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은 오고야 만다

23:1-6; 46; 1:15-20, 23:33-43

 

세상 달력은 오늘이 11월의 마지막 주일이고 한해가 마무리되려면 아직 한 달이 더 남아 있습니다만, 교회력은 대림절 첫 주일을 한 해의 시작으로 여깁니다. 대림절은 성탄절을 앞둔 4주간을 말하는데, 올해는 다음 주가 대림절 첫 번째 주일이 되겠습니다. 따라서 오늘은 신앙적으로는 한해를 마무리 짓는 마지막 주일입니다. 그래서 보통은 성서일과에 제목이 붙어 있지 않는데, 오늘은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그 제목은 그리스도의 통치입니다. 이는 한해를 마무리 짓는 신앙인들의 고백의 제목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서 본문이 예수께서 십자가에 위에서 강도에게 한 말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는 말씀인데, 이는 정작 우리가 송년주일에 지키는 성도추모주일에 적절한 본문이기에 오늘은 다루지 않겠습니다.

 

[높은 그리스도와 낮은 그리스도]

 

복음서 본문 보다는 사도 바울이 골로새교회에 보낸 편지글이 이 제목에 더 어울리는 본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형상이시며 만물에 앞서 태어나신 분이십니다. 그것은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 곧 보이는 것은 물론이고 왕권을 비롯한 보이지 않는 권세까지도 모두 그분을 통해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만물은 그분을 통해서 그리고 그분을 위해서 창조되었습니다. 그분은 만물보다 앞서 계시고 만물은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속합니다.” 이는 단순한 편지글이 아니라 교리적으로 매우 정리가 잘 되어 있는 하나의 정형화된 초대교인들의 신앙고백문입니다. ‘사도신조나 향린교회의 이 땅의 향기로운 이웃과 같은 것입니다. 신학 용어로는 이 본문을 가리켜서 높은 그리스도론(high christology)’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종의 모습이나 십자가 위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타니’(‘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며 신음하는 낮은 그리스도(low christology)와 대칭적으로 부르는 용어입니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오늘 하늘 높이 계신 그리스도에 대한 찬양과 고백을 하는 것은 지나간 일 년을 돌아보며 그것이 우리에게 기쁨을 준 자랑거리로 가득 찼든지 혹은 반대로 우리에게 아프게 한 실패로 가득 찼든지 그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귀결된다는 고백을 통해 한 해를 감사와 찬양으로 마무리 짓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높아진 그리스도와 낮아진 그리스도의 상반된 교리는 하나씩 구분하여 떼어놓고 보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이는 이 창은 모든 방패를 뚫을 수 있다는 모()와 이 방패는 모든 창을 막을 수 있다는 순()이 단어로는 존재하지만, 실재로는 공존할 수 없는 것처럼 이 상반된 두 개의 그리스도론을 함께 받아들이는 일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마지막 때 심판주로 수천수만의 천사들을 거느리고 하늘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승리자로서의 그리스도의 모습과 저 십자가 위에서 가시면류관을 쓰고 계시는 패배자로서의 그리스도의 모습이 어떻게 함께 할 수 있는가? 여러분은 저 십자가를 향해 예수 그리스도는 만왕의 왕이라고 하는 영광송을 부를 때에 어떤 그리스도의 모습을 그리면서 부르십니까? 눈을 감고 하늘 옥좌 우편에 앉아 계신 모습을 상상하시면서 부르십니까? 아니면 저 십자가에서 고통 짓는 예수님의 모습을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부르십니까?

 

같은 그리스도인이라 하더라도 천상의 높은 그리스도와 지상의 낮은 그리스도 둘 중 하나를 더 중요시 여기게 되는데, 보통 보수 그리스도인들은 높아진 천상의 그리스도를, 진보 그리스도인들은 낮아지신 지상의 예수를 보다 중요하게 여깁니다. 높아진 그리스도는 주로 교회 안에서의 찬양과 고백적인 교리가 중심이 되고, 낮아진 그리스도는 성문 밖 낮은 곳에 나아가 낮은 자들과 함께 하는 삶의 나눔이 중심이 됩니다.

 

그러기에 일반적으로 보면 보수교회가 진보교회들보다는 예배당에 오기를 좋아하고 그래서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어려운 현실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이 없고 아름답고 휘황찬란한 하늘의 모습만 얘기하니까 교회에만 가면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입니다. 회개를 자주 외치지만, 잘못에 대한 모든 책임은 결국 하느님께 있습니다. 반대로 진보교회는 어려운 현실을 얘기하고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니까 교회 오면 마음이 불편해지고 부담감이 커집니다. 그래 그런지 보수교회와 달리 앞자리에 앉기를 싫어하고 뒤에 앉기를 좋아합니다. 보수교회에서는 설교단상이 하늘보좌로 상징이 되고 그래 앉아있는 순서가 천국 들어가는 순서라 생각하여 앞자리를 놓고 다투기도 하지만, 진보교회에서는 이게 십자가 지는 순서라 생각하여 앞자리에 앉기를 꺼려하고 있습니다. 그래 잘못하면 보수 그리스도인들은 신앙과 현실이 따로따로 놀게 되고, 진보 그리스도인들은 눈앞에 보이는 현실을 하느님 나라와 동일시하는 하게 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분명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주기도에서와 같이 이 땅 위에 세워지는 나라이지만, 그러나 그 나라는 인간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지는 나라는 아닌 것입니다.

 

[세계 평화와 종교간 평화]

 

또 천상의 높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과 찬양은 교회 안에서는 문제가 안 되지만,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는 걸림돌이 되고 특히 다른 종교인들에게는 거부감을 불러일으킵니다. 기독교인들이 믿는 예수가 단 하나뿐인 신의 형상이자 모든 만물의 근본이라는 고백을 인정하게 되면 자신들이 믿는 부처나 알라의 신앙을 부정하게 되는 모순이 생깁니다. 따라서 타종교인들은 높은 그리스도를 주장하는 사람들과는 상종하는 일을 피하게 됩니다. 모든 종교는 사랑과 자비 그리고 화해와 일치를 가르치지만, 동시에 세계에서 벌어진 전쟁의 대부분이 종교에서부터 시작하고 있음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종교간에 평화없이 세계 평화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세계 평화는 종교를 떠나 세계인들이 공통된 목표인데, 그렇다면 어떻게 서로 다른 종교인들이 다투지 않고 함께 평화를 도모할 것인가? 하나의 길 밖에는 없습니다. 서로 다른 점은 인정하고, 공통의 관심사를 함께 일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약자를 위해 봉사하고 사회의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함께 일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이것이 바로 세계교회협의회가 말하는 다양성 안의 일치입니다. 그런데 일부 몰지각적인 보수교단들은 부산 WCC 총회에 참여한 세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사탄이라고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우리나라 교회 역사는 이제 겨우 130년입니다. 수백 년 어떤 교회는 천년 시리아의 정교회는 초대교회로부터 이어오는 2천년의 역사가 있습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표현이 딱 맞는 경우입니다.

 

그러다보니 해외선교한다고 하면서 신앙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을 담고 있는 문화까지도 함께 강요하게 됩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인해 한국교회가 국악을 경시하게 된 것입니다. 기독교와 서구문화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만, 서구 선교사들이 이를 혼돈하여 전파했고, 또 한국교회는 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결과 오늘 한국교회가 어떤 모습인가요? 북에서는 기독교와 미국을 동일시 여김으로 교회를 핍박했고 지금도 포교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예수의 복음이 갖고 있는 민중 주체성과 해방성을 바로 이해했더라면 그렇게 박해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남쪽은 어떠한가요? 자유라는 이름하에 갈기갈기 찢어졌습니다.

 

2주전 저희 교회에 부산총회에 참석한 6명의 외국인 목사님들이 오셨는데, 차 안에서 아프리카에서 오신 장로교 목사 한분이 제게 묻습니다. “남한은 장로교인이 그렇게 많다면서요?” 본인의 나라에서는 장로교인들이 소수이다 보니까 다수인 남한 교회에 오니까 가슴이 뿌듯하다는 그런 의미였습니다. 저는 그런 교파적인 발언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만, 이렇게 답변을 드렸습니다. “예 남한 개신교인의 70% 가까이가 장로교인입니다. 그런데 문화공보부에 공식적으로 등록된 장로교단의 숫자만 230개를 넘습니다. 이 교단은 모두 각각의 신학교가 따로 있어 신학 또한 천지차이이며 서로 만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자 입이 딱 벌어지더니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분단과 정치권력]

 

남한 교회와 같이 사분오열된 교회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 분열의 비정상은 비정상적인 교리에서 나오고 이 비정상적인 교리는 비정상적인 성서해석에서 나오고 이 비정상적인 성서해석은 비정상적인 형제미움에서 나오고 이 비정상적인 형제미움은 비정상적인 남북분단에서 나오고 이 비정상적인 남북분단은 비정상적인 외세농간에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분열을 바로 잡으려면 외세의 농간에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는 한 우리는 평생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불쌍하기 매 일반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정상적인 사람이 되고자 해도 그게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우리가 분단의 구조 안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저 잊을만하면 정부와 언론은 연평도 도발 몇 주기, 천안함 침몰 몇 주기, 625남침 몇 주기를 계속 외쳐 되며 광화문 사거리에 북에 대한 적개심을 불러일으키는 사진들을 전시합니다. 반면 남북화해의 상징인 104정상회담이나 615남북공동선언 같은 것은 없던 일로 묻어버립니다. 순수한 만남인 남북 기독교인들의 만남도 방해합니다. 통일부가 아니라 분단적개부로 이름을 바꾸는 것이 마땅합니다.

 

지금 남쪽 정부가 말하는 북방프로세스니 6자회담이니 하는 말은 양의 탈을 쓴 이리의 거짓에 불과합니다. 진심이 담긴 말은 하지 않아도 눈빛으로 다 알 수 있습니다. 요즘 대부분의 언론은 청와대 대변인 역할을 하는 땡전뉴스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어제는 문화방송이 진짜사나이라는 예능프로그램에서 소설가 이외수씨의 출연 녹화분을 폐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며칠 전 천안함 제2함대 사령부에서 부대 장병을 대상으로 힐링 콘서트강연을 녹화하여 연말에 방영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천안함 폭침을 소설로 말한 이외수씨의 과거 발언을 새누리당 국회의원이 문제를 삼자 국방부까지 나서 결국 폐지를 하게 된 것입니다. 언론의 자유가 없는 우리 남한 사회를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천안함 사건은 조금만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조작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미 여러 차례 이 자리에서 그 이유를 설명하였기에 또 다시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천안함 조작과 F35전투기 구입이 깊은 관련이 있다는 얘기 또한 3년 전부터 미국 상원 국방청문회를 보고나서 제가 주장해왔던 부분입니다. 당시에는 F35전투기라는 말도 거의 나오지 않았을 때입니다. 스텔스 기능 때문에 F35전투기로 결정했다는 국방부의 이번 주장도 말이 안 되는 얘기입니다. 그것이 이유라면 처음 전투기 구매 얘기가 나오던 2년 전에 이미 결정을 했어야지요. 그리고 너무나 우스운 것은 이 전투기가 앞으로 5년 후에 나온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북쪽이 레이더탐지 기술이 부족하여 이 전투기를 잡지 못한다 하더라도 5년 후에 레이더 기술이 발전하여 이를 잡아내게 되면 이 비행기를 선택할 이유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구입하기로 결정하는 이유는 미국의 무기업자들과 금융자본주의 그리고 군사패권주의가 결탁하여 전시작전권이 없는 남한을 압박한 결과입니다. 요즘 존에프 케네디대통령 암살 50주기를 맞아 여러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저는 이 암살 배후에 무기생산업자들이 음모가 있다고 봅니다. 케네디대통령은 긴박했던 큐바 사태 이후 큐바는 물론 소련과의 핵군축 협상을 통해 세계 냉전 탈피를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결국 케네디 암살 이후 통킹만 조작을 통해 베트남전쟁을 시작한 것입니다. 오늘 시편기자는 우리가 믿는 야훼 하느님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땅끝까지 전쟁을 멎게 하시고 창꺽고 활 부러뜨리고 방패를 불살라 버리셨다. 너희는 멈추고 내가 하느님인 줄 알아라.” 기독교인들은 전쟁무기를 계속 사들이는 것이 안보가 아니라, 평화협상을 통해 군축을 하고 끝내 이땅에서 살인무기를 없애는 것이 진정한 안보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무기자본과 세계패권]

 

저는 우리 백성들이 권력자들이 말하는 국가안보라는 거짓 틀에 매여 정작 사용도 못할 비싼 무기를 구입하여도 아무 말 못하고 바보같이 살아가는 것이 너무 안타깝고 부끄러운 것입니다. 미군이전비용으로 돈을 달라고 요구해서 할 수 없어 주니까 이를 은행에 넣어놓고 수천억 원의 이자놀이를 했는데도 아무 말 못하는 나라에 산다는 것이 너무 억울한 것입니다. 그럴 줄 알았기에 우리가 평택 대추리까지 가서 반대하는 예배를 드린 것 아닙니까? 그럴 것을 알기에 강정의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것 아닙니까? 불의한 일을 바로잡자고 나선 신부님들에게 당신들의 조국이 어디냐고 묻는 청와대 권력자들! 미국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허깨비들은 조국이란 단어조차도 입에 올릴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세계가 우리를 보고 미국의 똘만이 국가라고 말하는 것이고 일본 수상이 대놓고 남한을 어리석은 나라라고 말하는 것 아닙니까?

 

삼성이 돈 벌면 뭐해요? 베낀 죄로 애플에다 3억 달러 배상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소송비용만도 2억 달러가 넘습니다. 이것저것 다 합치면 수조원에 달할 것입니다. 삼성이 우리나라 사람 밥 먹여 주는 줄 압니까? 천만에요. 미국사람 밥벌이하고 있습니다. 삼성은 재주만 넘지 돈은 미국금융자본이 다 삼키고 있습니다. 삼성제품 서비스직에 계시는 분 너무너무 힘들다고 자살하였잖아요? 이런 자본의 실상을 알고 있었으면 힘은 들었지만, 자살은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환상을 품으면 현실을 이겨날 수가 없기에 생을 포기하게 되는 겁니다. 제가 이런 얘기를 드리는 것은 우리가 실상을 제대로 보아야 어떻게 살아가야할지를 알고 그에 따라 어떻게 믿어야 할지를 판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숲속에서는 나무들이 왜 한쪽 방향으로 자라나는지를 알 수가 없지만, 높은 산에서 내려다보면 다 보입니다. 신앙에서 높은 산은 어디를 말하는 것입니까? 영원입니다. 영원의 세계에서 이 세상을 보면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다 보입니다. 저는 다만 예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권력자들이 하는 말에 따라 이리저리 부화뇌동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되지 않고, 깨어있는 민중들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높은 자리에 올라갔건 돈을 얼마나 많이 가졌건 얼빠진 인간이 되어서 세상 바람 부는 대로 이리갔다 저리갔다 해서야 그게 무슨 의미가 되는 것입니까? 비석에 경력 새기자고 사는 것 아니잖아요. 죽음의 천사가 들고 온 광주리에 담아갈 수 있는 것들을 위해 살아가야 합니다.

 

홍근수목사님께서 염려하셨던 부분 또한 그런 것이었지요. 자유인이 되라고 말씀하신 것은 자기 편한대로 살라는 의미가 아니라, 사회적 책임을 선택하는 자유인이 되라는 말씀이셨던 것입니다. 향기로운 이웃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고민하는 신앙인이 되라는 말씀이셨던 것입니다. 북쪽 주민 또한 우리와 똑같은 감정을 갖고 있는 휴머니스트라는 말이 어떻게 국가보안법에 위배가 될 수 있습니까? 이건 법이 아닙니다. 악법은 법이 아닙니다.

 

[분단사고와 언론 타락]

 

여러분 요즘 정부의 대변인으로 전락한 보수 언론들이 어떻게 말을 비트는지에 대해서 잘 아실 것입니다. 최근 트위터에 재미있는 글이 있어 한번 옮겨봅니다.

 

예수 : "죄없는 자, 저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

언론 : "잔인한 예수, 연약한 여인에게 돌 던지라고 사주"

 

예수 : "원수를 사랑하라"

언론 : "예수, 북한사랑 발언, 사상 검증해야"

 

석가 : 구도의 길 떠나...

언론 : "국민의 고통 외면, 제 혼자만 살 길 찾아나서"

 

시이저 : "주사위는 던져졌다"

언론 : "시이저, 평소 주사위 도박광으로 밝혀져"

 

이순신 : "내 죽음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언론 : "이순신, 부하에게 거짓말 하도록 지시, 도덕성 논란 일파만파"

 

김구 : "나의 소원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통일입니다"

언론 : "김구, 통일에 눈 멀어 민생과 경제 내팽개쳐"

 

스피노자 :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나는 오늘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언론 : "스피노자, 지구멸망 악담, 전 세계가 경악 분노"

 

최영 :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

언론 : "최영, 돌을 황금으로 속여 팔아 거액 챙긴 의혹 "

 

전두환 : "전재산 29만원"

언론 : "현 정권 국가원로 홀대 극치, 코드인사 보훈처장 경질해야"

 

니체 : "신은 죽었다."

언론 : "현 정권, 신이 죽도록 뭐 했나?"

 

우리 사회가 오죽 병들었으면 이런 풍자의 글들이 떠돌아다니는가 하여 참담한 심정입니다. 언론은 민중의 지팡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권력자의 몽둥이로 변해버리고 말았습니다. 북쪽을 방문하여 김일성동상 앞에 가서 헌화하면 국가보안법 위반자로 구속이 됩니다. 그런데 경북 구미에 김일성동상보다는 못하지만, 5미터가 넘는 거대한 박정희동상이 세워졌는데, 얼마 전 그 동상 앞에 헌화가 아니라 흰옷을 입고 엎드려 절을 하는 한 무리를 보았습니다. 이 사회가 북의 잘못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따라가고 있습니다. 박정희가 북을 따라 영구집권하기 위한 총통제를 도입하려다가 김재규장군의 총에 맞아 죽었는데, 지금 북의 선군주의를 따라 남쪽 또한 선군주의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국방부와 국정원이 최고의 권력집단이 되었습니다. 대통령도 얼마든지 만들어내는 무소불위의 집단이 되고 말았습니다. 처음에는 국정원 직원 몇 명이 했던 수백 개의 댓글정도라고 말하더니 지금은 사이버사령부까지 개입하여 댓글 120만개가 넘었습니다. 선거가 아닌 쿠테타입니다. 파쇼의 폭력사회로 돌아서고 말았습니다.

 

여기에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건 정치의 영역이니까 잠잠해야 하는 것입니까? 양심의 자유가 억압받고 인권이 유린당하는 상황 하에서 잠잠해야 하는 것입니까? 자신의 목에 동아줄이 처진 다음에야 그제야 난 억울하다고 아무 잘못도 행하지 않았다고 누구 도와줄 사람 없느냐고 소리 칠 것입니까? 예수께서는 너희가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를 칠 것이라고 했습니다. 엊그제 천주교 정의구현 전주교구의 한 성당에서는 사제들과 신부 교인 4백명이 함께 모여 대선부정 불법선거를 규탄하며 박근혜 대통령은 사퇴하라는 현수막을 걸고 미사를 올렸습니다. 그 오른쪽에는 정의로써 소송을 제기하는 자가 없고 진실로써 재판하는 이가 없다. 헛된 것을 믿고 거짓을 이야기하며 재앙을 잉태하여 악을 낳는 자들 뿐이다.’라는 이사야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 나라는 기어이 오고야 만다]

 

안병무선생도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는 인권이 국가 권력에 우선한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인권은 하느님께 직속되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인권이 국가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인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여러분이 인터넷에 글을 쓸 때, 이 글을 국정원이나 청와대가 읽으면 어떻게 생각할까를 생각한다면 여러분의 양심과 인권은 이미 침해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노동자의 인권을 위해 일하던 활동가가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경찰서에 불려갔는데, 1년치 통화기록을 들고 오는 사회는 독재로 가는 경찰국가의 모습입니다.

 

오늘 예언자 예레미야를 통해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저주받을 것들아 양떼를 죽이고 흩뜨러 버리는 목자라는 것들아, 야훼의 말을 들어라. 내가 참 목자들을 세워 주리라. 내가 다윗의 정통 왕손을 일으킨 그날은 오고야 만다. 그는 현명한 왕으로서 세상에 올바른 정치를 펴리라. 그를 왕으로 모시고 유다와 이스라엘은 살 길이 열려 마음 놓고 살게 되리라.” 이는 오늘날로 말하면 현명한 대통령이 나타나 정의가 실현되고 남과 북이 공히 살 길이 열려 마음 놓고 함께 살아가는 평화의 나라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날은 꼭 오고야 만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위로하자고 하는 말이 아니라 하느님이 직접 하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골로새교인을 비롯한 초대교인들이 그냥 손을 들고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형상이요 모든 권력이나 천신보다 위에 계신 분으로 찬양한 것이 아닙니다. 로마제국이 황제를 신으로 숭배할 것을 강요할 때,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을 사회를 소란케 하는 불법자로 몰아 감옥에 가두고 원형광장에 끌고 나와 굶주린 사자 앞으로 내어몰 때, 죽음을 각오하고, 십자가 밟기를 거부하고 이를 고백한 것입니다.

 

여러분 아시는 대로 다시금 월요일저녁부터 그제 저녁까지 밀양에서 송전탑 반대 활동하시는 6,70대 할머니 세분이 불교에서 주는 인권상도 받고 여기저기 집회와 모임에 참석하시면서 향우실 방에서 머무셨습니다. 화요일 저녁 장로님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세분은 모두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3천명의 경찰 병력과 용역과 한전 직원들을 대상으로 승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마치 군인들이 벙커를 만들고 거기서 머물 듯이 지금 그분들은 땅을 파고 거기가 자신의 무덤인줄 알고 결사적으로 방어하고 있는데, 올 테면 오라는 것입니다. 저는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한분은 천주교인이지만, 다른 두 분은 신앙인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하느님이 자신들과 함께 하고 있음을 확신하고 권력을 향해 저렇게 당당하고 확신에 찰 수 있다니... 나는 목사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용기가 없으니 정말 나는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고 예수 그리스도야 말로 모든 세상 권력보다 위에 계신다고 고백하는 사람인가 하는 질문을 계속 던져봅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훗날 주님 앞에 섰을 때, 우리 모두 부끄럽지 않는 신앙인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느님이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평화가 이루어지는 그 날은 꼭 오고야 맙니다. 침묵 속에서 이 음성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