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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뜻펴기'(설교)를 문서로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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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수 55
성령의 역사(4)-순교의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
시편 118 : 1- 14 ; 사도행전 8 : 1-25
5월말 성령강림주일을 맞아 사도행전의 말씀을 따라 초기 예수공동체의 참 모습을 찾아보는 4번째의 시간입니다. 제가 유럽평화순례여행으로 2주간의 간격이 있어 여러분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사도행전 1장으로부터 7장까지의 지난 하늘뜻펴기의 내용을 간단히 정리해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시어 40일 동안 이 땅에 거하시며 자주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가 마지막 날 하늘로 올라가시면서 사도들에게 이렇게 당부하십니다.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가 전에 일러준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려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지만 오래지 않아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게 될 것이다.”(1장 5절) 그리고 덧붙이시기를 “성령이 너희에게 오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뿐만 아니라 땅 끝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나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1장 8절)
이 당부를 좇아 사도들을 비롯한 120여명의 제자들은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서 오순절을 맞아 함께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강림의 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러자 그들은 거리로 나아가 오순절 축제를 위해 각지에서 온 순례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그들의 사용하는 민족의 언어로 외칩니다. 그 요지는 십자가에 죽은 나자렛 예수가 부활하였다는 것과 요엘 선지자의 예언의 말씀과 같이 이제 새로운 시대가 임박했음을 선포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첫 성령강림절의 방언의 역사는 단순히 외국어를 말하는 능력이 아니라 서로 언어가 달라 이해와 교통이 끊어졌던 각 민족과 인종 간에 이해와 교통이 시작되고 예수 성령 안에서 하나의 새 가족으로 거듭났음을 알리고 있습니다. 로마의 군사적 통치나 황제숭배라는 물리적 힘에 의한 억지의 하나(uniformity)가 아닌 서로의 이해와 존중을 통한 다양성 안에서의 하나(unity)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하나 됨에는 여자와 남자의 성적 차별 젊은이와 늙은이의 세대 간 차별 주인과 종이라는 신분에 따른 차별의 벽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이 새로운 하늘나라의 복음의 얘기를 듣자 자신들이 잘못살고 있다고 회개하기 시작했고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세례를 통해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살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그래 그들은 탐욕과 경쟁에 기초한 이기적인 삶의 태도를 버리기 시작하면서 개인 소유를 포기하고 공적으로 재산을 공유하기에 이릅니다.
교회가 무엇을 하는 곳이냐? 는 질문에 대한 답과 생생한 증언이 되기에 여러분이 잘 아시지만 다시 한 번 성서에 기록된 대로 읽어드립니다. “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며 그들의 모든 것을 공동 소유로 내어놓고 재산과 물건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한마음이 되어 날마다 열심히 성전에 모였으며 집집마다 돌아가며 같이 빵을 나누고 순수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함께 먹으며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이것을 보고 모든 사람이 그들을 우러러보게 되었다. 주께서는 구원받을 사람을 날마다 늘려주셔서 신도의 모임이 커갔다.”(2장 45-47절)
그리하고 나서 바로 베드로와 요한은 앉은뱅이로 태어나 성전 문 앞에서 평생을 구걸하던 한 사람을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고쳐줍니다. 이는 단순히 한명의 병자를 고쳐주었다는 병 고침의 얘기가 아니라 보다 심각한 신학적 선언이 담겨 있는 혁명적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이 이야기 속에 나타난 단어들 속에 상징적으로 숨어 있는데, 우선 ‘예루살렘 성전 문 곁’이라는 단어, 그리고 이 문이 ‘아름다운 문’이라는 단어, 그리고 앉은뱅이가 나자렛 예수 이름으로 힘을 얻어 일어나서 걷다가 성전 안으로 들어가 껑충껑충 뛰었다는 얘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사람의 나이가 40세가 넘었다는 단어들에 암시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당시의 광야 40년의 조상들의 삶 속에서 모세가 받은 율법과 야훼 하느님의 유일한 임재로 알려졌던 거룩하고 아름다운 예루살렘 성전 제사는 태어날 때부터 앉은뱅이로 다닐 수밖에 없는 부자유스러운 것이었다는 선언이고 이를 나자렛 예수가 진정한 하느님의 복음의 말씀으로 참 인간으로 회복시켰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자연히 예수를 모함하여 죽였던 예루살렘 정치종교 지도층들은 이 새로운 신앙운동에 위협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고, 사도들을 붙잡아 더 이상 말씀을 전하지 못하도록 위협하고 심지어는 감옥에 가두기까지 하였지만 그들은 더욱 담대해져 이 신앙운동은 더욱 성장하는 역효과만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기존의 열둘 사도만으로 운영이 힘들어지자 그리스파 지도자 일곱 명을 새롭게 뽑기에 이릅니다. 여기에 대표적인 지도자는 스데파노였고 이 일곱 명은 단순히 현재 우리가 말하는 집사들이 아니었고 예수 공동체를 이끌고 나갈 새로운 리더들이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그리스 문화권 출신인 스데파노를 비롯한 일곱 지도자들은 갈릴래아 출신인 베드로를 중심한 12사도들과는 달리 지역적으로는 예루살렘을 벗어나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나아가려는 선교적 열망을 품고 있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유대인들만의 안식일 전통이나 할례 그리고 성전제사와 같은 종교문화의 벽을 허물어야만 했습니다. 바로 이러한 노력 때문에 스테파노는 돌에 맞아 죽는 첫 순교자가 됩니다. 이것이 사도행전 7장의 마지막입니다.
[박해에 사도들만 남은 이유는?]
오늘 본문 8장 1절은 이 스테파노를 죽이는 일에 가장 앞장을 선 사울이라는 청년의 이름을 언급하고 바로 이어 교회에 대한 박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음을 알리고 있습니다. ‘사울은 스데파노를 죽이는 일에 찬동하고 있었다. 그 날부터 예루살렘 교회는 심한 박해를 받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어 짧막한 스데파노의 장례 얘기가 나오는데 우리는 이 심각한 위기의 상황 속에서 장례의 얘기를 여기에 굳이 언급해야 하는 것인지 의심이 들게 되고 게다가 장례에 관련된 이 구절들은 오히려 다른 의문점을 낳게 만들고 있습니다. 한번 들어 보세요. ‘그날부터 예루살렘 교회는 심한 박해를 받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모든 신도들은 유다와 사마리아 여러 지방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이렇게 끝났으면 아무런 의심의 여지가 없는데, 마지막 부분에 이런 말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뿔뿔이 흩어지고 사도들만 남게 되었다.’ 여러분이 지금 예루살렘 종교지도층이고 교회에 대한 박해를 시작했다면 누구부터 잡아 가두겠습니까? 당연히 베드로를 비롯한 12사도들입니다. 그런데 모두들 박해를 피해 도망을 갔는데 어떻게 가장 중요한 지도층만이 아무런 해도 받지 않고 남아 있을 수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이 사도들은 잠시 신앙을 떠난 것인가 아니면 비밀 아지트에 꼭꼭 숨어버린 것인가? 도대체가 상식적으로 해명이 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아무런 해명도 없이 이어지는 2절에서 ‘경건한 사람 몇이 스데파노를 장사지내고 크게 통곡하며 그의 죽음을 슬퍼하였다.’ 여기에서도 경건한 사람 몇이라고 했는데, 이들이 누구였는지가 불분명합니다. 사도들이 예루살렘 성안에 남아 있었다면 스데파노의 장례는 분명히 그들이 담당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어딘가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조금 전, 그러니까 한 두 장만 거슬러 올라가면 그들은 예루살렘 대사제 앞에서 이렇게 담대하게 외쳤습니다. “사람에게 복종하는 것보다 오히려 하느님께 복종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들이 나무에 매달아 죽인 예수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지도자와 구세주로 세워 당신의 오른편에 높이 올리셔서 이스라엘을 회개시키고 죄를 용서받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복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 증인이십니다.” 죽음 앞에서 이렇게 담대하게 외쳤던 그들의 담대함은 어디로 갔다는 말입니까? 성령님이 오셨다가 떠나버린 것입니까?
[저자 루가의 숨은 의도]
사실 이런 얘기는 여러분이 주석서를 뒤져보아도 별로 설명이 없습니다. 제가 이해하는 단 하나의 해결점이 있다면 현재 사도행전을 기록한 루가는 이 스데파노의 죽음을 예수님의 죽음의 장면과 동렬선상에 높고 싶은 것입니다. 성서에 기록된 글자만으로는 앞뒤가 너무 모순되기에 스데반의 장례가 실제로 어떻게 진행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사실 확인을 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앞뒤의 깔려 있는 모순을 알면서도 이렇게 글을 써야만 했을까 하는 저자 루가의 마음을 읽을 수는 있는 것입니다. 루가는 스데파노를 예수에 비교하고 그를 예수와 같은 동렬선상에 놓고자 한 것입니다. 이는 이방인 선교를 우선시하는 루가의 편견일수도 있고 사도들에 대한 불신일수도 있습니다.
어떤 점에서 루가가 스데파노를 예수님과 같이 보려고 했는지를 보십시다. 우선 처음 스데파노가 등장하면서 소위 말하는 자유인의 회당에 속하는 유대인들과 논쟁하는 장면은 예수가 바리사이파나 사두가이파 사람들과 논쟁하는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그러나 그들은 지혜와 성령을 받아 말하는 스데파노를 당해낼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사람들을 매수합니다. 거짓 증인자를 세우는 것이 같습니다. 또한 그들이 거짓 증언이 일치합니다. ‘이 사람은 언제나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늘 이 사람에게서 나자렛 예수가 이 성전을 헐고 또 모세가 전해준 관습을 뜯어고칠 것이라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6장 15절) 그리고 이 공의회 앞에서 심문받는 스데파노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그의 얼굴은 마치 천사와 같이 보였다.” 성령으로 충만해진 모습입니다. 누구의 성령입니까? 예수의 영입니다. 그리고 그는 하늘의 열려진 모습을 봅니다.
[예수와 스테파노]
그리고 스데파노 또한 예수님과 같이 성 밖으로 끌려 나갑니다. 그리곤 십자가 대신 돌에 맞아 죽고 죽기 전에 외친 두 마디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외친 말씀과 똑같이 일치합니다. “사람들이 돌로 칠 때에 스데파노는 ‘주 예수님, 제 영혼을 받아주십시오. 그리고 무릎을 꿇고 큰소리로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지우지 말아주십시오.‘ 루가복음에 의하면 예수께서도 똑같이 큰 소리로 이 두 마디를 외칩니다. 한마디가 더 있는데, 이는 옆의 강도의 요청에 따라 ‘네가 오늘밤 낙원에 나와 함께 있으리라’는 말씀입니다.
자 이렇게 까지 스데파노의 죽음의 모습을 예수의 죽음의 모습에 일치시키고 있는 루가는 마지막 장례 또한 일치를 시켜야만 했습니다. 우선 구약전통에 따르면 사람이 죽어 그 뼈가 죽음의 골짜기에 내버려져 있어서는 그건 신으로부터 저주받은 자의 상징이기에 이렇게 끝맺음을 할 수는 없습니다. 우선 예수 십자가 죽음의 현장에 제자들은 없었습니다. 똑같이 스데파노의 죽음의 현장에 12사도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이 중요한 순간에 그들은 모두 어디를 간 것일까요? 도망을 갔다고 직접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예수의 경우와 같이 도망을 갔을 것이라는 암시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루가복음에 의하면 예수님의 시체는 누가 가져다가 장사를 지내지요? ‘의회 의원 중에 요셉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올바르고 덕망이 높은 사람이었다. 그는 예수를 죽이려던 의회의 결정과 행동에 찬동을 한 일이 없었다. 그는 아리마태아 출신으로 하느님의 나라를 기다리며 살던 사람이었다.’(루가 24장 50,51절) 바로 예수에게 이런 훌륭한 사람이 있었듯이 스데파노의 경우에도 누구인지 이름을 밝히지 않았지만 준비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죽음의 뼈들이 저주받은 사람처럼 성전 밖에 내버려져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의 죽음에 동일시될 정도로 존경받는 스데파노는 오늘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그 정신은 누구를 통해 전해지고 있는 것일까요? 일반적으로 말한다면 교회에서 가장 크게 존경 받고 있는 인물은 베드로와 바울입니다. 전 이번에 로마의 베드로성당을 가서 눈이 그 내부 장식의 화려함과 그 웅장함에 입이 쩍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터키를 가보지 못해 소피아성당의 웅장함에 비교할 수는 없지만 제가 지금까지 본 어느 성전에 비교할 수가 없었습니다. 베드로성전은 베드로의 죽음의 뼈 위에 세워져 있으며 그는 초대교황의 위치에 있습니다. 바울은 교회 목회자들이 예수보다도 더 많이 설교단상에서 외쳐지는 인물입니다. 많은 경우 예수의 말보다 바울의 말들이 더 중요시되고 있습니다. 신학자들은 바울을 연구합니다. 선교사들은 말끝마다 바울의 선교를 언급합니다.
[스테파노의 개혁 신앙을 되살리자]
그런데 초대교회 역사에서 진정한 예수를 따라 개혁을 꾀하다가 모함으로 죽은 첫 번째 순교자 스데파노는 오늘날 교회 역사에 별로 그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예루살렘을 다녀온 지가 20년 가까이 되어 스데파노의 죽음의 자리에 그의 기념교회가 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이번에도 유럽의 여러 교회나 성당을 방문하고 로마의 여러 성지를 다니면서 베드로와 바울의 그림이나 조각품들은 자주 볼 수 있었지만, 스데파노의 그림이나 조각을 본 기억은 없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사도행전의 역사를 주의 깊게 보면 스데파노의 개혁과 그의 순교적 죽음이 없었다면 진정한 초대교회가 등장할 수 있었을까? 물론 하느님께서 하시고자 하셨다면 스데파노 없이도 하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서의 기록에만 의존해서 역사의 전개를 추정한다면 그건 불가능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여전히 베드로는 이후로도 예루살렘 안에만 머물었고 할례나 율법 준수를 고집하는 유대교의 틀 안에 머물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오늘 본문에서 잠시 사마리아에 가서 빌립보가 전한 교인들에게 성령을 받도록 하였다는 구절이 등장하지만 다시금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갈릴래아 출신 12사도들만으로는 유대땅 밖으로 이 예수 신앙운동을 끌고나가는 것은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있지 않는가? 그러나 바울도 엄격히 말하면 스데파노의 순교의 죽음의 피가 맺은 열매이지 저절로 생겨난 사람은 아닙니다. 물론 바울은 자기가 스데파노에게서 어떤 신앙적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하는 구절은 한군데도 없습니다. 사도행전에도 없고 자신이 쓴 편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스데파노의 죽음을 가장 가까이에서 본 목격자라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그는 스데파노가 죽음의 자리에서 외친 ‘주 예수님 제 영혼을 받아 주십시오.’ 그리고 무릎을 꿇고 큰 소리로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지우지 말아주십시오.’ 라는 기도소리를 들은 사람입니다.
물론 돌을 던지던 당시는 그는 자신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고 있었던 유대교를 비판하는 스데파노를 죽이는 일을 당연시 여겼고 떳떳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고조된 흥분이 가라앉으면서 계속하여 그를 괴롭히는 질문이 생겼습니다. ‘도대체 예수가 어떤 자이기에, 스데파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일까? 아니 온 몸에 돌을 맞아 죽어가는 고통의 자리에서, 얼굴에 피가 낭자하게 흐르는 그 아픔의 순간에도, 도대체 예수가 누구이기에 자기를 향해 돌을 던지는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다는 말인가?’ 스데파노의 변론을 들었을 때에 그는 결코 단순한 광신적 이단자는 아니었습니다. 논리가 분명했고 이스라엘 역사 이해가 분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기와는 생각이 다른 사람이었지만 매우 이성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스데파노의 죽음의 모습은 그에게 자신의 신앙을 돌아볼 수 있는 많은 의문들을 가져다주었던 것입니다. 청년 사울은 여전히 예수쟁이들을 붙잡아 감옥에 처넣는 일에 가장 앞장서는 맹렬신도였지만 그러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 지울 수 없는 스데파노의 천사의 얼굴과 용서의 기도가 계속 떠올랐습니다. 그러다가 다마스커스를 향한 길목에서 예수의 영과 부딪히게 되고 그의 인생은 180도 변하게 됩니다. 전 다마스커스의 경험이 그냥 그 순간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스데파노의 죽음의 순간으로부터 예수 영의 씨앗이 그 사울의 혼 안에 심겨졌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데파노의 예수의 영이 그리고 유대교의 개혁의 영이 그에게로 옮겨졌다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물론 저의 이 결론은 문자에 근거한 성서학적 결론이 아닌, 심리적 추론에 불과하지만 저는 이것이 저의 인생경험으로 볼 때 매우 상당한 추론이라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저의 얘기의 결론은 그렇습니다. 지금 구교나 신교 모두 베드로나 바울의 신앙과 말씀들을 매우 중요하게 다루고 존경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이 둘을 가능케 한 스데파노가 있었다. 예수님의 복음운동을 그대로 이어가려는 그의 진보적 개혁운동은 결국 순교적 죽음을 가져왔고 비록 그는 죽었고 그로 인해 본격적인 핍박이 일어났지만, 이 핍박으로 교회는 흩어지면서 새로운 신앙운동으로 번져갈 수 있었고, 이에 베드로나 바울의 선교적 역량이 꽃을 피운 것입니다. 전 그래서 지금이라도 늦었지만, 구교나 신교 모든 교회가 스데파노의 신앙을 다시금 되찾고 그를 베드로나 바울 이상으로 존경하는 운동이 있어야 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카타콤의 순교자들]
제가 오늘 하늘뜻 펴기의 제목을 붙인 ‘순교의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라고 붙였습니다. 이 나무는 물론 교회입니다. 교회는 스데파노를 필두로 수많은 순교자들의 피에 의해 자라왔습니다. 우리나라만도 가톨릭의 김대건신부를 비롯한 수많은 순교적 성인들이 있고 신교도 주기철 손양원목사를 비롯한 수많은 순교자들이 있습니다. 이번에 로마 근교의 산세바스티안 지하공동묘지인 카타콤을 가보았습니다. 무려 50만이라는 기독인들이 묻힌 지하의 무덤들을 들어가 보았습니다. 우리는 제한된 곳 밖에 들어가 볼 수밖에 없었지만, 로마 황제의 기독교 박해 시에 그들은 땅굴을 파고 거기서 생활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땅굴의 전체 길이는 20킬로미터에 이르고 어떤 길은 무려 벽에 층층이 5층까지 옆으로 파서 시신을 넣었던 무덤도 보았습니다. 그런 카다콤이 로마 근교에만도 45개 이상이 있고 전체 길이는 900킬로 이상에 이르고 300년 동안에 묻힌 사람들 숫자는 600만에 이르고 있습니다. 로마만이 아니라 터어키를 비롯한 여러 장소에 이런 카타곰이 있습니다. 그 안에서 붙잡혀 죽임을 당한 사람도 많지만, 로마의 콜로세라는 무너진 원형경기장을 바라보면서 사자들의 밥이 되어 온 몸이 갈갈이 찢김을 당하며 죽어가는 장면을 연상하여 보았습니다. 도대체 그들에게 예수가 어떤 의미가 있었기에 저들은 지하 공동묘지를 마다하지 않고 사자의 울부짖음 앞에서도 자기 신앙을 지킬 수 있었을까? 오늘날 저들이 우리들의 신앙을 바라본다면 무엇이라고 말할까? 저나 여러분이나 대부분 예수님을 믿는 일에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구원을 그저 선물이라고 말하고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카타콤에서 살고 거기서 죽어간 그 사람들은 지금 저희들의 이러한 신앙고백에 얼마나 동의할까요? 초대교회로부터 313년 콘스탄틴 황제에 의해 국교로 인정받기까지 교회는 엄청난 순교의 피를 흘리면서 자라왔고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진리와 자유를 외치는 신앙인들을 박해하는 일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지니고 있는 믿음이라고 하는 것이 하느님의 선물이긴 하지만,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진 선물이 아니라 우리 앞서서 걸어갔던 수많은 신앙인들의 피의 희생 위에 얻어진 것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교회에 와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전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이고 감격이고 은혜인지를 잘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제나 공산치하의 경험이 없는 대부분의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교회에 대한 정치적 박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17년 전 제가 처음 중국을 방문했을 때에 일요일에 장춘이라는 큰 도시에 수 백 명이 모이는 커다란 중국인 교회를 우연히 방문하였습니다. 자리가 모자라 문간이나 창문에 서서 예배드리고 있는 모습을 보았고 그 듣는 말씀이 아까워 서서 메모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 한 조그마한 건물에는 조선족 7,80여 명이 빽빽이 모여 앉아 나이 많은 여전도사님을 모시고 우리말로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나서 저희 일행이 목사인 것을 알자 그들은 저희들 곁으로 모여들더니 손을 잡고는 어쩔 줄을 몰라 합니다. 그때는 교회의 자유로운 예배가 허락된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시절이라 목사를 한 번도 본적이 없었던 사람들이 많았던 것입니다. 마치 복음서에 예수님의 몸이라도 한번 만지면 나을까하여 사람들이 몰려들었듯이 그들은 제 손이라도 한번 잡아보기 위해 몰려들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예배에 참여하기 위해 그 전날 8시간 기차를 타고 왔다고 말하며 제 손을 잡은 그의 얼굴에는 기쁨이 넘쳐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신앙을 지켜오기 위해 무던히 노력해온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시 그들에게는 성경책도 없었고 찬송가도 없었습니다. 찬송은 큰 종이에 가사만 써서 부르고 있었고 성경말씀은 한 사람이 읽으면 모두가 들었습니다. 물론 그 이후에 다시 그 교회를 가보지는 못했지만, 아마 지금은 상황이 매우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 지금은 제가 목사라고 해서 그렇게 손이라도 한번 만져보겠다고 달려드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하여간 전 그때 그곳을 가보고 나서야 제가 목사가 되었다는 사실에 큰 감동을 받았고 성서 말씀이 귀한 줄 알았습니다. 교회는 순교의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은 순교가 끊긴 교회는 더 이상 정상적인 교회로 성장해 나갈 수 없다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전 그래서 앞으로 통일이 되면 남한의 기독교인들은 북한의 기독교인들의 신앙을 통해 크게 도전을 받고 큰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물론 지금도 우리가 북한을 정말 제대로 이해한다면 종교의 자유가 없다고 정치적으로 비판하는 일을 중지하고 거기서 활동하는 성령의 종말론적 역사를 진지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새로운 박해: 유혹의 사탄들]
향린교회는 지난 54년 동안 많은 믿음의 선배들의 헌신과 순교의 피가 있었습니다. 625의 전쟁 속에서 민족의 아픔을 함께 하기 위해 세워졌고 그리고 독재에 맞서 투쟁 속에서 신앙을 지켜 왔습니다. 지금은 가시적인 핍박 대신에 사탄은 매우 교묘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경제성공과 개인행복이라는 미사여구로 우리에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이것들은 마치 아담과 하와가 보았던 선악과와 같이 먹음직도 하고 탐스럽기도 합니다. 그것만 먹으면 나는 뭔가를 이룬 사람이 될 것이라는 착각 속에 빠져 있습니다. 사탄은 계속하여 내게 절하면 너는 천하를 가질 것이라고 유혹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 남한 사회가 직면한 가장 큰 사회적 이슈는 한미 FTA입니다. 제가 이해하는 한미FTA는 단순히 미국과 한국이라는 두 국가 간의 경제무역협정이 아닙니다. 제가 이를 반대하는 이유는 그로 인해 우리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농산물이나 의약분야에서 많은 피해를 볼 것이라는 경제적 이유 때문이 아닙니다. 제가 반대하는 것은 거기에 담겨있는 조항들이 아닙니다. 제가 반대하는 것은 작금의 황금만능주의와 개인주의적 삶의 태도인데, 바로 그러한 反神적인 태도가 지금의 한미FTA 논쟁 속에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한미 FTA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 속에도 그러한 反神적인 삶의 태도가 보이고 강자의 승리주의적 태도를 지향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한미 양국은 자유무역과 세계화라는 미명하에 경제제국주의의 야망을 꿈꾸고 있습니다. 물론 세상에는 강자와 약자가 동시에 존재할 수밖에 없고 누구나가 강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제가 주장하는 것은 진정한 강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강자는 약자를 품에 안고 가는 강자입니다. 약자를 연대할 줄 아는 넉넉한 강자입니다. 지금 한미FTA에는 그런 약자보호나 소수자 연대의 정신이 없습니다. 자유라는 단어 속에 힘없는 약자들은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의(義)가 상실되어 있고 세상의 이(利)만 남아 있습니다.
FTA라는 말을 그대로 번역하면 자유무역협정이라는 말이 되지만, 이 자유라는 말에 우리가 현혹되어서는 안 됩니다. 현재의 우리 자본주의 사회를 흔히 자유경쟁사회라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법으로는 어떤 개인도 신분이나 출신에 따른 차별은 받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 봅시다. 저 강원도 산골짜기에서 태어난 아이와 저 강남에 태어난 아이가 지금 현실적으로 자유 경쟁한다는 말에 동의하십니까? 자유경쟁이라는 말 이면에는 하나의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가진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그 배움의 기회가 보장되었을 때 하는 말입니다. 강원도 산골에서 태어난 아이는 자신의 역량이 어떠한 것인지를 실험해 볼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강남 출신 아이는 자라면서부터 음악 체육 언어 과학 모든 부분에서 그것도 세세한 부분까지 점검을 받습니다. 음악의 예를 들면 학원을 통해 성악은 물론이고 피아노 첼로 바이올린 각종 악기를 한 번씩 다루어 자신의 장기가 어디에 있는지를 확인하고 중고등학교부터는 그 분야에 집중적인 투자를 하고 일류대학에 진학합니다. 그러나 강원도의 아이는 거의 그러한 실험적 기회를 갖지 못한 채, 자신의 장점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한 채 자신 앞에 놓여 삶의 길에 급급하게 좇아가야만 합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강원도 산골에서 태어났다면 오늘의 우리들의 자본주의 사회가 말하는 자유경쟁이라는 단어가 갖고 있는 모순이 어디에 있는 것인지를 뼈저리게 알고 있을 것입니다. 전태일님이나 허세욱님은 바로 이러한 사회적 모순을 뼈저리게 느꼈고 이 모순을 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노력하다가 그것이 한계에 부닥치자 이를 넘어서기 위해 자신의 몸을 불태운 것입니다. 그들의 분신자살은 결코 실망이나 패배에서 자신을 버린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노력을 알리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노력이 옳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그리고 자신들의 걸어온 그 투쟁의 길이 승리의 길이라는 것을 모두가 깨닫고 모두가 그 길을 따르도록 자극하기 위해 최후의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저는 세계 1위에 해당하는 미국과 10위권에 해당하는 남한간의 FTA에 숨어 있는 인간의 교만을 보고 있습니다. 서로는 모두 FTA를 통해 세계를 경제로 정복하고자 하는 허망한 꿈을 꾸고 있습니다. 가난한 나라나 약자를 위한 연대나 보호정신이 결여된 강대국간의 협정은 하늘 끝에 닿아보겠다는 오늘의 바벨탑입니다. 아담으로부터 시작한 인간의 뿌리 깊은 hubris의 교만의 연속입니다. 시작이 그러하면 그 끝은 가보지않아도 분명합니다. 가보고나서야 깨닫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예수 정신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은 가보지 않아도 길의 시작을 보면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우리 민족이 자기 자리를 알지 못하고 까불다가 다칠까봐 걱정입니다. 아니 이미 다쳤습니다. 다쳐도 많이 다쳤습니다. 식민지로 당했고 독재로 당했고 IMF로 당했습니다. 지금도 분단으로 심하게 절뚝거리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 우리는 전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 이번에 독일이나 스위스는 처음 가보았고 한 열흘을 돌아다녔고 그것도 교회나 교회기관을 중심으로 돌아다녔으니 극히 일부분만 보고 온 셈입니다. 한국말도 못하는 어떤 외국 사람이 인도자가 인도하는 대로 이곳저곳 한 며칠 다니고 나서 남한의 경험을 얘기한다면 우리가 모두 웃듯이 사실은 저의 유럽 경험 얘기도 웃기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20년 넘어 외국생활을 한 저로서는 겉으로 본 피상적인 경험이었지만, 저들의 뿌리 깊은 생각이나 문화 그리고 세계를 향해 배우고자 노력하는 진지함과 겸손들을 다시금 확인할 수가 있었습니다.
[새 시대의 선교이해]
오늘의 말씀을 결론 맺겠습니다. 흔히 사도행전의 말씀은 선교의 역사로 이해합니다. 예루살렘에서 출발하여 유대와 사마리아를 넘어 땅 끝까지 나아가는 예수님의 말씀에 근거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번 평화여행을 통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던 땅 끝 선교 그리고 스데파노가 추구했던 개혁의 선교정신은 그러한 식민지적 정복이나 기독교국가 팽창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선교란 상대방을 인정함으로 서로의 이해를 통한 세계 창조보존을 위한 동반자로 나아가는 활동입니다. 존 로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고를 멈추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한 가지 분야의 책만 일고 한 가지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하고만 대화하는 것이다.”
참 선교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한 가지를 다른 사람도 믿도록 설득하거나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사고하고 살아가는 방식을 배워감으로 자신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가는 신앙의 방식입니다. 이번에 제가 가본 유럽의 교회들은 17,18세기의 그러한 식민지적 정복선교방식이 잘못이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남한의 교회들은 그들이 저지른 정복주의적인 선교방식을 그대로 채택하고 무분별한 해외선교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분명 복음서에 나와 있는 예수님의 선교에서 돈으로 선교하거나 자기의 생각을 강요하는 정복주의적인 태도를 결코 볼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가난하고 힘없는 민중들에게 부자들의 것을 가짐으로 부요해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런 가난한 상태의 자신을 알고 그 빈 모습에서 인간의 참 모습을 발견할 때 거기에 하느님의 영이 깃들고 거기에서 참 부요가 온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라는 축복의 신비가 담겨 있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완전하신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하는 말씀의 신비가 담겨 있습니다.
창세기 1장으로부터 3장까지의 천지창조의 이야기에서 분명히 강조하고 있는 것은 창조주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세계의 동반자로 파트너로 불렀다는 것입니다. 여기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그림 한 장이 있습니다. 하느님이 인간 아담과 서로의 손가락이 닿을락말락하는 장면의 그림입니다. 이 그림은 500년 전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미켈란젤로가 그린 것입니다. 이 그림을 자세히 보시면 하느님은 천사들에게 의해 둘러싸여 있고 아담은 불모지에 놓여 있습니다. 여기 하느님의 손은 강한 힘으로 충만해 있으면서 인간을 향해 온 몸이 앞으로 쭉 뻗어 있고 이 검지 손가락 끝에 창조의 충만한 힘이 느껴집니다. 반면 아담은 약간 뒤로 움추린 자세 속에서 힘없이 손가락을 내밀고 있습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은 이 대조적인 그림에서 창조주 하느님의 인간을 당신의 동반자로 초청하고자 하는 깊은 의지를 느낄 수 있다고 말하지만, 저는 오히려 이 아담의 움추린 자세를 보면서 오히려 이는 하느님의 초청을 거부하고 하느님 없이 한번 서보겠다고 하는 인간의 교만을 그린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그림을 액자에 넣어 저 뒤에 다른 그림들과 함께 걸어 놓겠습니다. 앞으로 이 그림을 보실 때마다 하느님께서 쭉 뻗으시는 그 초청의 손가락에 엉거주춤한 자세가 아닌 그 은혜에 감사하여 나도 또한 하느님을 향해 힘껏 손을 뻗는 순종과 감격의 신앙인이 되겠다는 다짐을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그림을 보시면서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시편 118 : 1- 14 ; 사도행전 8 : 1-25
5월말 성령강림주일을 맞아 사도행전의 말씀을 따라 초기 예수공동체의 참 모습을 찾아보는 4번째의 시간입니다. 제가 유럽평화순례여행으로 2주간의 간격이 있어 여러분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사도행전 1장으로부터 7장까지의 지난 하늘뜻펴기의 내용을 간단히 정리해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시어 40일 동안 이 땅에 거하시며 자주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가 마지막 날 하늘로 올라가시면서 사도들에게 이렇게 당부하십니다.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가 전에 일러준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려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지만 오래지 않아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게 될 것이다.”(1장 5절) 그리고 덧붙이시기를 “성령이 너희에게 오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뿐만 아니라 땅 끝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나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1장 8절)
이 당부를 좇아 사도들을 비롯한 120여명의 제자들은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서 오순절을 맞아 함께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강림의 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러자 그들은 거리로 나아가 오순절 축제를 위해 각지에서 온 순례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그들의 사용하는 민족의 언어로 외칩니다. 그 요지는 십자가에 죽은 나자렛 예수가 부활하였다는 것과 요엘 선지자의 예언의 말씀과 같이 이제 새로운 시대가 임박했음을 선포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첫 성령강림절의 방언의 역사는 단순히 외국어를 말하는 능력이 아니라 서로 언어가 달라 이해와 교통이 끊어졌던 각 민족과 인종 간에 이해와 교통이 시작되고 예수 성령 안에서 하나의 새 가족으로 거듭났음을 알리고 있습니다. 로마의 군사적 통치나 황제숭배라는 물리적 힘에 의한 억지의 하나(uniformity)가 아닌 서로의 이해와 존중을 통한 다양성 안에서의 하나(unity)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하나 됨에는 여자와 남자의 성적 차별 젊은이와 늙은이의 세대 간 차별 주인과 종이라는 신분에 따른 차별의 벽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이 새로운 하늘나라의 복음의 얘기를 듣자 자신들이 잘못살고 있다고 회개하기 시작했고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세례를 통해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살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그래 그들은 탐욕과 경쟁에 기초한 이기적인 삶의 태도를 버리기 시작하면서 개인 소유를 포기하고 공적으로 재산을 공유하기에 이릅니다.
교회가 무엇을 하는 곳이냐? 는 질문에 대한 답과 생생한 증언이 되기에 여러분이 잘 아시지만 다시 한 번 성서에 기록된 대로 읽어드립니다. “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며 그들의 모든 것을 공동 소유로 내어놓고 재산과 물건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한마음이 되어 날마다 열심히 성전에 모였으며 집집마다 돌아가며 같이 빵을 나누고 순수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함께 먹으며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이것을 보고 모든 사람이 그들을 우러러보게 되었다. 주께서는 구원받을 사람을 날마다 늘려주셔서 신도의 모임이 커갔다.”(2장 45-47절)
그리하고 나서 바로 베드로와 요한은 앉은뱅이로 태어나 성전 문 앞에서 평생을 구걸하던 한 사람을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고쳐줍니다. 이는 단순히 한명의 병자를 고쳐주었다는 병 고침의 얘기가 아니라 보다 심각한 신학적 선언이 담겨 있는 혁명적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이 이야기 속에 나타난 단어들 속에 상징적으로 숨어 있는데, 우선 ‘예루살렘 성전 문 곁’이라는 단어, 그리고 이 문이 ‘아름다운 문’이라는 단어, 그리고 앉은뱅이가 나자렛 예수 이름으로 힘을 얻어 일어나서 걷다가 성전 안으로 들어가 껑충껑충 뛰었다는 얘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사람의 나이가 40세가 넘었다는 단어들에 암시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당시의 광야 40년의 조상들의 삶 속에서 모세가 받은 율법과 야훼 하느님의 유일한 임재로 알려졌던 거룩하고 아름다운 예루살렘 성전 제사는 태어날 때부터 앉은뱅이로 다닐 수밖에 없는 부자유스러운 것이었다는 선언이고 이를 나자렛 예수가 진정한 하느님의 복음의 말씀으로 참 인간으로 회복시켰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자연히 예수를 모함하여 죽였던 예루살렘 정치종교 지도층들은 이 새로운 신앙운동에 위협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고, 사도들을 붙잡아 더 이상 말씀을 전하지 못하도록 위협하고 심지어는 감옥에 가두기까지 하였지만 그들은 더욱 담대해져 이 신앙운동은 더욱 성장하는 역효과만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기존의 열둘 사도만으로 운영이 힘들어지자 그리스파 지도자 일곱 명을 새롭게 뽑기에 이릅니다. 여기에 대표적인 지도자는 스데파노였고 이 일곱 명은 단순히 현재 우리가 말하는 집사들이 아니었고 예수 공동체를 이끌고 나갈 새로운 리더들이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그리스 문화권 출신인 스데파노를 비롯한 일곱 지도자들은 갈릴래아 출신인 베드로를 중심한 12사도들과는 달리 지역적으로는 예루살렘을 벗어나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나아가려는 선교적 열망을 품고 있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유대인들만의 안식일 전통이나 할례 그리고 성전제사와 같은 종교문화의 벽을 허물어야만 했습니다. 바로 이러한 노력 때문에 스테파노는 돌에 맞아 죽는 첫 순교자가 됩니다. 이것이 사도행전 7장의 마지막입니다.
[박해에 사도들만 남은 이유는?]
오늘 본문 8장 1절은 이 스테파노를 죽이는 일에 가장 앞장을 선 사울이라는 청년의 이름을 언급하고 바로 이어 교회에 대한 박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음을 알리고 있습니다. ‘사울은 스데파노를 죽이는 일에 찬동하고 있었다. 그 날부터 예루살렘 교회는 심한 박해를 받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어 짧막한 스데파노의 장례 얘기가 나오는데 우리는 이 심각한 위기의 상황 속에서 장례의 얘기를 여기에 굳이 언급해야 하는 것인지 의심이 들게 되고 게다가 장례에 관련된 이 구절들은 오히려 다른 의문점을 낳게 만들고 있습니다. 한번 들어 보세요. ‘그날부터 예루살렘 교회는 심한 박해를 받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모든 신도들은 유다와 사마리아 여러 지방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이렇게 끝났으면 아무런 의심의 여지가 없는데, 마지막 부분에 이런 말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뿔뿔이 흩어지고 사도들만 남게 되었다.’ 여러분이 지금 예루살렘 종교지도층이고 교회에 대한 박해를 시작했다면 누구부터 잡아 가두겠습니까? 당연히 베드로를 비롯한 12사도들입니다. 그런데 모두들 박해를 피해 도망을 갔는데 어떻게 가장 중요한 지도층만이 아무런 해도 받지 않고 남아 있을 수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이 사도들은 잠시 신앙을 떠난 것인가 아니면 비밀 아지트에 꼭꼭 숨어버린 것인가? 도대체가 상식적으로 해명이 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아무런 해명도 없이 이어지는 2절에서 ‘경건한 사람 몇이 스데파노를 장사지내고 크게 통곡하며 그의 죽음을 슬퍼하였다.’ 여기에서도 경건한 사람 몇이라고 했는데, 이들이 누구였는지가 불분명합니다. 사도들이 예루살렘 성안에 남아 있었다면 스데파노의 장례는 분명히 그들이 담당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어딘가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조금 전, 그러니까 한 두 장만 거슬러 올라가면 그들은 예루살렘 대사제 앞에서 이렇게 담대하게 외쳤습니다. “사람에게 복종하는 것보다 오히려 하느님께 복종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들이 나무에 매달아 죽인 예수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지도자와 구세주로 세워 당신의 오른편에 높이 올리셔서 이스라엘을 회개시키고 죄를 용서받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복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 증인이십니다.” 죽음 앞에서 이렇게 담대하게 외쳤던 그들의 담대함은 어디로 갔다는 말입니까? 성령님이 오셨다가 떠나버린 것입니까?
[저자 루가의 숨은 의도]
사실 이런 얘기는 여러분이 주석서를 뒤져보아도 별로 설명이 없습니다. 제가 이해하는 단 하나의 해결점이 있다면 현재 사도행전을 기록한 루가는 이 스데파노의 죽음을 예수님의 죽음의 장면과 동렬선상에 높고 싶은 것입니다. 성서에 기록된 글자만으로는 앞뒤가 너무 모순되기에 스데반의 장례가 실제로 어떻게 진행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사실 확인을 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앞뒤의 깔려 있는 모순을 알면서도 이렇게 글을 써야만 했을까 하는 저자 루가의 마음을 읽을 수는 있는 것입니다. 루가는 스데파노를 예수에 비교하고 그를 예수와 같은 동렬선상에 놓고자 한 것입니다. 이는 이방인 선교를 우선시하는 루가의 편견일수도 있고 사도들에 대한 불신일수도 있습니다.
어떤 점에서 루가가 스데파노를 예수님과 같이 보려고 했는지를 보십시다. 우선 처음 스데파노가 등장하면서 소위 말하는 자유인의 회당에 속하는 유대인들과 논쟁하는 장면은 예수가 바리사이파나 사두가이파 사람들과 논쟁하는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그러나 그들은 지혜와 성령을 받아 말하는 스데파노를 당해낼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사람들을 매수합니다. 거짓 증인자를 세우는 것이 같습니다. 또한 그들이 거짓 증언이 일치합니다. ‘이 사람은 언제나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늘 이 사람에게서 나자렛 예수가 이 성전을 헐고 또 모세가 전해준 관습을 뜯어고칠 것이라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6장 15절) 그리고 이 공의회 앞에서 심문받는 스데파노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그의 얼굴은 마치 천사와 같이 보였다.” 성령으로 충만해진 모습입니다. 누구의 성령입니까? 예수의 영입니다. 그리고 그는 하늘의 열려진 모습을 봅니다.
[예수와 스테파노]
그리고 스데파노 또한 예수님과 같이 성 밖으로 끌려 나갑니다. 그리곤 십자가 대신 돌에 맞아 죽고 죽기 전에 외친 두 마디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외친 말씀과 똑같이 일치합니다. “사람들이 돌로 칠 때에 스데파노는 ‘주 예수님, 제 영혼을 받아주십시오. 그리고 무릎을 꿇고 큰소리로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지우지 말아주십시오.‘ 루가복음에 의하면 예수께서도 똑같이 큰 소리로 이 두 마디를 외칩니다. 한마디가 더 있는데, 이는 옆의 강도의 요청에 따라 ‘네가 오늘밤 낙원에 나와 함께 있으리라’는 말씀입니다.
자 이렇게 까지 스데파노의 죽음의 모습을 예수의 죽음의 모습에 일치시키고 있는 루가는 마지막 장례 또한 일치를 시켜야만 했습니다. 우선 구약전통에 따르면 사람이 죽어 그 뼈가 죽음의 골짜기에 내버려져 있어서는 그건 신으로부터 저주받은 자의 상징이기에 이렇게 끝맺음을 할 수는 없습니다. 우선 예수 십자가 죽음의 현장에 제자들은 없었습니다. 똑같이 스데파노의 죽음의 현장에 12사도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이 중요한 순간에 그들은 모두 어디를 간 것일까요? 도망을 갔다고 직접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예수의 경우와 같이 도망을 갔을 것이라는 암시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루가복음에 의하면 예수님의 시체는 누가 가져다가 장사를 지내지요? ‘의회 의원 중에 요셉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올바르고 덕망이 높은 사람이었다. 그는 예수를 죽이려던 의회의 결정과 행동에 찬동을 한 일이 없었다. 그는 아리마태아 출신으로 하느님의 나라를 기다리며 살던 사람이었다.’(루가 24장 50,51절) 바로 예수에게 이런 훌륭한 사람이 있었듯이 스데파노의 경우에도 누구인지 이름을 밝히지 않았지만 준비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죽음의 뼈들이 저주받은 사람처럼 성전 밖에 내버려져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의 죽음에 동일시될 정도로 존경받는 스데파노는 오늘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그 정신은 누구를 통해 전해지고 있는 것일까요? 일반적으로 말한다면 교회에서 가장 크게 존경 받고 있는 인물은 베드로와 바울입니다. 전 이번에 로마의 베드로성당을 가서 눈이 그 내부 장식의 화려함과 그 웅장함에 입이 쩍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터키를 가보지 못해 소피아성당의 웅장함에 비교할 수는 없지만 제가 지금까지 본 어느 성전에 비교할 수가 없었습니다. 베드로성전은 베드로의 죽음의 뼈 위에 세워져 있으며 그는 초대교황의 위치에 있습니다. 바울은 교회 목회자들이 예수보다도 더 많이 설교단상에서 외쳐지는 인물입니다. 많은 경우 예수의 말보다 바울의 말들이 더 중요시되고 있습니다. 신학자들은 바울을 연구합니다. 선교사들은 말끝마다 바울의 선교를 언급합니다.
[스테파노의 개혁 신앙을 되살리자]
그런데 초대교회 역사에서 진정한 예수를 따라 개혁을 꾀하다가 모함으로 죽은 첫 번째 순교자 스데파노는 오늘날 교회 역사에 별로 그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예루살렘을 다녀온 지가 20년 가까이 되어 스데파노의 죽음의 자리에 그의 기념교회가 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이번에도 유럽의 여러 교회나 성당을 방문하고 로마의 여러 성지를 다니면서 베드로와 바울의 그림이나 조각품들은 자주 볼 수 있었지만, 스데파노의 그림이나 조각을 본 기억은 없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사도행전의 역사를 주의 깊게 보면 스데파노의 개혁과 그의 순교적 죽음이 없었다면 진정한 초대교회가 등장할 수 있었을까? 물론 하느님께서 하시고자 하셨다면 스데파노 없이도 하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서의 기록에만 의존해서 역사의 전개를 추정한다면 그건 불가능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여전히 베드로는 이후로도 예루살렘 안에만 머물었고 할례나 율법 준수를 고집하는 유대교의 틀 안에 머물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오늘 본문에서 잠시 사마리아에 가서 빌립보가 전한 교인들에게 성령을 받도록 하였다는 구절이 등장하지만 다시금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갈릴래아 출신 12사도들만으로는 유대땅 밖으로 이 예수 신앙운동을 끌고나가는 것은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있지 않는가? 그러나 바울도 엄격히 말하면 스데파노의 순교의 죽음의 피가 맺은 열매이지 저절로 생겨난 사람은 아닙니다. 물론 바울은 자기가 스데파노에게서 어떤 신앙적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하는 구절은 한군데도 없습니다. 사도행전에도 없고 자신이 쓴 편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스데파노의 죽음을 가장 가까이에서 본 목격자라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그는 스데파노가 죽음의 자리에서 외친 ‘주 예수님 제 영혼을 받아 주십시오.’ 그리고 무릎을 꿇고 큰 소리로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지우지 말아주십시오.’ 라는 기도소리를 들은 사람입니다.
물론 돌을 던지던 당시는 그는 자신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고 있었던 유대교를 비판하는 스데파노를 죽이는 일을 당연시 여겼고 떳떳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고조된 흥분이 가라앉으면서 계속하여 그를 괴롭히는 질문이 생겼습니다. ‘도대체 예수가 어떤 자이기에, 스데파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일까? 아니 온 몸에 돌을 맞아 죽어가는 고통의 자리에서, 얼굴에 피가 낭자하게 흐르는 그 아픔의 순간에도, 도대체 예수가 누구이기에 자기를 향해 돌을 던지는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다는 말인가?’ 스데파노의 변론을 들었을 때에 그는 결코 단순한 광신적 이단자는 아니었습니다. 논리가 분명했고 이스라엘 역사 이해가 분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기와는 생각이 다른 사람이었지만 매우 이성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스데파노의 죽음의 모습은 그에게 자신의 신앙을 돌아볼 수 있는 많은 의문들을 가져다주었던 것입니다. 청년 사울은 여전히 예수쟁이들을 붙잡아 감옥에 처넣는 일에 가장 앞장서는 맹렬신도였지만 그러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 지울 수 없는 스데파노의 천사의 얼굴과 용서의 기도가 계속 떠올랐습니다. 그러다가 다마스커스를 향한 길목에서 예수의 영과 부딪히게 되고 그의 인생은 180도 변하게 됩니다. 전 다마스커스의 경험이 그냥 그 순간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스데파노의 죽음의 순간으로부터 예수 영의 씨앗이 그 사울의 혼 안에 심겨졌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데파노의 예수의 영이 그리고 유대교의 개혁의 영이 그에게로 옮겨졌다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물론 저의 이 결론은 문자에 근거한 성서학적 결론이 아닌, 심리적 추론에 불과하지만 저는 이것이 저의 인생경험으로 볼 때 매우 상당한 추론이라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저의 얘기의 결론은 그렇습니다. 지금 구교나 신교 모두 베드로나 바울의 신앙과 말씀들을 매우 중요하게 다루고 존경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이 둘을 가능케 한 스데파노가 있었다. 예수님의 복음운동을 그대로 이어가려는 그의 진보적 개혁운동은 결국 순교적 죽음을 가져왔고 비록 그는 죽었고 그로 인해 본격적인 핍박이 일어났지만, 이 핍박으로 교회는 흩어지면서 새로운 신앙운동으로 번져갈 수 있었고, 이에 베드로나 바울의 선교적 역량이 꽃을 피운 것입니다. 전 그래서 지금이라도 늦었지만, 구교나 신교 모든 교회가 스데파노의 신앙을 다시금 되찾고 그를 베드로나 바울 이상으로 존경하는 운동이 있어야 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카타콤의 순교자들]
제가 오늘 하늘뜻 펴기의 제목을 붙인 ‘순교의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라고 붙였습니다. 이 나무는 물론 교회입니다. 교회는 스데파노를 필두로 수많은 순교자들의 피에 의해 자라왔습니다. 우리나라만도 가톨릭의 김대건신부를 비롯한 수많은 순교적 성인들이 있고 신교도 주기철 손양원목사를 비롯한 수많은 순교자들이 있습니다. 이번에 로마 근교의 산세바스티안 지하공동묘지인 카타콤을 가보았습니다. 무려 50만이라는 기독인들이 묻힌 지하의 무덤들을 들어가 보았습니다. 우리는 제한된 곳 밖에 들어가 볼 수밖에 없었지만, 로마 황제의 기독교 박해 시에 그들은 땅굴을 파고 거기서 생활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땅굴의 전체 길이는 20킬로미터에 이르고 어떤 길은 무려 벽에 층층이 5층까지 옆으로 파서 시신을 넣었던 무덤도 보았습니다. 그런 카다콤이 로마 근교에만도 45개 이상이 있고 전체 길이는 900킬로 이상에 이르고 300년 동안에 묻힌 사람들 숫자는 600만에 이르고 있습니다. 로마만이 아니라 터어키를 비롯한 여러 장소에 이런 카타곰이 있습니다. 그 안에서 붙잡혀 죽임을 당한 사람도 많지만, 로마의 콜로세라는 무너진 원형경기장을 바라보면서 사자들의 밥이 되어 온 몸이 갈갈이 찢김을 당하며 죽어가는 장면을 연상하여 보았습니다. 도대체 그들에게 예수가 어떤 의미가 있었기에 저들은 지하 공동묘지를 마다하지 않고 사자의 울부짖음 앞에서도 자기 신앙을 지킬 수 있었을까? 오늘날 저들이 우리들의 신앙을 바라본다면 무엇이라고 말할까? 저나 여러분이나 대부분 예수님을 믿는 일에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구원을 그저 선물이라고 말하고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카타콤에서 살고 거기서 죽어간 그 사람들은 지금 저희들의 이러한 신앙고백에 얼마나 동의할까요? 초대교회로부터 313년 콘스탄틴 황제에 의해 국교로 인정받기까지 교회는 엄청난 순교의 피를 흘리면서 자라왔고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진리와 자유를 외치는 신앙인들을 박해하는 일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지니고 있는 믿음이라고 하는 것이 하느님의 선물이긴 하지만,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진 선물이 아니라 우리 앞서서 걸어갔던 수많은 신앙인들의 피의 희생 위에 얻어진 것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교회에 와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전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이고 감격이고 은혜인지를 잘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제나 공산치하의 경험이 없는 대부분의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교회에 대한 정치적 박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17년 전 제가 처음 중국을 방문했을 때에 일요일에 장춘이라는 큰 도시에 수 백 명이 모이는 커다란 중국인 교회를 우연히 방문하였습니다. 자리가 모자라 문간이나 창문에 서서 예배드리고 있는 모습을 보았고 그 듣는 말씀이 아까워 서서 메모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 한 조그마한 건물에는 조선족 7,80여 명이 빽빽이 모여 앉아 나이 많은 여전도사님을 모시고 우리말로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나서 저희 일행이 목사인 것을 알자 그들은 저희들 곁으로 모여들더니 손을 잡고는 어쩔 줄을 몰라 합니다. 그때는 교회의 자유로운 예배가 허락된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시절이라 목사를 한 번도 본적이 없었던 사람들이 많았던 것입니다. 마치 복음서에 예수님의 몸이라도 한번 만지면 나을까하여 사람들이 몰려들었듯이 그들은 제 손이라도 한번 잡아보기 위해 몰려들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예배에 참여하기 위해 그 전날 8시간 기차를 타고 왔다고 말하며 제 손을 잡은 그의 얼굴에는 기쁨이 넘쳐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신앙을 지켜오기 위해 무던히 노력해온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시 그들에게는 성경책도 없었고 찬송가도 없었습니다. 찬송은 큰 종이에 가사만 써서 부르고 있었고 성경말씀은 한 사람이 읽으면 모두가 들었습니다. 물론 그 이후에 다시 그 교회를 가보지는 못했지만, 아마 지금은 상황이 매우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 지금은 제가 목사라고 해서 그렇게 손이라도 한번 만져보겠다고 달려드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하여간 전 그때 그곳을 가보고 나서야 제가 목사가 되었다는 사실에 큰 감동을 받았고 성서 말씀이 귀한 줄 알았습니다. 교회는 순교의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은 순교가 끊긴 교회는 더 이상 정상적인 교회로 성장해 나갈 수 없다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전 그래서 앞으로 통일이 되면 남한의 기독교인들은 북한의 기독교인들의 신앙을 통해 크게 도전을 받고 큰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물론 지금도 우리가 북한을 정말 제대로 이해한다면 종교의 자유가 없다고 정치적으로 비판하는 일을 중지하고 거기서 활동하는 성령의 종말론적 역사를 진지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새로운 박해: 유혹의 사탄들]
향린교회는 지난 54년 동안 많은 믿음의 선배들의 헌신과 순교의 피가 있었습니다. 625의 전쟁 속에서 민족의 아픔을 함께 하기 위해 세워졌고 그리고 독재에 맞서 투쟁 속에서 신앙을 지켜 왔습니다. 지금은 가시적인 핍박 대신에 사탄은 매우 교묘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경제성공과 개인행복이라는 미사여구로 우리에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이것들은 마치 아담과 하와가 보았던 선악과와 같이 먹음직도 하고 탐스럽기도 합니다. 그것만 먹으면 나는 뭔가를 이룬 사람이 될 것이라는 착각 속에 빠져 있습니다. 사탄은 계속하여 내게 절하면 너는 천하를 가질 것이라고 유혹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 남한 사회가 직면한 가장 큰 사회적 이슈는 한미 FTA입니다. 제가 이해하는 한미FTA는 단순히 미국과 한국이라는 두 국가 간의 경제무역협정이 아닙니다. 제가 이를 반대하는 이유는 그로 인해 우리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농산물이나 의약분야에서 많은 피해를 볼 것이라는 경제적 이유 때문이 아닙니다. 제가 반대하는 것은 거기에 담겨있는 조항들이 아닙니다. 제가 반대하는 것은 작금의 황금만능주의와 개인주의적 삶의 태도인데, 바로 그러한 反神적인 태도가 지금의 한미FTA 논쟁 속에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한미 FTA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 속에도 그러한 反神적인 삶의 태도가 보이고 강자의 승리주의적 태도를 지향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한미 양국은 자유무역과 세계화라는 미명하에 경제제국주의의 야망을 꿈꾸고 있습니다. 물론 세상에는 강자와 약자가 동시에 존재할 수밖에 없고 누구나가 강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제가 주장하는 것은 진정한 강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강자는 약자를 품에 안고 가는 강자입니다. 약자를 연대할 줄 아는 넉넉한 강자입니다. 지금 한미FTA에는 그런 약자보호나 소수자 연대의 정신이 없습니다. 자유라는 단어 속에 힘없는 약자들은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의(義)가 상실되어 있고 세상의 이(利)만 남아 있습니다.
FTA라는 말을 그대로 번역하면 자유무역협정이라는 말이 되지만, 이 자유라는 말에 우리가 현혹되어서는 안 됩니다. 현재의 우리 자본주의 사회를 흔히 자유경쟁사회라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법으로는 어떤 개인도 신분이나 출신에 따른 차별은 받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 봅시다. 저 강원도 산골짜기에서 태어난 아이와 저 강남에 태어난 아이가 지금 현실적으로 자유 경쟁한다는 말에 동의하십니까? 자유경쟁이라는 말 이면에는 하나의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가진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그 배움의 기회가 보장되었을 때 하는 말입니다. 강원도 산골에서 태어난 아이는 자신의 역량이 어떠한 것인지를 실험해 볼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강남 출신 아이는 자라면서부터 음악 체육 언어 과학 모든 부분에서 그것도 세세한 부분까지 점검을 받습니다. 음악의 예를 들면 학원을 통해 성악은 물론이고 피아노 첼로 바이올린 각종 악기를 한 번씩 다루어 자신의 장기가 어디에 있는지를 확인하고 중고등학교부터는 그 분야에 집중적인 투자를 하고 일류대학에 진학합니다. 그러나 강원도의 아이는 거의 그러한 실험적 기회를 갖지 못한 채, 자신의 장점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한 채 자신 앞에 놓여 삶의 길에 급급하게 좇아가야만 합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강원도 산골에서 태어났다면 오늘의 우리들의 자본주의 사회가 말하는 자유경쟁이라는 단어가 갖고 있는 모순이 어디에 있는 것인지를 뼈저리게 알고 있을 것입니다. 전태일님이나 허세욱님은 바로 이러한 사회적 모순을 뼈저리게 느꼈고 이 모순을 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노력하다가 그것이 한계에 부닥치자 이를 넘어서기 위해 자신의 몸을 불태운 것입니다. 그들의 분신자살은 결코 실망이나 패배에서 자신을 버린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노력을 알리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노력이 옳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그리고 자신들의 걸어온 그 투쟁의 길이 승리의 길이라는 것을 모두가 깨닫고 모두가 그 길을 따르도록 자극하기 위해 최후의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저는 세계 1위에 해당하는 미국과 10위권에 해당하는 남한간의 FTA에 숨어 있는 인간의 교만을 보고 있습니다. 서로는 모두 FTA를 통해 세계를 경제로 정복하고자 하는 허망한 꿈을 꾸고 있습니다. 가난한 나라나 약자를 위한 연대나 보호정신이 결여된 강대국간의 협정은 하늘 끝에 닿아보겠다는 오늘의 바벨탑입니다. 아담으로부터 시작한 인간의 뿌리 깊은 hubris의 교만의 연속입니다. 시작이 그러하면 그 끝은 가보지않아도 분명합니다. 가보고나서야 깨닫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예수 정신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은 가보지 않아도 길의 시작을 보면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우리 민족이 자기 자리를 알지 못하고 까불다가 다칠까봐 걱정입니다. 아니 이미 다쳤습니다. 다쳐도 많이 다쳤습니다. 식민지로 당했고 독재로 당했고 IMF로 당했습니다. 지금도 분단으로 심하게 절뚝거리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 우리는 전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 이번에 독일이나 스위스는 처음 가보았고 한 열흘을 돌아다녔고 그것도 교회나 교회기관을 중심으로 돌아다녔으니 극히 일부분만 보고 온 셈입니다. 한국말도 못하는 어떤 외국 사람이 인도자가 인도하는 대로 이곳저곳 한 며칠 다니고 나서 남한의 경험을 얘기한다면 우리가 모두 웃듯이 사실은 저의 유럽 경험 얘기도 웃기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20년 넘어 외국생활을 한 저로서는 겉으로 본 피상적인 경험이었지만, 저들의 뿌리 깊은 생각이나 문화 그리고 세계를 향해 배우고자 노력하는 진지함과 겸손들을 다시금 확인할 수가 있었습니다.
[새 시대의 선교이해]
오늘의 말씀을 결론 맺겠습니다. 흔히 사도행전의 말씀은 선교의 역사로 이해합니다. 예루살렘에서 출발하여 유대와 사마리아를 넘어 땅 끝까지 나아가는 예수님의 말씀에 근거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번 평화여행을 통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던 땅 끝 선교 그리고 스데파노가 추구했던 개혁의 선교정신은 그러한 식민지적 정복이나 기독교국가 팽창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선교란 상대방을 인정함으로 서로의 이해를 통한 세계 창조보존을 위한 동반자로 나아가는 활동입니다. 존 로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고를 멈추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한 가지 분야의 책만 일고 한 가지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하고만 대화하는 것이다.”
참 선교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한 가지를 다른 사람도 믿도록 설득하거나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사고하고 살아가는 방식을 배워감으로 자신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가는 신앙의 방식입니다. 이번에 제가 가본 유럽의 교회들은 17,18세기의 그러한 식민지적 정복선교방식이 잘못이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남한의 교회들은 그들이 저지른 정복주의적인 선교방식을 그대로 채택하고 무분별한 해외선교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분명 복음서에 나와 있는 예수님의 선교에서 돈으로 선교하거나 자기의 생각을 강요하는 정복주의적인 태도를 결코 볼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가난하고 힘없는 민중들에게 부자들의 것을 가짐으로 부요해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런 가난한 상태의 자신을 알고 그 빈 모습에서 인간의 참 모습을 발견할 때 거기에 하느님의 영이 깃들고 거기에서 참 부요가 온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라는 축복의 신비가 담겨 있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완전하신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하는 말씀의 신비가 담겨 있습니다.
창세기 1장으로부터 3장까지의 천지창조의 이야기에서 분명히 강조하고 있는 것은 창조주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세계의 동반자로 파트너로 불렀다는 것입니다. 여기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그림 한 장이 있습니다. 하느님이 인간 아담과 서로의 손가락이 닿을락말락하는 장면의 그림입니다. 이 그림은 500년 전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미켈란젤로가 그린 것입니다. 이 그림을 자세히 보시면 하느님은 천사들에게 의해 둘러싸여 있고 아담은 불모지에 놓여 있습니다. 여기 하느님의 손은 강한 힘으로 충만해 있으면서 인간을 향해 온 몸이 앞으로 쭉 뻗어 있고 이 검지 손가락 끝에 창조의 충만한 힘이 느껴집니다. 반면 아담은 약간 뒤로 움추린 자세 속에서 힘없이 손가락을 내밀고 있습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은 이 대조적인 그림에서 창조주 하느님의 인간을 당신의 동반자로 초청하고자 하는 깊은 의지를 느낄 수 있다고 말하지만, 저는 오히려 이 아담의 움추린 자세를 보면서 오히려 이는 하느님의 초청을 거부하고 하느님 없이 한번 서보겠다고 하는 인간의 교만을 그린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그림을 액자에 넣어 저 뒤에 다른 그림들과 함께 걸어 놓겠습니다. 앞으로 이 그림을 보실 때마다 하느님께서 쭉 뻗으시는 그 초청의 손가락에 엉거주춤한 자세가 아닌 그 은혜에 감사하여 나도 또한 하느님을 향해 힘껏 손을 뻗는 순종과 감격의 신앙인이 되겠다는 다짐을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그림을 보시면서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