기록을 남겼다는 일반적인 평가를 버려야만 했습니다.

[바울로의 본래 모습]

게리 윌즈는 말하기를 “바울은 냉정하고 담담한 철학자가 아니라 전투태세를 갖춘 使者(사자)였다. 그는 신비주의자이며 깊이 있는 신학자였지만, 동시에 수다스러운 길거리 싸움꾼이었으면 많은 전선을 감당하느라고 분주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주 괴로워하고 때로는 격분하기도 했다.(16쪽) 바울은 어느 한 모습으로 단정하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여러 다양한 문제들에 직면해서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16쪽) 전략의 유연성이라는 말이 있지만, 바울이야말로 전략에 유연한 사람이었습니다. 실제 그는 율법 아래 있는 사람에게는 율법 아래 있는 사람처럼 율법 밖에 있는 사람에게는 율법 밖에 있는 사람처럼 다르게 처신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을 신학적으로 역사적 예수와의 관계에 있어 어떻게 평가하든지 분명한 사실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울은 당시 절대적 사회법이라 말할 수 있는 정결법 안식일법 할례법 등으로 귀결되는 모세 율법에 정면으로 대처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 율법과 로마법에 의해 처형된 예수의 부활의 모습을 만났고 그 이후 그는 그를 참 메시야요 하느님의 아들로 고백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예수께서 하셨던 것과 같이 모세 율법을 폐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율법의 근본정신을 회복하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저는 이 점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가 다마스쿠스의 소명의 기사에서 분명하게 보는 것은 율법의 절대적 추종자가 율법의 철저한 개혁가로 바뀌어졌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다마스쿠스는?]

저는 오늘 하늘뜻펴기의 제목을 오늘 우리의 다마스쿠스는 어디인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나의 다마스쿠스가 어디인가를 묻기 전에 바울로 시대에 있어 율법과 같이 오늘 이 남한 사회에서 인간의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옥죄이고 있는 사회법이 무엇인가를 먼저 물어야 합니다. 오늘 남한에서 우리의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가로막는 절대적 사회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국가보안법입니다. 국가 보안이라는 이름에 걸리면 누구든지 벗어날 수 없습니다. 과거 독재시대에도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고초를 겪었지만 여전히 오늘도 많은 분들이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두 분을 들 수 있습니다. 한분은 강정구교수이고 또 다른 한분은 이시우씨입니다. 강정구교수는 그가 평생 공부한 사회학적 학문 연구에 기초한 결과를 갖고 얘기하였지만 그것이 국가안보를 해친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고 있고, 이시우씨는 사진 창작물이 국가기밀을 폭로하였다는 죄목으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두 분으로 인해 국가안보상 어떤 점에서 해가 되었는지 납득이 되는 부분이 없습니다. 검사의 논고를 들어보아도 분명한 이유는 없습니다. 다만 세상 사람들과 다른 의견을 펼침으로 사람들의 생각에 혼란을 가져왔고 그로 인해 세상이 소란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죄목은 예수님도 받은 죄목이고 스데파노도 받는 죄목이고 베드로 요한 바울을 비롯한 예수 따르미들이 모두 받은 죄목입니다.

강정구교수의 재판에는 학문과 사상 양심의 자유문제가 걸려 있고 이시우작가의 경우에는 예술 창작과 양심의 자유문제가 걸려 있다. 그런데 이 두 분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두 분 다 이 시대적 아픔 곧 분단이 가져오는 민족의 아픔을 자기 아픔으로 깊고 깊게 체득하시고 계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강정구교수는 분단을 가져온 미국의 역할과 미군 주둔의 문제를 민족주체의 입장에서 사회학문이론으로 제기를 하고 있고 이시우씨의 경우는 철책선과 미군부대의 존재를 사진예술을 통한 하나의 시대적 아픔으로 처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시우씨의 경우 검찰이 문제삼고 있는 강화도의 미군 통제소를 소재로 한 작품의 경우 그 통제소는 자연의 소재 속에 그냥 작은 물체로 나타날 뿐이지 거기에서 볼수 있는 군사비밀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시우씨가 사진에서 보여주는 것보다 구글 인테넷에서 인공위성을 통하여 더 분명한 미군 통제소의 실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요즘 할 일이 없어진 공안검사들이 자리가 없어질까 하여 심통을 부리는 것으로 밖에는 달리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몸의 중심은 어디인가?]

지난 주 이시우씨는 재판정에서 이렇게 자신의 얘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사람 몸의 중심이 어디일까요? 데모크리토스는 심장이라고 얘기할 것 같고 어떤 사람은 머리라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저는 에피큐로스가 말한 대로 ‘몸의 아픈 곳’이라고 말하겠습니다. 아픈 곳이 치유될 때까지 온통 온 몸의 신경이 거기에 집중되기 때문입니다. 몸의 아픈 곳이 몸의 중심이듯, 사회의 아픈 곳이 사회의 중심이고 세계의 아픈 곳이 세계의 중심입니다.” 저는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중심의 개념이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것이 세상적인 것과 예수적인 것을 구분하는 매우 중요한 잣대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주일 평양대성회 100주년 기념예배가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7만 명의 기독교인이 모인 가운데 성대하게 열렸습니다. 그런데 같은 시간 그 스타디움 아래 지하 이랜드 홈에버 매장에는 40대 여성노동자들의 이유 없는 해고에 분노한 매장점거 소요가 9일째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7월 1일부터 발효된 이년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법안을 피하기 위해 계약직 노동자들의 계약을 해지하고 그 자리를 외주 용역으로 채워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6월 30일 법이 발효하기 전날 뉴코아에서만 300명이, 홈에버에서는 무려 500여명의 노동자들이 그냥 거리로 쫓겨났습니다. 물론 비정규직원들이 거리로 쫓겨난 일이 여기서만 일어난 것은 아닙니다. 어제 한겨레 신문보도에 의하면 코레일 서울대병원 두산건설 세이브존 피자헛 롯데호텔 동국대 한국은행 경북대병원 송파구청 등 전국 이곳저곳에서 회사를 위해 몇 년씩 헌신적으로 일해 온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쫓겨난 것입니다.

물론 저는 오늘 이 시간에 남한 사회가 겪는 이러한 신자유주의의 자본주의가 가져온 구조적인 폐해에 대해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800만에 가까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의 문제는 한미 FTA와 더불어 오늘 우리 남한 사회가 직면한 엄청난 사회적 문제이기도 하지만 홈에버의 문제는 신앙과도 깊게 관련되어 있기에 저는 이 문제를 조금 더 얘기하고 싶습니다. 이날 대회 순서가 담긴 책에 홈에버를 홍보하는 광고를 실렸는데, 환하게 웃고 있는 한 연예인 밑에 자그마한 글씨로 '홈에버는 크리스천 그룹 이랜드가 운영하는 프리미엄 대형마트입니다'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남한 사회에서 이랜드는 대표적인 기독교 기업으로 알려져 있고 종업원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는 등 대표 박성수회장은 매우 신앙이 좋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고 기업 수입의 십분의 일을 헌금으로 드리겠다고 사회적 공언을 한 사람입니다. 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 그분의 개인적 신앙이나 윤리를 떠나서 그가 대표로 있는 기업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사회적 물의가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날 대회 측에서 발표한 선언문에는 '우리 사회의 약자들과 역사의 희생자들, 또 여러 이유로 고통 중에 있는 이웃들을 위하여 우리 교회가 힘을 모아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섬김에 충실하고 헌신한다'는 구절이 들어가 있었고, 대표기도에서는 ‘민족을 위하여 헌신했던 초기 신앙 선배들의 뜻을 따르지 못하였고 사회의 민주화와 정의, 평화와 인권의 회복을 위하여 많은 시민들이 희생하며 고통당할 때 외면했다.’고 고백하고 ‘소외된 이웃에 등을 돌리고 침묵한 죄를 고백하며 용서를 구했습니다.’ 이날 설교자는 남한의 대형교회 중 하나인 강남의 S 교회 원로목사인 옥목사였고 사회자는 그 후임인 오목사였습니다.

옥목사는 ‘주여 살려 주옵소서’라는 제목의 설교를 통해 한국교회는 변해야 하고 철저히 낮아져야 한다고 주장했고 오목사는 회개의 통성기도를 인도하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시간 바로 그 설교단 아래 어두컴컴한 지하 매장에서는 해고당한 직원들이 그 억울함을 호소하며 농성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바로 이 S 교회 신자들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이 홈에버의 소유주 박성수회장은 바로 이 S 교회 교인으로 지난 한해 130억 원의 헌금을 바친 것으로 언론에 알려져 있습니다. 저는 옥목사님을 존경하는 사람입니다. 대형교회를 이루었지만, 자원은퇴를 하심으로 후계자 문제에 깨끗하셨고 비리에 관련한 어떤 얘기도 들은 바가 없고, 지금도 교회 개혁을 위해 많은 일을 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자화 교육으로 유명한 그분의 제자가 이렇게 사회적 물의를 빚어내는 일에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회사의 이익을 위해 40대의 힘없는 비정규직 직원들을 대책 없이 길거리로 내어 모는 것이 타당한 일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아니면 회사 수익이 줄고 그럼으로 교회 헌금은 적게 내더라도 그들을 정규직으로 받아들여 함께 한 공동체로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기독인 사업가의 자세라고 생각하시는지, 어느 쪽이 더 예수님의 제자다운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박성수회장은 가끔 자신의 기도문을 공개하고 회사원들과 함께 기도를 했던 모양입니다. 그 기도제목 가운데 첫 번째 기도제목이 ‘회사 매출이 많아지게 하소서’였다는 것이고 두 번째가 ‘매장을 늘려 달라는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이랜드의 매출이 늘고 매장이 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첫째는 다른 경쟁회사들이 망하도록 하는 것이고 둘째는 국민들의 소비가 늘도록 그 마음을 조장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이라도 그 외에 다른 길이 있는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더욱 가관인 것은 그가 드린 기도 중에는 수배중인 자신의 회사 노조지부장들이 빨리 붙잡힐 수 있도록 하여달라는 기도까지 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저는 이분이 이런 기도를 스스로 성서에서 배운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몸담고 있던 목사님들로부터 배운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오늘 남한 교회의 수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에피소드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회사를 위해 기도를 해야 한다면,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주님 저로 하여금 하느님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했어야 옳았습니다.

언제부터 남한 교회가 이렇게 저질교회, 물질 탐욕적인 교회가 되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언제부터 공의의 야훼 하느님이 탐욕의 바알 하느님으로 바뀌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희 교회도 비판받을 점이 많이 있고 저 자신도 그분들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근본을 바로 하는 일이 종교의 가장 중요한 책무라고 볼 때, 남한 교회의 미래를 진정 염려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여기에는 근본적으로 교회가 가르치는 신학과 신앙의 잘못이 있습니다. 세상은 악하고 교회는 거룩하다고 하는 이분법적 사고와 자기만이 옳다는 우물 안 개구리식의 신앙과 모든 것을 돈으로 바꾸어 환산하는 축복만능주의, 성장만능주의 신앙이 만들어낸 잘못입니다.

분명히 구약성서의 아모스 선지자의 말씀에는 ‘너희가 바치는 번제물과 곡식제물이 나는 조금도 달갑지 않다. 그 시끄러운 노랫소리를 집어치워라. 다만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라. 서로 위하는 마음 개울같이 넘쳐흐르게 하여라.’(암 5:21-25)고 씌어 있고, 예수님께서도 ‘내가 바라는 것은 제사가 아니라 이웃에게 베푸는 자선이다.’(마 9:13)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십일조의 근본적 정신은 열에 하나라는 양적 기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첫 번째를 드린다고 하는 전적 헌신의 상징적 고백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열의 하나라는 수학적 방식에 기초한 돈으로만 이해하는 잘못된 가르침은 지금뿐만이 아니라 예수님 당시에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아, 너희 같은 위선자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박하와 회향과 근채에 대해서는 십분의 일을 바치라는 율법을 지키면서 정의와 자비와 신의 같은 아주 중요한 율법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십 분의 일세를 바치는 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겠지만 정의와 자비와 신의도 실천해야 하지 않겠느냐?”(마 23장 23절)

이 구절에 관련한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2주전 전주고백교회를 다녀올 기회가 있었는데, 그 교회 입구에는 큰 항아리로 된 헌금 궤가 두 개가 있더군요. 하나는 헌금을 넣는 궤였고 다른 하나는 생활고백이라고 해서 자신의 삶에서 정의와 자비와 신의를 행한 것들을 글로 넣어 하느님께 드리는 궤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봉헌하는 것은 돈만이 아닙니다. 우리의 생활을 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서의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이웃을 도왔다면 그것 또한 여러분이 하느님께 드리는 봉헌입니다. 저는 이런 것들은 우리 교회에서도 행할 필요가 있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우리에게 반문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는 남한의 교회들이 대부흥이 아닌 대개혁을, 성장이 아닌 성숙을 외치며 그리고 대형 축구장이 아닌 각자의 골방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회개는 손을 들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한 후에 그 예배를 주관했던 대표 목사님들이 모두 단상에서 내려와 그 지하로 내려가 홈에버의 고통당하는 엄마들의 손을 붙잡아 주고 그들과 연대하여 비뚤어진 것들을 바로 잡는 정의의 실현이라고 생각합니다.

100년 전 1907년을 회상할 때, 당시 우리나라에는 평양에서의 대부흥운동만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당시 기독교인은 국민의 5% 미만이었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단지 교회 건물 안에서의 교인들의 회개운동에만 함께 하신 것이 아닙니다. 위기에 처한 나라와 민족을 위한 수많은 애국지사들의 독립평화운동에도 함께 하셨습니다. 고종황제의 칙령을 받은 이준열사가 네델란드 헤이그에서 모인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여 일제의 부당함을 고발하고자 하였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 채 그곳에서 자신의 최후를 맞이하였는데 그 해도 100년 전 1907년이었습니다.

[참 눈을 뜨는 예수 따르미들]

뭔가 엄청난 힘에 의해 고꾸라진 사울이 묻습니다. ‘당신이 누구입니까?’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이다.’ 왜 예수는 언제나 박해를 받아야만 하는 것일까? 예수를 믿고 따르는 우리들은 예수를 통해 행복을 얻고 기쁨을 얻고 성공을 얻고자 하는데, 왜 예수는 언제나 박해를 받아야만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예수이기 때문이 아니라 박해받는 현장에 박해받는 사람들 가운데 항상 예수께서 먼저 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내가 예수를 정말 잘 따르고 있는가? 하는 질문은 이 땅의 아픔의 현장에 내가 얼마나 가까이 서 있는가? 하는 질문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레바논의 참상을 직접 경험한 박노해시인은 남한 정부의 파병 대신 의료진을 보낼 것을 요구하면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몸의 중심은 심장이 아니다. 몸이 아플 때 아픈 곳이 중심이 된다. 가족의 중심은 아빠가 아니다 아픈 사람이 가족의 중심이 된다. 총구 앞에 인간의 존엄성이 짓밟히고 양심과 정의와 아이들이 학살되는 곳. 이 순간 그곳이 세계의 중심이다.” 십자가는 어느 교회든지 성전 중심에 달려 있습니다. 그 십자가는 예수께서 당하신 고통의 상징이며 동시에 오늘 세계가 당하는 고통의 상징입니다. 저 십자가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고통의 소리와 힘없는 민중들이 당하는 아픔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여성들이 군인들에 의해 능욕당하는 소리를 들어야 하고, 어린이와 노인들이 먹지 못해 신음하는 소리를 들어야 하고, 상암 홈에버의 매장에서 외치는 아줌마들의 탄식 소리와 서울역 앞 천막에서의 KTX 여승무원들의 13일째 맞이하는 단식의 신음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다마스쿠스는 어디입니까? 바울에게 있어 다마스쿠스는 진정 하느님 나라를 향한 새로운 시작이었습니다. 유대사회에서의 입지전적인 성공신화를 포기하고 박해받고 소외된 소수파 기독인들과 생사를 같이 하겠다는 투쟁의 선언이었습니다. 세상적인 자랑들을 다 배설물과 같이 여기는 변화의 시간이었습니다. 당시 세상이 보는 십자가는 저주의 상징이었고 죽음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마스쿠스 경험 이후 그는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를 위해 자신의 삶을 다 바치기로 작정하고 십자가가 자신을 구원했다고 고백합니다. 물론 그 변화는 그냥 일어난 것은 아닙니다. 그는 땅에 엎드려져야만 했고, 사흘 동안 앞을 못 보고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습니다. 여기서 사흘을 72시간으로 계산하는 분은 한분도 없는 줄 압니다. 앞을 못 본다는 말을 강한 빛으로 의해 잠시 시력을 상실한 것으로만 이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잘 아는 헬렌 켈러는 앞을 본 사람이었습니까? 보지 못한 사람이었습니까? 우리는 헬렌 켈러하면 장애를 극복한 여성 교육가로만 생각하지만, 역사속의 헬렌은 스미스여자대학교 시절부터 사회주의운동에 참여한 좌파 지식인이었다. 그는 온건보수성격의 미국노동총연맹(AFL)에 반대하고 진보적인 노동운동단체를 결성할 정도로 열렬한 노동운동을 했으며, 세계최초의 공산주의 혁명인 러시아 혁명을 지지하였다. 그는 윌슨대통령이 세계 평화를 위해 세계1차대전 참전을 선포했을 때, 미국 내에서 흑인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그들이 살해당하는 것을 묵인하면서 세계 평화를 말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비판했습니다. 헬렌 켈러는 앞을 본 사람이었습니까? 보지 못한 사람이었습니까?

예수께서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요나의 기적에 비교했을 때, 사람들은 모두 어리둥절했습니다. 사흘은 요나가 고기 뱃속에 들어가 자신의 우물 안 개구리식의 이기적인 어리석음을 회개하는 침묵과 자기 성찰의 시간이었고 하느님의 크고 놀라우신 창조와 구원 세계를 체험한 은혜의 시간이었습니다. 이 사흘은 예수께서 음부에 내려가서 사탄과 대적하신 투쟁의 시간이었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다마스쿠스는 어디입니까? 여러분의 사흘은 어디에 있습니까? 바울로가 경험한 ‘다마스쿠스’와 ‘사흘’을 묵상하며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