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을 알리는 기쁜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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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성탄절 크리스마스라 부릅니다. 영어로는 크리스마스 앞에 Merry 라는 단어를 붙여 메리 크리스마스/기쁜 성탄절이라 붙입니다. 어제 저녁에는 지난 달 일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스스로 삶을 마감한 삼성전자서비스의 최종범노동자의 아들 별이의 첫돌을 축하한다며 많은 기독교인들이 모여 강남역의 삼성빌딩 앞에서 촛불을 켰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그렇게 숨 막히는 지하철을 타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기도회에서 향린공동체의 아는 여집사님을 만났더니 자신은 지하철 세 대를 그냥 보내고 이제야 겨우 온다고 말합니다. 사람도 많았지만, 또 많은 사람들이 케잌박스를 하나씩 들고 있어 더욱 붐비는 듯 싶었습니다. 이리 밀리고 저리 밀려 발이 밟히기도 하여 짜증 섞인 소리 한마디 들리듯 싶은데, 불평하는 소리는 거의 없습니다. 사람들의 표정은 다른 날보다 밝았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였기 때문입니다. 왜 오늘이 기쁜 것입니까 라고 물으면 사람들은 어떤 답을 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상가의 불빛은 반짝였고, 백화점은 더욱 많은 인파로 인해 차고 넘쳤습니다.

 

성탄절은 기독교인들이나 비기독교인 모두가 기뻐하는 절기가 되었는데, 그건 종교적인 이유에서라기보다는 상업적인 이유입니다. 다른 일로 기뻐할 수는 없으니 선물이라도 사서 주고받음으로 기뻐하자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가장 매출이 많은 때가 바로 성탄절을 전후한 계절입니다. 묘하게 연말연시와 겹쳐 더욱 그러합니다.

 

그래 그런지 여러분의 얼굴 또한 다른 날과 달리 더욱 밝아 보입니다. 오늘 저는 하늘뜻펴기 제목을 이사야의 외침을 따라 해방을 알리는 기쁜 소식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있어 해방이 되는 기쁜 소식이 있다면 무엇이 될까요? 이사야는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동족들이 해방을 받아 돌아오는 이 기쁨을 노래하고 있습니다만, 오늘 여러분에게 있어 기쁜 소식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지금 여러분이 기다리는 가장 기쁜 소식은 무엇입니까?

 

복권당첨인가요? 엊그제 캐나다에 사는 한 사람이 4천만불 곧 400억원에 해당하는 복권에 당첨되었는데, 이를 통째로 자선단체에 기부하겠다고 하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저에게 있어 가장 기쁜 소식은 남과 북의 정상들이 함께 모여, 그간 우리가 세계의 군사패권주의에 속아 살아 왔음을 회개하고, 각각의 군대를 3분지 일로 줄이고 모든 군사무기들을 휴전선에서 철수하여 북은 중국 국경으로 남은 남쪽 일본 해역으로 재배치하겠다는 선언입니다.

 

성탄절이란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입니다. 본래는 로마시대에 태양절 축제였는데, 기독교가 국교화됨으로 태양절 절기가 성탄절로 바뀐 것입니다. 밤보다 낮이 점점 길어지는 이 시기를 예수의 탄생과 결부시킨 것은 퍽 깊은 뜻이 있습니다. 기독교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인데, 흔히 어둠은 모든 생물들이 활동을 멈추는 죽음의 시간으로, 낮은 모든 생물들이 약동하는 생명의 시간으로 이해되었기에 이는 성서의 말씀과 일치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는 북반구에 사는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해석입니다. 왜냐하면 지구 반쪽인 남반구에 사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오히려 낮의 시간이 줄어들기 시작하는 하지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성탄 사건은 자기 비움과 낮아짐]

 

성탄사건이란 하느님의 독생자 오늘 히브리서 기자나 요한복음 기자에 의하면 이는 단순한 아들이 아니라, 하느님 자신이 아들 예수의 몸을 입고 땅에 내려오신 사건을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통해서 온 세상을 창조하셨으며 그 아들에게 만물을 물려주시기로 하셨습니다. 그 아들은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찬란한 빛이시오, 하느님의 본질을 그대로 간직하신 분이십니다.”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셨다. 이 말씀이 사람이 되셨는데, 그 분이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다라는 것이 초대교인들의 신앙고백이었습니다. 하느님이 땅에 내려오셨고, 인간의 몸을 입으셨다고 하는 이 고백은 단순한 찬양이 아니라, 당시의 시대를 향한 교회의 신학적 선언이었습니다. 모든 인간은 하느님 앞에서 다 평등하다고 그래서 인간이 인간을 억누르도록 만드는 세상의 권력은 악하다고 하는 평화의 선언이었습니다.

 

이를 보다 이해하기 쉽게 풀어쓴 것이 빌립보서에서 말하는 하늘 비움 사건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굳이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려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의 것을 다 내어 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높이 올리시고 그래서 우리 모두는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고 예수를 그리스도라 주님이라 찬미하는 것입니다.”

 

곧 성탄절이란 하느님께서 자신의 기득권을 버리신 사건입니다. 따라서 성탄절을 축하하다는 말은 선물을 주고받음으로 축하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위의 우리보다 낮은 사람들과 더불어 사랑을 나눔으로 축하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로부터 낮은 곳에 있지만, 동시에 누군가로부터 높은 곳에 있습니다. 위를 쳐다보아도 끝이 없지만, 아래를 쳐다보아도 끝이 없습니다. 그런데 위를 쳐다보면 억울하기 짝이 없고, 왜 나만 이렇게 고통 중에 사는가 하는 설움과 한탄이 나오지만, 또 아래를 쳐다 보면 아직도 나는 다른 사람에 비해 많은 것을 갖고 있고, 하느님께 감사할 것이 많은 사람임을 깨닫게 됩니다. 곧 성탄절은 자신을 비우시고 낮아지신 하느님을 따라,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당하시어 말 밥통에 누이신 아기 예수님을 따라 위 대신 아래를 쳐다 보는 절기인 것입니다. 그래서 기쁜 것입니다. 내 삶의 환경이 달라져서 기쁜 것이 아니라, 내 삶의 환경은 그대로인데, 이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짐으로 불평과 불만이 감사와 만족으로 바뀜에서 오는 기쁨인 것입니다. 밖으로부터 오는 기쁨이 아니라, 내 안으로부터 오는 기쁨이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준 성탄의 선물입니다.

 

[성탄절과 전쟁]

 

유럽에는 전쟁도 잦았고 그래서 성탄절과 관련된 아름다운 얘기도 여럿 있습니다. 가장 잘 알려진 얘기로는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 191412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벨기에 이프르에서 영국군과 독일군 사이에 일어난 일입니다. 추운 밤 서로 참호 속에서 대치한 가운데, 한 독일병사가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에 영국군이 환호를 보냈고, 독일 장교와 영국 하사가 참호에서 나와 악수를 하고 서로 가진 것들을 나누었고 그 다음날은 서로 축구를 하기도 하였고 카드놀이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사건이 후에 상부에 알려지자 이는 문제가 되어 양쪽 군사들은 군사재판에 회부되었습니다.

 

2차 대전 당시에는 이보다 더 극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날은 크리스마스 이브였습니다. 내가 12살 때 어머니와 나는 독일과 벨기에 국경 부근에 있는 숲 속 오두막집에 살았습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적군은 필사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멀리서 울리던 포성이 점점 가까워졌습니다. 어머니와 나는 무서움에 몸을 떨며 오두막집 안에 숨어 있었습니다. 그 때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첫 번째 노크 소리가 들렸을 때 어머니는 촛불을 껐습니다. 그리고 문을 여니 밖에는 병사들이 서있었습니다. 그 중 한 명은 많이 다친 것 같았습니다. 어머니는 나를 돌아보며 낮은 소리로 침착하게 말했으나 목소리는 심하게 떨렸습니다. 다행히 병사들 중 한사람이 우리말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도와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그들을 집안으로 들어오게 하였고, 침대보를 길게 찢어서 붕대로 사용했습니다. 또 닭고기 수프와 구운 감자로 식탁을 차렸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다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또 길을 잃은 병사들이 찾아왔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문을 열었습니다. 문 밖에는 아군들이 서 있었습니다. 나는 문 앞에 선 채로 얼어붙은 것 같았습니다. 어린 나의 생각으로도 이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적군을 집안에 들여놓은 것도 문제이지만, 거기다가 부상병 치료에 식사 대접까지 한다는 것은 아주 큰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문 앞에 굳어버린 듯 서있는 나를 보고 어머니가 문 곁으로 다가오셨습니다. 순간 어머니의 얼굴도 하얗게 변했습니다. 그러나 곧 조용하게 말했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메리 크리스마스밖에 서 있던 우리나라 병사 네 명 중 얼굴이 큰 병사가 말했습니다. “우리는 길을 잃었습니다. 날이 밝을 때까지 이집에서 좀 쉴 수 있을까요? 도와주십시오.” “물론이지요. 따뜻한 음식도 있으니 어서 들어오세요.” 어머니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손님이 세 사람 있습니다. 그들을 보면 아마 다른 생각이 들지 모르겠지만 오늘이 크리스마스 이브인 것을 기억해 주세요.”

 

어머니의 말에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우리나라 병사가 아닙니다.”어머니는 우리 병사들의 얼굴을 쳐다보며 계속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그들도 당신들처럼 도움이 필요한 어린 병사들입니다. 한 명은 부상을 당했지요. 나머지 두 사람도 몹시 지쳐 있어요. 오늘만은, 오늘밤만은 전쟁에 관한 일은 잊도록 해요.” 어머니가 부드러운 말투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들은 한참 동안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습니다. 침묵이 흘렀습니다. 그 시간이 아주 길게 느껴졌습니다.

 

, 어서들 들어오세요. 음식이 식겠어요.” 어머니는 애써 밝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들은 한동안 묵묵히 생각을 하다가 집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총을 어머니에게 내밀었습니다. 어머니는 총을 받아서 방구석에 놓고 의자와 침대를 끌어와서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이윽고 우리나라 병사들과 다른 나라 병사들이 좁은 집안에 모여 있게 되었습니다.

 

감자를 더 가져와야겠구나. 모두들 배가 고플텐데 먹을 게 부족하면 손님들이 화를 낼지도 모르잖니?”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환하게 웃으셨습니다. 어머니의 웃는 얼굴을 본 병사들의 표정도 조금씩 부드러워졌습니다. 나는 창고에 가서 감자를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집안으로 들어서는데 부상당한 병사의 신음 소리가 들렸습니다. 우리나라 병사 한 명이 부상당한 병사의 상처를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전쟁 전까지 의과 대학에서 공부했어요. 다행히 추위 때문에 상처가 곪지 않았군요. 조금 쉬면 아물 것 같습니다.” 그 병사가 부상병을 돌보며 이렇게 말하자 그제야 서로에 대한 의심이 풀리는 듯했습니다. 우리나라 병사가 꺼낸 빵 한 덩어리와 포도주 반병을 식탁에 놓고 어머니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어머니의 기도가 끝나자 우리 병사들의 눈에도, 미군들의 눈에도 눈물이 맺혔습니다.

 

우리 집에서의 휴전은 다음 날 아침까지 이어졌습니다. 부상병은 편히 쉰 덕분에 어머니가 끓여준 죽을 받아먹을 정도로 회복되었습니다. 병사들은 장대 두 개를 가져다가 식탁보를 묶어서 들것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부상병을 뉘었습니다. 미군이 갈 길을 말하자, 우리나라 병사가 그 길은 이미 우리 병사들이 점령을 해서 위험하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모두 무사하길 빕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미군들은 우리나라 병사들이 알려 준 길을 따라 갔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우리 병사들도 길을 떠났습니다. 그들의 모습이 숲 속으로 사라지고 난 뒤에도 어머니와 나는 오래오래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세상은 혼돈과 어둠 속에 있고, 시리아와 남수단, 이락과 아프카니스탄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는 지금도 총소리와 대포소리가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포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언제 포소리가 터질지 모르는 긴장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루 이틀, 한달, 두달, 한해 두해도 아닌, 한 평생 70년 가까이 전쟁의 공포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같은 말과 같은 습관 심지어는 같은 부모님 밑에서 태어났지만, 남과 북으로 갈려 원수가 되어 살아가고 있고 정치인들은 기회만 되면 상대방이 곧 침략할 것이라고 공포와 미움을 키우고 있고, 이 공포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일에만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어리석기 한이 없는 일입니다. 이는 스스로의 인간성이 악마로 변해가고 자기 자식들을 죽음의 골짜기로 몰아넣는 일임을 알지 못하는 매우 어리석은 일입니다.

 

소수의 백성만이라도 깨어났으면 좋겠습니다만, 그렇지 못해 매우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우리마저 세상의 어둠에 함께 파묻힐 수는 없습니다. 어둠이 결코 빛을 이길 수 없듯이 단 하나의 촛불이 주위 모든 어둠을 일시에 물러가게 하듯이 우리의 작은 선한 행동과 평화의 기도가 세상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시편 기자의 기쁨의 찬가로 우리의 염려를 다 몰아내고 의의 길에 굳건히 서십시다. “온 세상아 야훼께 환성을 올려라. 기뻐하며 목청껏 노래하여라. 거문고를 뜯으며 야훼께 노래 불러라. 야훼 앞에서 환성을 올려라 세상을 다스리러 오신다. 온 세상을 올바르게 다스리시고 만백성을 공정하게 다스리시리라.” 이어지는 성찬식과 찬양의 노래를 통해 하늘의 충만한 평화의 기운이 여러분 모두의 삶에 임하시어 어둠의 세력들을 몰아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